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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과거를 산다
작가 : Lowe
작품등록일 : 2017.6.14

평소와 같이 잠이 든 주운은 꿈속에서 낯선 장소에 떨어진다.
처음에는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조금씩 그의 삶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꿈속에 그곳이 과거의 '고구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범한 청년의 고구려 적응기..

 
2
작성일 : 17-06-14 15:57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9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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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석판에 이상한 글자 생겼죠?"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특이한 능력이 있거든요. 석판에 뭐라고 적혀있는데요?"

 

 "내 이름이 적혀있어요. 그리고 지금 경찰들이 와있어요."

 

 "경찰이요?"

 

 "내가 석판에 낙서 했다면서 경찰서에 가야 된대요."

 

 할아버지를 놀래켜 드릴 생각으로 했던 장난이 할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CCTV 확인해보면 알 수 있잖아요. 안 했다고 말하세요. 유리 안에 들어있는데 할아버지가 어떻게 낙서를 해요."

 

 "그게 학생이 나가고 잠깐 정전이 됐었거든요. 경찰들은 내가 그때 석판을 꺼내서 낙서 했을 거래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목을 넘어가는 침이 돌처럼 무거웠다.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이런 장난은 두 번 다시 치면 안 치기로 다짐했다.

 

 "어떡하지."

 

 다시 잠에 들기에는 정신이 너무 멀쩡했다. 코를 통해 산소가 몸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꾀가!"

 

 또 버스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또 한 번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단절하기 위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눈을 감았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기억을 더듬어 족장이 중얼거렸던 말들을 떠올린다.

 

 조용히 떠들던 학생의 목소리와 남자친구와 통화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지워진다. 버스의 소리도 조금씩 멀어진다. 주위가 정적으로 물든다. 고개가 천천히 뒤로 젖혀진다.

 

 "아싸!!"

 

 눈을 뜨자 하늘 위에 있었다. 공기가 빠르게 내 뺨을 스친다. 다시 정신을 차린다. 나는 마을의 중앙에 놓인 호랑이의 시체 위로 떨어졌다.

 네 사람을 향하던 환호가 천천히 나에게로 옮겨왔다. 버스에서 사라졌던 상처가 여기서도 사라져있었다.

 

 늦게나마 나의 진가를 알아봐준 마을 사람들에게는 고마웠지만 사람들의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낯설었다.

 

 “주운!”

 

 족장이 내 이름을 부르며 관중 속에서 나타났다. 그가 손을 휘휘젓자 호랑이 주위로 모여있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흐허!”

 

 대궐과 함께 사냥을 갔던 세 사람이 또 깍지를 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자 세 사람이 웃으며 멀어져갔다. 전보다는 누그러 들었지만 여전히 살벌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대궐은 시선을 돌려 호랑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취가”

 

 족장과 나는 다시 족장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나는 움막에 들어서기 무섭게 또 석판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이”

 

 족장은 내가 뭘 찾는 건지 안다는 표정으로 구석에 쌓아놓은 석판을 가져다주었다.

 

 “이거 말고요. 제가 쓰던 거 어디 있어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깨끗한 석판을 건네받은 내가 족장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환한 미소를 지은 족장이 자신의 뒤를 가리켰고, 벽에는 내 석판이 가보처럼 걸려있었다.

 

 “잠시만 내려서 뭐 좀 지울게요.”

 

 족장이 석판으로 다가가는 내 앞을 막아 섰다.

 

 “지우고 다른 걸로 적어드릴게요.”

 

 “다.”

 

 “다가 싫다는 말이구나. 아, 이게 아니지. 다른 걸로 그려드린다고요.”

 

 내가 손에 들린 뗀석기를 허공에 흔들며 족장을 설득하려했지만 족장은 고집을 피웠다.

 

 “아니, 제가 뭐 나쁜짓 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비켜주세요.”

 

 “다.”

 

 “아 진짜.”

 

 뒤로 물러나는 척하며 석판으로 손을 뻗었지만 족장의 저지에 가로막혔다. 참고로 족장은 대궐 보다 키가 조금 작기는 했지만 그보다 훨씬 강해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가 나를 손으로 살짝 밀었고, 나는 추하게 바닥에 벌러덩 넘어졌다.

 

 “아!!”

 

 바닥에 넘어짐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얼른 다시 일어난 나는 움막 구석에 쌓여있는 석판들을 모조리 가지고 와 일렬로 펼쳤다. 그리고 나의 영감을 적어 내려갔다.

 

 [미영♥재욱 다녀감 2016.05.05]

 

 [석판 개많음]

 

 [제발 수능 만점 맞게 해주세요 2016.09.01]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미친 듯 석판에 글씨를 새기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족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마 다음번에 여기로 다시 왔을 때는 이 석판들도 벽을 장식하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걸 발견했을 때 고고학자들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꾀가해요!”

 

 “꾀가?”

 

 “빨리요.”

 

 어리둥절한 족장을 강제로 자리에 앉힌(매달려서) 나는 그의 건너편에 앉아 눈을 감았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조금 뒤에 족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고, 꾹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버스였…어야 했다. 눈을 떴지만 나는 여전히 족장과 마주 앉아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다시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족장의 목소리에 조금 더 정신을 집중했다. 주위의 소리가 사라지고 족장의 목소리만 남아있던 그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해도 정신이 몽롱 해지지 않았다. 애를 쓰면 쓸수록 주위의 잡음들이 더 크게 들려왔다.

 

 “쿠우론 라이가!”

 

 “라거!?”

 

 “라이가!”

 

 호랑이가 나타났냐는 질문에 대궐이 언성을 높였다. 그의 움직임과 족장의 표정으로 봐선 뭔가 굉장히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더샤이. 그 우티아!”

 

 족장이 안에서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두 사람이 움막의 한쪽에 걸려있던 창과 나무로 된 방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내 남자들의 함성소리가 작은 마을을 가득 채웠다. 함성은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우티아!”

 

 대궐의 커다란 목소리가 움막의 파고 들었다.

 

 “다 라이가!!”

 

 곧바로 족장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뒤를 따랐다.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줬던 족장의 비명. 주위를 살피던 나는 벽에 걸려있는 석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무기로 쓸만 한 게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이 석판을 없앨 수 있는 기회였다.

 

 밖은 말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동물의 가죽과 섬유를 꼬아서 만든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들이 서로 섞여 몸싸움을 하고 있었고, 무기를 든 남자들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족장은 움막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러져있었고, 적으로 보이는 대머리 남자의 창이 족장의 목까지 드리워있었다.

 

 “운장로!!”

 

 석판은 허공을 갈랐고, 내 목소리에 반응한 대머리 남자의 머리에 그대로 날아가 꽂혔다. 임무를 마친 석판은 둔탁한 소리를 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저게 안 깨져?”

 

 완전히 산산조각 낼 마음으로 힘껏 던졌는데 석판은 내 생각보다 단단했다.

 

 “다!”

 

 족장이 말렸지만 나는 곧장 석판을 집어들고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이야.”

 

 비슷한 옷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 틈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방금 쓰러뜨린 적처럼 눈에 띄는 적은 더이상 찾을 수 없었다.

 

 “주운!”

 

 그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소리가 들려온 쪽에서는 두 남자가 서로에게 창을 겨누고 있었다.

 

 “어!?”

 

 두 사람 중 하나는 나와 함께 사냥터에 나갔던 낯익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콸!”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내 발아래 떨어져있는 활을 가리켰다. 내 시선이 활에 가 닿자 적으로 보이는 수염을 땋은 남자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다행히 내가 아닌 활을 노리며 달려오고 있었고, 호랑이의 위협을 받았던 나에게 그의 달리기는 느리게만 보였다.

 

 “주운!!”

 

 물론 느리게 보인다고 다 피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수염의 태클에 복부를 내어준 나는 3미터 정도 하늘을 날아 바닥에 쳐박혔다.

 

 “으아아아!!!”

 

 내 비명이 아니니 걱정마라. 수염이 태클을 하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석판을 배 앞에 댄 덕분에 엉덩이와 가슴팍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석판은 깔끔하게 두 동강 나있었고, 어깨뼈가 동강난 수염은 어깨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멀리서 보면 눈썹이 없는 것처럼 옅은 눈썹을 가진 사냥꾼이 쓰러진 적을 창으로 난도질 했다.

 

 전투는 30분 정도 이어졌고, 내 양손에는 피에 젖은 석판이 들려있었다. 처음 사람을 때렸을 때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지만 꿈이라는 환경과 온몸에 퍼진 아드레날린은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지금 나는 갑옷 대신 잠옷을 입은 전사였다.

 

 “어? 근데 아직도 잠옷이지?”

 

 분명 잠들기 전에는 셔츠에 청바지를 걸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동일한 잠옷 차림이었다.

 

 “주운!”

 

 전투가 대충 정리 됐는지 피를 뒤집어 쓴 족장이 나를 향해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포옹은 전투에서 내가 입은 가장 큰 데미지였다.

 

 “그 흐허! 흐허!”

 

 양손 깍지를 건 채 나를 바라보는 족장의 어깨 너머로 도망치는 적들과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시체들이 보였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짙은 피냄새와 잔인하게 죽어있는 시체를 다시 보는 순간, 먹었던 것들이 그대로 내 입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적들이 물러가고 신속하게 뒷수습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은 이러한 전투가 생활의 일부임을 보여줬다. 화가 난 사람들은 포로로 잡힌 적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고, 죽은 사람의 가족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족장과 몇 명의 남자들이 모여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흥분한 그들의 말은 평소보다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들의 눈빛은 동료의 죽음 때문인지 붉게 물 들어있었다. 죽은 자들과 포로로 잡힌 자들을 마을 중앙에 모은 마을 사람들은 마른 나뭇가지를 가지고 와 불을 붙였다. 나와 함께 아이들이 눈을 돌렸지만 부모들은 아이의 얼굴을 강제로 붙잡아 타들어가는 시체와 적들을 보게 만들었다. 살 타는 냄새에 역한 기분이 들어 족장의 집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적들의 비명과 아군의 울음이 귓가를 때렸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움막의 구석으로 잎이 깔린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주위의 소리가 멀어진다. 나는 곧 잠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몸을 일으키자 온몸이 비명을 내질렀다. 선혈이 난무하는 전투, 눈 앞을 오가던 날카로운 무기들. 일어남과 동시에 한기가 들었다. 아무리 꿈이라도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곳에서 잠들기 전에 내가 했던 행동은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어두운 실내에 눈이 적응하자 가죽을 이어붙여 만든 움막의 천장이 보였다. 여전히 과거였다. 움막 밖에 있는 족장의 집 마당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갑옷과 날카롭게 갈린 창과 도끼로 무장한 남자들이 무언가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우흐 취가 쿠우론. 니 취가?”

 

 나를 발견한 대궐이 족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다른 남자들과 같이 무장한 족장을 발견하고 발길을 멈췄다.

 

 “족장님도 가요? 아, 뭐라고 해야 되지. 운장로 취가?”

 

 “도”

 

 내 질문을 알아들었는지 족장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갈래.”

 

 내가 떨어져 있던 도끼를 집어들며 말했다.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가 뭐지. 주운 취가!”

 

 모르는 단어의 벽에 가로막힌 나는 엄지로 내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마당에 있던 남자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일제히 두 손을 모았다.

 

 “흐허! 캄사다.”

 

 “흐허! 캄사다.”

 

 뭐가 감사한지 모르겠지만 분위기에 이끌려 그들을 따라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펼쳐질지 예상할 수 없었지만 결의에 찬 그들의 표정에서 추론해보자면 무언가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늦은 밤 우리는 호랑이를 사냥 했던 산의 더욱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바람에 닿은 나뭇잎 소리와 동물의 울음소리 밖에 없던 산속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는 불이 밝혀진 작은 마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더샤이.”

 

 선두로 걷던 족장이 손을 들자 다른 남자들이 신속하게 몸을 숙였다. 잘 훈련받은 군인과 같은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족장은 손짓으로 모여있던 서른 명 남짓한 남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더샤이.”

 

 돌격명령을 내리기 위해 손을 높이 들었던 족장이 내 목소리에 반응했다. 오는 동안 느꼈던 대로 이들은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들의 분노는 작전을 방해하는 나에게로 밀려왔다.

 

 “계획이 있어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옆에 떨어진 돌을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열 명 정도가 이 마을을 둘러싼 다음에 가까운 집에 불을 붙여요. 아마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불이 쉽게 붙을 거에요. 적들이 불을 끄기 위해 흩어지면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서 각개격파하는 거에요. 수가 비슷하다면 이 작전이 우리를 훨씬 유리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설명을 마쳤지만 내 작전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취가!”

 

 그때 대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조금 더 설명하려 했지만 움직이기 시작한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면 적어도 적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려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족장이 내 어깨를 두드리고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말을 배워야 했다. 이런 식의 전투는 마을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뿐이었다. 조금 더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다.

 

 “쿠우론!!!”

 

 전사들은 습격을 광고하며 산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적들은 우리의 목소리에 반응해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고, 우리는 완전히 준비된 적들과 마주해야했다.

 

 “샤사 쿠우론!!”

 

 “샤사 쿠우론!!”

 

 족장이 큰 소리로 외치자 전사들이 후창하며 그를 뒤따랐다. 족장은 영리하게 투창을 선택했고, 전사들도 그의 전략에 동의했다. 그덕에 첫 번째 충돌이 일어나기도 전에 네 명의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고, 전투의 흐름을 가져올 수 있었다.

 

 내가 숲을 내려왔을 때 작은 마을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비명과 함성. 피와 장기들. 아이의 울음소리. 머리가 띵해지고 온몸이 굳어버렸다.

 

 내가 움직임을 멈췄다고 해서 전투가 멈추는 기적은 일어나진 않았다. 전사들은 선혈을 연료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앞에 놓인 적을 항해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둘렀다. 피가 튀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완전한 패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적들은 전투 중에 넋을 놓은 나를 향해 달려왔지만 족자와 대궐의 거대한 팔과 창에 꽂혀 바닥에 널브러졌다.

 

 순간 나는 등을 돌려 마을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운!!"

 

 족장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내 다리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목적지는 없었다. 다만 피의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저 마을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주운!"

 

 어둠으로 물든 숲으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족장이 뒤에서부터 나를 낚아챘다.

 

 "우티아!!"

 

 그가 나를 낚아채기 무섭게 방금까지 내가 서있던 곳으로 늑대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족장이 조금만 늦었다면 저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목을 꿰뚫었을 것이다.

 

 족장은 나를 뒤로 던져놓고 손도끼로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늑대의 머리를 산산조각 냈다. 동료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숲에 몸을 감추고 있던 늑대들이 숲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우리 앞에 나타났다.

 

 “취가!”

 

 “다!”

 

 “취가!!”

 

 족장이 뒤로 물러서라고 손짓했지만 열 마리가 넘는 늑대들과 대치한 상태로 족장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대궐…”

 

 족장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늑대들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발은 마치 서로 다른 뇌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른손에 들린 도끼로 측면을 파고드는 늑대의 머리를 내려찍으면서 왼손에 들린 방패로 앞으로 달려오는 두 마리의 주둥이를 그대로 가격했다. 순식간에 3마리의 늑대가 나가떨어지자 기세 좋던 늑대들이 주춤했다.

 

 “워 운작로!!”

 

 주춤거리는 늑대들 위로 족장의 거대한 포효가 내려앉았다. 조금 떨어져있었음에도 귀가 얼얼할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였다.

 

 “운작로!!”

 

 “운작로!!”

 

 족장의 외침이 닿았는지 아군들의 외침이 들렸다. 늑대들은 꼬리를 말고 물러났다.

 

 “취가.”

 

 그가 왜 족장의 자리에 앉아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을의 전투는 거의 마무리 되어있었다. 오후에 우리를 습격하며 전사들이 피해를 입은 탓에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병력이 얼마 없어서인지 우리 쪽 피해는 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사상자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살아남은 포로들은 밧줄과 넝쿨에 묶인 채 마을 중앙에 무릎을 꿇은 채 모여 있었다.

 

 “운작로!”

 

 그때 포로들 사이로 누군가가 일어나며 족장을 불렀다. 우리 마을에서 봤던 머리가 벗겨진 그 남자였다. 묶여있지만 당당한 태도와 족장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 이 마을의 족장인 것 같았다.

 

 “우흐 라이가.”

 

 “다! 구작로!!”

 

 “다다!!”

 

 “주오화!!”

 

 구장로라고 불린 남자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반발했지만 그의 외침이 반발을 잠재웠다. 우리 족장은 대궐을 시켜 대머리 족장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게 만들었고, 두 사람은 옆에 있는 움막으로 들어갔다. 두 족장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몇 몇의 혈기왕성한 전사들이 줄에 묶인 채 달려들었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 혹은 그에 가까운 구타였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두 족장이 움막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우흐 다 샤사 쿠우론! 그흐 라이가 우흐!”

 

 우리 족장의 말을 들은 대궐이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눈썹이 그를 막았다.

 

 “우흐 라이가 도담!”

 

 이번엔 대머리 족장의 외침이 이어졌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우리 족장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마을은 조용해졌다.

 

 “다 라이가, 취가”

 

 족장은 포로로 잡혀있는 무리에게 말했고, 그 중 몇몇은 팔이 결박당한 채로 마을을 벗어났다. 누군가는 슬픈 눈으로 대머리 족장을 쳐다봤고, 누군가는 독기 가득한 눈으로 마을에 있는 모두를 노려보며 떠났다.

 

 “취가!”

 

 “취가!”

 

 대궐이 족장의 말을 더 큰 목소리로 후창하자 창을 들고 서있던 전사들이 포로들을 일으켜 세웠다. 산을 넘어가는 동안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의 등 뒤로는 방금 전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남자 포로들은 결박당해 있었고, 여자 포로들은 식량부터 살림살이를 든 채 우리 뒤를 따랐다.

 

 왜 싸웠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방금 전투로 구장로가 이끌던 쿠우론이라는 부족이 운장로가 이끄는 도담이라는 부족의 휘하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 창을 겨눴던 상대를 이렇게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내 상식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곳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여자들과 아이들이 우리를 맞이해줬고, 뒤따라오던 포로들은 곡식창고로 쓰이던 움막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깊은 밤 동안 재갈을 문 남녀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다음날 나는 여전히 과거에 있었고, 마을의 중앙에는 어제 포로로 끌려왔던 전사들과 여자들의 시체가 쌓여있었다. 어제 끌려왔던 인원의 반에 이르는 숫자였다. 남자의 시체가 대부분이었고, 온몸에 멍자국이 가득했다. 어제 들려왔던 비명소리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시체들 주위로는 어제 잡혀왔던 포로들이 둥글게 서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횃불이 들려있었다.

 

 “하!”

 

 망설임이 보이는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대궐이 소리쳤다.

 

 “하!”

 

 “하!”

 

 “하!”

 

 갑옷과 무기로 무장한 우리 쪽 전사들이 창으로 땅을 내려찍으며 대궐의 말을 따라했다. 마을 전체는 “하”라는 단어로 가득 찼고, 전사들의 창은 포로들을 향했다. 그 순간 포로 두 명이 동시에 들고 있던 횃불을 시체더미 위로 던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포로들이 들고 있던 횃불들이 시체로 만들어진 언덕 위에 차곡히 쌓여갔다.

 

 포로들은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고,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저렇게 해서 진짜 같은 편이 될 수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시체가 불타는 동안에도 우리 전사들은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내가 이곳에 적응할 수 있을까. 어제까지는 비슷하다고 느껴졌던 마을 사람들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는 등을 돌려 족장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뒤에서 나타난 족장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봤다. 족장은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내 어깨에 얹은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들도 좋아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역시 인간이었다.

 

 한 때 쿠우론이라 불리던 부족은 산 건너편에 있는 도담이라는 부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해 그들의 휘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은 빠르게 도담 사회에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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