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의 얼굴에 심하게 물리고 발톱에 할퀸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그는 다시 주먹으로 그를 패려했다. 젠시는 본능적으로 팔을 뻗고 에페의 얼굴을 밀어 짓눌렀다. 그러자 에페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상처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 젠시의 손가락 사이에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에페는 젠시의 팔꿈치를 빠르게 세 번 가격했다. 뼈가 삶은 감자마냥 으깨지는 듯한 통증이 통렬했다.
젠시는 힘겹게 더듬거리며 허리춤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손잡이에는 말라붙은 회색늑대의 피가 묻어있었다. 그걸로 에페의 얼굴을 가격했다.
손전등이 부서졌다. 백열전구가 밖으로 튀어나와 전선을 붙잡고 허공에서 대롱거렸다. 같은 부위에 한 번 더 가격했다. 전구가 깨지고 에페의 얼굴에 화상이 일었다. 깨진 전구에서 불활성 기체가 스멀거렸다. 에페는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지며 젠시 옆에 쓰러졌다. 젠시는 에페가 신음을 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에페는 얼굴에 손을 가까이 가져다대고 고통에 겨워 버둥거렸다.
젠시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열기가 느껴졌다.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 아래 거실이 불에 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구가 그을리고, 점점 옮겨 붙어 되돌릴 수 없을 지경까지 되어있었다.
젠시는 연기에 콜록거렸다. 무릎이 무너지려 했다. 샤비는 구석에 쓰러져있었다.
“젠장...... 젠장”
젠시는 한쪽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불균형한 걸음으로 샤비에게 갔다. 젠시는 샤비의 목에 손을 갖다 댔다. 다행히 아직 뛰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약했다. 시간이 없었다.
젠시는 샤비를 품 안에 안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세상이 핑핑 도는 바람에 사방팔방으로 벽에 부딪혔다. 난간에 기대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뒤에서 소리가 났다. 분노가 섞인 포효였다.
“젠시!!!!!”
젠시는 그 말을 무시하고 위로 향해 계속 움직였다. 찬란한 달빛이 희미하게 빛났다.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별빛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젠시는 달빛을 받으며 계단 아래에 크나큰 시련과도 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로 말할 수 없는 극심한 추위가 또다시 찾아왔다. 바람은 죽음을 행진하듯 세차게 불고, 뭉친 눈이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젠시는 에페의 차를 알아보고 운전석에 탔다. 조수석에 샤비를 내려놓았다.
“절대 죽으면 안 돼”
무언가 그림자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벌컥 운전석 문이 열리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에페와 젠시는 약 한 뼘만큼의 틈을 두고 서로 문을 붙잡았다. 젠시는 에페의 한쪽 눈꺼풀이 거의 사라지고 탁구공 같은 눈동자만 남아있는 것을 보고 질겁했다. 발까지 쓰면서 문을 당겼다. 하지만 에페의 괴력을 이길 수 없었다. 점점 밀리기 시작하고,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젠시는 손잡이를 놔버렸다.
대신 발아래 있는 산탄총을 손에 넣었다. 동시에, 젠시는 멱살이 잡히고, 눈 깜짝할 새에 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눈의 맛이 느껴졌다. 아직 손은 총을 놓지 않았다. 젠시는 잽싸게 몸을 돌리고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굉음과 함께 반동으로 총이 멀리 날아갔다.
젠시의 얼굴과 차에 혈우가 튀었다. 눈에도 흩뿌려졌다.
에페의 복부에 탄알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는 제자리에서 쓰러졌다.
젠시는 거칠게 쉬었다. 바닥을 더듬거려 총을 찾아냈다. 맨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다가 술주정뱅이처럼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서 어렵사리 균형을 잡았다. 고개를 들어올려 크게 숨을 내뱉고 총을 들어 올려 경계했다. 시신 주위를 돌며 운전석에 다가갔다.
에페는 놀란 듯한 눈을 뜨고 있었다. 움직임은 없었다. 몸에 난 커다란 구멍에 시선을 옮겼다. 젠시는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씨발, 뭐야, 이거.”
젠시는 놀라운 진실을 목도했다. 내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게 있었다. 검은 무언가였다. 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글씨가 쓰여 있었다.
‘리메이서 콜린’
“뭐냐고”
에페의 몸에서 전기불꽃이 튀었다. 아무래도 고장 난 축전기 같았다.
그는 안드로이드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젠시는 하늘에 총구를 향했다.
“씨발”
젠시는 허둥지둥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첫 실전 운전이라 그런지 거기서 빠져나가는데 십 분을 할애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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