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내가 사랑이 힘든 이유는..
“여보세요? 보험회사죠? 사고가 났는데요..여기 강원도 삼척시…”
태민은 차에서 내려 차를 보면서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하린은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홍..아…진짜..내가 그렇게 가자고 말을 했는데 저 남자 왜 저러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너 안 다쳐서 다행이야.’
“홍.. 이게 다행인거야?”
‘하린아.. 너 지금 차가 어디 있는 줄 알아?’
정신이 없던 하린은 몇 바퀴 돌던 차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 하린은 창 밖을 보았다.
태민은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
그렇게 밖을 보던 하린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긴 했지만 태민의 차가 절벽으로 떨어진 3-4미터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홍..홍..우리 지금 죽을 뻔 한거야!?”
하린은 놀라서 홍에게 물었다.
‘살아 있잖아.’
“이번에도 너야?”
‘그렇지! 아님 누구겠어! 떨어지지 않게 살짝 안으로 밀었는 것 뿐이지만.’
똑똑.
그때였다.
태민은 통화를 마치고 하린의 반대편 운전석에서 창문을 두드렸다.
“내리세요.”
철컥.
하린은 내려서 살짝 절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낮에 보았던 아득한 절벽이 눈 앞에 끝을 모르고 펼쳐져 있었다.
“피디님, 지금 보험회사에 전화했는데..지금 여기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서..”
“네? 그래서요?”
“내일 새벽 6시에..날이 밝으면 찾으러 오겠답니다.”
“뭐라고요!!”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신 감독님! 제가 빨리 가자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죄송하다고..”
아까와 다르게 태민은 정말 정중하게 하린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 날줄은 둘 다 몰랐던 일이었다.
물론 태민의 잘 못으로 길을 헤매게 되고 결국 이렇게 된 것이었지만
이제와 잘 잘 못을 따져봤자 서로 마음 상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태민에게 화가 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하린은 아무 말 없이 차에 기대 서있었다.
“저.. 피디님..?”
“또 왜요..”
“우리 차를 옮겨야 해요..여기 너무 위험해서..”
하린은 할말을 잃었다.
더이상 화를 내기도 기운이 빠지는 상황이었다.
주위는 너무 어두워서 차의 헤드라이트를 켜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말 하린이 봐도 차가 있는 위치가 애매했다.
조그만 더 밀리면 차가 아래로 떨어 질 것 같았다.
“그럼..어떻게 옮기면 되요?”
“아, 저기 보이시죠? 저기 살짝 산 쪽으로 공간이 있는데 거기까지 우리가 밀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밀릴까요?”
“해봐야죠..지금 여기 차를 두면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 질지도 모르니까.. 아까 보험회사에서도 상황을 설명하니까 그렇게 하는게 안전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린이 차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살짝 내렸다.
“제가 핸들 조정 할테니까 그럼 감독님이 뒤에서 미세요.”
“아..그럴까요?”
“저보다는 힘이 세실 것 같으니까 그게 낫지 않겠어요?”
둘은 힘껏 차를 밀었다.
‘참…살다 살다.. 별 경험을 다해 보는 구나…’
“으차!! 어어 하린씨! 저쪽으로! 조금만 더!”
“알았어요!!”
‘참.. 버라이어티 하구만-‘
홍도 어이가 없는지 한마디 했다.
“홍..좀만 도와주면 안되?”
“네? 도와 드리고 있는데..아니 하린씨가 도와주시고 계시죠.”
“아니..네..그래요..그쪽한테 한 말이 아닌데..”
‘여기선 안되.. 좀만 힘내! 하린아! 얼마 안남았네!’
하린은 보이지도 않는 홍에게 눈을 흘겼다.
그렇게 하린과 태민은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도록 차를 멀어서 넓은 공간이 있고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으아~~ 휴우…됐는 것 같습니다!”
“네..제가 봐도 그렇네요..”
‘수고했어 수고했어!!’
홍은 하린을 다독였다.
태민과 하린은 털썩 바닥에 주저 앉았다.
옮기는 중간에 아주 살짝 언덕이 있었는데 거의 온 몸의 힘을 다 쏟아 부어서 차를 끌었다.
바퀴가 펑크가 난게 더 힘이 들어가게 만든 것 같았다.
“아니 스페어 타이어도 안 가지고 다녀요?”
“사실 얼마전에 누가 바퀴에 구멍내고 가서 그때 스페어 타이어 썼었습니다. 새로 갈려고 주문 해 놓았는데.. 또 이렇게..”
태민이 그렇게 말하니까 할말이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차를 옮기고 바닥에 앉아서 둘은 한참을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했다.
저녁을 굶고 온 몸에 힘을 썼더니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부스럭, 부스럭
태민은 차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거라도 좀 드시죠.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니던 비상식량 입니다.”
태민이 내민 손에는 패트병에 든 물과 에너지 바가 들려 있었다.
하린도 힘이 없고 배가 고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꿀꺽꿀꺽.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태민에게 물과 에너지바를 받은 하린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조금 정신이 차려 지는 것 같았다.
“에너지바도 좀 드세요. 이건 차에 많이 있습니다.”
“안그래도 지금 먹으려고 했어요. 유명한 식당 찾다가 …”
“….”
‘이제와 말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홍이 하린을 말렸다.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네요.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태민의 얼굴이 미안함에 굳었다가 하린이 살짝 풀자 태민의 얼굴도 풀리기 시작했다.
“제가 오늘은 정말 죄송합니다.”
‘하늘 좀 봐-‘
홍이 였다.
‘하늘이라..’
“와아-“
홍의 말에 따라 하늘을 본 하린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높은 고도 때문인지, 서울처럼 빛 공해가 없기 때문인지 엄청난 별들이 하린에게 쏟아질 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린에게 사과를 하던 태민도 하린이 갑자기 하늘을 보며 감탄사를 내밷자 하린이 바라보는 곳을 쳐다 보았다.
“이야….정말 …장관이네요…한국와서 본 풍경 중에 오늘 이 하늘이 최고가 아닐까 싶네요..”
피식.
하린이 자기도 모르게 피식하며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아니..이 상황이 웃겨서요.. 생전 처음 오는 강원도 오지에 로케이션 확인차 감독님이랑 왔는데 감독님이 밥 먹고 가자고 성화를 해서 이렇게 돌고 돌고 돌아서…하하.. 그러게요..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도 보게 되네요…”
하린은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이야기 했다.
하늘에서 아름답게 수놓은 별을 보니 마음이 좀 가라 앉았다.
“그렇네요..이런 하늘은 쉽게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네..전 평생 서울에 살았어서.. 정말 처음 보는 풍경이네요-“
“그렇군요…저는 시골에서 살다가 어릴 때 미국에 갔었습니다. 한국에 대해, 사실 궁금한 것도 많고 더 경험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아.. 대학만 미국에서 나오신게 아니군요.. 가족들이 이민 가신 건가요?”
‘아니야..’
홍이 먼저 대답했다.
“아닙니다.”
“어..네…뭐 대답하기 곤란한 개인사는 답 안하셔도 괜찮아요.”
“저 입양아입니다.”
“아..”
하린은 괜한 것을 물은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왜 그러십니까? 전 정말 행복한 가정에 입양됐었습니다. 여기저기 뉴스에 나오는 그런 폭력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입양아 생활을 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백인 어머니와 이탈리아계 아버지셨는데 저를 정말 친 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학까지 그곳에 함께 지냈죠. 원래 미국은 대학만 가도 독립시키거나 그러는데 저희 양 부모님은 저를 끝까지 서포트해 주셨어요. 흔히 않은 일이었죠..”
하린은 갑자기 자신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어릴 때 늘 싸우시던 부모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오히려 엄마는 안정을 찾고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군요..좋은 분이셨을 것 같아요. 신 감독님 보면 참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치시거든요. 그런 분들은 보통..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죠. 그래서 사랑 많이 받은 사람들은 티가 나요.”
“왜요? 하린씨도 정말 자신감 넘치십니다-“
“하하..달라요..색깔이 다른 거죠. 같은 자신감이라도 제 것은 조금 더 억지스러움이 있어요. 전 악착 같아야 했으니까..그러니까.. 저 자신감은 사랑의 바탕에서 나온게 아니예요.”
태민은 하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베터리가 닳을까봐 차의 시동도 끄고 라이트도 꺼 두었다.
오로지 별 빛에 비친 서로의 얼굴만이 비췄다.
그리고 태민은 그런 말을 하는 하린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보였다.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이제부터 사랑 받으면 되는거 아닙니까?”
“그게..사랑 받지 못한 사람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뭡니까?”
“사랑을 못한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