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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과거를 산다
작가 : Lowe
작품등록일 : 2017.6.14

평소와 같이 잠이 든 주운은 꿈속에서 낯선 장소에 떨어진다.
처음에는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조금씩 그의 삶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꿈속에 그곳이 과거의 '고구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범한 청년의 고구려 적응기..

 
3
작성일 : 17-06-14 15:59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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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제의 살육은 마치 꿈인 것처럼 도담의 사람들은 쿠우론 사람들에게 친절을 배풀었다. 도담의 여자들은 실의에 빠져있는 쿠우론의 여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한참 동안 눈물로 이야기하던 두 무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뒤부터는 마치 원래부터 이곳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도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다녔다.

 

 남자들은 따로 대화를 하기 보다는 함께 사냥을 나가는 쪽을 택했다. 어제까지 싸웠던 적에게 무기를 건네고 등을 맡긴다는 것이 불안해보였지만 양쪽 전사들의 움직임에 미련이나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운!"

 

 유일하게 도담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부른 건 도담의 족장인 운장로였다. 그는 여덟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모두 열 살도 되지 않아 보였지만 눈빛 하나는 전사의 그것과 흡사했다.

 

 전사들과 함께 호랑이를 사냥하고, 쿠우론과의 전투에서 족장의 목숨을 구해냈던 나는 어제의 전투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그로인해 보모라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뭘 가르쳐야 되지."

 

 족장은 나와 아이들을 남겨 놓고 전사들과 사냥을 떠났다.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싸움만큼이나 낯선 일이었다.

 

 "사샤!!"

 

 내가 고민하는 사이 얼굴이 똑 닮은 쌍둥이들이 서로 치고 박기 시작했다. 싸움은 손쓸 시간도 없이 옆으로 퍼졌다. 8명의 아이들은 어제 있었던 전투의 축소판을 보여주듯 맹렬한 기세로 싸웠고, 결국 피를 보았다.

 

 "그만해! 친구들끼리는 친하게 지내야지."

 

 넝쿨처럼 뒤엉켜 있던 아이들을 하나씩 떼어냈다.

 

 "피 나잖아. 애들이 뭐 이렇게 살벌하게 싸워?"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내가 아이들을 나무랬지만 돌아오는 건 의아함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시선이었다.

 

 그때 때마침 지나가던 대궐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멍한 내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우리를 전부 데리고 무기가 가득한 움막으로 데려갔다.

 

 아이들은 움막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자신의 몸과 맞게 제작된 축소형 무기들을 집어 들었다. 도끼, 창, 활, 낫 등 무기를 든 아이들의 모습은 전사들의 미니어처 같았다.

 

 "취가"

 

 내 몸통 만한 돌덩이가 양쪽에 붙은 도끼를 어깨에 걸친 대궐을 따라 아이들이 밖으로 나갔다. 움막을 가득 채운 무기들에서 옅은 피냄새가 났다. 빈 손으로 나가기 좀 그래서 구석에 있던 활과 화살 통을 들고 대궐을 뒤따랐다.

 

 산속에 도착하자 대궐이 무언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의 앞에 모여 앉아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듣고 있었다.

 

 "취가!"

 

 "사샤!"

 

 대궐의 신호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산속으로 사라졌다. 어릴 때부터 사냥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카이?"

 

 아이들이 사라지자 대궐이 내 어깨에 걸려있는 활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멀뚱히 그를 보고 있자, 대궐이 활 쏘는 시늉을 했다. 활을 쏠 수 있냐고 묻는 것 같았다.

 

 "다"

 

 내게서 활을 건네 받은 대궐이 활 시위를 걸고 다시 나에게 활을 건넸다. 그러고는 내려놨던 도끼를 들어 나무의 몸통을 가격했다. 두 번의 둔탁한 파열음이 숲속을 울렸다. 나무에는 커다란 십자가 표시가 새겨져있었다.

 

 "하!"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은 대궐이 십자가의 중앙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가르쳐주는대로 화살을 먹인 나는 활시위를 당겼다. 시위는 생각보다 당기기 어려웠다. 화살은 제대로 걸리지 않았고, 결국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버렸다.

 

 나에게로 다가온 대궐이 떨어진 화살을 활에 걸고 시위를 당겼다. 30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과녁을 향해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십자가의 중앙에 안착했다.

 

 "하!"

 

 아이들이 손에 사냥의 결과물의 가지고 왔을 때 나는 온몸을 땀으로 적신 채 피로 물든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활을 쏘는 동안 활시위가 손끝을 파고들어 손이 엉망이었다.

 

 상처를 자각하는 순간 고통이 밀려온다. 처음 호랑이에게 어깨를 당했을 때도 그랬고, 방금 손에 난 상처도, 엉망인 된 발도 그랬다. 아무리 심한 상처라도 여기서는 내가 그 상처를 자각하지 못하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번 자각하면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상처가 욱신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대궐의 등에 업힌 채 마을로 돌아와야 했다. 족장의 움막에 나를 내려놓는 대궐은 잠깐 기다리라는 뜻으로 손을 펼쳐 보였고, 그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그릇과 커다란 나뭇잎을 든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동물 가죽으로 만든 얇은 옷은 입은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릇에 담긴 정체불명의 물질을 들고온 나뭇가지로 휘휘저은 그녀가 내 발을 자신의 가슴 앞으로 끌었다.

 

 고정시키는 끈이 없어서인지 안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최대한 외면해보려고 했지만 시선이 계속 그쪽으로 향했다. 결국 그녀와 눈을 마주쳤고, 안 그래도 무겁던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본 거 아니에요. 진짜에요.”

 

 알아들일 리가 없었지만 반사적으로 변명이 튀어 나왔다. 그녀는 내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반대편 발을 가져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약을 덕지덕지 칠했다.

 

 약을 바르자 상처의 욱신거림이 줄어들었다. 아래를 향해 자유 낙하하는 약들을 나뭇잎으로 막은 그녀가 내 발에 커다란 나뭇잎을 돌돌 감았다. 얇은 나뭇잎이 몇 겹이나 덧대지자 신발 같이 보였다.

 

 손에까지 나뭇잎을 두르자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말 없이 그릇과 남은 나뭇잎을 들고 움막을 빠져나갔다.

 

 “감사하다! 고마워요”

 

 내 말을 들은 그녀가 움막을 나가기 직전에 나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여 답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파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가 움막을 나서자 움막 전체가 조금 어두워진 것 같았다.

 

 “악!”

 

 멍청해보이는 손발을 내려다보던 나는 밖에서 들려온 비명소리에 놀라 뒤뚱 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걸을 때마다 나뭇잎 속의 약들이 삐져나왔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하!”

 

 밖으로 나오자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있는 대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쓰러진 사람을 분노가 가득한 눈빛과 강압적인 말투로 찍어 누르고 있었다.

 

 “다 하.”

 

 쓰러져있는 건 방금까지 나를 치료해준 그녀였다. 그녀의 주위로는 나뭇잎과 그릇이 어지럽게 떨어져있었다. 새하얀 뺨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나있었다.

 

 “뭐하는 거야!”

 

 나를 발견한 대궐은 그녀에게 몇 마디 더 한 뒤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대궐! 대궐!”

 

 그를 따라 가려던 내 발을 그녀가 붙잡았다.

 

 “괜찮아요?”

 

 그녀가 내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이 다 까져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부상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바닥에 떨어진 그릇과 나뭇잎을 챙겨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를 쫓아갔다.

 

 “상처 치료하고 가요.”

 

 달려가던 그녀가 내 손에 팔을 붙잡히자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이리와요.”

 

 주위를 살핀 나는 걸터앉기 좋은 그루터기를 하나 발견했고, 그녀를 거기에 앉히고 그릇 속 약을 그녀의 무릎에 발라주었다.

 

 “조금 이상하긴 한데, 다 된 것 같아요.”

 

 약 위에 나뭇잎까지 덧댄 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때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요? 이상해요?”

 

 처음에는 내 치료법이 틀려서 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내 어깨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다리에 감싸져있던 나뭇잎 사이로 삐져나온 약들이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표시하고 있었다.

 

 “더샤이.”

 

 나와 자리를 바꾼 그녀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그러고는 그릇을 챙겨 움막들 사이로 사라졌다.

 

 잠시 후 숨을 헐떡이며 돌아온 그녀의 그릇은 아까의 물질로 가득 차있었다. 그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원래 있던 족장의 움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대비가 움막을 때리는 소리는 노랫소리 같았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와 아이들을 혼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내가 노래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 옆에 앉아있던 그녀에게는 이 소리가 끔찍한 비명처럼 들렸나보다. 그녀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녀는 겁에 질리다 못해 흐느끼기 시작했고,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나뭇잎이 덮여있지 않은 멀쩡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고, 어린시절 엄마가 내게 해주던 것처럼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콰쾅, 천둥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묻고 있던 그녀가 내 품에 안겼다. 내 손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고,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그녀의 몸도 빠르게 진정되어갔다.

 

 “치이부두.”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내게서 멀어졌다. 사과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릿속 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괜찮다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워 주운.”

 

 고개를 돌리고 있던 그녀가 내 의도를 파악하고 몸을 돌렸다.

 

 “주운? 워 미라주.”

 

 “미라주.”

 

 자기소개가 끝나고 또 한 번의 긴 침묵이 이어졌다.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였는지 움막을 때리는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녀가 내 다리와 팔에 감겨있던 나뭇잎을 떼어냈다. 능숙하게 약을 덧칠하고 나뭇잎을 감은 미라주는 옅은 미소와 함께 움막을 빠져나갔다.

 

 말 그대로 제 2의 고향이 돼버린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했다. 현재 이곳에서의 내 위치는 족장을 구해냈지만 이제는 쓸모없어진 이방인일 뿐이었다. 우선 지금까지 여기서 배운 단어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몇 개의 단어가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가물가물했다.

 

 “‘감사하다.’ 이거는 고맙다는 뜻 같고, ‘치이부두’ 미안하다. ‘취가’ 가다. ‘도’가 맞다. ‘다’가 아니다. ‘워’는 나고, ‘그’가 너. ‘더샤이’가 기다려고, 활은 ‘콸’, ‘라이가’가 따라와였나. 또 뭐 있었지.”

 

 비어있던 석판은 조금씩 채워져 갔다. [감사하다=뜻 같음], [치이부두=미안하다], [취가=가다] 대충 이런 식으로 정리했다. [하=해라]라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뗀석기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여기 도착하고 배운 단어는 15개가 조금 넘었다. 그리고 이미 내 머릿속에서 지워진 단어들도 몇 개나 있었다. 배우는 그 순간에 메모를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휴대하기에는 석판이 너무 무거웠다.

 

 “주운!”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사냥을 나갔던 족장이 돌아왔다.

 

 “저 부탁이 있어요.”

 

 사냥에서 방금 돌아왔지만 족장은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물론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꽤나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지만 말이다. 얇게 썬 석판을 구해달라는 내 말에 족장은 대장장이로 보이는 남자에게 나를 데려갔고, 그가 몇 마디 설명을 하자 대장장이가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였다. 3시간인지 3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족장으로부터 또 하나의 선물이 있었는데 뭘로 만든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신발이었다. 처음에 받았을 땐 뭔가 했는데, 발을 그 위에 놓고 발목까지 끌어올린 후 끈으로 묶자 제법 폼이 났다. 미라주의 배려 덕분인지, 신발의 기능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약들은 심하게 흘러나오지 않았다.

 

 “취가.”

 

 신발을 받고 기뻐하는 내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족장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움막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내 눈에 밟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저건 뭐라고 해요?”

 

 “무어?”

 

 “어!? 뭐가, 무어예요?”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족장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다다.”

 

 족장은 참 착한 사람이었지만 말을 배우기에 좋은 선생님 같진 않았다. 사실 미라주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지만 우연히 라도 마주치면 쏜살같이 도망가는 바람에 말조차 걸 수 없었다. 나의 답답함을 완벽하게 이해해줄 선생님을 찾던 와중에 나는 가장 좋은 선생님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츠루잎.”

 

 “츠루잎?”

 

 “도, 츠루잎.”

 

 바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자주 다투긴 했지만 싸움이 끝나고 나면 어린 동생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그중 마요라는 여자애는 특히 궁금증이 많았는데 마요 덕에 많은 단어들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도 모르는 단어가 많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적어도 한 명은 그 단어의 뜻을 알아와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가끔 물체의 이름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가 싸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몇 번 보고나니 낯설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싸움 안에도 룰이 있었고, 보기에는 위험해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선이 있어 심각하게 다치는 아이는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아이들을 관찰하고 소통하는데 보냈다.

 

 움막으로 돌아와서는 현재로 돌아가기 위해 늘 꾀가를 했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대신 꾀가 자체가 주는 평온한 느낌이 좋아서 항상 잠들기 전에 족장을 졸라 꾀가를 하곤 했다. 족장은 내가 스스로 꾀가 얘기를 꺼냈던 날에는 되게 행복해 보였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부탁하니 슬슬 귀찮았는지 나에게 꾀가를 할 때 외우는 말들을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캄사다 우흐 다노,”

 

 “캄사다 우흐 다노.”

 

 “흐허.”

 

 “다노?”

 

 고맙다는 뜻의 캄사다와 우리라는 뜻의 우흐는 알고 있었지만 다노는 처음 듣는 단어였다. 족장에게 물었지만 족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둥근 원을 만들었다가 양손을 옆으로 퍼뜨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푸르오 우흐 다노.”

 

 “푸르오 우흐 다노. 또 다노네.”

 

 또 다노라는 단어가 등장했지만 족장은 내 물음을 못 들은 척 넘어갔다. 아마 설명할 방법이 안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푸르오에 대해 묻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배를 앞으로 내밀며 손으로 배를 두들겼다. ‘배부르다’라는 뜻이 분명했다.

 

 “호티아 우흐 다노.”

 

 “호티아 우흐 다노.”

 

 “흐허, 이스 가분 꾀가.”

 

 “이스 가분 꾀가.”

 

 말을 마치고 일어나려던 족장이 내 말에 한숨을 쉬며 다시 돌아와 앉았다. 호티아라는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어색한 미소를 몇 번이나 짓던 족장은 완전히 탈진한 듯 보였다. 아쉽게도 끝내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다다, 캄사다 우흐 다노, 푸르오 우흐 다노, 호티아 우흐 다노. 끝.”

 

 “아~ 그 세 개가 끝이라고요? 캄사다, 푸르오, 호티아 끝?”

 

 “도도.”

 

 ‘끝’이라는 단어는 현재에서 쓰던 것과 같은 뜻을 가지는 단어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비슷한 단어가 나오자 뛸 듯이 기뻤다. 원래 족장이 외던 꾀가는 더 길었지만 지금은 이 단어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더 배우는 건 다음에 하기로 했다.

 

 “아, 까먹을 뻔 했네.”

 

 꾀가를 하기 전에, 고이 모셔둔 나만의 공책(대장장이를 찾아갔던 다음 날 족장이 3장의 석판을 가지고 왔다)을 꺼내들었다. 오늘 배운 [푸르오=배고프다]를 적자, 석판에는 지금까지 배운 30개가 넘는 단어들이 줄지어 적혀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석판에는 무언가 적혀있는 곳보다 비어있는 곳이 더 많았다.

 

 나머지 두 개의 석판 중 하나는 네 등분을 해서 휴대했다. 또한 단어를 적을 때도 뗀석기가 아니라 나뭇가지에 화살촉을 붙인 필기도구를 사용했다. 화살펜을 사용하고 석판이 채워지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지만 훨씬 더 수월하게 단어를 적을 수 있었다.

 

 “캄사다 우흐 다노, 푸르오 우흐 다노, 다음 뭐였지.”

 

 석판을 다시 원래에 자리에 돌려놓은 나는 어설픈 가부좌를 틀고 옆에 놓인 휴대용 석판을 힐끗거리며 꾀가에 집중했다.

 

 “캄사다 우흐 다노, 푸르오 우흐 다노, 호티아 우흐 다노.”

 

 몇 번의 시도 끝에 눈을 감고 완벽한 문장을 만들었다. 성공에 대한 쾌감보다 마음에 내려앉은 차분함이 나를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더듬거리고 외우기 위해 빠르게만 나오던 단어들이 조금씩 그 속도를 줄여갔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자,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내 마음 속에 쌓여갔다.

 

 열 번을 반복하기도 전에 온몸이 나른해지고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억지로 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을 눕힌다. 몸에 힘을 빼고 꾀가를 이어간다. 그렇게 잠이 들면 다음날 일어났을 때 마음의 풍요를 느끼면서 일어날 수 있다.

 

 이곳에 온지 일주일째를 알리는 해와 함께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석판을 꺼내 지금까지 배운 단어들을 확인하고, 족장과 함께 사냥 혹은 사육의 결과물을 아침으로 먹는다. 꾀가와 차를 마시면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도담의 아침은 분주하다. 여자들은 빨래를 냇가로 향하고, 남자들은 사냥을 준비하거나 사냥에서 얻은 결과물 혹은 파손된 무기들을 점검한다. 아직 사냥에 나가기에 조금 이르다고 판단된 남자들은 사육에 힘을 쏟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은 싸움, 사냥, 놀이. 이 세 가지 행위를 조금 더 자라기 전까지 반복한다.

 

 대궐의 말로는(몸의 언어에 가까웠지만) 아이들의 사냥터는 어른들이 정해놓은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토끼나 작은 새들 같이 사납지 않은 동물들을 사냥하며 감각을 익힌다고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울타리나 토끼와 작은 새들을 보고 내 나름대로 만든 이야기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것처럼 깨끗해져있는 잠옷 때문에 나는 따로 빨래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에 아침에 휴대용 석판을 차고 아이들이 모이는 공터로 향한다.

 

 “흐허찬!”

 

 얼마 전에 배운 아침인사였다.

 

 “흐허찬! 주운!”

 

 싸울 준비를 하던 아이들이 나를 발견하고 밝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까지 원활한 소통을 할 수는 없었지만 짧은 기간에 꽤나 친해질 수 있었다.

 

 "오!!! 흐허 주운!!"

 

 내가 쏜 화살이 도망가던 사슴의 목덜미에 날아가 꽂히자 머리를 뒤로 땋은 마유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쓰러진 사슴의 머리에 들고 있던 도끼를 내리 꽂았다.

 

 "흐허"

 

 뒤에서 기척을 느낀 내가 고개를 돌리자 만족스럽게 웃고 있던 대궐이 빠르게 정색하며 말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활 쏘는 연습을 하고 있으면 우연히 들린 것처럼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줬던 대궐이 스승처럼 기뻐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창피한 모양이었다.

 

 "나도 짜증나니까, 표정 좀 풀지?"

 

 사슴을 맞춘 이후로 한발도 맞추지 못하자 대궐은 내가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쏟아냈다. 참다참다 내뱉은 내 말에 대궐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다른 아이들을 보러 가버렸다.

 

 "저걸 확!"

 

 대궐의 등을 겨누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활시위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다 카이' 그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대충 해석하자면 '넌 쏴도 못 맞춰'였다. 처음으로 여기 언어를 공부 했다는 사실을 후회했다.

 

 "같이 가! 워 취가, 아니지, 이건 나는 간단데."

 

 중얼거리며 대궐의 뒤를 쫓는데 옆에서 수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활을 겨눴지만 시위가 없는 활은 화살조차 걸 수 없었다.

 

 수풀에서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어깨에 맬 수도 없게 된 활을 들고 터덜터덜 마을쪽으로 걸어갔다.

 

 "주운!"

 

 아이들과 대궐은 이미 모여 사냥의 결과물을 정리하고 있었고, 토끼를 다듬던 마유가 나를 발견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유!"

 

 내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나는 오히려 활을 더 놀게 들어 그들을 향해 흔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마유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내려 놨던 도끼를 들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왜 그래? 마유! 왜왜!!"

 

 "더샤이, 주운!"

 

 "도끼라도 내리고 쫓아오던가."

 

 "하시!!"

 

 [하시=다리]. 머릿속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낸 내 시선이 아래쪽을 향했다. 그리고 내 다리에 힘겹게 매달려있는 여우 한 마리가 보였다. 자각하지 못한 고통은 알아채지 못한다는 건 둘째 치고 다리에 매달려있는 여우도 눈치 채지 못하다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까 수풀에서 느꼈던 건 이녀석의 인기척이었던 모양이다. 녀석이 내 다리를 물었을 때 내 옷에 이빨이 걸린 것 같았다. 그 상태로 나한테 끌려 왔으니 여우는 마유의 도끼에 찍히기 전에 이미 빈사상태였다. 마유의 도끼에 머리를 찍힐 때가 오히려 더 행복해 보일 지경이었다.

 

 "대궐! 대궐!"

 

 "대궐!"

 

 안 그래도 아파죽겠는데 다리를 절면서 걸어온 나를 향해 아이들이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어댔다. 근데 왜 나를 대궐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안 됐다.

 

 "대궐? 대궐은 저쪽이잖아."

 

 나는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대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운고트. 다 대궐!"

 

 평소 대궐을 잘 따르던 도운이 내 말에 발끈했다. 그리곤 내 곁으로 다가와 부서진 활과 피가 흐르는 내 다리 마지막으로 여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스 대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짧게 머리를 깎은 소년의 한 마디에 내 머릿속 사전이 합성을 일으켰다. 대궐의 이름이 대궐이 아니라 운고토라는 것과 대궐이 이름이 아니라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두 사실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대궐!"

 

 "대궐."

 

 한참을 더 놀림을 받은 이후에야 아이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멍청한 행동을 한 친구를 둥글게 둘러싸고 놀리던 기억이었다.

 

 "바보래요!"

 

 "바보래요!"

 

 이렇게 바꿔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대궐=운고토], [대궐=바보]. 여러모로 충격적인 사냥이었다.

 

 여우를 떼어내자 상처부위가 아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발목이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으로 변했다. 최대한 상처를 외면해보려 했지만 항상 그랬듯이 한 번 시작된 고통을 외면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걷는 게 불편해 마유의 도움을 받으며 걸었지만 순식간에 무리에서 뒤쳐졌다. 우리를 한 번 뒤돌아본 대궐, 아니지 운고토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와 나를 어깨에 들쳐 멨다. 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것만으로 고통이 반으로 줄었기에 약간의 창피함은 감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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