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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녀 말고도 다른 손님이 있었다. 다은이 화장실에 다녀 온 사이 낯선 남자 한 명이 창가 테이블에서 시현과 마주보고 있었다.
다은은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려다 주춤했다. 오늘 그녀가 앉은 곳이 마침 다른 손님이 앉은 자리의 바로 뒤 테이블이었기 때문이다. 저기에 앉으면 손님과 시현이 심각한 얼굴로 나누는 이야기가 다 들릴 터였다.
‘별로 듣고 싶지는 않은데.’
그녀는 원치 않게 요괴들의 일에 엮인 이후로 조심스러워졌다. 자신의 의사는 상관없이 뜻하지 않는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맨 처음 카페에 왔을 때 앉은 구석 자리로 숨어들었다.
“...그럼 보수는 그렇게 하는 걸로.”
“예. 이쪽에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시현은 손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그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섰다.
딸랑-
손님이 카페를 나가 멀어지는 것까지 지켜 본 시현이 돌아섰다. 그의 눈에 가게 구석에서 다은이 스마트폰을 들고 열심히 게임에 집중하는 게 보였다.
“아.”
그렇군.
“잊어버렸네..”
다은이 가게에 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요즘 들어오는 의뢰나 거래가 무거운 내용이 많다보니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형 또 까먹었죠.”
계피 가루가 떨어져 지저분해진 카운터를 닦던 경환이 말을 걸었다.
“음음. 아니야. 바쁜 일이 많아서 우선순위가 달라진 거지.”
“까먹었으면서...”
경환이 행주를 손에 꼬옥 쥐더니 시현을 흘겼다. 경환도 시현의 건망증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 닦았으면 마대 가지고 한 번 쓸자.”
시현이 경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말을 돌렸다. 경환은 어물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발뒤꿈치로 바닥을 세게 쿵쿵 밟으며 창고로 향했다.
“슬슬 때인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현이 읊조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다은을 바라보았다. 다은에게도 알려주고 가르쳐줘야 할 게 산더미였다.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다은씨 뭐해요?”
시현이 다은의 맞은편에 앉았다. 다은은 그가 앞에 앉은 걸 알았지만 이미 스테이지에 진입한 뒤라 게임을 끌 수가 없었다. 끄면 내 하트가 날아간단 말이야!
다은이 게임을 끌 기색을 보이지 않자 시현이 장난을 시작했다.
“슬퍼라.”
그가 부드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슬픔에 젖은 듯, 길고 아련한 눈동자가 속눈썹에 가려졌다.
다은은 계속 무시했다. 피버 타임이라 미친 듯이 화면을 두들겨야 했기 때문이다.
“후우....”
시현은 잠시간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가 오른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마침 다은이 보스를 물리친 타이밍이었다. 그녀는 보상을 확인한 뒤 게임을 끄고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이내 그가 자신의 얼굴에서 손을 거두자 다은이 개구리 같은 소리를 냈다.
“끅!”
“아하하.”
시현이 손으로 턱을 받히며 살짝 웃었다.
“뭐예요. 놀랐잖아요!”
시현의 미간 사이에 세 번째 눈이 있었다. 다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행히도 그 세 번째 눈은 눈꺼풀을 껌뻑이거나 하지 않았다.
“경환이나 여녹이는 좋아했는데.”
실망한 어투였다. 시현이 고개를 기울이자 까마귀 날개처럼 짙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앞으로 쏠렸다. 그는 쏟아진 머리카락을 살짝 귀 뒤로 넘겼다.
“내가 걔네랑 같아요?”
다은이 이걸 여녹이한테도 보여준 거냐며 투덜댔다.
“징그러워요?”
흔들리는 공기를 잡아채는 목소리. 투명한 물에 퍼지는 먹물처럼 짙어지는 웃음. 시현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지만 다은은 그 웃음이 감정으로 피어난 게 아니란 걸 느꼈다.
“징그러우면 치워주고.”
그가 세 번째 눈을 손으로 덮고 다시 치우자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짠.”
바람에 날아가듯 허무한 끝이었다.
시현이 웃음을 지우고 다은과 눈을 맞춘 채 말을 이었다.
“요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좋은 선생이 아닐 거예요. 거짓 없이 가르쳐주겠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다는 걸 알아뒀음 해요.”
시현이 경고했다.
“그거야 첫 만남에서부터 이미 파악했는데.”
다은이 한 방 먹였다.
“....”
시현이 잠깐 말을 멈췄다 다시 이었다.
“다시 한 번 물을게요. 정말로 그냥 불사조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만 가르쳐 주면 안 될까요?”
다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난 제대로 알고 싶어요. 그 애가 살아갈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다은이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먹은 건 아니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가볍게 불사조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여녹이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인 ‘새’가 아니라 언젠가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살아가게 될 존재로 바라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아마 여녹이보다 빨리 죽겠죠. 하지만 그 전까지 그 애의 편이 되고 싶어요.”
의외였다. 몇 일 사이에 이렇게 깊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시현은 결국 다은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시현이 말했다.
“그러면 보기 좋고 예쁜, 친절한 존재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해요. 당신은 아직 나나 경환이, 여녹이 외에 만난 적이 없으니 크게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시현의 눈이 허공을 몇 번 휘젓더니 다시 내려왔다.
“요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마치 꿈에 살게 된 듯 행동해요. 놀랍고, 경이롭고, 흥미로워 하죠. 뭐,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우린 매혹적이잖아요?”
푹신한 구름 위를 거닐 듯 달디 단 어조였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다은을 감쌌다. 고통스러워하는 이의 손을 잡고 달콤한 꿈속으로 인도하는 설탕인형처럼 다정했다.
“친해지고 싶어 해요. 감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싶어. 너는 요괴고 나는 인간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막이 내린 극장 구석에서 철 지난 유행극의 대사를 읊는 듯 했다. 빛바랜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그 아래에 먹다 버린 음료수 병들이 나뒹굴었다.
“단순히 요괴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특별해지는 거예요. 마치 동화 속 주인공처럼”
그의 눈이 새파랗게 타들어갔다. 자기 자신을 불살라먹는 빛이었다.
시현이 입술을 몇 번 쓸더니 차가운 어조로 내뱉었다.
“그리고 무분별해지죠.”
사형선고와도 같은 무게였다.
“우리를 인간처럼 보지 말아요. 우린 당신과 친해질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느새 경환이 마대질을 멈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난 이 자리에서 다은 씨를 죽일 수 있어요. 그리고 부모님조차 당신의 죽음을 모르게 감출 수 있죠. 당신은 그런 존재와 엮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