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르드의 부기사단장 서임식이 성황리에 종료된 지 약 이틀 정도가 지난 어느 아침이었다. 숙소 밖으로는 한가로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왔으나 이비에타는 리허설 때의 기억 탓에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검을 건네면서 눈을 똑바로 마주쳤는데, 그 순간 시구르드의 그윽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을 향해 만면에 미소를 짓던 시구르드. 전생 때 막사 안에 홀로 앉아 주먹밥을 까먹을 때 자신을 바라보던 그 때의 미소와 똑같았다. 굉장히 사랑스러운 존재를 바라보는 미소... 는 개뿔이! 사실 속에 추악한 욕망을 담고 있는 미소나 진배없었다.
“이비에타 양은 이번에 통보 받으셨나요?”
“무슨 통보를 말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던 이비에타에게 시아가 말을 건넸다. 숙소의 침대 위에서 베개를 등 뒤에 댄 채 걸터앉아 뭔가를 읽어 보고 있었다.
무어라고 글씨가 가득 적혀 있는 갈색 종이. 그 아래로 ‘알리시아 르노웬 이노말리사 양에게’라고 필기체로 쓰인 하얀 봉투가 떨어져 있었다.
봉투의 봉인 부분은 누군가의 인장이 찍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칼베르크의 문장이었다. 다만 칼베르크 소속 정식 기사들의 옷에 새겨진 것보다 더 정교한 무늬가 채워져 있다는 점이 달랐다.
“오늘 아침에 부기사단장실에서 통보가 왔거든요. 새로 오신 부기사단장님께서 망령을 토벌하러 가는데 견습 기사 중 통보를 받은 자들과 함께 출정할 거라는 내용이에요. 통보를 받은 자들은 견습 기사들 중에서 출중한 자로 뽑혔다고 되어 있구요. 보아하니 망령을 실전에서 만나게 하려는 것 같은데...”
“그런데요?”
“일단 제 이름으로 한 장 와서요. 저도 뽑혔는데 이비에타 양이라면 당연히 뽑힐 것 같아서...”
“음, 어디서 받은 건가요?”
“문틈 사이로 보내진 것 같았어요. 제 이름이 쓰여 있는 봉투 안에 담겨서 왔거든요. 그런데 이비에타 양 거는 못 찾아서...”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하긴 궁금할 만도 했다. 뛰어난 견습 기사를 뽑는다는데 이비에타에게 안 온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기사단장도 (무력으로는) 꼼짝 못한다는 발뭉도 상처 하나 없이 쓰러뜨린 건 고사하더라도, 뛰어난 인재라며 굳이 서임식까지 참석시킨 인재에게 통보는 안 보낸다니 요상하게 느껴질 만도 했다.
“그러게요, 왜 안 보낸 걸까...”
당연하겠지만 이비에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시구르드 놈 또 뭔가를 꾸미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걱정부터 앞설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비에타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숙소의 문틈 사이로 쏙- 하고 봉투 하나가 들어왔던 것이다. 봉투 위에는 ‘이비에타 아르티스 라르힐리덴’이라는 이름이 가지런히 쓰여 있었다.
“와, 신기하다. 이비에타 양 봉투는 특이하게 생겼어요!”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비에타의 편지봉투에는 온갖 새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울퉁불퉁하고 색이 뭉쳐 있는 등 정교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노력의 흔적이 역력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새 중에서는 흰둥이가 물고 왔던 새 비슷한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이비에타는 봉투를 찬찬히 뜯어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와, 되게 귀여워요. 누가 그린 거지?”
시아가 새가 잔뜩 그려진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이비에타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새 좋아한다고 했던 걸 그새 주워섬겼냐. 쓸모없게...’
이비에타는 봉투를 거꾸로 들고 바닥으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도록 툭툭 내리쳤다. 시아가 보여 줬던 것과 같은 갈색 봉투가 흰 봉투 사이로 흘러내려왔다.
“저도 왔네요. 저도 뛰어난 견습 기사라는 건가 봐요.”
이비에타는 웃으며 갈색 봉투를 들어모였다. 시아는 이비에타에게 맞장구를 쳐 주며 따라 웃었다.
“발뭉 씨도 받으셨겠죠?”
“당연히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그 실력이면 당연히 받았을 테니까.”
“그나저나 망령을 약화시키는 능력자가 같이 대동한다니, 정말 신기해요. 그런 능력자가 있었다니...”
“남의 마나를 운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긴 합니다. 마나를 운용하는 망령에게는 쥐약이겠어요.”
“견습 기사로서 함께 부기사단장님과 대동하니까, 둘이 있을 시간도 생기겠죠? 기대돼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이비에타는 뜨끔한 느낌을 받았다. 평범한 사람이 들으면 ‘부기사단장님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정도로 들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비에타는 시아가 시구르드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 며칠 새 시아의 잠버릇이 더욱 험악해진 탓에, 그 증오가 어느 정도인지 피부에 깊게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시구르드가 부임한 이래 시아는 시구르드를 죽여 버리겠다고 울부짖는 게 더욱 심해졌다. 목소리가 다 갈라질 정도로 광적으로 울부짖었기에 시구르드에 대한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자는 이비에타에게는 더욱 생생하게 와 닿았다.
이런 상태인 시아가 부기사단장인 시구르드와 둘이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시구르드를 죽일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될 테니 너무 기뻐!’라고 해석되었다. 자칫하면, 아니, 높은 확률로 자신이 죽을 텐데 말이다.
그런 일이 있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시아는 시아나를 비쳐 보게 만드는 존재였던지라... 시아나를 시구르드가 찌르려 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시아까지 시구르드가 찌르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아가 시구르드를 공격한다면 시구르드 입장에서는 완벽한 정당방위가 성립되는 셈이니, 실패할 경우 개죽음도 이런 개죽음이 없었다. 그런 일만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이서만 함께 있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뿐이니... 이비에타는 둘이 절대 함께 있지 못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할 따름이었다. 생각해야 할 변수가 많아진다.
‘거기다가 그 사람에게 가선 발뭉 씨에게 줄 약을 부탁하는 것도 상정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가 문제란 말이지. 발뭉 씨도 없고 나도 없고, 시아만 남을 텐데. 같이 가자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기회를 넘기려 들지 않겠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끙 소리를 입 안으로 머금으며, 원정을 나가서도 골치 좀 썩겠구나 하고 절로 자괴감이 드는 이비에타였다.
“부기사단장님께서 이비에타 양을 되게 총애하시는 거 같아요.”
그렇게 힘들이던 중 느닷없는 시아의 말에 이비에타는 깜짝 놀라 어물어물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이비에타 양 봉투에만 특이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도 그렇고, 서임식에 함께한 것도 그렇고. 부기사단장님께서 이비에타 양을 계속 신경 써 주시는 것 같아서요...”
시아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잠시 말끝을 흐렸다. 아까까지 밝게 웃던 건 어디 가고, 우울한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이비에타 양은 부기사단장님께 총애를 받는 것을 좋아 하시겠죠?”
“좋아하기는요. 부담스러울 뿐입니다.”
“그럼 혹시 부기사단장님께 마음 있으신 건 아닌가요?”
“그럴 리가요! 그렇게 보이나요?”
“아, 다행이다 싶어서요...”
시아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만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질투 같은 거 아니에요! 절대로!” 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하. 그럼 그런 건 왜 물어 본 건가요?”
“이비에타 양에게 부기사단장님이 소중한 존재가 될까 봐 무서워서요...”
만약 평범한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여자애가 한 살 위 언니에게 고백이라도 하는 광경이라도 되는 양 오해를 했겠지만... 이비에타는 어렴풋이 왜 저렇게 말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무슨 소리에요? 그게!”
그래서 짐짓 큰 소리로 시아를 질책했다.
“이, 이건 그러니까... 사실...”
시아는 우물쭈물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쥐구멍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비에타 양, 저희 만난 지 정말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랬지만... 이비에타 양을 볼 때마다 엄마 같다고, 그렇게 생각이 들어서 행복했어요. 기사단에 와서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건가요?”
“제게 이비에타 양은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에요.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에요.”
아까까지만 해도 즐겁게 까르르르 떠들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시아는 방금 전까지 생글생글 웃던 얼굴을 벗어버린 채, 음울한 표정이 되어 말을 이어 나갔다.
“부기사단장 시구르드는 정말 무섭고 나쁜 인물이에요. 제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을 죽여 버린 사람... 그런 자가 이비에타 양에게까지 마수를 미칠 까 봐 너무 무서워서...”
어느새 시아는 이를 딱딱 부딪히고 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시아는 바들바들 떠는 목소리로 이비에타에게 말을 이어 갔다.
“이비에타 양을 잃고 싶지 않아요. 시구르드가 이비에타 양도 해치고 말 거야. 그 자는 사람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눈앞에서 부숴버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제발 제 말을 들어 주세요... 모든 이야기를 해 줄게요.”
언젠가 이런 화제가 나올 줄 알았고, 거기서 정보를 얻는 것이 필요했던 이비에타로서는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시구르드에 대한 정보도 얻고, 그간 무슨 일을 벌였는지도 알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속으로라도 쾌재를 불러 마땅할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눈앞에서 부숴버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시아의 설명을 들은 순간 이비에타는 전생 때의 일이 트라우마로 다시 떠올랐다.
그럴 거라 예측하기는 했지만 - 전생 때도, 현생 때도 시구르드는 변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다른 피해자의 입에서 자신이 전생 때 고스란히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전생 때의 이비에타와 현재의 시아, 두 피해자의 유일한 차이라면 그저 시구르드가 죽음을 맞이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이비에타는 졸도할 것만 같은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시아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듣기 위해 노력했다.
칼베르크에 온 지 열흘 가량이 지났으나, 나아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날의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