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을 우연히 만나 겪는 회상
신호등 3
아주 오래 전 그날..
햇살은 유난히 빛났고
따사로왔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뛰노는
그녀는.. 긴 청 치마에 흰 운동화 그리고
긴 생머리를 동여 메고 있었다
가뿐숨을 가누며 내게 다가온 그녀는
벤치에 앉아있던 나를 끌어당기더니
좀 걷자고 했다
함께 거닐던 그녀가..
'안덥니? 옷깃은 왜 세웠어?'
사실 멋좀 내려고
아부지 바바리코트를 몰래 입고 나왔었다
가을이라 잔뜩 폼을 잡으려 했지만
코트 속 와이셔츠 와 속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모른척, 웃음도 참아가며
나의 옷깃을 매만져주었다
그리곤 저만치 떨어져서는..
'너 구두도..아빠 꺼지?'
하더니 까르르 소리내어 웃으며
푸른초장을 내달린다
그 청아한 웃음소리는
메아리가 된지 오래다.
그때의 그 웃음소리가 새삼 귓전을 맴돈다
지금...그녀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까르르 소리내어 웃고있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사뭇 달라진 그녀의 웃음소리를
이젠 관여 할 수 없다
마치 방관하듯 바라만 봐야 하는
처지일 뿐이다.
.
더 이상의 의미가 되어서는 안되기에..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