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탐사가 소나 화면으로 샬롯 일행의 동태를 살폈다. 노투르노로 접근하던 붉은 점 세 개가 화면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샬롯과 대산, 그리고 안단테였다. 다섯 개의 붉은 점은 그대로였다. 나머지 레아 일행이었다. 또 다른 두 개의 점은 무리지어 있는 다섯 개의 점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파루파를 닮은 수중 전투 로봇인 파워버블 2기가 레아 일행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접촉물 1(샬롯), 2(대산), 3(안단테)이 탐지 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음탐실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기만에 성공한 건가? 나머지 접촉물들은?”
함장은 수신기에 대고 소리쳤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파워버블 1, 파워버블 2가 접촉물의 600미터 전방에서 접근 중입니다.”
노투르노의 함장은 한숨을 돌렸다. 긴장이 다소 풀린 함장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중앙통제실의 부함장과 부사관들도 함장의 분위기를 보고서야 눈치껏 안도했다. 접근하던 접촉물 세 개는 제거된 것 같았다. 그리고 전방에 정체해 있는 다섯 개의 접촉물은 파워버블들이 처리할 것이다. 그때였다. 조타실에서 이상한 보고가 들어왔다.
“중량보상탱크 수치가 이상을 발견했습니다. 노투르노의 함미 중량이 상승했습니다.”
중량의 변화는 잠수함의 잠수와 부상 상태를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뭐? 얼마나?”
함장의 짜증 게이지도 덩달아 상승했다.
“약 190킬로그램 정도입니다.”
샬롯과 대산, 그리고 안단테의 체중을 더한 값과 같았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이 지랄인 거야? 어떤 놈들이 무임승차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함장은 미미한 중량의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함장이란 직함으로 위세를 떠는 것은 거르지 않았다. 함장은 후신에 가담하고 나서야 그동안 잊고 있었던 권력의 참맛을 되찾았다. 그것은 유괴 살인의 죄목으로 교도소에 수감되면서부터 박탈당한 달콤함이었다. 누군가를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짜릿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는 더욱 흥분했다. 이제 유괴 살인을 밥 먹듯 해도 교도소에 가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함장은 그런 세상이 오래 지속되기를 원했다.
“밸러스트 탱크 이상 아니야? 사출관의 충수장치는 점검했어?”
“모두 이상 없습니다.”
“카라, 이 빌어먹을 놈들이 쓰레기를 팔아넘긴 거 아냐?”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기관장은 뭐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기관장님은 기관사와 함께 함미에서 중량 이상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기관실에 연결해!”
노투르노의 기관실에서 요란한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기관장은 통신기기가 부착된 벽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갑자기 울어댄 통화기에 기관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심통 사나운 얼굴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뭐가 문제야?”
수화기 저편에서 함장이 다짜고짜 내질렀다.
“낸들 압니까? 지금 둘러보고 있으니 안달복달하지 말고 진득하니 앉아서 기다려요.”
“뭐야? 너 말 본새가 왜 그래? 죽고 싶어 환장했어?”
“아, 거, 말 많네. 아니꼬우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으시던지.”
기관장이 수화기를 부서져라 내리쳤다.
‘뚜-’
그리고 중앙통제실과의 교신이 끊어졌다.
“애초에 이런 고물 잠수함 따위는 타질 말았어야 했어. 나는 살인마 체질이란 말이야. 그런데 이게 뭐야? 카라의 깡통들이나 실어 나르는 배달꾼 노릇이나 하고 자빠져 있으니 속 터져 미치겠네.”
기관장은 주먹으로 금속 벽면을 때렸다.
“이번에 크로아티아에 도착하면 나도 신나게 총질을 해댈 겁니다. 나도 이런 건 딱 질색이에요. 거들먹거리던 놈들을 다 쏴 죽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해요.”
쪼그려 앉아서 사출관의 철판 이음매를 들여다보던 기관사가 떠들었다.
“네 놈이 뭘 아는구나. 사람 죽이는 재미가 세상에서 제일이지. 제일 먼저 테러를 시작한 놈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난 놈들이라니까. 아주 존경해. 우리 같은 족속들이 한바탕 놀 수 있는 판을 쫙 깔아줬잖아. 안 그래?”
“큭큭큭, 그 놈들 아니었으면 교도소에서 평생 썩을 뻔했다니까요. 우리 교도소에서 종신형 받은 놈들은 거의 모두 후신에 가담했을 걸요.”
“너도 종신형이었냐? 뭐로?”
“특수강간살인요.”
“크크크. 더러운 놈.”
“큭큭큭 그러는 기관장님은요?”
“연쇄살인! 난 동성애자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거든. 도저히 그 꼴을 못 봐주겠더라고. 그래서 한 달 동안 동성애자들 열두 명을 모두 죽여 버렸지.”
“와우. 뒤집어지십니다. 근데 후신은 왜 카라의 안드로이드까지 구입한 겁니까? 우리들만으로는 부족하답니까?”
“좀 더 크게 놀아보려나 보지. 난 후신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도 몰랐어. 나 같은 놈들이 세상에 정말 많더라고. 큭큭큭.”
“후신은 착한 척 위선 떠는 약한 놈들은 쓸어버리고, 우리처럼 본능에 충실한 강한 자들로 세상을 채우자는 건가요?”
“그렇지. 그게 우리들의 세상이지. 근데, 제기랄, 이 고물은 뭐가 문제인거야?”
기관장이 툴툴거리며 한창 점검 중이던 기관사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내내 쪼그려 앉아있던 기관사가 끄응, 허리를 펴고 뒤를 돌았다. 순간 기관사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기관장의 등 뒤에서 생전 처음 본 이상한 물체가 휙 지나가고 있었다.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잖아?”
“기관장님 뒤로 방금 뭔가가 지나갔어요.”
“뭔데?”
기관장이 돌아보려다가 멈칫했다. 그의 콧잔등으로 굵은 물방울이 하나 뚝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투두두둑 천장에서 물이 방울져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관장과 기관사가 동시에 그들의 머리 바로 위쪽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한 것이 천장에 찰싹 붙어 있었다. 그것은 어렴풋해서 얼핏 보면 있는지 조차 모를 형체를 하고 있었다. 실상 몸체는 투명해서 천장이 그대로 올려다보였다. 그런데 물기가 묻은 윤곽은 사람의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이상한 물체에서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놀랐나? 놀랐겠지?”
안단테의 목소리였다. 천장에 붙어 있는 것은 안단테였다.
“뭐야?”
기관장과 기관사는 난데없이 들려온 사람 소리에 기겁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장에 매달린 안단테는 입을 하마처럼 쩍 벌렸다.
“텁!”
안단테는 기관장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 입술을 오므리고 기관장의 몸을 훑었다. 마치 입속에 넣었던 기다란 사탕을 빨아먹으며 빼내는 것 같았다.
“추릅!”
안단테가 기관장의 유체를 빨아 먹었다. 유체가 빨린 기관장의 몸은 풀썩 무너져 내렸다. 두 동공은 초점을 잃고 백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기관장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역시, 인간쓰레기들은 맛이 떫어.”
그러더니 안단테가 기관사도 날름 삼켜버렸다. 기관사도 결국 껍데기만 남은 시체로 허물어져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랬다. 안단테가 가진 고래의 힘은 유체 섭식이었다.
“아까 내가 들은 게 인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어?”
샬롯이 죽어버린 기관장과 기관사가 나누었던 대화에 분개를 토했다.
“나는 유체를 먹은 게 아니야. 쓰레기를 먹은 거지. 구역질이 나려고 그래.”
안단테는 먹기 싫었다는 투였다.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쓴 법이야.”
대산이 안단테를 짐짓 위로했다. 그였어도 저런 것들은 먹기 싫었을 것 같았다.
“후신의 무리들은 살아남을 일말의 가치도 없어. 먹기 싫어도 모두 먹어치우라고.”
대산이 말하고는 샬롯을 따라서 통로를 건너 중앙통제실로 향했다. 그제야 안단테가 천장에서 스르륵 내려왔다. 그때, 승무원 하나가 함미의 안드로이드 저장고에서 기관실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그 승무원은 천장에서 으스스하게 내려오는 안단테의 발바닥을 목격했다. 그는 저게 대체 뭔가, 하고 놀라서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안단테가 털썩 바닥으로 내려서서야 승무원은 정신이 돌아왔다.
“유령이다! 유령이야! 잠수함에 유령이 나타났다!”
목청 좋은 승무원이었다. 함내의 모든 승무원들이 그 고함을 듣고, 우루루 몰려나왔다.
“뭐라고?”
“유령이래.”
“미친 놈! 누가 장난질이야? 걸리면 죽는다!”
목청 좋은 승무원은 안단테가 먹었다. 몰려나온 승무원들은 대산이 처리하고 있었다.
“퍽, 퍽, 퍼버벅!”
대산이 승무원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길을 뚫었다. 주먹의 충격을 받은 승무원들의 육체에서 유체가 튕겨져 나왔다. 대산이 가진 고래의 힘, 유체 해리였다. 육체에서 탈락한 승무원들의 유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은 여기에 있는 데 자신의 몸은 저기에 맥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승무원들의 유체에게는 어리벙벙할 시간도 오래주어지지 않았다. 샬롯과 대산에게 연이은 난타를 당한 승무원의 유체들은 회복력을 잃고 그대로 산화해버렸다.
“부웅!”
승무원 하나가 대산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가격당한 대산의 어깨가 푹 파이며 유체 입자가 날아갔다. 그러나 흩어졌던 유체 입자는 금세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왔다.
“이게 대체 뭐야?”
당황한 승무원들은 중앙통제실 쪽으로 엎치락뒤치락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도망가면서도 손에 잡히면 닥치는 대로 휘두르고 집어던졌다.
“함장님! 유령들이 다가옵니다. 여기서 나가야 돼요.”
“젠장, 우리는 바다 속에 갇혀서 죽기 싫다고. 빨리 잠수함을 물 위로 띄우라고!”
중앙통제실로 쏟아져 들어온 승무원들의 몰골이 산사람 같지 않았다.
“이 놈들이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거야? 또 패싸움이냐?”
노투르노에서의 패싸움은 일상 다반사였다.
“멍청한 놈아! 잠수함에서 나가야 된다니까! 어서 잠수함을 부상시켜!”
승무원 하나가 함장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이 놈이, 어딜!”
함장이 자신에게 매달린 승무원을 손바닥으로 후려갈겼다. 조종간 모서리로 날아간 승무원은 머리가 박살나서 즉사했다.
“어......, 어....... 저거, 뭐야?”
드디어 함장의 눈에도 샬롯 일행이 보이기 시작했다. 승무원 하나가 대산의 주먹을 맞고 쓰러지고 있었다. 샬롯이 로우킥으로 튀어나온 유체를 두 동강냈다. 공포에 질린 부함장이 권총을 빼들었다.
“탕!”
부함장이 발사한 총탄이 대산의 가슴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대로 통제실의 천장을 뚫고 나갔다. 뚫린 구멍으로 물줄기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우리를 다 죽일 셈이야?”
함장은 부함장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서둘러 통신 스위치를 더듬어 찾았다.
“조타실! 조타실! 빨리 부상해! 당장 부상하란 말이야!”
그러나 함장의 말이 들리는 승무원은 노투르노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태 목숨이 붙어있는 건 함장과 부함장뿐이었다. 샬롯이 권총을 든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부함장에게 다가갔다.
“매혹”
샬롯이 부함장의 눈을 바라보고 속삭였다. 그러니까 부함장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이내 부함장은 들고 있던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로 가져다 대었다.
“제발.........”
부함장의 의지는 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은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의 주인은 이제 자신이 아니었다. 부함장의 것이었던 그 육체의 주인은 바로 샬롯이었다. 샬롯은 유체 호림이란 고래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탕!!”
부함장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를 댄 반대쪽 관자놀이로 총알이 핏줄기와 함께 뚫고나왔다. 부함장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그새 함장은 노투르노로 운반 중이던 안드로이드들의 작동 전원을 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