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괴물과 불의 도시
한적한 숲 속.
새소리도, 바람에 풀잎이 나부끼는 소리도, 그 지랄 맞던 한여름의 매미소리도 없었다. 오직 고통을 호소하는 듯한 구토만이 공기를 때렸다.
젠시 자신이 헛구역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해가 거의 저물 때였다. 잿빛 하늘은 사라지고 검붉은 노을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 돼.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숨을 거칠게 쉬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안돼안돼안돼안돼
지이이인정해지이이이인저어어엉하라고.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불쾌감이 찾아왔다. 팔꿈치와 무릎에 까진 상처가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뒷덜미와 상처부분에 쓸쓸한 바람이 불어와 때렸다. 옷 꼴이 말이 아니었다. 찢어지고 얼룩지고. 남루했다. 어디서 한바탕 술주정에 부리다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고 온 듯한, 혹은 방랑의 끝을 선언하는 조난자 같은 차림새였다.
허우적대며 팔을 움직이니 뼈마디끼리 두둑, 하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건가,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무의미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어스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이대로 6개월 간 계속되는 밤이 온다면 틀림없이 저세상으로 갈 게 뻔했다. 괴물에게 몸을 찢겨 죽는 상상이 제멋대로 찾아왔다. 추위에 얼어 죽는 최후가 머리를 두드렸다.
젠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괴물이 나타난 거지? 신(新)지구에 적응해 만들어진 피조물. 갖가지 생화학 무기와 방사능에 의해 변이된 그들은 으레 완전히 햇빛을 거둔 어두운 밤 시기에만 돌아다는 야행성으로 알려져 있다. 낮에도 있긴 하지만 작은 딱정벌레나 뱀 따위였다. 저런 거대한 괴물이 아니라! 그러니 열차가 돌아다니는 저녁에 나타난 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젠시는 곧 잔인한 사실을 직시했다. 열차는 철로만 남긴 채 무심히 사라졌다는 것. 아무도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건 낙오다. 총 한 자루와 손전등 하나 던져주고 무엇이 도사릴지 모르는 정글 속에 버려진 신세. 총알이라도 많으면 좋으련만 단 다섯 발 뿐이었다.
젠시는 다리를 펴고 일어나려고 하다가 발에 격통이 자극했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다시 주저앉고 신발을 벗어 다리를 살펴보았다.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찔러보니 미약한 자극이 느껴졌다. 아직은 발이 살아있기는 했다. 단순히 삔 모양이었다.
그는 근처 있던 나무줄기를 붙잡고 일어섰다. 기우뚱, 발 한쪽에 힘이 쏠렸다. 입술을 젖히니 피비린내가 났다. 인상을 쓰며 그 맛을 뱉어내려 했다. 조심히 얼굴에 손을 댔다. 마른 피가 묻어 나왔다.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귀를 종긋 세웠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시선을 고정한 곳은 해안 반대편 아래쪽이었다.
“샤비?”
절뚝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가 자꾸 무너지려 했다.
몇 걸음도 채 떼지 못했을 때, 갑자기 서늘한 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뱃고동 같이 묵직한 울음소리. 등골이 오싹해지고 역한 전율이 고동쳤다. 눈동자가 경직되었다. 괴물의 울음소리다.
젠시는 재빨리 허리춤의 총집에서 리볼버를 꺼내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총구는 유령 같은 괴물을 찾아 이리저리 서성였다.
“배운대로...... 배운대로......”
공이치기를 당기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사격 방법을 되뇌었다. 한 번도 실전에서 쓴 적 없는 총을 붙들고 있자니 어느새 이마와 손바닥에 땀이 젖어있었다.
귓가에 여음이 맴돌았다.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곧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심장이 두려움을 벌컥 마셨다.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숲은 적막에 감춰져 있었다. 그 적막감에 귀가 먹먹했다. 젠시는 그렇게 몇 초간은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렇게 있었다. 얼어붙은 듯이.
그러다가 총을 내리고 냅다 달음박질쳤다. 샤비가 있을 것 같은 곳으로 향했다. 무릎을 움직일 때마다 상처에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따가운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긴박감에 혈관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가슴에 못을 박는 순간이었다.
샤비는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애꿎은 땅바닥을 파고 있었다.
“샤비!”
젠시가 소리쳐 불렀다.
“빨리 여기서 나가. 숲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듣지 않았다. 땅바닥에 판 구멍에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말귀가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가 싶다가, 땅에 묻힌 통조림을 보았다.
“지금은 그걸 붙잡고 있을 때가 아니야!”
목덜미를 끌고 가려 해도 팔이 따라주질 않았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데다 비축된 에너지를 전부 소멸해 버린 것 같았다.
어쩌다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 샌가 다가와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르게. 표적을 향해 전력질주로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냥개의 면모가 비춰졌다. 젠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제대로 조준도 못 한 채 총알 한 발을 낭비하고 말았다. 갑작스런 폭음에 샤비가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달리기 시작했다. 젠시는 총을 꽉 쥐고 무릎 한쪽을 지탱하며 억지로 몸을 이끌고 도망갔다.
이제는 등골이 오싹한 게 아니라 힘이 빠져서 아예 기절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토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그게 내장이라도 전부 토해버릴 것 같았다.
정신없이 뛰다보니 주위는 회색의 기색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무가 듬성듬성해지고 부스럭거리는 갈색 이끼가 주를 이뤘다. 어렴풋이 콘크리트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페인트가 거의 벗겨진 간판이 보였다. 젠시는 거기로 숨기로 결정 했다.
숲에서 벗어났다. 또 다른 문제에 닥쳤다. 건물로 들어가는 길은 낭떠러지로 끊어져 있었다. 샤비도 그 앞에선 감히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대략으로 표현하자면 아무런 장비도 없을 때 떨어진다면 충분히 낙사할 수 있을 정도. 조약돌 하나가 떨어지는데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으니 말 다했다. 밑에는 유사, 시냇물이 가늘게 흐르고 있었다.
바로 앞에 창가가 젠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발꿈치에 닿는 허공이 죽음을 속삭였다.
샤비는 제자리에서 숲 안을 향해 정신없이 짖고 있었다. 앞뒤로 완전히 지옥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젠시는 일초 일초가 간절해서 시계바늘의 째깍거림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받았다. 이성을 한껏 모으려다가 포기했다. 죽음이 점점 다가오는 이 상황에서 이성이란 끼어들 수 없었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겁에 질린 채 눈을 감고 주마등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틀렸다. 다 끝났다. 벌써부터, 영화로 치면 시작하자마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 놀랍도록 한심하게 막이 내리는 것이다.
그때, 샤비가 낭떠러지 허공으로 뛰었다. 젠시는 놀란 눈을 했다. 몸을 털썩 엎드려 샤비의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샤비는 건너편 건물의 아래층 베란다, 창문이 없는 창가에 착지했다.
젠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동요가 일었다. 괴물의 쿵쿵거리는 소리가 심장을 조였다. 또다시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젠시는 일어나서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그리곤 절벽 그 너머를 향해 포기한 듯이 무작정 뛰었다. 부상 때문에 제대로 뛸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엉거주춤하며 절벽에서 발을 뗀 그때,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진 듯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잘한 무엇도. 생각은 필요 없었다. 사념을 시작한 시초의 만인이 그랬듯이.
중력에 몸을 내맡기는 순간만큼 후회감이 밀려오는 순간은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눈을 감았다. 또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뒷덜미가 서늘한 느낌이 잔뜩 서렸다. 누군가 뒤에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설마, 하는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괴물의 앞 다리가 뒤 중추에 닿았다. 하지만 다행히 스쳐지나갈 뿐,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몸은 아슬아슬하게 베란다 안으로 들어갔다. 몸부터 착지한 후 더러운 먼지 속에서 굴렀다.
손전등은 벨트에서 빠져나갔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불이 들어왔다. 젠시는 바닥에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
의식이 멈췄다.
.
“아빠?”
젠시는 아버지를 높이 올려다보며 손을 꼭 붙잡았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입고 머리는 손질하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시점이 명확치 않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왜 그래요? 어디 아픈 거예요?”
지금은 사라진 유토피아호의 화물칸이었다. 젠시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바깥을 보고 있었다. 젠시는 아버지를 따라 바깥에 시선을 던졌다. 멀리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여기만큼 침착해 보이지 않았다. 혼돈스러웠고, 앞줄에는 인파에 밀려 넘어져 깔린 사람도 있었다. 어딘가에서 자꾸만 천둥 같은 폭음이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젠시는 아버지의 손을 더욱 꼭 붙잡았다.
“아빠?”
젠시는 살짝 겁먹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제야 아버지는 젠시를 바라보았다.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시선을 맞추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은 거예요?”
젠시가 물었다.
“그래. 그렇고말고.”
“아빠”
“응”
“무서워요. 내 곁에 있어줄 거죠?”
아버지는 대답대신 이마에 키스했다.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아니?”
“뭔데요?”
.
빛이 있으라.
눈에 빛이 들어왔다.
젠시는 간질 환자마냥 쿨럭 거리며 꿈에서 깼다. 눈이 부셔서 앞을 가렸다. 넘어지면서 떨어졌던 손전등이 눈앞을 비추고 있었다. 샤비는 옆에서 엎드려 있었다. 언제쯤 일어나려나, 기다리던 모양이었다.
“씨발”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이런 씨......”
힘겹게 손을 뻗어서 손전등을 가져와 버튼을 눌러 끄고 벨트에 찼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미약한 빛만이 방을 비추었다. 젠시는 숨을 크게 토했다. 아직 해는 시들지 않았다. 하지만 죽어가던 어스름마저 꺼지고 있어 시간이 촉박했다.
왼쪽 눈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그 부근에 더듬거리다가 관자놀이에 난 상처에 손을 댔다. 따끔거렸다.
“여기 어디야?”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방 한구석에 완전히 낡아 해진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의료용 침대였다. 일부가 해체되어 있었다.
배에서 꼬르륵, 공복을 알렸다. 배고픔이 한껏 밀려왔다. 목도 마르다. 침을 삼켰지만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공허했다.
샤비가 다가와 젠시의 품에 안겨 턱을 핥았다.
“그래. 그래, 나 살아있어.”
방 한 구석에 수면대와 변기가 보였다. 젠시는 일어나서 수면대에 다가갔다. 녹슨 수도꼭지를 돌렸다. 상당히 뻑뻑했다. 물 한 붕 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좌우로 비틀었다. 무언가 나올 때까지. 한 방울이라도.
“제발......”
그러나 손잡이는 힘없이 부스러지는 소리를 내더니 부러졌다. 일절 손 볼 수도 없게 되었다.
젠시는 부러진 손잡이를 세게 내동댕이쳤다. 거울이 깨졌다. 깨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