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아니면 왜 아니라고 말을 못해
“아...”
하린은 설명을 멈추고 태민을 바라 보았다.
“감독님이 계속 설명해주시면 안되요?”
태민은 다인을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다인씨, 잘 들으십시오. 여기서 저는 감독이고 전체 컷과 작품의 퀄리티를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도하린 피디님은 이 작품이 산으로 가지 않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분입니다. 이 작품은 그냥 드라마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품의 모든 기능과 표현을 잘 드러나게 하는게 우리의 목표이구요. 그건 알고 계약 하셨잖습니까.”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예요!”
“왜 상관이 없습니까? 여기 있는 도하린 피디님이 그 설명을 가장 잘 해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제가 하는 것과 피디님이 설명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아니..저는 감독님한테 그래도 설명을 듣고 싶은거죠- 저희 작품 할 때 동선을 피디랑 이야기 하는 경우가 어디있어요-?”
“이건 그런 드라마나 영화와 다르다고 말씀 드렸을텐데요-“
“그래도..전..”
“유다인씨, 제가 설명을 부족하게 드렸나요?”
“하..정말.. 왜 이래요? 이렇게 하시면 좀 곤란하실 것 같은데-“
“제가 곤란 할 건 없을 것 같은데요-“
다인과 태민은 팽팽하게 맞섰다.
“저..신 감독님 그만하시죠- 다인아 너도 그만하구.”
중간에서 정우가 막았다.
“아니~~ 내가 뭐라고 했다구 저렇게 도끼눈을 뜨고서 나한테 윽박지르는 거야? 나 유다인인데~~ 지금 나 여기서 안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건지 모르시나보다~”
태민은 점점 어이가 없었다.
이제 겨우 유명세를 타는 배우가 저렇게 예의없이 굴다니..
“다인씨, 한국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미국같은 경우도 이런 식으로 피디한테 막하는 경우 없습니다. 우리 서로서로 이 판에서 계속 볼 얼굴들 아닙니까?”
“저는 손해 볼게 없을 것 같은데요-“
다인은 기분나쁜 표현을 계속해서 드러냈다.
“하..좀 쉬었다가 하시죠. 다인이 너 나 따라와!”
정우는 다인의 손을 잡고 스튜디오를 나갔다.
갑자기 메인 배우 둘이 자리를 뜨자 스튜디오는 어수선 해졌다.
“어? 팀장님!”
“도대리 잘 하고 있나? 왜 이렇게 소란 스럽지?”
하린의 팀장이 그 때 나타났다.
“아..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냐니? 내가 못 올 곳을 왔나? 오늘 리허설 한다기에 한번 와봤지. 신감독님과 이야기 할 것도 있고.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아닙니다. 작은 오해가 있어서요-“
“허- 촬영도 전에 이런 일이 있으면 됩니까? 촬영장 분위기가 말이 아닙니다.”
“네 금방 다시 시작할 겁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신감독님, 저랑 따로 좀 이야기 하시죠.”
“그러시죠. 제 사무실로 가시죠.”
태민과 팀장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되자 하린이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아니, 껌딱지는 갑자기 거기서 화내고 그러냐… 너 괜찮아?’
홍은 하린을 걱정했다.
“어..어..참.. 이것 때문에 다인씨가 안한다고 하면 안되는데…”
‘그렇지는 않을거야- 걱정마-‘
“아..그래? 홍..니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엄청 안심된다..”
‘야- 너 왜그래 요즘?’
“뭘 왜그래?”
‘안하던 칭찬을 하니까 어색하게..’
“너가 갈 때가 되니까 그런가 보지머..”
‘너 아쉽냐?’
“몰라…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 몰라몰라-“
하린은 여러가지 생각이 들자 머리를 흔들어서 생각을 털어내었다.
지금은 촬영에만 집중하기에도 벅찼다.
팀장과 태민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린아-“
“어?”
정우가 다인을 달래고 들어와서 하린을 불렀다.
“어떻게 됐어?”
“응.. 괜찮을거야- 근데 오늘은 좀 일찍 간다고 갔어. 뒤에 스케줄도 있고. 지금 리허설도 거의 끝났으니까. 새로운 콘티 들고 갔으니까 네가 아까 설명한대로 연습해서 올거야. 다인이가 좀 다혈질이고 막무가내이긴 하지만 일은 제대로 해.”
“아..그래..정우야 고맙다..늘 내가 신세지네..”
“하린아, 무슨 말을 그렇게하냐? 너가 나한테 해준게 더 많아. 아니 너 존재 만으로도 나는 힘이 나니까.”
‘윽.. 멘트하고는…’
홍이 닭살이 돋는다고 했다.
“아..으응.. 그래…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네..”
“하린아, 그건 그렇고 우리 언제 첫 데이트 할까?”
하린은 그제서야 정우가 5번의 기회를 달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음.. 글쎄.. 일단 촬영 끝나고…”
“아니지! 너무 늦어! 일단 첫 데이트는 오늘이나 내일 하자!”
“그렇게 빨리?”
하린은 고민이 되었다.
오히려 오래 끌어서 희망고문을 하느니 빨리 다섯번을 만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그럼 오늘 저녁에 보자.”
“정말? 우와! 정말이지!! 나 오늘 저녁 스케줄 없는데!! 너한테 빼 놓을께! 그럼 우리 오랜만에 거기서 보자! 수아랑 자주 갔던 그 파스타집. 너 거기 좋아하잖아.”
하린은 어디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셋이서 자주 갔던 아지트 같은 곳.
오늘같이 평일은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아직 학교가 방학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좋아. 거기서 7시에 보자.”
하린은 정우에게 오케이를 했다.
‘오~~ 첫 데이트으~~~ 왠 일이냐!’
홍이 소리질렀다.
그때였다.
오랫동안 대화를 하느라 나오지 않았던 태민과 팀장이 태민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태민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어..태민씨 얼굴이 별로인데…’
하린은 그런 태민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자- 그럼 도대리, 수고하고! 난 이만 가볼께!”
팀장은 하린에게 인사하고 다른 스탭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나갔다.
왠일로 팀장은 하린에게 특별한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평소처럼 깐족거리면서 하린의 속을 뒤집어 놓지 않았다.
‘왜 저러지..’
“신감독님, 무슨 이야기 했어요?”
“하린씨..아니 피디님.. 저 잠깐 봅시다.”
완전히 굳어 있는 태민의 얼굴을 보고 하린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태민을 따라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태민의 개인 오피스는 처음 들어간 것이었다.
아주 깔끔한 성격답게 책상 위는 정갈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피디님..아니 하린씨..”
둘만 있게 되자 태민은 하린을 다시 이름으로 불렀다.
“네..왜 그러세요?”
“아..참…사람이..사람이 왜그럽니까!”
하린은 갑자기 태민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 대체 팀장님이 무슨말을 한거예요? 왜 이렇게 화가 났어요?”
“왜..왜 말 안했습니까!”
“뭘요?”
“저 때문에 회사에서 곤란하셨다면서요..”
“아…”
아니.. 왜 이제와 팀장이 태민에게 그런말을 하고 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중요합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인데요- 그리고 소문 같은거 지나가면 없어져요. 지금껏 그런거 신경 안쓰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안쓰고 살 생각이구요..”
태민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하린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문제야?’
하린은 이제 와서 이러는 태민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피디..그만 하시죠.. 단독 피디로 가겠습니다.”
“뭐라구요!!”
지잉-
지잉 지잉-
그때였다. 하린의 전화가 울렸다.
하지만 하린은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가 없었다.
지잉-
지잉- 지잉- 지잉-
“전화 받으시죠. 급한 일 같은데-“
[수아어머니]
핸드폰을 꺼내서 본 하린은 깜짝 놀랐다.
이 시간에 수아 어머니가 왜 전화가 왔을까.
얼굴보고 인사한적은 많았지만 수아 어머니가 직접 전화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잠시만요. 전화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다녀와서 다시 이야기해요.”
하린은 사무실을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주머니 왠일이세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하린은 전화를 받았다.
“어- 하린아.. 일하고 있지? 아줌마가 미안해- 근데 너무 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어.”
“아니예요- 괜찮아요 이야기 하세요.”
‘급한일…’
하린은 조금 긴장이 되었다.
“다른게 아니라.. 너 혹시 수아 어디있는 줄 아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어떻게…너도 몰라? 하린아..어머..하린아.. 어떻게 하면 좋니…우리 수아가 지금 며칠째 연락도 안되고 전화도 안받고… 흑… 어떻게 하니..”
“아주머니..아니.. 자세하게 말씀해 보세요..!! 언제부터 없어졌어요!!”
“그게.. 아이고..그게…3일 쯤 된 것 같아.. 아.. 야근이라고 생각했는데 얘가 며칠 째 연락 안받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는데..어머..어떻게해.. 알겠어.. 일단 너도 모른다니까 얼른 신고부터 해야겠다.”
뚜뚜뚜…
전화가 끊겼다.
“아주머니! 아…어디 간거야…어?.......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