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를 하나 포장해가지고는 데이먼의 차에 탄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는 거죠?]” 내가 묻는다.
“[당연히 필립네 집으로 가지.]”
“[네? 거긴 왜요?]”
“[그야..]” 데이먼이 씩 웃는다. “[그 아래에 나린이 있으니까.]”
“[네?]”
“[보면 알 거야.]”
메리니아의 혼잡한 도로들을 타고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약 20분 정도 달리다 보니 아까의 메리니아의 모습과는 달리 주변이 적막해진다. 적막하지만 딱히 으스스하지는 않고, 뭔가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곳이었다. 그리고 그 조용함 한 가운데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 잘 어울리는, 웅장한 건물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넓은 마당에 벽면이 대부분 유리로 되어있는, 그렇게 크진 않지만 고급스러운 건물이었다.
데이먼이 차를 대문 앞으로 몰고 가자, 굳건한 쇠창살이 알아서 옆으로 비켜서준다. 데이먼은 마당에 난 길을 따라 운전을 해서, 건물 뒤 쪽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우린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쪽은 더 굉장했다. 천장에서 커다란 샹들리에가 빛났고, 새하얀 대리석으로 된 바닥은 넓은 유리판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받으며 광을 내었다. 로비 양 쪽으로는 옛날 풍의 계단이 윗층으로 우아하게 솟아 있었고, 다른 방들로 이어지는 수많은 문들이 로비 곳곳에 자리 잡아져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건물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진다.
“[완전 멋있지? 역시 장관은 장관인가봐.]” 데이먼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는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며 로비 왼쪽으로 난 복도 쪽으로 걸어간다. 긴 복도를 따라서 가던 그는, 이윽고 나무로 된 문 앞에서 멈춘다. 그러곤 주머니를 뒤적여서 열쇠를 하나 꺼내더니,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연다.
데이먼은 빙긋 웃으며 열쇠를 흔들어 보인다. “[이런 거 아직도 쓰는 사람 처음 보지? 그런데 가끔은 이렇게 고전적인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말이야.]”
데이먼을 따라 방에 들어간다. 그와 함께 또 한번의 탄성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 방엔 수많은 색의 책들이 조금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고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가장 위 쪽의 책에 닿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리 서재 곳곳엔 고전적인 풍의 책상이나 소파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고, 방 한 가운데에는 작은 분수까지 놓여있었다.
데이먼이 우리 뒤로 다시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가끔은 무언가를 정말 눈에 띄는 곳에 숨겨 놓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지.]” 그가 말한다.
그는 나를 지나쳐서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더니, 작은 분수 앞에 가서 선다. 물이 담겨 있는 원통형 통 가운데에 상반신까지만 있는 남자 조각상이 가운데에 박혀 있고, 그 주위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분수였다.
그는 분수의 귀퉁이에 손을 올린다.
“[이 분수가 나린의 아지트로 가는 열쇠야.]”
“[열쇠요?]”
“[응. 이걸로 뭘 해야 하는 지만 안다면.]”
“[그게 뭔데요?]”
데이먼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떠오른다. “[키스해.]”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네?]”
“[키스하라고. 입술에.]” 그가 뻔뻔하게 말한다.
그새 컨셉을 변태로 바꾼 건가.
“[지금 진지한 거예요?]”
데이먼은 되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우리는 아지트 갈 때마다 맨날 하는데. 이게 나린에 들어오기 위한 관문이야. 너 정말 이거 하나 때문에 다 포기할거야?]”
그럴리가. 까짓 거 깔끔하게 해 버리면 될 것을.
분수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간다. 그러고서 눈을 딱 감고 고개를 비틀어 차가운 조각상에 입을 맞췄다.
1초. 2초. 3초.
조각상의 냉기가 입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그러나 정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설마, 하며 홱 뒤를 돌아본다. 역시나 그곳엔 데이먼이 배를 잡고 꺽꺽거리며 웃고 있다.
“[나랑 장난해요?]” 내가 소리찬다.
데이먼은 자기 딴에는 웃음을 멈추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했지만, 오히려 점점 더 크게 웃기 시작한다.
“[미.. 미안해.. 아하하하!]” 그가 웃음 사이로 간신히 말한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봐요, 지금이 그런 장난 칠 때 같아요? 나라 하나가 없어져가고 있는데?]”
내가 조금 많이 화가 났다는 것을 느꼈는지, 데이먼은 그제서야 웃음을 멈춘다.
“[알았어, 알았어. 진짜 미안해. 이게 약간 나린 신참들은 모두 거쳐가야 하는 전통 같은 거라서 그랬단 말이야. 지금 나린에 있는 애들도 다 이거 한번씩은 당했어. 아, 하제는 빼고다. 하제가 들어왔을 때는 아직 아지트가 없었거든.]” 그가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분이 썩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그니까 이제 장난 그만 치고 아지트로 가는 진짜 방법 좀 알려줘요.)”
“[오케이! 잠깐 비켜 봐.]”
데이먼은 조각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입 대신 눈을 조각상과 맞춘다. 조각상의 눈에서 약간의 빛이 감돌더니,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분수의 물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물이 완전히 없어지자, 또 한번의 ‘치익’ 소리를 내며 이번에는 분수의 바닥부분이 갈라지고, 그 위의 조각상은 철로 된 봉에 꽂힌 채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결과 분수는 결국 속이 텅 빈 원통형 통 가운데에 조각상이 꽂혀 있는 철봉이 하나 길게 솟아 있는 모양이 되었다.
“[나린에 온 것을 환영한다!]” 데이먼이 자랑스럽게 팔을 펼치며 말한다. “[사실은 홍채 인식 시스템이었어. 너도 오늘 등록하면 할 수 있을 거야.]”
분수로 다가가서 원통형 통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다. 바닥이 사라진 원통형 통 아래로는, 통과 같은 넓이의 구멍이 가운데의 철봉과 함께 길게 뻗어 있었다. 그 구멍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은 안 갔지만, 맨 아래쪽에 살짝 비치는 빛을 보아서는 분명 어디론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나를 엄습해온다.
“[설마 우리…]”
“[어릴 때 철봉에서 많이 놀아봤길 바래.]” 데이먼이 씩 웃으며 말한다.
아주 산 넘어 산이구나.
데이먼은 분수 가운데의 봉을 한 번 통통 건드린다. “[그럼, 숙녀 먼저.]”
나는 통을 한 번 더 내려다 본다. 구멍의 깊이가 또 다시 날 아찔하게 만든다. 이걸 저 봉 하나로 내려가야 한다니. 무슨 설계를 이딴 식으로 해놓은 거야.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원통형 통에 걸터앉는다. 그러곤 팔을 뻗어 두 손으로 봉을 감싸 안는다.
“[이거 안전한 거 확실해요?]” 내가 마지막으로 데이먼에게 묻는다.
그는 어깨만 으쓱한다. “[너가 해보면 알겠지.]”
하여튼 저 인간, 끝까지 저러네.
다리 아래의 깊은 공허함이 온몸에 느껴진다. 내려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신다. 그래, 까짓 거 조각상에 뽀뽀까지 해봤는데 한 번 해보는 거야.
힘을 딱 주고 뛰어내려 다리까지 마저 봉 주위로 두른다. 그 동시에 나는 엄청난 속도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람 소리가 귀에 와 부딪힌다. 그와 함께 누군가의 괴성 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내 생명줄이 되어버린 철 봉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으며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간다. 구멍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길었다. 정말 몇분은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인데, 전혀 끝날 생각을 안 했다. 그때 마침내 깜깜하기만 했던 구멍 안으로 빛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바닥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게 보인다. 바닥과 부딪히면서 찾아올 고통을 기다리며 나는 눈을 꽉 감는다.
쿵. 떨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순식간에 땅 바닥에 곤두박질쳐진다. 삭신이 쑤신다. 그래도 다행히 바닥이 푹신한 쿠션 재질로 되어 있어서, 생각만큼 몸이 아프진 않았다.
부딪힌 곳을 문지르며 슬며시 눈을 뜬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뒤로 고꾸라질 수 밖에 없다.
내 바로 앞에는 내 또래 정도의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커다란 총을 내게 겨눈 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더 어려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두 아이에게 딱 붙어서 겁 먹은 표정으로 빼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우선 본능적으로 두 손을 들어 보인다. 남자 아이가 총구를 더 가까이 들이대며 매섭게 노려본다. 큰 키에 짧은 머리를 가진 한아린인 남자 아이였다. 그의 양손에는 검게 때가 탄 목장갑이 끼워져 있었고, 얼굴에도 여기저기에 검은 기름 자국이 묻어있었다.
“[너 뭐야? 울랜인 애가 여기서 뭐하는 거야?]”
“저기, 나는-”
상황 설명을 하려는데, 갑자기 위에서 ‘위잉-’하는 기계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올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본다. 아까는 없던 희한한 원형 판이 봉을 따라 구멍을 내려오고 있었다.
우선은 구석 쪽으로 비켜나서 원형 판의 길에서 벗어난다. 판이 가까워지자 그 위에 선 데이먼이 눈에 들어온다. 팔짱을 끼고서 봉에 기댄 채, 그는 요란했던 나의 하강과는 달리 우아하게 판에 서서 내려오고 있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왜 혼자 그러고 내려오는건데요? 나는 그렇게 생고생시키고!]” 내가 소리친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그는 그저 얄미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원래 신참 때는 이것저것 다 경험해보는 거야.]”
마침내 원형 판이 바닥에 닿자, 데이먼은 판에서 내려와 바닥에 선다. 그는 손바닥을 한 번 탁탁 털고서는 나와 내게 철 막대기를 겨눈 채 서 있는 세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왜들 그래? 설마 나 지금 쌈 구경 놓친 거야?]”
심각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에 주먹이 쥐어진다. 그런 나와 달리 여자 아이는 침착하게 그에게 대응한다. 이미 데이먼의 성격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던 듯 했다.
“[이 여자애 누구예요, 데이먼? 아는 사람이에요?]”
“[왜?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도 데리고 왔을까 봐?]”
데이먼이 씩 웃어 보이며 말한다. 그는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주고는 내게 어깨동무를 해 보인다.
“[이 친구는 강해일이란 친구야. 나이는 17살이고. 오늘 부로 나린의 새로운 멤버지.]”
그 말에 남자 아이의 눈썹 한 쪽이 쓱 올라간다. “[강해일? 얘가 한아린인이란 말이예요? 완전 울랜인처럼 생겼는데?]”
“[그치? 나도 처음에 깜짝 놀랬다니까.]”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던 어린 여자 아이도 슬그머니 뒤에서 나오며 내게 관심을 표한다.
"[그런데 메리니아에는 이제 더 이상 수감 안 된 한아린 애들 없었잖아요. 이 언니는 어디서 데려온 거예요?]”
데이먼은 씩 웃어 보인다. “[그거야 메리니아에서 데리고 온 게 아니니까 그렇지. 이 친구는 한아린에서 왔어.]”
“[한아린이요?]” 남자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설마 오늘 그 한영고 애들 대피시키면서 데려온 거예요?]”
“[빙고.]”
남자 아이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곤 씩 웃으며 기름때 묻은 장갑 한 쪽을 벗어 손을 내민다.
“뭐, 어찌됐건 오해해서 미안하다. 나는 이건우야, 이건우. 나이는 18살이니까.. 너보다 한 살 많네? 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
“아.. 네.”
장갑을 벗은 그의 손에도 여전히 기름때가 묻어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가볍게 손을 잡아 악수를 받아준다.
그걸 본 어린 여자 아이도, 경계를 풀고 폴짝 뛰어와서 내 다른 쪽 손을 꼭 붙잡는다.
“그럼 이제 언니도 여기서 쭉 같이 지내는 거야? 너무 좋아! 나는 송초아야! 나린에는 여자가 나랑 유라 언니밖에 없어서 슬펐는데 언니까지 하면 이제 셋이야! 우리 앞으로 진짜 재미있게 지내자! 아이스크림도 먹고,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방방 뛰며 말을 늘어놓자, 잠자코 있던 더 나이 많은 여자 아이가 앞으로 나와 아이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진정해, 초아야. 안 그래도 정신 없을 텐데, 이 언니도 좀 적응할 시간을 주자고?”
그 말에 여자 아이는 머쓱해 하며 내 손을 놓는다. “헤헤. 내가 너무 신나 했나? 미안, 언니.”
나이 많은 여자 아이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얇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내민다.
“해일이라고 했나? 내 이름은 박유라야. 나이는 이건우랑 똑같이 18살. 초아 말대로 나린에는 여자가 별로 없어서 우리들끼리 여러모로 열심히 돕고 살아야 할 텐데,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도 어색한 웃음으로 대응하며 악수를 받아준다. 데이먼보다도 성숙해 보이는 유라 언니의 모습에 왠지 마음이 놓인다.
“야, 누가 보면 우리가 니네들 왕따라도 시킨 줄 알겠다? 우리가 여자애들 배려를 얼마나 잘해주는데.” 이건우 오빠가 삐죽댄다.
"배려 같은 소리하고 있네. 맨날 너네들이 뛰어다니면서 어지럽혀 놓은 거 치우는 사람이 누군데.”
“그건-”
그때 데이먼이 둘 사이에 끼어든다.
“[자자, 싸움은 이따가들 하시고. 너네 지금 바쁘지 않아? 하제랑 가윤이 뒤 봐주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유라 언니는 건우 오빠에게 눈을 한번 흘기고는 데이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건 진작에 다 끝났어요. 방금 빼돌린 한아린 애들 들어있는 트럭 타고 국경 넘는 거 확인했거든요. 그 애들 키로아 데려다주고 나면, 다시 메리니아로 돌아올거예요.]”
“[오, 일 처리 신속한데.]” 데이먼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그야 우린 누구와는 달리 시도 때도 없이 쓸데 없는 장난 치지 않으니까요.]” 유라 언니가 데이먼을 한 번 째릿 노려보며 말한다. “[이번에도 해일이 데리고 오면서 이상한 장난 쳤죠?]”
“아, 맞다! 혹시 너도 그거 당했니? 그거, 그 조각상한테 뽀뽀.. 하는 거?” 건우 오빠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묻는다.
"아.. 네.." 내가 머쓱하게 말한다.
그와 동시에 건우 오빠와 데이먼이 참다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유라 언니는 그런 두 사람의 머리통을 쥐어박는다.
“[이거 전혀 웃을 일 아니거든요! 당사자 기분은 생각도 안 하고..] 그리고 이건우 너는 자기도 한 번 당한 주제에 뭐가 웃기다고 깔깔 대고 있어?”
“맞아요! 둘 다 완전 못됐어!” 초아도 작은 주먹을 휘두르며 말한다.
“[아, 미안, 미안. 그냥 그 생각만 하면 항상 너무 웃겨서. 이제 생각해보니 유라 너가 당했을 때도 기억나고.]” 데이먼이 말한다.
“아, 나도 박유라 너 할 때 기억난다. 안에서 카메라로 보고 있었거든. 그때 진짜.. 풉!”
결국 둘은 다시 숨이 넘어갈 정도로 깔깔대기 시작한다. 유라 언니의 볼이 새빨개진다.
“아! 진짜! [제발 철 좀 들어, 철 좀!]” 그녀는 건우 오빠 발을 한 번 세게 밟고는 홱 돌아서서 방 한 쪽의 유리문으로 나간다.
건우 오빠는 발을 부여잡으며 얼굴을 찌푸린다. “[아오.. 같이 놀렸는데 왜 나만 맞는 거예요?]”
“그럼 내가 공평하게 만들어줄게.” 초아는 그 말과 함께 작은 발로 데이먼의 발등을 쾅 찍고는 유라 언니를 따라 쪼르르 밖으로 나간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그저 얼떨떨하게 쳐다본다. 굉장히 정신 없는 조합이었다.
“[아야.. 초아도 힘 많이 세졌네.]” 데이먼이 발등을 문지르며 말한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 유라보고 해일이한테 아지트 좀 소개 시켜주라고 하려 했는데.]”
“[뭐 그런 걸 걱정 해요. 내가 해주면 되지.]” 건우 오빠가 말한다. 그러곤 내 쪽을 돌아본다. “괜찮지? 내가 해 줘도.”
“네? 아, 그럼요.”
“[좋아. 그럼 나는 이만 다시 올라가본다. 할 일이 좀 있거든. 이따 나머지 애들 돌아오는 시간 맞춰서 다시 내려올게.]”
데이먼이 다시 타고 내려온 봉 쪽으로 다가가며 말한다. 그가 다시 원형 판 위로 올라서자, 윙 소리와 함께 판이 위로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한다.
“[예, 예. 이따 봐요.]”
데이먼은 가볍게 손 인사를 하고는 원형 판 위의 버튼을 하나 밟는다. 판은 점점 가속도가 붙더니 순식간에 구멍 위쪽으로 사라진다.
건우 오빠가 나를 돌아본다. “그럼 우리도 이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