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로맨스의 시작
쨍그랑!
우두둑
부엌은 과일들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유리 접시는 하린과 한 참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친데 없어요?”
“누나 괜찮아?”
태민과 하준은 달려와서 하린을 부축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하린은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하린은 접시가 떨어진 곳이 싱크대 앞인 것을 보았다.
‘어떻게..’
“좀 조심 좀 해! 칠칠 맞게 넘어지고. 누나, 근데 이상하다. 누나는 여기 턱에서 넘어졌는데 유리접시는 왜 싱크대 앞에서 깨진거야? 막 넘어지면서 저 쪽으로 던진거야?”
“어? 뭐.. 나도 몰라.”
태민도 싱크대 쪽을 바라 보았다. 사실 아까 순식간이었지만 어떤 빛 같은 것이 하린을 감싸는 것 같기도 했다.
“여튼 안다쳐서 다행이네요.”
“아.. 네.. 저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하준이랑 좀 더 있다가 가세요.”
“아닙니다. 저도 가야죠. 오늘 폐 많이 끼쳐 죄송합니다. 푹 쉬세요.”
“어! 형 가는 거예요?”
하준은 어느새 태민에게 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친화력은 아주 그냥 끝내주네.’
홍이 하준에 대해 한마디 했다.
하린은 하준을 힐끗 쳐다 보았다. 하준은 하린에게 눈을 찡긋했다.
“어? 어어. 나 이만 갈께. 그럼 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형! 우리 또 만나요!”
“그래 연락하자.”
태민은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하준아 이거 내일 치우자.. 나 먼저 올라갈께.”
타악!
하린은 빠르게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뭘 내일 치워. 내가 치우면 되지! 말라깽이 얼굴이 말이 아니네..”
하준은 떨어진 과일을 줍고 유리 조각을 치우기 시작했다.
방으로 간 하린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유리접시는 분명 하린의 가슴 높이에 들려있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다고 해도 싱크대 앞까지는 말도 안되는 거리였다.
“홍, 너가 한거지?”
‘그럼 누가 했겠어.’
“그런 것도 할 수 있는거야? 그냥 말로 경고만 하는게 아니었어?”
‘가디언 홍의 능력을 얕보고 있으셨구만. 말만 해서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얼마나 될 것 같아? 너를 지키는거엔 내가 말하지 않는 수고들이 훨씬 많다구.’
하린은 그제서야 오토바이 사고가 떠올랐다.
“그럼 혹시 오토바이 사고때도?”
‘그건 나는 아니었구, 우리 진 가디언님이 구해주신거지. 아니었으면 정면으로 부딪혔을 거라구!’
“난 또 너가 입만 살아 있는 줄 알았지.”
‘머어! 그딴 가디언이 어디있어!! 이때까지 나를 그 정도로만 보다니!’
“너는 인턴 가디언이잖아.”
‘인턴이긴해도 거의 모든 능력은 비슷하다고! 그리고 곧 있으면 나도 정식 가디언이 될 몸이니까. 후훗.’
“인턴 가디언은 어떻게 정식 직원? 정식 가디언이 되는 거야?”
‘그건 말이지. 내가 미션을 완수하면 되는거지!’
“그 미션이 뭔데??”
홍이 한 참 대답하지 않았다.
하린은 이제 잠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어쩌면 하린의 독하고 강한 정신력 때문이었다.
“하-암. 대답해줘 나 이제 너무 잠 온단 말이야.”
‘잠을 자. 내일 말해줄께.’
“오늘 듣고 싶다구.”
‘내일.’
“오늘..”
‘내일..’
“오..ㄴ..”
쿨쿨.
하린은 홍과 씨름 하다가 먼저 잠이 들고 말았다.
***
따르릉
따르릉
“으음..누구야 이 아침에.”
하린은 겨우 눈을 떠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한정우]
“정우야? 정우가 왜 이 아침에….아!”
하린은 정우와 한 약속을 떠올렸다.
토요일 조용한 일산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했었다.
11시에 하린을 데리러 온다고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잠을 자던 하린은 완전히 까먹은 것이다.
“아악..”
“으음! 아 아.”
목소리를 가다듬고 하린은 전화를 받았다.
“굿모닝! 하린아!”
“아 으응.. 정우야.. 좋은 아침.”
“어?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또 어디 아파?”
“아..아니.. 사실.. 내가 어제 회식이 있어서.. 지금 일어났어..”
하린은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
시간은 오전 10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엇! 그럼 안되는데 너랑 가려고 12시에 예약했는데. 나 지금 너네 집 앞에 다와가.”
“저.. 미안한데 딱 15분만 기다려 줄래? 11시 15분까지 나갈께!”
“그래. 천천히 나와.”
하린은 정신없이 화장실로 뛰어갔다.
빠르게 씻고 간편한 옷을 입고 나갔다. 할 수 없이 모자를 쓰고 스니커즈를 신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가니 정우가 웃으며 다크 그레이색 스포츠카 밖으로 나와 하린을 위해 차 문을 열어 놓고 하린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세이프! 어떻게 시간 딱 맞춰 나왔네. 11시15분!”
“미안.. 기다리게 해서. 어? 촬영 끝나고 오는 길이야?”
하린이 정신없이 인사를 하고 정우를 보고는 놀랐다.
잡지 화보를 찍고 나온 것처럼 정돈 된 머리와 의상이 눈에 띄였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이 상태는 너랑 밥먹으러 가는 복장인데.”
정우 특유의 유쾌하고도 맑은 웃음이 차 안을 울렸다.
정우 모습을 보니 하린은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
정신없이 골라 입고 온 옷은 하필이면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거기다가 바지도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모자까지 눌러쓰고.
“아니 누가보면 하린이 너가 연예인인 줄 알겠다.”
“아..미안..”
“걱정마! 오늘을 위해 내가 준비 한게 또 있으니까! 일단 출발 할까?”
“그래...”
정우는 차를 출발해서 일산 방향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차가 조금 막혔지만 12시에 거의 딱 맞춰서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일산의 한 캠핑지였다.
“어..여기는..”
“우리 오늘 소풍 온거야!”
“내가 밥 사기로 했었지 않아? 나 아무것도 못 준비 했는데..”
“내가 준비 했지!”
정우는 차를 세우고 하린을 에스코트했다.
도착한 곳은 벌써 고기와 여러가지 음식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그리고 작은 천막도 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 쪽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때? 완벽하지? 아..사실 브런치집을 예약하려고 했는데 내가 너랑 가면 우리가 밥을 편하게 먹기 힘들 것 같아서. 여기는 아무도 우리 귀찮게 안할거야!”
하린이 정우를 아래 위로 바라보았다.
“왜..왜에? 나 이상해?”
“근데 너 완전히 눈에 띄는 복장인데?”
“아..으음.. 사실 다음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아니면 또 메이크업이랑 헤어 받고 가야해서 오늘 7시부터 나와서 다 준비하고 왔지!”
“뭘 그렇게까지..”
하린은 정성껏 준비한 정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린아! 이리와봐!”
한껏 들떠서 정우는 하린에게 준비한 과일을 내밀었다.
천막 쪽으로 다가간 하린은 깜짝 놀랐다.
‘뭐야 이게 다.’
‘뭐긴 뭐야 너한테 잘 보이려고 준비한 거겠지.’
홍이 또 끼어들었다.
“조용해라..”
“응? 뭐라고 하린아?”
고기를 굽고 있던 정우가 자신에게 한 말인 줄 알고 하린에게 되 물었다.
“아니..아니야..”
“이리와봐! 이거 이제 다 익어가!”
“아침부터 근데 무슨 고기야..”
“아침이라니 이 아가씨야! 지금 벌써 정오를 한참 넘겼거든요! 고기나 맛있게 드세요.”
‘고기 냄새 좋네! 받아 먹어라 손이 부끄럽겠구만.’
‘으.. 또..홍.. 알았어 알았다구 먹는다고…’
하린은 할말이 없었다. 늦잠을 자서 약속에 늦었는데 자신이 사기로 한 밥 약속을 정우가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해 놓았다니.
거기다 홍까지 한마디 하고.
그렇게 정우가 구어주는 고기를 한 절음 받아 먹으려고 할 때였다.
“오빠!”
‘응? 오빠?’
정우의 팬이 알아보고 다가 오는 줄 알고 고개를 돌려 소리난 쪽을 바라 본 하린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다인아! 어떻게 여길?”
화사한 원피스에 새하얀 샌들.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풀메이컵까지 한 다인이 주차장 쪽에서 걸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