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체 무슨?”
유난히 바닥에 닿는 느낌이 척척한 게 찜찜했다. 몸이 질질 끌렸던 혈흔이 남아 있었다. 손전등으로 그 흔적을 따라갔다. 모닥불을 지나 물품창고 바깥까지 이어져 있었다.
젠시는 머릿속에 저절로 사건의 동선을 그렸다. 누군가 생존자들을 대학살하고 여기에 처박아둔 것. 하지만 누가, 왜. 문명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인간의 품위란 없었던 것일까. 아마 그랬을 지도 모른다. 오늘 자신이 늑대를 죽였던 것처럼 생존을 위해서라면 타의란 무가치한, 혹은 기생충 같은 존재인지도 몰랐다.
지구에는 더 이상 생존자가 없는 것 같았다. 이미 오래 전에 썩고 망가졌다. 생명은 죽고 죽음은 할 일을 잃어 미망인 신세로 터덜거리며 산길을 헤맨다.
만약 생존자를 만난다면, 그건 정말로 멋진 일이라고, 젠시는 생각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두러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있다면. 혼잣말을 대꾸해줄 사람이 있다면, 체온이 느껴진다면.
흙 없는 공동묘지를 지나고 식품 보관 창고에 당도했다. 도둑에 털린 집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앞 몇 상자는 완전히 비어있었다. 뒤쪽은 조금 남아 있었다. 토마토소스 두 통. 젠시는 며칠 굶주린 맹수마냥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뚜껑을 따고 병을 뒤집었으나 나오지 않자 손으로 퍼먹었다.
피 인지 음식인지, 오른손에 무엇이 묻었는지, 별안간 구분 할 수 없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
“아빠?”
여전히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그래요? 어디 아픈 거예요?”
“아빠?”
젠시는 살짝 겁먹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제야 아버지는 젠시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착잡한 눈을 하고 있었다.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시선을 맞추었다.
“괜찮은 거예요?”
“그래. 그렇고말고.”
“아빠”
“응”
“내 곁에 있어줄 거죠?”
아버지는 대답대신 이마에 키스했다. 그의 입가가 깨진 콘크리트 조각처럼 메말라 있었다,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아니?”
“뭔데요?”
아버지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손 끝에는 태양가 보였다. 지평선에 반쯤 가려진 채 일몰하는 어스름을 겨우 빛냈다.
“저기 태양이 보이지?”
“네”
“바로 그거란다. 네 할아버지는 내게 신년이면 ‘해돋이’를 구경시켜줬지. 그럴 때마다 난 달콤한 아침잠을 뺏어간다고 불평하긴 했지만.”
“해가 가장 아름답다고요?”
젠시는 이해하기 어려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새 시대의 희망처럼 떠오르는 빛. 그렇지 않니?”
“으음.......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전 스팸이 좋은걸요.”
아버지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딘지 씁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마치 우울을 뒤로 감춘 듯한.
“스팸이 좋다, 그래. 너에겐 당연히 그렇겠지.”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저 해는 지는 건가요, 뜨는 건가요?”
“지는 거지.”
“뜨는 해랑 다른가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그럼, 우린 지는 해를 계속 보게 되나요?”
“그걸 계속 본다?”
“네”
“그것도 잘 모르겠다. 네 생각은 어떠냐?”
“저도 모르겠어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중년 남성이 다가와 있었다.
“플랭크! 여기 있었구만”
아버지는 일어나서 그와 마주섰다. 전등의 빛이 남성을 가렸다. 지는 해처럼 따가웠다. 젠시는 전등의 빛이 너무 부셔서 그 주인공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만, 와인 잔이 그 사내의 손 안에 빛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
누군가 흔들어 깨웠다. 모닥불은 꺼져 있었다. 몸이 저려왔다. 부스스 뜬 눈동자에 사람의 형상이 비쳤다. 젠시는 깜짝 놀라 주춤거렸다. 그 남자는 한 손에 할로윈 파티 날 객실 입구에나 걸어놓을 듯한 자그마하고 오래된 램프를 들고 있었다. 램프 안의 불은 파르르 떨렸다.
그가 말했다.
“지나가는 길인가, 머무르는 중인가?”
주홍색 빛깔에 얼굴이 드러났다. 치켜뜬 눈에 이마에 잔잔한 파면 같은 주름이 져있었다.
젠시는 너무 놀라 대답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자와 조우하다니, 멍청한 금붕어마냥 입만 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던 길인가, 머무르는 중인가?”
끊어질 듯, 가늘게 이어지는 줄타기 같은 그의 어조와 악센트는 너무 괴랄해서 마치 고매한 예술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저는, 어 그러니까.”
사내의 어깨 너머, 물품창고 입구를 슬쩍 곁눈질했다. 문이 사라지고 경첩이 찌그러진 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허리에 찬 총집에는 총이 사라졌다. 머리맡에 두었던 도끼도 마찬가지다. 가만 보니 도끼는 남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샤비는 쥐죽은 듯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다. 젠시는 자기가 완전한 무방비 상태임을 깨달았다.
“동공 크기와 깜빡임 정도를 보아하니 당황한 것, 아니면 거짓말을 했음이 틀림없겠군. 거짓말은 아닐테고 혹시 나를 봐서 당황했나?”
의문의 사내는 진찰하는 의사마냥 젠시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가 집어넣었다. 언뜻 보기에도 손이 깨끗했다.
“어, 그러니까..”
“그런가?”
그는 집요하게 물었다. 젠시는 처음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혀가 뒤죽박죽 꼬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대답을 기다리다가 고개를 까딱이며 옷 군데군데 묻은 붉은 얼룩을 가리켰다.
“옷이 엉망이군. 이건 네 피 인가?”
“어, 아뇨. 아닙니다.”
“그럼 밖의 사체들의 피 인가?”
“뭐라고요?”
“밖에 죽어있는 늑대 피냐고. 세 마리 있던데. 두 놈은 내장이 파훼됐고 한 놈은 머리가 사라졌고”
젠시는 잽싸게 필름을 감았다가 재생시켰다. 어제 일이 생각의 탁상에 상정되었다.
“그리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데”
“아 네. 저인 것 같습니다. 옷에 묻은 건 그것들입니다.”
그는 잠시간 아무 말 없이 젠시를 노려보았다. 젠시는 낯선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어딘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무감각하다고 해야 할까 딱딱하다고 해야 할까. 둘 다 맞는 것 같았다.
“가져 갈 건가?”
대뜸 그는 그렇게 물었다. 젠시는 그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이놈이 귀가 먹었나. 고기 말이야.”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젠시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짖자 손가락으로 개 모양을 만들었다. 새끼는 눈, 엄지와 검지는 이빨. 입을 움직이자 짓는 모습이 그림자가 벽에 나타났다. 그제야 젠시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져갈 건가?”
“에 그러니까, 늑대 시체를 가져가신다고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 밖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낯이 익은데 혹시 언제 날 본 적 없나?”
“처음 봅니다.”
“그래?”
에페는 틈을 두고 말했다.
“어디서 왔지?”
“어디서 왔냐고요?”
“그래.”
“열차....... 저는 열차에서”
“열차? 유토피아호?”
“네. 거기서 괴물한테서 붙잡혀서 떨어진 후에....... 아니 아니, 당신 누구시랬죠?”
“누구라고 설명한 적 없어.”
“그럼 누구시죠?”
그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완전히 대화의 독재자였다. 혼자만 원하는 것을 빼먹는 악랄한 독재자.
“유토피아호에서 왔다고?”
젠시는 자기가 혹시 말을 잘못한 건 아닌지 재빨리 검토했다.
“좋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웃는 것이 어딘지 어색하고, 양 볼의 씰록거림이 불균형했다.
등불 빛이 위에서 내리 쐬었다. 그의 체형과 얼굴이 선명히 드러났다. 산덩이만한 돌 몇 개는 거뜬히 옮길 수 있을 정도로 건장해 보였다.
그는 손을 내밀어 젠시를 일으키고 총을 건네주었다. 젠시의 리볼버였다.
“조용히 따라와.”
사내는 자리를 떠났다. 젠시는 쉽사리 걸음을 떼기 힘들었다. 주춤거리고 망설였다.
문이 사라진 자리에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등불은 벌써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젠시는 샤비가 등불을 따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불안감에 마음 한편이 주춤거렸다. 정말로 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사내가 조용히 한 마디 꺼냈다.
“늑대를 죽였으니 피 냄새를 맡고 놈들이 더 몰려 올 거다. 여기서 죽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죽치고 앉아있던가.”
어느새 어둠 속에 홀로 남았다. 젠시는 눈만 멀뚱멀뚱 뜨다가 허겁지겁 자기 손전등을 켜고 절뚝거리며 사내를 따라갔다.
“저기, 이름이 뭐라고요?”
밤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고동치는 강풍, 쏟아지는 천둥 벼락. 거기다 지옥에나 내릴 끈적거리는 비까지 합세했다. 칼날 같은 바람이 온 몸에 파고 들었다. 젠시는 잔뜩 몸을 움츠리고 고인 물을 첨벙거리며 등불을 뒤따라갔다. 신발에 물이 스며들었다. 발이 꽁꽁 어는 듯 했다. 반면 등불을 든 사내는 추위를 느끼는 못하는 건지, 오랜 세월의 고단한 적응으로 견디는 건지, 꼿꼿이 몸을 펴고 다녔다.
젠시는 정녕 그를 따라가도 되는 것인지 확신치 못했다. 그가 자신을 돕는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도 의문이나 경계심을 품지 않았다. 어차피 먹을 것을 찾아 다시 떠돌아다녀야 하는 신세였고, 그의 말대로 거기에 있다가는 끔찍한 송장으로 직행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등불이 멈춰 섰다. 남자는 차 옆에 멈춰 선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젠시는 조수석에, 샤비는 뒤 넓직한 트렁크에 앉아 있었다. 뒷좌석에는 난장판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반쯤 채워진 연료통, 반자동 산탄총, 자라다 썩은 버섯이 붙어있는 나무판자, 아동용 스케치북, 고장 난 오르골 그리고 액자가 있었다. 앞에는 못을 박아 두고, 그 위에 방독면이 걸려 있었다. 이따금 차가 흔들릴 때면 거기에 같이 동조했다. 젠시는 고글 너머로 보이는 허공의 눈이 자기를 노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자의 이름이 에페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네 번째로 물어봤을 때였다. 에페는 이름조차도 어렵게 알려줄 정도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굳게 다문 입은 움직일 생각이 없으며, 손짓, 몸짓마저 단호했다.
차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차가 도로를 가운데를 막고 있는 게 문제였다. 그래선지 암만 전조등을 켜도 앞길이 속 시원히 보이지 않았다.
젠시는 언젠가 비에 젖어 불어터진 자동차 사용설명서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필라가 경영서적 장 사이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표지가 떨어져 나가고, 웬 복잡한 그림들이 한 페이지씩 전체를 이뤄 정체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젠시의 손에 들어오자 그것은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기종은 덤프트럭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젠시는 정면을 바라보다가 와이퍼가 움직일 때면 그쪽으로 시선이 빼앗겼다. 처음엔 그게 뭐하는 기능인지 알
그들은 측면에 아무렇게나 세워둔 차들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에페는 말이 없었다.
“저기......”
젠시가 먼저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도와주시는 건 감사합니다. 그런데 절대 불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조금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떻게 절 발견하신 건가요?”
그러자, 에페는 곁눈질했다.
“거기 있는 물건 좀 찾으러 갔었는데 네가 있더군.”
“계속 이런 곳에서 살고 계셨던 건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도시에 머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죠?”
“거의 다 죽었지”
“거의? 또 누가 있다는 건가요?”
“그래. 너”
젠시는 잠시 말을 잃었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찌뿌둥하게 발을 움직이다가 뭔가 거치적댔다. 젠시는 발아래를 보았다. 칙칙하고 무늬가 없는 금고가 있었다. 젠시는 몸을 숙여 손을 뻗었다. 8자리의 비밀번호로 단단히 잠겨있었다. 젠시가 금고에 손을 대자 에페는 그를 곁눈질했다.
“건들지 마”
“이게 뭔데요?”
“유품”
젠시는 그것을 내려놓고 다시 몸을 들어올렸다.
“누구 거예요?”
에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집불통의 의사소통 불통자다.
“다른 사람들을 본 적은 없어요?”
역시 대답이 없었다. 젠시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가 내렸다. 대답하지 싫으면 하지 말라지. 에페는 운전대를 왼쪽으로 꺾었다. 그런 후 무너진 건물 입구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곤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렇다 할 형체는 없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 뒷좌석에서 산탄총을 집었다.
에페는 탄창에 총알을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잘 들어. ‘다른 사람’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마. 알지도 못 하고, 알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리곤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바깥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울렸다. 깨진 유리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젠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샤비는 놀란 듯 짖고 있었다.
“지금 뭐.......?”
에페가 젠시의 멱살을 잡고 이마에 총을 가까이 갖다 댔다. 총구에는 아직 뜨거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열기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