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젠시는 상처 주위를 조심스레 매만졌다. 치료가 필요했다. 때마침 여기가 병원이겠다, 일단 치료제를 찾기로 결정했다. 그는 폐병원에 혼자 돌아다니려니 망설여졌지만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떻게든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젠시는 손전등 버튼을 눌렀다. 잠시 깜빡거리더니 앞을 비췄다. 처음보다 불빛이 약해진 듯했다. 병실에서 나와 복도를 비췄다. 길게 뻗은 양측 복도. 오른쪽 복도에 계단 난간이 보였다.
구두 때문인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폐병원은 몇 십 년을 방치한 듯, 먼지가 한겨울의 눈처럼 잔뜩 쌓여 있었다. 지나온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겨질 정도였다.
벽에 잔인하리만큼 넓게 혈흔이 묻어있었다. 응급실 입구 앞에는 수술도구, 수술대, 의자가 엎어져 있다. 손전등을 비춰보니 수술 도구들이 피로 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거기에 피 양동이를 쏟아 부은 것 같았다.
젠시는 역겨운 기분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입구에서 멈춰 섰다. 바닥에 떨어진 간판에는 수술 약품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유리문은 깨져 바닥에 파편이 남아있었다. 뾰족한 조각들이 손전등 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그 자리에서 안을 비췄다. 생각보다 조그만 방이었다. 대충 주택가 화장실 면적만큼 될까. 사무용 책상이 중앙에 차지하고 천장서랍에 약통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물론 바닥에 어질러져 있는 것이 훨씬 많긴 하다.
“샤비, 여기 있어. 약 좀 가져올게”
젠시가 말했다. 샤비는 어차피 유리파편 때문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가지 마”
방에 들어선 후 천장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약통 뒷면을 돌려가며 쓸 만한 것들을 분간했다. 뚜껑을 열어보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모두 쓸 수 없었다. 비었거나, 밀폐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보관상태가 너무 나빴다. 변색 있거나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섞여 있기도 했다.
바닥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완벽히 밀봉되어 있어 괜찮아 보였다. 다만, 거기에 시체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젠시는 순간 경련하듯 몸을 움찔했다. 꽉 문 어금니 사이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망할 심장 떨리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왔다.
시체는 거의 완벽하게 썩어가기 직전이었다. 롱코트 안의 살점은 남아 있지 않았고 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은 심하게 썩어서 알아 볼 수 없었다.
약통은 시체의 손 안에 꼭 쥐고 있었다. 소독으로 쓰이는 과산화수소다.
젠시는 입을 가렸다. 두려움이 목까지 역류하려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이마에 난 상처를 소독하려면 달리 방도가 없다. 약통을 집고 손에서 빼냈다. 약을 들고 있던 손바닥에 새끼 쥐며느리처럼 생긴 다족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약통에도 몇 마리 붙어 있었다.
“아 진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불쾌감이 가슴을 쥐여왔다.
벌레 한마디가 손가락에 기어오를 땐 하마터면 약통을 놓칠 뻔했다.
젠시는 재빨리 책상 위에 올려두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 리볼버로 약통에 묻어 있는 벌레들을 떼어냈다.
뚜껑을 열 때 조금 뻑뻑했다. 투명한 액체. 불순물은 섞여 있지 않았다. 좋은 징조였다. 젠시는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충분히 독하다. 아직 이곳의 공기는 한 번도 세상 구경을 해 본 적 없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다 이 시체가 여기서 약통을 든 채 사망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다른 사람이 가져가지 않고 거기 있어준 것이라고 젠시는 짐작했다. 누가 시체 손에 있는 벌레 묻은 약통을 가져가겠어, 응?
젠시는 고개를 위로 들고 이마에 과산화수소를 조금 쏟아냈다. 상처부위에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무릎에도 조금 쏟아냈다. 처음은 견딜 만 하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미칠 듯이 따가웠다.
젠시는 입고 있던 자켓을 살짝 내리고 안에 입고 있던 셔츠 한 팔을 길게 찢고 이마에 감쌌다. 비록 깨끗하진 않지만 붕대를 대신할 것은 이것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마쳤다고 생각했을 때, 한시름 놓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샤비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입구에 가만히 있으라 했건만, 쥐도 새도 모르게 가버렸다.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샤비”
젠시는 소독약을 뚜껑도 닫지 않은 채 책상에 올려두었다. 허겁지겁 벗어나려다 바닥에 튀어나온 전선에 걸려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그 충격 때문인지 손전등이 서서히 꺼졌다. 순식간에 암흑이 휩싸였다.
“안 돼 안 돼. 이러지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손전등 옆면을 손바닥으로 치자 깜빡거리며 다시 들어왔다. 젠시는 일어나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샤비의 먼지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젠시는 샤비를 다시 한 번 불렀다. 쓸쓸한 메아리만 들려왔다. 빠른 걸음으로 발자국을 따라갔다.
젠시는 사거리에 도달했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샤비의 발자국을 가로 짓는 또 다른 발자국이 보였다. 네 발이었으며 샤비의 것보다 조금 컸다. 그 정체불명의 발자국을 따라 빛을 비췄다. 끝을 알 수 없었다.
젠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손전등을 고쳐 잡고 허리춤에서 총을 꺼냈다. 총구를 앞으로 향해 모든 것에 경계했다. 최대한 걸음소리를 죽이며 샤비 발자국을 따라갔다.
도중에 계단을 지나갔다. 계단참 벽에는 3/4 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발자국은 어느 로비에 들어선 후 희미해지다가 금속판에서 끊겼다. 거기에는 먼지가 쌓여 있지 않았다. 앞을 비췄다. 거대한 기체가 입을 벌린 거대한 뱀처럼 부셔져 있었다. 이 기체는 건물 옆에 충돌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체 양쪽에 긴 날개가 보였다.
순간 젠시는 눈이 번뜩였다. 이 기체는 비행기임이 틀림없었다. 다만 앞머리가 조종석 직전 부분까지 부셔져 있을 뿐이었다. 크기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전용기 정도였다. 옆면에 R 마크가 박혀있었다.
내부에 얼굴을 내밀고 샤비를 조용히 불렀다. 이번에도 역시 대답이 없었다. 다만 금속 긁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안에 발을 집어넣었다. 기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조종석을 지났다. 차단문은 뜯겨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긁는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일순, 금속을 긁는 게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럴 리는 없겠지. 발자국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스튜어디스 대기 칸의 커튼을 걷었다.
샤비가 거기 있었다. 그는 통조림을 앞발로 뜯어내려 했다. 총을 다시 집어넣으며 다가갔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돌아가자. 이따가 줄 테니까 여기서 나가자고”
통조림을 빼내 손에 들었다. 파인애플 사진이 라벨에 붙어 있었다. 밀봉되어 있었다. 샤비가 앞발을 들며 들려 달라며 재촉했다. 탁상 위에도 통조림 몇 개가 남아 있었다.
비상용 빨간 박스가 벽에 걸려있었다. 박스엔 도끼가 위태하게 달려있었다. 끝머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녹슬지 않았다. 젠시는 잠시간 그것을 보았다.
손잡이를 살짝 쥐고 날에 손가락을 댔다. 매끄러운 동시에 차가웠다. 뒷면에 무언가 쓰여 있었다. CRASH AXE (탈출용 도끼).
바닥이 흔들렸다. 이번은 단순한 진동정도가 아니었다. 아래에 무게가 쫄려 기울어졌다. 점점 조종석 칸 쪽이 올라갔다.
“이런, 여기서 나가자.”
그들이 기체에서 빠져나가자 비행기는 아래로 떨어져 폭발했다. 엔진 연료가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
젠시는 병원에서 나왔다. 해가 사라진 자리에는 잿불 같은 잔영만 남아 있었다. 검푸르다. 아직은 미숙한 자그마한 별빛들이 수줍게 손짓했다.
젠시는 절뚝거리며 잿빛 거리를 걸었다. 샤비는 바닥에 코를 박고 땅에서 올라오는 검은 내음을 맡았다.
이상하게 시체는 없었다. 이제까지 봤던 시체는 병원에서 봤던 롱코트의 사내, 단 한 구뿐이었다. 군데군데 부서진 기계들이 보였다. 부품들이 해체 되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한 때 가정용 안드로이드랍시고 보급되었던 기계. 그들은 생명을 가져 본 적도 없지만 더욱 비참한 것은 그 없던 생명마저 앗아갔다는 사실이다.
시체는 어디로 갔을까. 생존자들은? 젠시는 손전등은 끄고 벨트에 끼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문득, 이게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살아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었다. 꿈이 아닐까.
수많은 네온사인들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탓인지 어느 한 주상복합건물의 네온사인에 글자들이 제멋대로 보였다. 가느다란 글자들이 방울뱀처럼 기어 다니다가 간단한 문장을 완성했다.
‘너는 길을 잃었다’
젠시는 눈을 비비고 다시 떴다. 구원의 메시지가 보였다.
‘슈퍼마켓‘
젠시는 거기로 들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