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오직 너만을 위한 로맨스
작가 : 이브닝로즈
작품등록일 : 2020.9.17

“좋아해. 처음 본 순간부터. 단 하루도 변함없이.”
우월한 외모와 재력, 세상 두려운 것도 거칠 것도 없는 마성의 매력을 가졌지만 오직 그녀, 지아에게만 완전 무장해제에 장난꾸러기같은 남자 이신우. 고등학교 졸업식날 역대급 핵폭탄을 날리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날 이후 남자들에게 마음을 닫고 바쁘게 살던 어느 날. 그가 그녀 앞에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또다시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너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일편단심 직진남의 오직 그녀만을 사로잡기 위한 치밀하면서도 가슴 설레이는 로맨스가 다시 시작된다.

 
오직 너만을 위한 로맨스 -5-
작성일 : 20-09-22 01:15     조회 : 180     추천 : 0     분량 : 856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녀의 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승차감은 아주 좋았다. 4년간 탔던 이 중고차를 능숙하게 운전하는 신우를 보고 있으려니 그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았다.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많이 변했고,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예전 모습이 남아있었다.

 

 

 여유롭고 장난스러운 표정과 사람의 시선을 끄는 묘한 분위기는 그대로였지만, 소년 같았던 그는 어느새 성인 남자가 되어있었다.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에서 코끝을 스치는 시원한 스킨 냄새가 났고, 하얗고 뽀얀 피부는 햇빛을 받았는지 살짝 그을려 있었다. 전체적인 몸의 선이 더 굵어졌고, 어깨도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넓어졌다.

 

 

 한쪽 귀에만 한 작고 검은색 큐빅이 박힌 피어싱은 과하지 않아 그의 매력을 돋보여주는 것 같았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도 길고 예쁜 건 여전했지만 예전보다 조금은 거칠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난스럽고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벽을 쌓은 것 같던 표정과 분위기에서 여유가 생겼다. 신우는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춘 순간, 거울로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계속 쳐다봐? 오랜만에 보니까 새삼 내가 정말 잘생겼구나 싶어?”

 

 “…아, 아니거든? 저기에 아는 사람 지나가는 것 같아서 본 거야.”

 

 “아아~ 그렇구나. 난 또 네가 계속 나만 보길래 그런 줄 알았지. 네가 아는 사람 맞아?”

 

 “아니. 내가 잘못봤나 봐.”

 

 

 그렇게 너무 정직한 반응이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알 것 같았다.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돌리는 지아를 보자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그냥 대놓고 봐도 되는데.’

 

 

 하지만 이 말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되어 속으로 삼켰다.

 

 

 “그래. 알았어. 아! 맞다. 내 핸드폰!”

 

 “응? 없어?”

 

 “응. 마트에 두고 왔나봐. 큰일이네. 중요한 거 거기에 다 있는데.”

 

 “얼른 전화해봐.”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핸드폰을 찾는 그를 보며, 지아 역시 마음이 다급해져 자신의 핸드폰을 건냈다. 신우가 전화를 걸자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벨소리. 그는 태연하게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 여기 있었네?”

 

 “뭐야? 두고 왔다며?”

 

 

 신우가 웃는 얼굴로 지아의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난 진짜 놓고 온 줄 알았지. 찾아서 다행이다. 잘 썼어.”

 

 

 ‘저 능구렁이!’

 

 

 다소 고의성이 다분한 그의 행동에 지아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돌려받았다. 휴대폰에 찍힌 번호를 잠시 바라보자 신우가 태연하게 말한다.

 

 

 “내 번호야. 한국에 와서 처음 알려주는 거니까 저장해놔.”

 

 “...”

 

 “언제든지 전화해. 네 전화는 무조건 받을게.”

 

 “...나 잘래. 도착하면 깨워.”

 

 

 ‘너는 내 전화 안 받았잖아.’

 

 

 내가 얼마나 많이 전화했는데. 잊고 있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예전 기억에 그가 원망스러워진 지아는 대답을 피하며 조수석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도 번호는 안 바뀌었네.’

 

 

 ***

 

 

 처음엔 이 좁은 차 안에 단 둘이 있는 게 너무 어색해서 눈 감고 자는 척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운전 솜씨가 너무 좋아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려는 찰나 신우가 입을 열었다.

 

 

 “나 미국 가서 어떻게 지냈냐 하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랬어.”

 

 “뭐?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네가?”

 

 

 안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자존심 상해서 꾹 참고 있었는데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다가 그의 말 중에 한 단어 때문에 잠이 확 깼다.

 

 신우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 태운 그룹 회장님의 유일한 친손자였다. 지호가 일하는 병원도, 지석이 일하는 태운 건설도 다 태운 그룹의 수많은 계열사 중 하나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가지고 싶었던 건 다 가졌었는데. 하지만 그 뒷말은 더 가관이었다.

 

 

 “응. 학비랑 생활비 벌려고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지. 그래도 학비는 장학금 받았는데 생활비 때문에 좀 고생했어. 대학 졸업한 다음엔 태운 그룹 미국 지사에서 일하면서 경영 수업도 받았고. 음… 그러다가 기회가 되서 작은 회사 인수해서 경영도 하면서 그렇게 지냈어.”

 

 “…흥. 누가 궁금하댔나.”

 

 

 태운 그룹 손자가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늘 그랬던 것처럼 유학 가서 부족한 것 없이 지냈을 줄 알았는데. 생각 같아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난 궁금해. 넌 어떻게 지냈어?”

 

 “…나는 대학교 졸업하고 잠깐 요리 강사 했다가 여행 갔다 왔어. 그리고 지금은 대학교 선배랑 작은 회사 운영하고 있고.”

 

 “대학교 선배? 회사?”

 

 “응. 한의사인데 대학교 때 요리 동아리에서 알게 됐어. 개인 체질에 맞는 식단을 맞춤 컨설팅해주는 거라 세훈 선배한테 도움 많이 받고 있어.”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평화롭던 신우의 미간이 잠시 좁혀졌다가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세훈 선배면… 남자?”

 

 “응. 여행 갔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먼저 연락 왔어. 1년 동안 엄청 고생했는데, 요즘 들어 겨우 안정됐고.”

 

 “선배가 남자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신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했어?”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상하다. 분명히 뭔가 엄청 짜증난 목소리로 혼잣말한 것 같았는데. 잘못 들었나?’

 

 

 신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예전에 요리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 꿈 이뤘네.”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었어?”

 

 “응. 네가 만든 요리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그랬었잖아.”

 

 “그랬나?”

 

 “기억 못 하면 할 수 없고. 나도 항상 그리웠어. 네 요리. 아! 여기 맞지?”

 

 

 기억을 떠올리려고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에게 물어보려는 순간 신우의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창이 많아 채광이 잘 드는 2층집과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 그리고 넓은 잔디밭이 있는 곳. 아버지가 직접 설계하고 지으셨던 지아의 본가였다.

 

 

 “응. 알고 있었네.”

 

 

 지아가 먼저 차에서 내렸고 신우는 그녀를 조용히 따라 내렸다.

 

 “혼자서는 무리일텐데.”

 

 

 역시나 그녀는 트렁크에서 혼자 낑낑대며 짐을 내리고 있었다. 신우는 지아를 살짝 밀어내고 번쩍 짐을 내려줬다.

 

 

 "어디로 들고 가면 돼?"

 

 "괜찮아. 지호 부르면 돼.”

 

 "그래. 알았어.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 동생들이랑 점심 맛있게 먹어.”

 

 

 신우의 손이 지아의 부드럽고 긴 갈색 머리를 살짝 헝클어트렸다.

 

 

 '거의 사먹거나 간단히 때웠지. 바빠서 해먹을 일이 없었어.’

 

 

 '나도 항상 그리웠어. 네 요리.’

 

 

 신우의 말이 떠올라서일까? 뒤돌아선 그를 부른 건.

 

 

 “밥 먹고 갈래?”

 

 

 ***

 

 

 “들어와. 동생들만 산 지 오래 되서 지저분하겠지만.”

 

 

 지아의 말과는 달리 집안은 깔끔했다. 아침에 전쟁을 치룬 건지 여기저기 수건이나 잠옷이 굴러다니기는 했지만.

 

 

 “괜찮아. 이거 어디에 둘까?”

 

 “부엌에다가 놔줄래?”

 

 “그래.”

 

 

 지아는 자신이 힘겹게 겨우 드는 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번쩍 드는 신우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남자긴 남잔가 보다.’

 

 

 키가 크고 적당히 마른 편이라 몰랐는데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얼핏 보였던 단단한 팔근육이 떠올라 괜히 민망해졌다.

 

 

 “너 우리 집 처음 와봤지?”

 

 “아니. 나 와본 적 있는데.”

 

 “응? 언제?”

 

 “비, 우산, 벌레.”

 

 “응?”

 

 “뭘까?”

 

 

 저 사람 화나게 하는 말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냥 좀 속 시원히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아냐고. 신우는 십 년 전에도 잘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저렇게 한 번씩 사람 속을 뒤집어놓을 만큼 장난스럽게 말했다.

 

 

 지아의 혼란스러움을 뒤로한 채 신우는 장난스럽게 혼자 씩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식탁 위에 올려두고 지아에게 말했다.

 

 

 “집 예쁘다. 구경해도 돼?”

 

 “응. 근데 짐이 많이 빠져서 별로 볼 건 없을 텐데.”

 

 “괜찮아.”

 

 

 신우는 집안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우드톤에 채광이 좋고 식물이 유난히도 많아 따뜻한 분위기였다. 그런 집안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는 건 벽이나 집안 곳곳에 많이 걸려있는 가족사진 때문일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온 가족이 모여 찍은 큰 사진부터 막내 쌍둥이 동생들의 돌 사진, 가족 여행 사진까지. 가족들의 추억을 한 번에 보는 듯 했다.

 

 

 그러다가 문이 조금 열려있는 방으로 흘리듯 다가갔다. 지아에게서 나던 달콤한 복숭아향이 희미하게 코끝을 스쳤다. 지아가 쓰던 방인 듯 짐이 많이 빠졌지만 그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방은 아기 때부터 대학교 졸업 때까지 많은 사진이 있어 신우도 몰랐던 그녀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 띈 한 사진. 커다란 호수를 배경으로 얼굴이 까만 아이들 여러 명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화장을 하거나 꾸미지 않았는데도 신우의 눈에는 그녀가 너무 예뻐 보였다. 지아가 방안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여기서 뭐해?”

 

 “아! 마음대로 들어와서 미안. 사진들 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괜찮아. 손님들도 우리집 놀러오면 사진 구경 많이 하더라고. 무슨 사진 봤어?”

 

 “이거.”

 

 

 신우가 손으로 가리킨 사진을 보자 지아는 저절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 이거? 여행 다닐 때 아프리카에 머무른 적 있었거든. 우연히 거기에서 만난 한국인이 찍어줬어.”

 

 “잘 찍었네.”

 

 “그치? 나도 마음에 들어. 여기 사람들이 친절하고 참 좋아서 꽤 오래 있었어.”

 

 “얼마나?”

 

 “1년 정도?”

 

 “힘들었겠다.”

 

 “아니야. 너무 좋았어. 다시 가고 싶을 만큼. 한국에 들어온 다음에도 구호단체 통해서 편지랑 후원도 하고 있어.”

 

 “그렇게 좋았다니 나도 궁금하네. 근데 왜 불렀어?”

 

 “아~ 혹시 너 먹고 싶은 거 있는지 물어보려고.”

 

 “난 네가 해준 거면 다 좋아.”

 

 “후아암~ 응? 누나 언제 왔어?”

 

 

 그때 지아의 방 안으로 누군가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며 들어왔다. 잠이 아직 덜 깬 듯 멍한 표정의 지호였다. 그러다가 지아 옆의 사람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가 눈이 커지며 소리쳤다.

 

 

 “헉! 신우 형! 진짜 형 맞아요?”

 

 “오랜만이다. 우지호!”

 

 “형이 어떻게 우리 집에 있어요?”

 

 “밥 먹으러. 잘 지냈어?”

 

 “전 잘 지냈죠. 누나랑 만났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인 만큼 반가움도 컸는지 서로 안부를 물어보았다.

 

 

 “잘 됐다. 나 점심 준비할 동안 둘이 얘기하고 있어. 아! 그러고 보니 손님 왔는데 음료도 안 줬네. 뭐 좀 마실래?”

 

 “아냐. 괜찮아. 내가 도와줄 건 없어?”

 

 “손님인데 뭐. 지호랑 얘기하고 있어.”

 

 

 그리고 지아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신우와 밥을 같이 먹게 된 것은 예상외의 일이었지만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동생들의 입맛은 이미 알고 있었고, 신우에게도 몇 번 해준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한두 방울씩 비가 떨어지다가 이내 굵은 장대비로 변했다. 곧 막내들 올 시간인데. 지아는 하던 요리를 멈추고 지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지호야. 비 온다. 꼬맹이들 어디까지 왔는지 전화 좀 해봐. 우산 있는지도 물어보고.”

 

 “어? 진짜 비 많이 오네. 형. 잠깐만요. 어~ 형이야. 어디쯤이야? 우산 있어?”

 

 

 다시 요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쌍둥이들과 통화하러 갔던 지호가 말했다.

 

 

 “누나. 꼬맹이들 이 근처고 친구 우산 쓰고 오고 있는데 친구가 집까지 못 데려다준다고 했대. 가서 데려올게.”

 

 “전화해보길 잘했다. 알았어. 얼른 데려와.”

 

 

 조카 바보에 동생 바보이기까지 한 지호는 큰 우산 두 개를 들고 밖으로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왜 예전 기억이 떠오르는 걸까?

 

 

 ***

 

 15년 전.

 

 

 때는 중학교 3학년 초여름이었다. 지아는 그날 아침도 전쟁을 치르고 학교에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벽부터 내린 비 때문에 새 우산을 오빠가 가져갔고, 고장나기 직전인 우산만 남아 있었다.

 

 

 저번 주 비오는 날이었다. 신우가 지아 뒤로 뒤에서 몰래 다가와 무릎 접히는 부분을 툭 건드려 고여있던 물웅덩이로 넘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그때 썼던 이 우산도 같이 망가졌고, 교복까지 젖어 하루종일 체육복을 입고 있어야 했던 최악의 날이었다.

 

 

 그래서 더 경계 태세를 늦출 수 없었다. 운동장까지는 무사했으니 교실에서는 뭔가 있을 거야.

 

 

 하지만 의외로 교실에서도 잠잠했다. 아무도 안 왔는지 바닥에는 물 한 방울조차 떨어져 있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지만 안심한 게 화근이었다. 자리에 앉아 책상 서랍 안으로 손을 넣은 순간.

 

 

 뭉클-

 

 

 무언가가 작고 말랑한 게 만져졌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간질간질한 느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으아아아-’

 

 

 지아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빼려다가 책상이 바닥에 넘어졌다.

 

 

 쿵-

 

 

 책상 서랍 안에 있던 이름 모를 벌레들이 전부 튀어나와 바닥에 쏟아지거나 교복 상의에 붙었다. 서랍에 넣었던 팔엔 다리가 수없이 많은 송충이 여러 마리가 기어오는 중이었다. 옷에 붙은 저 벌레만으로도 미치겠는데 송충이라니. 첩첩산중이었다. 차마 손으로 만지지는 못해 열심히 팔을 흔들어 털어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옷에 있는 벌레가 목 근처까지 기어올라 소름이 돋는 순간, 놀란 듯한 신우의 얼굴을 봤던 것 같았다.

 

 

 '이신우.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지아는 그 생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세찬 빗소리에 지아가 눈을 뜬 건 텅빈 양호실 침대 위였다. 나름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기절이라니. 정말 충격이었다. 아까의 일이 떠오르자 또 소름이 돋았다.

 

 

 도리도리-

 

 

 ‘안돼. 그만 생각해.’

 

 

 애써 생각을 돌리며 벽시계를 확인했다. 7시. 오래도 기절해있었네. 하아- 오늘 수학 선생님이 시험 범위 정리 다시 해주신다고 했는데 큰일이다. 지아는 일단 집에 가기 위해 양호실을 나섰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도착한 교실에는 아무도 없이 문만 열려있었다. 책상이 넘어지며 쏟아졌던 지아의 책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벌레들도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책상 위에는 친구들이 먼저 간다는 쪽지와 주인을 모르는 새 노트 한 권이 있었다.

 

 

 못 보던 건데 이름이 없어 열어보자 어른스럽고 깔끔하면서 보기 편하게 정리된 수학 요점정리가 있었다. 시험 범위에 포함된 내용 같았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글씨체였지만 일단 챙겨서 학교를 나섰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고 바람까지 차가웠다. 이 상태로 고장난 우산을 썼다가는 집까지 가기도 전에 다 젖을 게 뻔했다.

 

 

 ‘어떻게 하지? 더 기다려야 되나?’

 

 

 오빠들이 집에서 뒹굴고 있겠지만 우산을 갖다 줄 리 없었다. '망가진 우산도 우산'이라는 생각에 겁 없이 빗속을 뚫고 나섰다가 후회하는 건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세찬 비바람에 젖어가고 있을 때, 교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지아에게 다가와 우산을 씌워준다.

 

 

 “여기서 뭐해?”

 

 

 이신우였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그 생각이 나 버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낼 수 없었다. 잘생긴 얼굴 가득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잠깐 우산 좀 들어줄래?”

 

 

 뭘 하려는 건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은 그의 말에 따랐다. 그러자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 뭔가를 꺼내서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엄청 따뜻하고 푹신해 보이는 담요였다.

 

 

 “이제 곧 따뜻해질 거야.”

 

 

 다시 우산을 받아든 신우는 지아 쪽으로 우산을 잔뜩 기울였고, 이내 그의 몸은 젖어가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너 비 다 맞잖아.”

 

 “…다친 데는 없냐?”

 

 “단순히 기절한거야. 그나저나 너 뭐 하는 거냐고. 빨리 우산 써.”

 

 “집에 가자. 데려다 줄게.”

 

 “너도 우산 쓰라니까. 감기 걸려.”

 

 “이미 다 젖었어. 괜찮아.”

 

 “빨리 쓰라고.”

 

 

 결국 승자는 지아였다. 두 사람은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며 말없이 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산은 조금씩 지아 쪽으로 기울었고, 신우의 한쪽 어깨는 서서히 비에 젖어갔다.

 

 

 거의 지아의 집 앞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들어가라. 감기 걸리겠다.”

 

 “응. 근데 너 왜 이렇게 많이 젖었어? 나는 하나도 안 젖었는데. 설마 너?”

 

 “한 사람이라도 덜 맞는 게 낫잖아.”

 

 “야! 이 바보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어쩌지? 너 이대로 가면 분명 감기 걸릴 텐데.”

 

 

 지아가 안절부절하자 신우가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나 걱정해 주는 거야?”

 

 “걱정은 무슨. 너 그냥 갔다가 감기 걸리면 그땐 무슨 원망 하려고?”

 

 “감기 걸려도 원망 안 하니까 걱정마.”

 

 “네가 무슨 철인인 줄 알아? 그럼…”

 

 

 잠시 머뭇거리던 지아가 말했다.

 

 

 “들어와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갈래? 오해하지마. 오빠들 있으니까. 지완이 옷 빌려줄게.”

 

 “…걔가 나한테 옷을 빌려준다고 할까?”

 

 “아니면 오빠 옷 빌리면 되지.”

 

 “됐어. 이 정도로 감기 안 걸려. 우지아. 오늘 미안했어. 다시는 그런 거 안 할게. 간다.”

 

 

 지아에게 하나뿐인 우산을 건네고 돌아서는 신우를 다급히 붙잡았다.

 

 

 “너 우산은 어쩌고? 나 집까지 금방 들어가니까 이거 가지고 가.”

 

 “괜찮아. 너 앞으로 이 우산 쓰고 다녀. 그런 고장 난 우산 쓰고 다니지 말고.”

 

 “…너 때문에 망가진 거잖아.”

 

 “쓰기 싫으면 그냥 버려도 되고.”

 

 “알았어. 가져갈게. 그럼 너 가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 가면 안 돼.”

 

 

 지아는 집으로 다급히 들어가 우산을 가지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잠깐 사이였는데도 신우는 어느새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신우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일주일이나 학교를 결석했다.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는 지아에게 더이상 유치한 장난을 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너무나도 낯선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예전보다 더 깊어진 눈으로 말없이 그녀를 더 자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괜히 기분이 이상해진 그녀가 먼저 눈을 피했을 뿐이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5 오직 너만을 위한 로맨스 -5- 2020 / 9 / 22 181 0 8563   
4 오직 너만을 위한 로맨스 -4- 2020 / 9 / 20 190 0 5250   
3 오직 너만을 위한 로맨스 -3- 2020 / 9 / 20 193 0 5196   
2 오직 너만을 위한 로맨스 -2- 2020 / 9 / 17 187 0 5115   
1 오직 너만을 위한 로맨스 -1- 2020 / 9 / 17 332 0 690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