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우리 그 사람 찾자!
수아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 하린은 침대에 엎드려 흐느끼는 수아를 바라 보았다.
“수아야, 일어나서 죽 좀 먹어. 어머니가 너 걱정해서 죽 끓여 주셨어.”
“시러어…엉엉.. 내가 밥을 어떻게 먹어..엉엉..”
“이거 밥 아니고 죽 이야.. 너 좋아하는 전복죽.”
“안먹어어..엉엉..”
하린은 쟁반을 화장대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수아를 침대에서 일으키려고 했다.
“야..너 또 왜 이래…이번엔 진짜라더니..”
아무리 시련을 당했어도 수아가 이렇게 말이 없고 많이 우는 것을 본 것은 정말 몇 년 만이었다.
‘얘 정말,, 이번엔 진짜였나..’
“어..엉엉.. 하린아..엉엉..나 어떻게 해…엉엉…”
“왜..너 왜그래? 무슨 사고 친건 아니지?”
하린은 갑자기 너무 심하게 우는 수아가 미심쩍어 보였다.
“무슨.. 사고오.. 엉엉..”
“아니.. 뭐.. 임신을.. 했다거…”
“야!!!”
수아는 정신이 번쩍드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하린을 쳐다 보았다.
수아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운 것인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고 눈도 완전히 부어서 그 큰 눈이 잘 떠지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수아야..너 얼굴이..”
“야! 너 말 돌리지마!”
“아니.. 너가 너무 심하게 우니까 나는 또 수아 니가 진짜 사고를 쳤나하고…맨날 진짜 사랑이네 그러니까..”
“야아~~~도뽕!!”
‘그거 아님.’
홍이 하린에게 말했다.
“그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니까~!’
홍이 다시 한번 확인 사살을 했다.
“아… 아니구나..휴..”
“너어~~나를 뭘로 보고~~ 나는 진짜 사랑을 찾아서 그 사람 하고만 진지한 사랑을 할거라니까!!”
“너가 이번에 진짜 사랑을 찾았다고 했잖아!”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니.. 너 진짜 사랑을 찾았다고 난리 칠때는 언제고..”
“도뽕.. 나 어떻게해..엉엉..”
울음을 잠시 그쳤던 수아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일이지..얘가 이렇게까지 패닉인적은 없었는데..대부분..굉장히..쿨하게 다음 사랑을 찾곤 했는데..’
“너 왜 그래? 그렇게 그 사람이 좋았어? 왜 또 양다리?”
“야!!”
‘헛다리 좀 그만 짚지?’
“헛다리..그럼 대체 왜 그러는데!”
‘좀 살살 물어봐~ 위로가 필요한 친구한테 그렇게 윽박지르면 말을 하고 싶겠어?’
‘휴.. 알았어 알았다구.’
“수아야..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침착하고..”
‘물..’
홍이었다.
“물 좀 줄까?”
“으..응..”
하린은 물을 수아에게 내밀었다.
‘야..좀 더 가까이..쟤가 지금 눈이 부어서 앞에 뵈는게 있겠어?’
‘아..’
그렇긴 했다. 하도 울어서 퉁퉁 부어있는 수아의 눈은 거의 떠지지 않을지경이었다.
하린은 더 가까이 수아의 입에 물 컵을 대 주었다.
꿀꺽. 꿀꺽. 꿀꺽.
수아는 하린이 가져다 준 물을 한 참을 마셨다.
‘그렇게 울어 댔으니 목이 안마르고 베기겠어…’
“더 줄까?”
“꿀꺽. 아하! 이제 좀 살겠다..쓰읍! 아니야 괜찮아. 나 죽 좀 줘봐아.”
“아, 그래!”
홀짝.
후룩.
수아는 하린이 가져다준 죽을 남김없이 먹었다.
“아.. 배부르다앙~”
수아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하린과 마주 앉았다.
“자..이제 이야기 좀 해봐.”
“후훗..도뽕 너 오늘 되게 다정하다아~”
“쓸데없는 소리말고.. 대체 무슨 일이야?”
수아는 한참을 뜸을 들였다.
‘아..긴장되게 얘가 오늘 왜 이렇게.. 진짜 큰 일이 있나?’
‘기다려 보아~말할거야.’
홍의 말을 들으니 곧 말할 것 같았다.
하린은 잠자코 기다려 주기로 했다. 어차피 토요일이고 다음날도 쉬는 날이었다.
“저기..도뽕..”
“그래..”
“민수씨가..민수씨가…”
‘아이고 숨이 넘어가겠네요.’
“도뽕아앙..민수씨가..”
“그래..금수아..민수씨가 어쨌는데..”
“너 내가 말하는거 듣고 화내면 안된다!”
“알았으니까 얼른 말해봐.”
“그게.. 민수씨가..도망갔어..”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너랑 헤어지고 도망 갔다는 거야?”
“아니..그게 아니라..휴..나한테 2000만원을 빌렸는데.. 도망갔어..”
“뭐어!!!!”
‘미친..’
거의 욕이 튀어 나올뻔했다.
‘참아 참아..’
홍이 욕망은 참으라고 말했다.
“야..금수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야아..쉬잇!! 우리 엄마 알면 나 죽어엉!!”
“너 무슨 돈이 있어서 2000만원 이나 빌려줬어?!”
“그게..사실..내가 결혼 하려고 적금 들었던 것 중에서..”
“너, 그 적금 깼다는 거야?”
“도뽀옹..목소리 낮추고..”
수아는 속삭이듯이 말하며 하린의 입을 막았다.
“아…나..참…”
“그게…나도 어쩔 수 없었어..”
“뭘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긴!”
“민수씨가 사업이 어렵다고 계속 나 만날때마다 술마시고 힘들어하는데 어떻게해 그러엄~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서 저렇게 축 쳐져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엉~”
‘미친x.’
하린은 속으로 욕이 튀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돈을 2만원도 아니고 200도 아니고 2000을 빌려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아..”
“그게 문제 아니면 뭐가 문제야! 뭔가 더 있는거야?”
하린은 수아의 말이 어이가 없었다.
“내 돈만 빌린게 아니라 여기저기.. 그러니까 정말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서 튀었다구우..”
“뭐어!!!”
“정말 나도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구우~~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었는데.. 진짜 친절하고.. 정말 정도 많구.. 길거리 다니다가 어려운 사람들 만나면 항상 지갑에서 만원짜리 꺼내서 주고…아…정말..착한 사람이었는데..”
하린은 그런 수아를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연애를 하는 걸까? 이렇게 사기를 당하고도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을 저렇게 나열 할 수 있다니..
“그 사람 어디 갔는 줄 몰라?”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게..어디 도망 다니고 있는지..핸드폰도 꺼져있구우..아.. 밥은 먹고 있는지..”
“금수아! 지금 그 인간이 밥을 먹던지 말던지가 중요해! 그 돈 어떻게 받을지 생각해야지!”
“그 돈.. 아.. 몰라.. 어떻게해.. 내가 지금 돈 때문에만 이런게 아니라..아니야..도뽕.. 너는 이해 못 할거야..”
“나는 너를 이해 못하겠다.”
“나 정말 그 사람 좋아했어..정말.. 처음으로.. 결혼..같은 것도 생각해 본 사람인데…”
“수아야.. 정신차려.. 경찰에 신고는 했어?”
“내가 신고하기 전에 이미 다른 피해자들이 신고했어…”
“그래..일단 너도 진정하고..”
‘너 사기꾼한테 당한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린은 지금 이상황에서 2000만 원을 빌리고 도망간 남자의 식사를 걱정하는 수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뽕…자고가라앙..나 혼자 있기 싫어..”
“혼자는 무슨..어머니 계시는데..”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다 할 순 없잖아아~~”
‘자고가~ 늦었네..’
홍이 같이 부추겼다.
“그래..알겠어..”
‘좀 괜찮냐고 물어봐라.’
“이제 좀 괜찮아?”
“흑..응…으으으 엉엉엉…아니..엉엉엉..”
수아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똑똑.
하린은 문을 열었다.
잠시 잠잠하다가 다시 수아가 울자 수아의 엄마가 걱정되서 들어와 보셨다.
“죽은 먹었어?”
작은 소리로 하린에게 물었다.
“네.”
하린은 대답하면서 빈 죽 그릇을 내 드렸다.
수아는 어릴 때부터 작고 잔병치례가 많아서 온 가족의 돌봄을 받으면서 자랐다.
특히나 수아의 어머니는 수아와는 투닥거리면서 다툴 때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늘 수아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모습을 하린은 보았다.
그리고 학창시절에는 늘 집에 계시면서 수아와 하린이 오면 밥도 차려주시고 수아와 하린의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속상한 이야기들도 들어 주셨었다.
사실 그렇게 다정하고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정성을 기우리는 수아 엄마의 모습은 하린의 엄마와 비교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하린과 하준을 먹여 살리느라 안해본 것이 없는 엄마. 그러다가 대학교때 쓰던 글을 계속해서 쓰면서 등단도 하게되고 어느새 유명 작가가 되어 있는 하린의 엄마였다. 그렇지만 하린은 학창 시절 내내 일하는..부재하는 엄마대신 어린 하준을 챙겨야 했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 하린의 엄마대신 수아의 엄마는 정말 하린을 늘 수아와 같이 아껴주셨다.
‘하아..’
“하린아, 수아 잘 부탁해~”
수아의 엄마는 하린에게 웃어 보이며 걱정스런 얼굴로 수아의 방을 나갔다.
“수아야..”
“으응..도뽕..”
“우리 그 사람 찾아보자.”
“무슨 수로..경찰도 못 찾는데..”
‘홍이라면…찾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