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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차이기만 하는 여자
작가 : 허주영
작품등록일 : 2019.11.8

중학교 때 시작한 풋사랑을 시작으로 사랑을 하는 족족 차이기만 하는 여자 강지영.
그런 지영을 25년간 바라보기만 하다 결국은 파혼까지 당한 지영에게 사랑을 고백해버리는 서민준.
아놔, 지나간 모든 사랑의 디테일한 깊은 부분까지 구석구석 알고 있는 남사친과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니 연애라도 할 수 있을까?

 
#20. 최선을 다해도 실패하는 사랑
작성일 : 19-11-09 13:45     글쓴이 : 허주영     조회 : 646     추천 : 0     분량 : 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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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최선을 다해도 실패하는 사랑

민준은 친구들과 그룹 스터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혜수가 동아리 방으로 호출을 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가고 싶어서 거절을 했었다.

이어폰을 끼고 영어 회화를 들으며 골목을 빠져나와 전철역 3번 출구로 방향을 틀자마자 스치듯 지나는 지영을 보았다.

“야, 강지영!”

민준이 지영에게 다가가며 반갑게 불러봤지만 지영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민준이 더 우렁찬 목소리로 지영을 불러 세웠다.

“지영아! 강지영!”

그제야 지영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민준은 백팩을 메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지영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민준은 급하게 달려와 지영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지영은 그대로 바닥에 앉아 민준의 손을 잡고 엉엉 울어버렸다.

“왜그래! 강지야! 너 무슨 일이야?”

지영은 민준이 다급하게 묻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규현과 헤어졌다는 사실보다 더 비참한 것은 생전 처음 보는 규현모에게 신데렐라나 꿈꾸는 천박한 아이로 보였다는 것이었다.

지금 민준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영은 발을 헛디뎌 지하철 역을 빨려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지영의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우는 것을 멈추기는 했지만 눈물은 여전히 지영의 볼을 타고 흘러 내리고 있었다.

민준은 지영의 이별을 직감했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영의 손을 꼭 붙잡고 집까지 천천히 에스코트 해 주었다.

똑똑똑..

밤 열한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지영이 민준의 창문을 두드렸다.

사실 민준은 창문 앞에서 저녁도 먹지 않고 지영이 문을 두드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다 들어줄게. 그 고시생하고 헤어졌다고 해도, 또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고 해도 괜찮아,,, 그러니 제발 슬프게 울지만 마라.

민준은 마음을 졸이며 지영의 방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애써 태연한 척 문을 열어 지영을 바라보았다.

“나 헤어졌다.”

침울한 지영의 목소리에 민준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알아. 니가 울 일이 그것 말고 뭐가 있겠냐.”

“나 슬픈 영화 볼 때도 잘 울어.”

“치,, 그래서 이번엔 왜 헤어진건데?”

“왜? 궁금해?”

민준은 지영을 빤히 보았다.

통통하게 살오른 귀여운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헬쑥했고, 커다란 왕방울만한 눈은 쏙 들어가서 더 커보였다.

“너,,, 괜찮아?”

지영은 왜 민준이가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울컥 눈물이 올라올까?

지영은 애써 울음을 알사탕처럼 꿀꺽 삼켰다.

“당근 괜찮지. 죽기야 하겠어?”

“훗,,, 그런 말 하는 거 보니 죽진 않겠네.”

“내가 왜 헤어졌냐면....”

민준이 차마 다시 물어보지 못한 질문에 지영이 먼저 술술 답을 했다.

“아니, 내가 왜 차였냐면,,,, 나도 잘 모르겠어. 난 규현 오빠를 좋아했고, 사랑했고, 내 사랑에 최선을 다했고,, 또,,, 최선을 다 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

“최선을 다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은 건 사랑인가 봐.”

“아니야, 그 사람이 못된 거야. 니가 잘못한건 없어.”

“민준아, 정말 그럴까? 난 이제 겁나서 사랑은 못할 거 같아.”

민준은 금방이라도 창문을 뛰어넘어 지영의 떨리는 손을 꽉 잡아 주고 싶었다.

그러기엔 천진한 얼굴로 자신만 바라보며 웃는 혜수가 마음에 걸렸다.

***

지영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를 다 때려치우고 집에서만 지내고 싶었지만 현실은 휴가도 주어지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 오고 있었다.

밀레니엄을 외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0을 맞을 준비에 거리는 연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요즘 들어 수경의 안식처는 미란이의 집이었다.

그것은 대학 때와 변함이 없었다.

새내기때 김정현을 사귈 때도 미란의 집은 데이트 장소로 종종 활용되었고 정현이 군대에 갔을 때에도 그리고 정현에게 홍대에서 차인 후에도 미란의 집은 술 마시고 하소연하는 장소로 자주 활용되었다.

지금은 기어 다니는 아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집이지만 지영은 미란의 집에만 다녀오면 힐링이 되었다.

“아유,,, 성호야~~~! 강성호~~!”

자신을 알아보고 뽈뽈뽈 기어오는 성호를 들어 올리며 지영이 말했다.

“야! 방성호라고 방,방,방!!”

“크크,,,맞다..맞어.. 강성호는 엄마 옛날 남친이지?”

미란은 맥주 캔을 가져오다 지영의 등짝을 사정없이 때렸다.

지영은 아프면서도 깔깔대고 웃으며 성호를 내려놓았다.

성호는 어느새 냉장고 앞에 붙어 있는 자석을 향해서 돌진하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앉아있던 지영은 소파로 올라왔고 미란은 티브이 볼륨을 줄이고 지영의 옆에 앉았다.

“너,, 한번 만 더 놀리면,,, 그땐 진짜 못 오게 한다.”

“알았어... 남편 있을 땐 안 그러잖아.”

“어우야,,,, 입에 촥촥 붙어서 실수할까봐 그러지... ”

“크크,,, 오야!! 그나마 몇 달 안 사귄애라서 다행이다 진짜.”

“야~~!”

지영과 미란은 마주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다 정색을 하더니 맥주캔을 지영에게 건네고 후다닥 건너방으로 가서 잡지책 한권을 가져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주된 여성전용 잡지였다.

미란이 접어 논 부분을 펴서 호들갑을 떨며 보여주었다.

“너,,, 너 이거 봤어? 이거 정현이지. 김정현!”

“어?”

지영이 잡지책을 들여다보았다.

새내기 때부터 군대 입대 후 상병때까지 사귄 김정현이 확실했다.

마지막으로 보던 빡빡머리가 아니라서 조금 낯설었지만 지영은 한 번에 정현인걸 알 수 있었다.

눈에 스모키 화장을 하고 굵은 은색 반지를 손가락 마다 끼고 징 박힌 웨스턴 부츠를 신고 있었지만 정현이었다.

그리고 옆엔 말끔한 정장 수트를 입고 특유의 거슴츠레하게 올려 뜨며 먼 곳을 응시하는 표정도 정현이었다.

지영은 맥주캔을 테이블에 놓고 잡지를 건네받아 무릎에 올려서 기사를 또박또박 읽었다.

요는 요즘 새로 뜨는 신인 배우가 C대 공연창작학과 김정현이라는 배운데 ‘검투사’라는 영화의 조연으로 나와서 눈도장을 확실히 찍고 지금은 미니시리즈 조연으로 안방을 노린다...라는 그런 기사였다.

지영은 사진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풋풋하게 사귀자며 달콤한 키스를 하던 노래방에서의 정현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상했다.

수경과 홍대 앞에서 쇼핑을 하다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정현을 만나서 보란 듯이 차인 나쁜 기억이 어느새 많이 희석이 되어있었다.

그 비참했던 순간마저도 지영은 웃으며 회상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자신을 그렇게 차버린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지영이 정현이 나온 부분을 찢어 가도 되냐고 미란에게 물었고 미란은 아예 책도 가져가라며 성호를 데려와 기저귀를 갈았다.

“너 정현이 안보고 싶어? 그 뒤로 한 번도 본 적 없지?”

“아니,,, 제대하고 연락 왔었어. 그리고 졸업해서도 한번. 마지막 학기는 같이 다녔잖아.”

“근데 왜 안 만났어? 요즘 대기업도 별거 없어. 연예인이 짱이라니까!”

“훗,,, 그땐 규현 오빠 만나고 있었잖아.”

“어우,,, 그 양아치? 그 놈은 됐다 그래라. 솔직히 정현이 생각보다 괜찮지 않았냐? 난 진짜 걔가 뜰 줄 알았다니까. 연락처를 수소문 해봐야것다. 기타 동아리 애들 몇 명 지나면 연락처 나오겠지.”

“훗,,, 니가 만나서 뭐 할건데? 애엄마가.”

“뭐하긴? 그때 못 받은 숙박비에 밥값까지 두둑이 돌려받아야지.”

“역시 미란이다. 꼭 만나길 빈다~!”

지영은 미란과 함께 깔깔대며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어둑어둑해지자 정현이 나온 잡지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똑똑똑

오랜만에 민준이 창문을 노크했다.

마침 지영도 정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했던 참이어서 드르륵,, 창문을 열었다.

“찌찌뽕! 나도 너한테 할 말 있는데...”

“뭔데?”

지영은 정현의 잡지를 펼쳐 보였다.

민준이 눈을 찡그리며 잡지를 보았다.

어두운데다 사진이 작아서 누군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지영이 검지를 까딱이며 건너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민준은 창문을 닫고 현관을 지나고 대문을 지나 지영의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지영이 문을 열어주었고 민준은 지영모와 지영부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 지영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냥 창문을 넘어오면 될것을,,, 중3때 아빠의 커다란 파카를 뒤집어쓰고 혼이 난 이후로 절대 창문을 넘지 않는 민준이 때론 답답하게 느껴졌다.

민준은 파카 주머니에서 맥주 캔 두 개를 꺼내서 내려놓고 파카를 벗어 지영의 의자에 걸고 방바닥에 앉았다.

“누군데?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연예인이 좋고 그러냐?”

“넌 웬일로 집에 있어? 혜수랑 데이트도 안하고,,, 인턴생활이 적성에 맞나보다?”

“잡지책 뭔데?”

민준은 혜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회피하듯 잡지책에 관해서 물었다.

지영은 감춰 논 보물이라도 보여주듯 잡지책을 꺼내서 짜잔~!하고 펼쳐보였다.

정현이었다.

민준도 한눈에 정현을 알아보았다.

하긴, 민준이 어찌 정현이를 모를 수가 있을까?

지영이 좋아하는 정현을 따라잡아 보겠다고 엄지와 검지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드럼스틱을 잡고 드럼 연습을 했다.

그리고 정현의 몸매를 따라잡아 보겠다고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 새벽마다 헬스클럽에서 힘들게 운동을 하면서 지칠 때면 김정현이란 이름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덕분에 지영이 정현과 헤어져도 민준에게는 근사한 식스팩이 남았지만...

민준이 지영을 힐끔 보았다.

지영의 얼굴에서 손톱만큼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지영이 누군가를 만나면 설레어 하는 그 웃음이 없었다.

민준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스타가 되긴 될 건가 봐. 이런 사진도 찍고 그러는걸 보면.”

“그래서,, 다시 만나고 싶어?”

“아니,,, 그냥,, 내가 알던 애가 연예인이 된다니,, 신기해서.”

“그냥 알던 애가 아니지 아마?”

“그래,,, 나를 뻥 차버린 애다... 됐냐?”

민준은 피식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더했다.

지영은 사진을 이리보고 저리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에흐,, 미란이가 대기업 직원 와이프보다 연예인 와이프가 백배는 더 좋다는데,,, 나, 후회해야 되는 거니?”

“훗,,, 후회는 니가 차버리고 하는거고,, 넌 차인 거잖아.”

“에유,,,, 이 냉철한 시키... 넌 너무 객관적이야.”

“의사,,, 와이프는 어때?”

민준은 지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영은 조심스러운 민준의 질문에 심장이 덜컹 움직였지만 의연하게 대답했다.

“머,,, 울 엄마가 좋아하겠지.”

“넌,, 어떠냐고!”

가끔씩 민준이 이럴 때마다 지영은 알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왜~! 누구 소개시켜 줄라고? 누군데~?”

지영은 일부러 더 설레는 표정을 지으며 민준에게 말했다.

“큼,, 나도 사회적 지위가 있다. 괜히 소개팅 잘못 시켰다가 매장당할 일 있냐?”

“아유,,, 진짜,,, 매를 벌어라!”

지영은 옆에 있는 베개로 민준의 머리를 때렸다.

움찔하던 민준의 손에 들린 맥주캔이 날아올랐다 지영의 가슴으로 떨어졌다.

연노랑빛 잠옷에 맥주가 번져가서 지영의 가슴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민준은 반사적으로 지영의 가슴에 손을 대서 맥주를 털었다.

지영도 손으로 잠옷을 잡고 맥주를 털어내다 그만 얼음이 되고 말았다.

움찔하는 지영의 반응에 더 놀란 사람은 민준였다.

민준의 손은 지영의 가슴위에서 더 이상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어색하게 마주쳤다.

“지,,영아,, 나,,,나는..”

귀까지 발갛게 달아오르며 말을 더듬는 민준에게 지영이 평정심을 되찾고 윽박질렀다.

“허,, 이눔시키,,,그렇게 느끼고 싶으면 혜수한테 전화해! 쪼꼬만게 어디서 누나한테,,,”

“헉,, 그런 거,,, 아니,,”

“하긴 뭐,,, 누나가 대한민국 여성의 표준을 넘는 남다른 발육상태를 보이고 있지.”

“헐,,, 정신 상태나 신경써.. 발육은 무슨,,”

“에흐,, 내가 옆집 땅꼬마랑 무슨 얘길 하는건지,,, 그래서,,, 누굴 소개시켜 준다는건데? 누나가 옆구리 시린 적 별로 없었던 거 알지? 소개팅 스케줄이 다이어리에 빼곡하니까 엄선해서 한명만 추천해..”

“됐다. 소개팅 스케줄 빽빽한 다이어리 뒤져서 한 놈 사귀든가 말든가.. 난 간다!”

민준은 의자에 걸린 잠바를 낚아채고 지영의 방을 서둘러 나갔다.

여전히 민준의 손끝엔 지영 가슴의 말랑한 그것이 느껴져서 쉽게 호흡이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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