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맨션에 도착했을 때,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어락을 해제하기위해 비밀번호를 여러번 눌러보아도 결과는 똑같았다.
틀린 번호라며 열리질 않는 것이다. 항상 돌아갈 장소였던 집에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어젠 월세를 내야했던 날이다.
"이걸 어쩐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이란 걸 알고는 있었다만, 꽤 이른 감이 있지 않을까.
갑작스럽게 돌아갈 집을 잃게 되다니. 하물며 유령인 주제에 현관문을 통과할 수도 없었다.
이전에 판타지소설을 읽었을 때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선 심상을 떠올리는게 중요하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혹시 몰라 그걸 참고해 요령껏 이미지를 떠올려보며 몇 번이고 시도해보아도, 결국엔 금속문 표면의 차가움이 느껴질 뿐이다.
스스로가 바보같아질때 즈음, 나는 얕은 한 숨을 내쉬며 현관문을 등진 채 쭈구려 앉았다.
사실 이대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친가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지만…….
웬만하면 이대로 숫자가 닳아갈 때까지 집은 찾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게다가 우리집은 도어락이 아닌 열쇠형 현관문이다.
찾아가봤자 늦은 밤엔 문이 잠겨있을테고 두들겨봐도 인식하지 못할테니 소용없다는 것.
즉,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앞 뒤가 막힌 폐쇄적 감각을 유령이 되어서도 맛봐야 한다니.
절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이렇게 되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찜질방이다.
찜질방에 가면 수면은 물론, 목욕도 마음 껏 할 수 있다.
뿐 만 아니라 배가 고플 경우엔 매점에 구비된 음식들로 허기를 달랠 수 있다.
옷같은 경우엔 빨래방에서 세탁을 하거나 새 옷을 가져다 입으면 그만이다.
역시 인간으로서 점점 밑을 향해가는 기분은 감출 수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그 외에 어쩔 도리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말이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맨션을 빠져나왔다.
찜질방은 시내에 위치해 있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발을 움직여댄 탓에 다리가 아파온다.
마침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지친 몸을 쉬게할 겸 의자에 앉았다.
정각이 살짝 넘은 시간. 텅 빈 정류장에 앉아 바라본 밤의 거리는 한적했다.
알록달록한 간판의 네온사인과 가로등의 누런 빛이 거리를 비추고, 저 멀리선 한 잔 했는지 큰소리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가는게 들려온다.
모든 것이 평소대로의 모습을 띄고있다. 이렇게 멀찌감치 세상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간이 좋다.
그리고 이럴때면 알기 싫어도 알게된다.
세상에 있어 나같은 건 아무래도 좋을 개미 한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면 오해가 있겠지만, 위대한 사람이 되고픈 욕망 또한 없다.
스스로가 크게 될 인물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도, 한 때 우수한 성적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에 잠겨본 적은 있다.
물론 그 생각은 '단순한 나의 착각이었다'라는 흔한 장식으로 마무리가 될 뿐이다.
성격이 특이하다는 말은 납득할 순 있어도 지나온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지우개로 싹다 고쳐쓰고 싶은 과거만이 존재할 뿐이라 평범 이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열의에 불타본 적도 없던 나는, 깡통조차 되지못한 잡동사니에 불과하다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싸구려 감성에 젖어있자니 담배를 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이럴때면 느긋하게 피워주는게 좋다.
고독을 즐기게 해주는 것들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걸 보면 담배는 의외로 고마운 녀석이 아닐까.
조금 더 젖고싶은 기분에 담배각을 꺼냈다.
"……되는 일이 없네."
그새 다 피워버렸는지 안은 텅 비어있다. 짤막한 탄식을 뒤로하며 빈 담배각을 적당히 던져두었다.
잠시 후, 시야 옆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밝혀온다. 막차로 추정되는 시내 버스는 찜질방 근처로 직행하는 버스였다.
이 곳에서 찜질방까지 거리는 멀지 않다. 그래서 딱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는 없지만, 걸어가기도 번거로워 그냥 탑승하기로 했다.
그렇게 의자에서 일어나 살포시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버스는 내 손짓따윈 무시한 채 그대로 날 지나쳤다.
"아……."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버스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이내 내민 손으로 시선을 옮기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쩌면 유령이란, 상당히 자유롭지만서도 외로운 존재라는 걸 이때 처음으로 알게됐을지도 모른다.
가볍게 음악이라도 들을 생각에 꺼낸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다된건지 전원이 꺼져있었다.
전원 버튼을 눌러보아도 켜지던 도중 끊기기를 반복한다.
"너무하네."
쓴웃음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불평을 흘렸다.
하다못해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살아있을 때에도 없었는데 유령이 되어서 나타나줄 리가 없지."
내 뒤의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건드린 건, 집어삼켜질 듯한 외로움에 고개를 숙이는 그때였다.
반 쯤 감았던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안녕? 집을 잃은 유가은씨."
─뒤돌아본 그곳엔 소녀가 서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라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멀뚱히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런 나에게, 작게 미소짓고 있는 소녀는 들고있던 두 개의 컵커피중 하나를 내 볼에 가져다대었다.
볼에 느껴지는 시원한 온도가 여름 밤 특유의 두꺼운 공기를 흩날린다.
소녀의 부드러운 손을 스치며 컵커피를 건내받았다.
입 안에 머금은 달콤한 카푸치노를 느끼다가 꿀꺽 삼킨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라 시원한 커피가 몸 안에 스며드는게 살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컵커피를 내 곁에서 함께 마셔준다는 건 반가웠다.
"어째서 여기에 있는거야?"
어느정도 목을 축인 뒤 슬슬 말을 꺼내야 겠다며 소녀에게 물었다.
"아까 볼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걸 끝내고 돌아오는 참인거지."
"그러다 우연히 집을 잃은 나와 마주친거고?"
"글쎄."
의미심장한 대답이었다. 소녀가 빨대로 쪼로록 커피를 마신다.
태연한 척을 하며 별 일 아니라는 듯 한 뉘앙스였지만, 그건 아니라는 걸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절 반은 맞을지도 모르겠네. 집으로 돌아가는 너와 우연히 마주친 건 맞으니까."
내 마음을 꿰뚫었는지 소녀는 말을 덧붙였다.
"볼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끝내고 돌아가려던 참에 발견했거든."
사거리에서 헤어진 이후 소녀는 다시 날 발견한 것이다.
"그러다 현관문 앞에 쭈그린 내 모습을 보고는 내가 집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된 거구나."
"그런 셈이야."
솔직하게 말하는 소녀가 가볍게 웃었다.
"미행이네."
"미행이지."
능청스러운 투로 말을 주고받은 우리는 서로를 향해 작게 미소지었다.
인연이라는 것에 기대를 가져본 지 얼마나 됐을까. 최근 몇 년동안은 인연이라는 것과 연관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미 다른 딴 녀석들에겐 녀석들 나름대로의 인연이 자리잡혀있고 서로의 틀 안에서 웃느라 바빴다.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고, 그것이 다가간다는 것의 막연함이 되기도 했다.
새로운 만남 또한 없었다. 이대로면 영원히 외톨이겠구나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그 순간부터 나는 유대란 것을 수면에 비친 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내 안엔 인간불신이 싻트게 되었다.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순간은,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은 채 홀로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홀로 지내온 그 고독한 시간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대답을 만들어낸다.
나의 대답은, '어차피 그럴 일은 없으니 포기하자'였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내 인생의 앞 날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지금까지 나타나주지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타나주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때때로 희망을 품는 미련한 짓을 반복했고, 그리고 그때 품었던 희망들은 실망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지금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무언가의 욕구는 미련한 짓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이렇게 내 곁에 있어주는 소녀에게 작은 기대 하나쯤은 품어도 되지 않을까.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소녀가 한 행동은 비겁할 정도로 상냥했으니까.
그러니까 몰래 작은 마음을 품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친가로 돌아가는 것도 조금 아닌 것 같고. ……가봤자 썩 마음 편하게 지낼 순 없을 것 같고."
"하긴……."
쓴웃음을 짓는 소녀의 표정이 잘 알고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러고보니 정처없이 떠돌았다고 했었지.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이유에서 집에 돌아가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당분간은 찜질방에서 잘 생각이야."
"완전 노숙자가 따로 없네."
"그러게."
쿡쿡 웃는 소녀에게 어깨를 들썩였다. 져지 주머니에서 담배각을 꺼낸 소녀가 입에 하나를 물었다.
그리곤 담배각에서 한 개비를 길게 뽑아 태연하게 내 입에 물려주더니, 그 다음엔 라이터로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나서 내 입에 불을 붙여주었다.
"땡큐."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는 동안엔 서로 말이 없었다.
이런 느긋한 시간을 편히 보낼 수 있는 상대방이 있다. 그 사실을 마음속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머리가 담배연기에 무르익어 몽롱해지기 시작할 무렵, 소녀가 한 모금 내뱉으며 말했다.
"찜질방보다 좋은 곳을 알고있는데."
"어딘데?"
짧아진 꽁초를 떨어뜨린 소녀는 발로 불씨를 끄며 일어섰다.
"따라와."
소녀를 따라 나란히 걸었다. 들어서는 시내 사거리에서 낯선 방향으로 30분.
찜질방보다 좋은 곳이 있다고 말한 소녀였지만 걸을수록 건물은 점점 사라져간다.
저 멀리에 솟아난 산봉우리들이 도로를 감싸고, 주변엔 넓은 논 밭이 시원스레 펼쳐져있다.
어둠속에서 가로등의 밝은 빛에 이끌린 나방 몇마리가 분주하게 날개짓을 해댄다.
이미 두 번이나 지나서 슬슬 익숙해져가는 장소.
"저기……."
주저해하며 시선을 마주쳐보아도 소녀는 잔말말고 따라오라는 기색이었다.
산 입구에 들어서는 아스팔트 길. 그 곳으로 올라가니 평평한 잔디밭과 함께 통나무 집 한 채가 나온다.
걸음을 늦추자 내 의도를 알아차린 소녀가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래도 이건……."
"사양할 것 없어. 이미 아현 언니한테는 말해놨으니까."
터덜터덜 끌려가며 현관문 앞에 도착한 그때였다.
소녀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으려던 순간 문이 열렸다.
"너희 둘. 아무리 유령이라도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면 돼? 안돼?"
짓궃은 표정으로 꾸지람을 하는 아현씨지만 그 안엔 따스함이 묻어있었다.
"다녀왔어요. 언니."
소녀를 향해 흐뭇하게 미소짓던 아현씨는 이내 날 바라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은이도 빨리 인사하고 들어와야지?"
"저어, 그게……."
적당히 둘러댈 생각이었으나 어느샌가 나는 당연하다는 듯 그들안에 소속이 되었다.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 뒤돌아 날 바라보던 소녀가 잡고있던 손을 더욱이 꼬옥 잡아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살포시 고개를 숙이곤 이렇게 말했다.
"다녀…왔습니다……."라고.
"어서와."
"어서오렴."
들려온 그 말에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 들어온 건, 소녀와 아현씨가 따스하게 웃으며 날 맞이해주는 모습이었다.
나에게 돌아갈 장소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