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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비에타-여기사의 두 번째 선택
작가 : 홍단
작품등록일 : 2017.7.9

"당신은 목숨을 걸 만한 남자를 만나, 죽음 같은 사랑을 할 것이다."

400년 전 전란의 시대 나라를 구했던 여기사 이비. 그러나 어렸을 때 들은 예언의 영향인지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이비에타'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로 환생하게 되어 새 삶을 살고자 하나, 전생과 똑같은 내용의 예언이 또 다시 자신을 옭아맨다.

예언을 피하기 위해 400년 전의 자신이 세운 기사단으로 도피하지만, 기사단은 부패로 몰락해 있어 이비에타를 짜증나게 만들고, 이 와중에 전생의 연인의 환생과 만나게까지 되는데. 이비에타는 예언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을까?

 
7화
작성일 : 17-07-20 06:47     조회 : 353     추천 : 0     분량 :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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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구르드와의 결혼생활이란 건 정말 꿈만 같았다. 이비에타는 그 당시 일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겠지만, 당시 정말 행복하고, 꿀이 떨어졌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회한을 느끼곤 한다.

 

  이비에타가 기사단을 설립하겠다고 할 때도 시구르드는 물심양면으로 이비를 도와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비가 영지를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비의 영지에 이비가 좋아하는 꽃들이 항상 심겨질 수 있도록 보조했다. 계절별로 이비가 좋아하는 꽃을 심어 주었으며 겨울이 되면 대륙 남쪽에서 공수해 온 꽃들을 눈 위에 송이송이 올려 두기도 했다.

 

  이비의 가족들에게도 깍듯하게 대하였으며 그건 마을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비의 가족들을 위하여 이비와 자신이 거처하기 위해 지어진 성 근교에 작지만 아름다운 성 한 채를 따로 지어 주었다. 이비의 가족들이 이비와 같이 공을 세우거나 함께 전장을 누빈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깍듯하게 대우했다.

 

  이비는 결국 결혼한 지 얼마지 않아 시구르드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얻게 되었다. 그녀를 똑 닮은 호박색 눈동자에 아비를 똑 닮은 검은 머리카락이 사랑스러운 여자아이... 하얀 피부에 발그스름한 볼이 매우 매력적인 아이였다. 둘은 아이의 이름을 ‘시아나 칼베르크 라르힐리덴’이라고 지어 주었다. 칼베르크라는 이름은 이비가 설립한 기사단의 이름이 되었다.

 

  아이는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 사랑스러워져만 갔다. 시아나가 조막만한 손가락을 들어 이비를 향해 손을 뻗을 때면 이비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으며, 아이가 ‘마마’하고 서투르게나마 첫 마디를 떼었을 때는 이젠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3살 쯤 되자 아이가 앙증맞은 신발을 신고 성 내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이비는 시아나의 뒤를 따라 성을 느릿느릿 함께 걸었다. 그리고 이비의 옆에는 항상 시구르드가 함께 걸었다.

 

  다만 전쟁 이후로 몸이 자주 아프고 마나가 제대로 쓰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는 점만이 옥의 티라면 옥의 티였다. 전란기에 체내에서 생성되는 마나의 양을 믿고 너무나 많이 써 댔기에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가족들의 의견이었다.

 

  왕궁의 의사들 또한 몸에서 대량의 마나가 빠져 나가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 설명하며 주의를 요하였다. 그로 인해 이비는 칼베르크를 관리하고 기사들과 함께 전란의 잔재를 토벌할 때 마나의 사용을 전폭적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원래 이비의 실력이 마나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었고, 마나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보통의 기사라면 쉬이 쓰러뜨릴 수 있었기에 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사용량을 줄였음에도 딱히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그러나 시구르드가 이비가 후유증으로 힘들어 할 때면 항상 이비의 곁을 지키며 지극정성으로 돌보았고, 좋다는 의사들이라는 의사들은 다 불러 모아 차도를 살피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기에 - 아니, 걱정해 주는 듯 해 보였기에 - 이비는 한 움큼도 불행하지 않았다.

 

  이렇듯, 이비의 삶은 누가 보아도 행복하다고 여길 만큼 완벽하게 흘러갔다. 점쟁이가 말했던 예언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이비는 예언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 같은’ 사랑을 한다는 그 불길하다면 불길한 구절에 대하여, 애써 자신이 해석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이비에게 큰 후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행복이란 행복은 산산이 부수어 버리면서 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릇이라 할지라도 깨져 버린다면 주워 담으려 한들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행복이란 것은 그렇게 쉽게 부서져 갔다.

 

 

  모든 것이 부서진 그날, 이비는 칼베르크의 기사 승급 시험에 참석하여 심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승급 시험은 이틀 정도 진행되기에 시구르드에게 칼베르크 기사단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올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평소대로였다. 이비는 자신을 붙잡으며 칭얼대는 시아나를 뒤로 하고 기사단으로 나섰다. 시구르드는 오늘 이비의 부모님께서 방문하시기로 했다며 이비를 배웅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무리하지 말고...”

 

  그날따라 시구르드의 말에 자신이 없어 보였는데, 이비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시구르드에게 인사를 하고 기사단으로 떠나갔다. 그래보았자 겨우 이틀 나가 있는 것뿐이고, 이 정도 일이야 언제나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기사단에 가서 기사들의 승급 시험을 심사하던 중 이비는 돌연 어지러움을 느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그동안 몸이 좀 아프기는 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던지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비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눈치 챈 기사단의 의사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이비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계속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가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었다. 나중에는 각혈을 하기까지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몸은 정상이신데, 내부의 마나에 문제가 생기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의사가 기사단 내부의 자료들을 이용하여 간단히 검진을 하고는 어물어물 말을 이었다.

 

  “으음, 불행히도 기사단 내의 장비로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힘들 것 같습니다. 백작께서 정확히 어떤 상태이신지 기사단의 자료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섣부른 판단을 내려 처방해 보았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 본성에 있는 의료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감히 권고 드리는 바입니다.”

 

  슬프지만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기사단 내부에는 마나를 이용하는 자들이 많긴 하지만, 이비와 같은 수준의 엄청난 마나를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그렇기에 칼베르크의 기사들은 대체로 마나를 매우 조금만 사용하는 데에 특화를 시키는 방식으로 단련해 왔다. 그런 만큼 비교군이 될 만 한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게르헨에 있는 이비의 성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진단을 해 온 의사들로 가득하다는 말도 일리 있는 말이었던 게, 게르헨은 칼베르크에서 정말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기껏해야 마차로 천천히 달리더라도 두 시간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는 거리다.

 

  결국 이비는 잠시라도 성에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몸이 힘들지만 마차를 타고 가면 그리 무리가 가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작용했다. 이비는 부기사단장에게 승급 심사를 대신해 달라 부탁하고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마부에게 부탁하여 정신없니 내달렸다.

 

  그러나 이비가 힘들게 아픈 몸을 이끌고 성으로 돌아왔을 때, 성에는 기이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마차에서 거의 굴러 떨어지듯이 내린 이비는 성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성의 문은 봉쇄되어 있었다. 안에서 누군가 잠근 것이 틀림이 없었다. 시구르드가 이렇게 성문을 굳게 닫아 둔 적이 없었기에 이비는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경비병도 없어 사정을 말하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비는 이상하게 여기며 성문 밖을 서성이는데, 갑자기 성문 안쪽으로 펼쳐진 정원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여성의 높은 비명 소리였다. 아무래도 성 안에서 근무하는 시녀들 중 한 명의 비명소리인 듯싶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성 밖에 있는 이비로서는 도저히 가늠을 할 수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온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그 때 또 다시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안 됩니다! 고정하십시오! 아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진하게 스며져 나오는 냄새가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장에서 구르던 이비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냄새였다. 그 냄새는 - 비릿하게 풍겨 나오는, 피 냄새였다.

 

  아까 비명을 질렀던 시녀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비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사실이 아니었다. 이비에게 중요했던 것은 시녀의 목소리에 담긴 내용이었다. 아이는 안 된다는 말소리. 그리고 비명과 동시에 풍겨온 피 냄새.

 

  “‘아이는’이라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모든 예감이 나쁜 쪽으로만 작동한다.

 

  시아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이와 나 사이의 사랑스러운 아이, 내 모든 것이자 나의 행복. 세상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누군가 해코지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말투를 보아하니 일개 시녀나 병사가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고정하십시오.’라 외칠 필요가 없으니까.

 

  “시구르드! 시구르드!”

 

  이비는 온 힘을 쥐어 짜내며 외쳤다. 오늘 시구르드가 가족들을 맞이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성 안의 상황은 예상을 훨씬 빗나가 있었다. 지금 시아나가 위태로운 것만 같은데, 시구르드는, 가족들은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설마 그들마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모든 예감이 불길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그러나 시구르드를 외치며 문을 두드려댔음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안쪽에서는 ‘아악’하는 등의 비명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그것도 점점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즉 비명소리의 향방이, 정원에서 성 안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성 안에 아이가 있고 누군가 아이를 해치기 위해 고용인들을 죽여 가며 성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이비는 자신의 이름과 성을 대며 들여보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들어가고자 했으나 아무런 일이 없었다. 하도 문을 두들겨 대서 손이 다 까졌지만 안에서는 어떠한 응답도 없었다. 마치 정원 안에 이비의 외침을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이비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 않으면 늦어 버릴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온 힘을 다해 마나를 몸 전체로 흘려 넣었다. 마나를 너무 소모해서 생긴 병인지라 마나를 다량으로 쓴다는 것은 몸을 깎아 먹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안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이, 남편, 가족들까지,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이 거대한 성문을 부수고서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가 없다.

 

  마나가 온몸으로 퍼지면서 고통이 배가되고 몸 전체에 푸른 색 멍 같은 반점 자국들이 생겨났다. 아까까지도 어지럽고 아팠는데, 지금 마나를 이렇게 대량으로 끌어내고 있으니 머리가 돌아 버리겠다 싶을 정도로 아팠다. 갑자기 현기증이 심해져서 울컥 하고 뭔가를 토해 냈는데, 시뻘건 핏덩이가 발밑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결국 이비는 마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성문을 검으로 내리찍었다. 어찌나 많은 마나를 썼는지, 거대한 성문이 ‘우지직’소리를 내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두꺼운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성문 뒤로 숨겨져 있던 거대한 정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원의 모습은 아침에 성을 나설 때의 아름답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시녀들부터 시작하여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용인들이, 시체가 되어 정원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다들 아침지만 해도 다녀오라고 배웅을 해 주었는데, 지금은 그저 피를 줄줄 흘리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비는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검으로 가누며 정원의 길을 가로질러 본궁으로 걸어간다. 고용인들의 죽음 또한 슬픈 일이고 애도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저 너머 궁의 정문이 아무렇게나 열려 있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아이가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심과, 이런 사태를 만든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더 거대해졌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비는 비틀거리며 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죽이고 말겠다.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에게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벌을 내릴 것이라고, 이비는 다짐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나 궁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비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궁 로비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자신의 가족 앞에 시구르드가 피 묻은 검을 들고 묵묵히 서 있었다. 시구르드의 곁에는 머리카락이 완전히 헝클어지고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비명인지 무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울고 있는, 자신의 다섯 살배기 아이가 엎어져있었다.

 

  그 충격적인 상황에 이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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