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프로포즈는 아니었다. 나는 주방에 갇혀있지만 밖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는 절대 그런 류의 성질은 아니었으니까. 로맨틱한 음악이라던지 분위기 있는 대화소리랑은 거리가 아주 멀기도 하고 거기다가 여자가 셋만 모여도 접시는 깬다더니 저 여자들은 내 직장을 부수려는 정도의 스케일인건지 주방에까지 들리는 소음이 어마어마하다. 주문받은 음식이야 평소에 비하면 아주 소량이라 다 만든 지는 오래였지만 나오라는 소리 없이는 나오지 말라는 오더를 받은 시급노예는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계속해서 나한테 신세한탄을 해대는 심영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왜 자꾸 저 지랄을 하는 건지 왜 나한테만 잔소리하고 일 많이 시키고...”
맘속으로는 아까부터 네 다음 고자를 열심히 외치고 있었지만 실제로 말했다가는 저 형이 사장 마음을 알게 되고 나는 자신의 마음을 어이없이 들키게 된 사장님의 분노로 일자리를 잃게 되고 경제가 파탄나고 가정이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져서 절대 발설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존나 무시했다.
“너랑 나랑은 시급차이가 300원 나는데 일하고 욕먹는 건 그만큼의 차이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지옥이나 악마에 대해 떠올릴 때 불에 관련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지옥의 모습은 뜨거움보다는 차가움이 더 어울리는, 기존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푸념에 집중해 자기가 까고 있던 대상의 접근조차 알지 못한 어린 양은 싸늘하게 자신을 쳐다보던 사장님의 얼굴을 보고 스스로 얼어붙었고 그것은 자신의 뒷담에 대한 심증을 확신으로 만드는 훌륭한 근거가 된 모양이었다.
사장님은 들어온 문을 차분히 닫았다. 차갑다기보다는 지금의 그녀는 정적이었다. 걷는 동선과 움직이는 다리, 고정된 시선이 일련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꿀꺽-하고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 욕한 걸 걸린 건 물론 가볍진 아니지만 이토록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는 않는다. 멍한 표정으로 사장을 쳐다보는 저 형은 그걸 알고있을까 무슨 결과더라도 이 상황과 인물들이 풍겨내는 매력은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틀림없다는 건 분명했다.
“ 현성아 서빙해라 ”
평소처럼 말했지만 평소 같을리 없는 톤이었다. 가볍게 눈을 맞췄다. 눈은 제법 평소같았다. 접시를 들고 문을 나섰다. 또각- 또각- 굽이 바닥에 차분히 내려앉았다. 항상 저 둘의 일은 내 상관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제법 관심이 쏠린다. 오늘은 무척 유정이가 많이 생각난다. 빌어먹을 취중통화도 평소같이 차분하게 다퉜던 모습도 제법 그녀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것만, 그런 것만 같았다.
손에 들린 접시가 살짝 흔들렸다. 자칫하면 쏟아질 뻔했다. 제법 볼썽사납게 균형을 다잡았다. 다행히 손님들은 방안에 있어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쪽팔릴 뻔했네
눈을 접시에 뒀다. 오늘은 일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좀 더 신경을 써야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메뉴에 대한 설명이나 이름 따위를 말해야하나 잠시 망설여졌지만 그것도 모르고 시켰겠냐는 생각에 문을 열고 테이블로 걸었다. 접시는 테이블에 안착했다. 와아앙- 무슨 로켓이라도 착륙한 듯 환호성으로 방안이 가득 찼다. 정적이었던 분위기가 깨지는 듯한 소리였다. 기차화통이라도 삶아먹었나 귀 아프게시리 얼른 나가야겠다 그래도 주방에는 못들어가겠지만
“맛....있게 드세요”
근데 니가 왜 여기있어
그녀의 큰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달라졌다. 나도 그녀도
그런데 왜
오늘은 일진이 안 좋은 날이다.
그녀는 날 알아봤을까
몰랐으면 좋겠다.
마음껏 원망이라도 할 수 있게
오늘은 그녀가 고팠던 날이었다. 사실
박초롱
니가 보고싶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