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주황색으로 익어버리고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볼일을 마친 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아까완 다르게 돌아갈 땐 사람이 별로 없어 빈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여러군데를 돌아다녔던 탓인지 꽤나 피로가 쌓였다.
내 옆에 앉은 세희도 어깨에 기대오더니 어느새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창문밖으로 건물들이이 빠르게 지나간다. 스며드는 황혼이 가려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숨바꼭질을 한다.
나를 한층 감성적이게 만드는 마치 세계가 멸망한듯한 낡음과 멀게만 느껴지는 아득함.
그것이 싫지만은 않다. 열차 안을 둘러보았다.
대각선엔 와이셔츠를 팔뚝까지 걷어올린 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직장인이, 노약자석엔 등산복장을 하고있는 노인이 있다.
친구사이로 보이는 또래의 젊은 여자애 두 명과, 휴가인지 복귀인지 모를 군인도 앉아있다.
모든 것이 전혀 위화감 없는 현실의 모습이다.
커다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지만……. 변함없는 세계의 모습에 쓴웃음이 지어지는 건 어째서일까.
내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뻔한 물음을 떠올렸을 때, 드디어 우리가 내려야 할 역이 다음 역이 되었다.
"곧 도착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기댄 세희를 흔들었다.
"알고있어."
그러나 언제부터 깨어있었는 지 세희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서서히 손을 잡아오는 세희의 손길이 느껴진다. 작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깍지를 꼈다.
역에서 내려 평상시대로 걸어가는 도중 지나치는 파리바게트.
그곳엔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수아의 모습이 유리문 사이로 비춰진다.
가볍게 웃으며 시선을 돌리고 길을 걸었다.
걸을수록 최신 간판이 사라져가고 대신 낡은 건물이 들어서는 와중, 허름한 문구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지 영업을 하는지 바깥에서 바라본 내부엔 조명이 켜져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던 그때,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좋아. 이거다."
세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라니?"
"목걸이도 좋지만 우리만이 해줄 수 있는 선물이 따로 있었어. 게다가 그건 돈이 거의 들지 않아."
어째서 이 좋은 걸 생각하지 못했던걸까?
여전히 영문을 몰라하는 세희를 이끌고 문구점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안엔 사람이 없었다.
돌바닥부터가 꽤 정겨운 느낌이 들고 내부 역시 살짝은 퀘퀘한 공기가 그리운 기분을 들게한다.
핥으면 혓바닥이 물드는 맥주사탕이라든가 하나씩 까먹는 재미가 있는 비타민캔디같은 불량식품들부터 도화지라든가 물로켓, 싸구려 학용품들.
전부 추억을 상기시키는 그리운 것들이었다.
"바로 이거야."
그 중에서 나는 색종이묶음을 집어들며 세희에게 보여주었다.
"아하! 이게 있었구나!"
그것만으로 무슨 소리인지 단번에 이해한 세희가 밝게 대답했다.
색종이와 목걸이. 분명 이건 우리만이 줄 수 있는 형태의 근사한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런 기쁨에 우리는 천 원을 안쪽 마루에 올려두고 가게를 나왔다.
아현 누나가 돌아온 건 다음 날 자정을 아직 넘기기 전인 한밤 중이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현관문이 열리더니 캐리어를 끌며 돌아온 그녀와 마주쳤다.
"다녀오셨어요."
부모에게도 몇 년동안 해본적이 없는 인삿말을 건낸다.
세 사람은 또다른 가족이다. 그것은 누나가 만든 이 집에서의 방침이었고 동시에 우리 세 사람에겐 없는, 우리가 원하는 관계였다.
"응. 다녀왔어. 안자고 있었네?"
"누구 탓인데요."
어깨를 들썩이며 가볍게 농담을 던지자 누나가 작게 웃었다.
그럼에도 평소와는 다르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밝음이었다.
서로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지. 애써 자아내는 평소대로의 밝은 분위기는 가짜에 불과했다.
시선을 내렸다. 턱 밑에 새겨진 표식은 드디어 '0'이라는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세희는?"
"아마 방에서 자고있을거에요. 방금까지 쭉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래."
어딘가 서글픈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미세하게 움직여 내 왼쪽 눈 밑을 향했다.
오늘 점심을 기준으로 내 숫자는 '4'로 갱신 되었다. 하루조차 남지 않은 누나보다 고작 며칠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셈이다.
"곧 뒤따라갈게요."
"얘는 무슨. 영감님같은 소릴 하고있어."
누나가 우후훗하고 소심하게 웃었다.
"늦었으니 얼른 가은이도 들어가서 자렴. 나머진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
"……안녕히 주무세요."
"잘자렴."
무거워진 발을 떼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망설임따윈 없이 잔혹하게 찾아온 다음 날 아침.
오늘은 누나와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게 되는 날이다.
평소대로 셋이서 함께하는 아침식사지만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이제와서야 태연한 척을 하기엔 이미 심각해져있었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맴도는 아침 식탁에서, 그저 우리는 느릿한 속도로 묵묵히 카레를 우물거릴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깨듯, 아현 누나가 과장스럽게 태연함을 내뱉었다.
"오늘따라 조용하네~? 잠을 덜 잔거야? 아! 혹시 너희들. 내 카레가 너무 맛있어서 말이 안나오는거구나?"
그러고보니 세 사람이 만난 첫 날도 이렇게 카레를 먹었더랬지.
맛있다. 까놓고 얘기하자면 그녀가 만든 카레는 지금 껏 먹어본 카레중에서 제일 맛있다.
하지만, 우리는 맛있다는 그 한마디조차도 해줄 수 없었다.
카레를 뜨던 세희의 스푼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탓에 머리카락에 눈이 가려져있지만,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세, 세희야!"
마침내 세희는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뛰쳐나가더니 뒤이어 현관문이 쿵하며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 위에 덩그라니 놓인 세희가 남긴 카레는 몇 입 떠먹지 않은 채였다.
잘못된 것 같은 불안함이 감도는 가운대 아현 누나는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누나……."
스푼을 내려놓았다. 이 상황에선 어떤 말이 필요할까?
여기서 나 또한 세희처럼 자리를 옮기는 게 정답인걸까?
무엇이 정답인지, 어떤 위로를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세희는. 정말로 누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 말에 누나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이것이 위로가 될 지 어떨 진 모르겠지만, 막상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세희한테 들으셨죠? 서로 좋아하던 사이였다구요."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누나가 상냥한 미소로 대답했다.
"맞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런데도 세희는 제가 누나와 친하게 대화하는 걸 전혀 개의치 않아했어요. 오히려 누나를 걱정하며 기다렸어요. 혹시 여행도중에 이상한 일에 휘말리진 않았는지. 다치진 않았는지. 제대로 밥은 먹고 다니는지……."
짤막한 침묵이 흐른 뒤 나는 눈 앞의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째서라고 생각해요?"
누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누나를 믿고있기때문에 그런 걸 거에요. 그만큼 우리들에게 누나는 소중한 존재에요."
누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무언가를 꾹 참아내려는 듯 쥔 주먹이 흔들린다.
"그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받아들이기 힘든거에요. 저도 그렇고요."
그녀의 입가엔 허세부리며 지었던 쓴웃음이 사라져있었다.
"둘이서 누나한테 줄 게 있어요."
"……나한테 줄 거라니?"
"세희 데려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현관을 나섰다.
마당을 나와 산길을 내려가 한적한 도로를 걷다보면 들어서는 시골정류장.
그곳에 앉아있는 소녀는 꽤나 울적해보인다.
"이거라도 먹어."
나는 냉장고에서 가져온 편의점표 샌드위치를 세희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두 개의 샌드위치를 하나씩 나누고 논밭을 감상하며 야금야금 먹는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
"오늘 전해주지 못하면 더이상 줄 수 없을지도 몰라."
"응……."
"그건 싫지?"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한 입을 먹은 뒤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까 빨리 전해주자고."
세희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들어갔는 지 거실엔 누나의 모습이 없었다. 싱크대엔 누나의 그릇만이 물에 잠겨있었다.
식탁에 그대로 남아있는 우리 몫의 카레는 나중에라도 다 먹으라는 소리겠지.
이틈에 세희와 나는 2층의 내 방으로 발을 옮겼다.
알록달록한 색종이로 미리 접어뒀던 종이비행기들과 함께 우리가 산 목걸이를 가져와 내려왔다.
그 다음 세희는 방 앞에서 노크하며 누나를 불렀다.
"언니. 잠깐 이리와주세요."
넓은 잔디마당을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거실 마루에 누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무엇을 보여줄 지 기대반 호기심 반인 표정으로 누나는 우리를 쳐다보았다.
하나, 둘, 셋. 세희의 신호에 맞춰 우리는 종이비행기를 차례대로 살포시 날렸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흰색.
다섯개의 종이비행기가 손끝을 벗어나 깔끔하게 직선으로 날아가다가 대열을 맞추고, 우리의 섬세한 손짓에 한꺼번에 수직상승을 한다.
"와아!"
그렇다. 문구점에서 산 색종이로 우리가 보여주려 했던 것은 종이비행기 에어쇼였다.
상당히 감탄한 기색으로 그녀가 입을 막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 반응이 괜시리 우리들의 쇼맨십을 자극하여 괜시리 들뜬 우리는 더욱 현란한 손짓으로 회전이라든가 대열을 지그재그로 바꾸는 등의 재주를 부려댔다.
선명한 구름이 놓인 파란 하늘아래 알록달록한 종이비행기가 넝실넝실 춤을 춘다.
"아름다워."
흘끗 곁눈질을 하자 강하게 매료됐는 지 포근한 미소로 종이비행기를 올려다보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나와 같이 누나를 쳐다보던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슬슬 쇼의 하이라이트 단계이다. 실행하자.
그렇게 눈빛을 주고받은 뒤 우리는 다섯개의 종이비행기를 부드럽게 착륙시켰다.
세희가 주머니에서 또다른 종이비행기 하나를 꺼냈다. 우리가 산 목걸이가 걸려있는 종이비행기였다.
살포시 휘날려 한 바퀴 커다랗게 돌던 종이비행기가 느릿하게 누나의 품으로 향한다.
누나가 천천히 두 손을 모으고, 세희는 그곳에 종이비행기를 사뿐히 착륙시켰다.
이건 뭐야?라고, 걸려있는 목걸이를 빼내더니 우리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저희가 언니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항상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요. 저희가 입은 은혜에 비해 이런 건 상당히 사소한 것이겠지만요."
우리의 포근한 미소에 누나는 넋을 잃은 표정을 짓더니 목걸이에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말없이 조용히 목걸이를 집어 목에 둘렀다.
"예뻐요. 언니."
"잘 어울려요."
누나가 두 손으로 목걸이를 감싸며 말했다.
"……고마워. 웅. 정말 고마워."
만약 오늘이 한 겨울날이었다면 분명 그녀의 미소에 내리던 눈이 쌓이기도 전에 녹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한 종이비행기 에어쇼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그 뒤로 우리 세사람은 누나가 여행때 가져온 일회용 필름카메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다음엔 근처 산책로를 느릿한 걸음으로 거닐며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땐 세희와 함께 아침에 남겼던 카레를 마저 먹는 것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러던 도중 누나는 우리들에게 맛있는 카레를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겠다며 요리를 가르쳐주었다.
세 식구가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 평온하고 너무나 따스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나의 턱 밑에 새겨진 '0'이라는 숫자는 오래된 잉크처럼 부분부분이 지워져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숫자가 '4'에서 '3'으로 갱신된 지 조금 더 지난 시간인 오후 세시.
드디어 그녀의 몸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이 점점 투명해지고 자그마한 반딧불같은 푸른 빛 덩어리들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우리를 양 옆에 끼고 거실 소파에 앉은 누나가 입을 가리며 하품을 했다.
"조금 졸리네."
빛이 점점 빠져나간다. 나른한 눈빛이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만 같은 게 상당히 졸려보인다.
"언니. 고마워요."
눈물을 글썽이는 세희는 누나의 손을 잡으며 작게 웃었다.
"길잃은 우리들에게 따듯한 방과 맛있는 밥을 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어떻게 갚아야할 지 모를 정도로 저희들은 언니에게 너무 큰 은혜를 입었어요."
"은혜는 무슨. 그런 거 바란 적 없어. 나는 외동딸이라서 한 번쯤 동생을 가지는 게 소원이었거든."
누나의 나른한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질것만 같았다.
"이렇게 이쁜 목걸이까지 받았는걸."
"그래도……."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몰려오는 졸음에 저항하며 손을 뻗어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조차 이제는 힘이 없는 지 부드럽다 못해 연약하게 느껴진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땐 꼭 은혜를 갚을게요."
어떻게 갚을 지 방법은 몰라도, 그리고 내 말이 근거따윈 없는 허울좋은 소리일지라도, 나는 그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녀의 몸이, 의식이 전부 사라지기 전에.
내 말에 누나는 작게 웃었지만, 그건 한 송이의 눈꽃과 같아 금방 사라질것 같이 희미했다.
"다음 생에도…… 너희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해……."
"언니……."
세희가 눈을 질끔 감으며 누나의 손을 가져가 자신의 볼에 부벼댔다.
"우린…… 가족이니까……."
그리고 그 한마디에 글썽이던 세희의 눈물이 떨어져 누나의 손을 적셨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머지않아 먼저 차오른 왼쪽 눈에서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더니 누나는 우리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주다가, 고개를 떨궜다.
잠깐 꾸벅꾸벅 졸던 누나는 마침내 눈을 감았다.
푸른 빛 덩어리들이 계속해서 빠져나간다. 점점 사라져간다. 그럼에도 잡은 손의 온기는 아직까지 따스하게 남아있었다.
세희가 흐느끼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그렇게 1분정도가 지났을까? 누나가 살며시 눈을 떴다.
"언니……!!"
"……잠깐 꿈을 꾸었어."
"어떤 꿈인데요? 들려주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그러자 누나는 살포시 웃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잠깐동안 졸았을 때 그 사이에 꾸었던 꿈을 이야기해주었다.
"둘이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어……. 왠일로 학교에서 싸웠는 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서로가 잘못했다며…… 나한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거야……."
들으면 들을수록 나에게도 없던 흐느낌이 생기며 입가가 삐죽삐죽 움직인다.
"그리고 나는…… 포근한 엄마미소를 지으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거야."
뜨거운 눈물이 볼을 간지럽히며 소파를 적신다.
"이거 먹고 화해하라…… 아이스크림……. 가은이가 자기것까지 머그……."
뒤이어 누나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지만 알아듣진 못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려했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 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결국 저희는 화해했군요."
세희가 그녀의 손을 꼬옥 잡자 그녀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낮잠을 자는 것 같은 그런 편안한 모습으로 대부분이 사라져가는 그녀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누나."
"안녕히 주무세요. 언니."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져가던 아현.
결국, 수많은 아름다운 푸른 빛들이 허공에 퍼지며 반짝거리다가 사라졌다.
소중한 가족과의 이별에 나와 세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그녀가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했던 사람인지를 다시 한 번 간절하게 느끼며.
부모의 손을 놓쳐 미아가 되어버린 어린아이처럼.
흘러넘치는 상냥함과 따듯함을 쏟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