살짝 어두운듯한 집무실 내. 집무실에는 작은 서랍이 딸린 책상과 그 책상을 가득 메운 서류들, 접객용 소파와 고풍스러운 의자 하나, 그리고 이런 집무실의 분위기와 살짝 맞지 않는 옷장 하나뿐이었지만 허접하다는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다. 아마 이 집무실의 주인 때문이리라.
집무실의 주인공인 카일라는 살짝 풀어진 쪽 머리를 다시 묶으며 서류를 읽었다. 새로 올라온 안건이었다.
귀찮다.라는 생각을 잠시한 그녀는 입을 뗐다.
“사라.”
그녀가 허공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금발의 하얀 여자가 집무실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쪽 머리를 한 카일라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이 생겼다. 다만 다른 점이라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뿐. 사라라고 불린 이 여자는 온통 검은색에 딱 달라붙어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풀어 헤쳤고, 그녀를 부른 카일라는 간편한 원피스에 숄을 두르고 비녀를 두 개나 꼽은 쪽 머리를 했다.
“부르셨습니까.”
카일라의 부름에 사라가 대답했다. 사람의 목소리라기엔 많이 신비했다. 동굴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살짝 울린달까.
“그래. 부탁해.”
그 말과 함께 카일라는 책상 아래 오른 편에 있는 서랍 맨 아래 칸을 열어 안에서 큰 가방을 꺼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옷장으로 가서 간편하면서도 예쁜 여성 용 로브를 꺼내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예.”
부탁해.라는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도 사라는 그 말의 뜻을 알아듣고 카일라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옷은 거기 안에 있을 거야. 이번에도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특히 레이. 그 녀석은 나를 보좌한 지 몇십 년이나 되었어. 잘 알아채는 눈치더라고.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이지.”
“옷은 서랍 안에 있고, 들키지 않게 조심. 특히 레이 경을 주의할 것. 알겠습니다. 숙지했습니다.”
“그럼 이만.”
“다녀오십시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옷을 다 갈아입고 가방을 어깨에 둘러맸다. 로브의 모자를 쓰고 뭐라 중얼거리더니 카일라는 적은 양의 연기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는 이런 건 익숙하다는 듯, 신경 쓰지 않고 카일라가 내려놓은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보고 싶으셨나. 자기 명을 단축 시키시면서까지 나를 소환하시고. 아무리 내가 명을 빨아먹고 산다지만 걱정이 되는군.”
그러면서 집어 든 서류를 다시 내려놓고 카일라가 열어놓은 서랍에서 그녀의 옷과 같은 간편한 원피스와 숄을 둘렀다. 다 입은 후에는―입었다 기보다 걸친 것에 가깝다―다시 맨 아래의 서랍에 손을 뻗어 비녀를 꺼냈다. 그리곤 오른손 검지로 머리카락 끝부터 빙글빙글 돌려서 그걸 동그랗게 만 다음 비녀를 두 개 꽂았다. 그렇게 하니 평소에 집무실에서 일하는 카일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 해도 속아넘어갈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괜찮으니 제발 레이 경만이라도 속아넘어가 주면 좋겠다. 아니면 적어도 모른 척을 해 주던지. 보아하니 나한테 엄청 뭐라 하는 것과는 달리 자기 주인에게는 찌르기만 하고 까발리진 않는 것 같으니. 어떻게 소환주와 똑같이 분장을 해도 그렇게 잘 알아보던지.
이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방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세 번 났다. 벽이 아닌 문을 세 번 노크한다는 말은.......
“주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레이 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