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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사랑이었다
작가 : 깡대지
작품등록일 : 2016.8.31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는 여자와, '사랑이었다'는 남자.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사랑'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렇게 사랑이라는 퍼즐을 짜맞춰 보려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기묘하면서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

 
그 여자의 첫 번째 조각: 악몽이었다 (2)
작성일 : 16-09-23 17:07     조회 : 291     추천 : 0     분량 : 7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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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 신현욱. 나 어때? 보면 볼수록 멋있지 않아?”

 “…….”

 

  남의 뒤집어지는 속도 모르고 생글거리는 신현욱을 나는 냉동된 듯이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 남자의 발을 밟고 태연하게 지나갔다. 신현욱은 과하게 자기 스니커를 붙잡고 아파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나는 태연하게 학관 안으로 걸어 들어 갔다.

 

  괜히 저 남자 때문에 잡아먹은 시간이 아까웠다. 더 이상 생각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강의실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등 뒤에서 신현욱의 목소리가 메아리쳐서 울렸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야! 잠깐 기다려봐! 저, 저기…. 유….”

 “다음, 유청하!”

 “네! 여기 왔습니다!”

 

  내가 앞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강의실 안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교수님이 출석부를 들고 학생들을 차례로 호명하고 있었다. 나는 때마침 내 이름이 불릴 때, 들어갔으니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간 셈이었다. 교수님은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며, 어서 자리에 들어가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래서 나는 순식간에 수십 명에 이르는 청강생 모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들과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덤덤한 척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아침에 누구인지 모를 하느님한테 감사하다고 기도했던 걸 취소하고 싶었다. 심술 고얀 신이 내가 평생에 걸쳐 겪을 법한 불행이 모두 오늘 하루에 몽땅 몰아넣은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속에서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학점에 억지로 초점을 돌려 강의에 귀를 기울이면서 억눌렀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강의 내용은 모두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내가 오늘 겪은 사소한 불행부터 하나씩 잘근잘근 씹어대다가 ‘신현욱’에 대한 난관에 봉착하면 모든 사고 회로가 기능을 멈췄다. 정말 그 남자를 둘러싼 건 수수께끼투성이였다.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분명히 목숨을 잃은 남자가, 어떻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히 내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던 걸까.

 

  혹시 그 때 죽은 줄 알았던 건 신현욱을 가장한 다른 남자였던 걸까. 아니면 지금 내가 모르는 어디선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어디선가 퍼져서 좀비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되었다든가. 아니, 좀비라면 나는 진즉에 그 남자에게 목덜미를 물리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까.

 

  내 지능 수준으로는 아무리 두뇌 운동을 해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골머리를 썩이면서까지 그 일에 매달려야 하나 싶기도 했다. 떼어내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이제 두 번 다시 얽힐 일도 없을 텐데.

 

  이제 더 이상 그런 곳에 내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의 내내 그곳으로만 돌진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 집에 가면 들어가자마자 바로 침실로 달려가야지.

 

  그렇게 길고 길었던 수업도 3시간 마라톤을 달린 끝에 마지막에 다다랐다. 나는 얼른 전공 서적을 가방에 챙겨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십 명의 청강생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우르르 강의실 문턱을 넘어가느라 그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하지만 집에 가면 취할 수 있는 달콤한 휴식을 생각하고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버틴 것도 잠시였다.

 

 “꺄악!”

 “우와, 대박!”

 

  갑자기 어디선가 여자들의 환호에 겨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탄성을 내질렀다. 대체 누구를 보고 저런 난리들을 치는 지는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나는 말없이 앞만 보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옆에서 갑자기 누군가 내 팔목을 낚아챘다. 나는 파도에 떠밀리듯이 힘없이 그쪽이 이끄는 대로 떠밀려갔다. 갑작스레 당한 일에 머릿속에 천둥이 치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물 예술이다, 진짜.”

 “근데 저 사람은 누구지?”

 “뭐야? 여자 친구야?”

 

  여자 친구라니, 그런 끔찍한 소리를. 저 여자들이 수군거리는 대상은 분명 나이리라. 그도 그럴게, 난데없이 불쑥 나타나서 내 팔목을 잡은 채 날 납치하며 달려가고 있는 이 남자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겉모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이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은 형편없는 학습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바로 신현욱이었다.

 

 “……이거 놔!”

 

  사리 판단이 되자마자 나는 모든 힘을 다리에 실어 그에게 저항했고, 그의 굵은 손목에서 내 팔을 빼내었다. 그러자 신현욱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느닷없이 납치를 당할 뻔 한 게 누구인데, 이 남자는 여전히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 이거 범죄인 거 몰라?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아니, 아까 수업 들어가야 돼서 안 된다고 했잖아. 이제 끝났으니까 시간 되잖아?”

 “…….”

 

  이 남자의 철면피는 대체 얼마나 두꺼운 걸까. 화가 나는 걸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실소를 지었다. 그런 나를 신현욱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끔벅거리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정말 강한 환멸을 느꼈다. 내 인생을, 나를 그렇게 구렁텅이로 끌고 내려갔으면서 10년이 지난 이제 와서 갑자기 나타나 다시 그 ‘악몽’을 일깨우려고 하는 걸까. 난 신현욱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웃기지 마! 내가 네 하녀인 줄 알아? 너한테 다 맞춰주게? 뭘 믿고 그렇게 자기 멋대로야? 뇌가 청순하면 눈치라도 있던가! 꺼져!”

 “아니! 나는….”

 

  더 이상 그 남자와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돌아서 걸어가는데, 신현욱이 그 긴 다리로 금방 내 뒤를 따라와서는 내 어깨를 붙잡고 나를 돌려세웠다. 나는 그 면상을 보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한쪽 손으로 그의 왼쪽 뺨을 내려쳤다. 신현욱은 뺨을 얻어맞자 뒤로 조용히 한 발자국 물러섰다.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

 “…….”

 “재수 없으려니까 별 게 다 진짜….”

 “…미안한데, 내가 진짜 아무한테나 이러는 게 아니거든? 잠깐만, 제발 잠깐만 시간 좀 내줘. 부탁이야.”

 “싫어.”

 

  신현욱은 나한테 뺨까지 맞았으면서도 포기를 모르고 나한테 애걸복걸하며 매달렸다. 하지만 나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하, 아무래도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본성과는 다르게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은 채 애처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구걸하고 있었다. 나는 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경찰을 불러야 떨어질래? 그만하지?”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까지 날 밀어내는 건데?”

 “그럼 너야말로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달라붙는 건데?”

 “…….”

 

  그리고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10년 동안 참아왔던 내 감정이, 울분이 임계점을 넘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내가 참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아직도 네 하녀로 보여? 내가 왜 너한테 맞춰줘야 하는데? 넌 네가 태양인 줄 알지? 세상이 널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아? 꿈 깨! 넌 나한테 명왕성에 불과해! 너무나 작고 초라해서 태양계에서도 쫓겨난 명왕성! 너 나한테 아무 것도 아냐. 그만큼의 가치도 없어! 알아?”

 “……그래서 내가 너한테 맞춰줬잖아.”

 “뭐?”

 “네 강의 끝날 때까지 3시간을 그 앞에서 기다렸어. 그러니까 30분, 아니 3분만이라도 나한테 시간 내줄 수 없어? 우리, 서로 할 말이 꽤 많아 보이는데.”

 

  그 말에 이번엔 내가 말문이 막혔다. 막상 한 번 말문을 트고 보니 그동안 내 속에 고여서 썩인 응어리가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이 녀석을 피한다고만 해서 해결 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분명히 차에 치여서 이 세상을 하직했던 녀석이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마냥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는지도 궁금하기도 했다. 정말 그 신현욱이 맞나 싶기도 했고.

 

  난 그 남자에게 딱 30분이라고 못 박아놓고, 그 시간이 지나면 절대로 매달리지도 집착하지도 날 곤란하게 만드는 모든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받아낸 다음에 그와 함께 학교 근처에 있는 한 아담한 카페에 들어갔다. 사람이 10명 남짓한 정도만 있어도 수용할 자리가 없는 굉장히 작은 곳이었다. 그곳으로 간 이유는 단 하나 뿐이었다. 괜히 엉뚱한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였다.

 

 “주문할까?”

 “…….”

 

  카페 안에 들어서자마자 신현욱은 나한테 세차게 맞아서 새빨개진 왼쪽 뺨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생글거리면서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나는 괜히 그의 얼굴을 외면했다. 카페 카운터에 서 있는 여직원은 ‘어서 오세요’라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건넨 다음에 신현욱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계속 넋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고의적으로 그를 무시하는데도 신현욱은 자연스레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커피 프라페 하나 주세요. 프라페는 우유 좀 많이 넣어주시고, 거품 좀 많이 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아메리카노는 최대한 연하게 해주세요. 시럽이나 설탕은 빼주시고요. 또….”

 “…….”

 

  난 신현욱을 놀라서 신현욱을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정말 신현욱과 똑같은 껍데기를 가진 저 남자는 알맹이도 신현욱인 모양이었다. 내가 입 밖으로 한 마디 꺼내지 않았는데도 내 커피 취향을 정확히 줄줄이 읊고 있었다. 신현욱과 눈을 마주 친 여직원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이 멍한 얼굴로 가끔 고개만 힘겹게 끄덕일 따름이었다. 솔직히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신현욱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 여직원에게 작업을 거는 장면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유청하…. 맞지? 여기 앉자.”

 “…….”

 

  주문을 마치고 신현욱은 능청스럽게 한 구석에 있는 테이블의 의자 하나를 빼면서 내 이름을 말하며 손짓했다. 내 이름을 말할 땐 약간 더듬거린 걸 보니 가물가물한 모양이었다. 커피 취향은 지금까지 기억하면서, 그보다 짧은 이름을 까먹다니. 이상할 노릇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옮겨 그 자리에 앉았고, 신현욱은 나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착석하자마자 핸드폰을 꺼내서 스톱워치 기능을 켜서 30분을 맞춰놓았다.

 

 “하하, 굉장히 착실해졌네.”

 “1분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너한테는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했다. 이제 오늘을 끝으로 날 가둬왔던 과거의 허물은 다 벗어버리리라. 나는 대놓고 공격적으로 말했는데도 신현욱은 입가에 걸어놓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흔쾌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날 그렇게 잡아 세운 거야?”

 “보고 싶었어.”

 

  신현욱은 그렇게 말했다. 너무도 간단하게. 가장 뼛속 깊이 증오하고, 찢어발기고 싶은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들었을 때의 이 오묘한 기분을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일단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기가 막혀서 그냥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신현욱은 그런 내 반응과는 관계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너…정말 신현욱 맞아?”

 “응. 나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야 당연하지….”

 

  난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녀석의 멱살을 잡고 늘어지며 쏘아붙였다. 신현욱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보니 더 가소롭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동안 날 아프게 찔러왔던 과거의 파편들을 모두 그 남자에게 쏟아 붓고 싶었다. 내가 그 남자 때문에 받아야 했던 상처와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내가 널 어떻게 잊어! 날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는데! 너 때문에 난 잠을 자도 잘 수 없었고, 먹어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알아?”

 “청하야….”

 “내 이름 부르지 마! 너는 어이없게 죽어버렸다고 해서 이 분을 풀 수도 없었는데! 뭐? 이제는 뜬금없이 살아 돌아와서 보고 싶었다고? 장난해? 지금?”

 “왜 그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젠 또 순진하게 모른 척 하는 거야? 어떻게 네가 그래?! 진짜 말이 안 나온다.”

 “아니, 나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래. 가르쳐 줘. 네가 왜 이러는지.”

 “……왜 이러냐고? 나야말로 묻고 싶다! 너야말로 왜 이러는 거야? 이제 와서! 난, 난 지금이라도 널 잊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넌!”

 “…….”

 “왜 갑자기 지금 나타나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 왜?”

 

  결국 내 입으로 끝내 꺼내고 싶지 않았던 말이 나오고 말았다. 비참하다. 그랬다. 이 남자와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수십 개의 칼날로 그 자리에서 난도질당한 것처럼 참담했다.

 

  그 때. 고등학교 2학년, ‘낭랑 18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꿈이 많고 희망이 넘실거렸던 시절의 난 이 남자에 의해 처참하게 부서졌다. 나에게 잠깐 보여주었던 그 조각 같은 외모에, 그 화려한 입담에, 그 곰살궂은 태도에 쉽게 넘어가서 마음을 주는 게 아니었다.

 

 한없이 순진하고 멍청했던 순정의 끝은 배신과 경멸이었다. 신현욱, 이 남자는 개미를 밟아 죽이듯이 내 연정을 언제 있었냐는 듯이 짓밟아버렸다. 만약 그 정도였다면 그 시절에 있었던 아픈 추억 정도로 나도 회상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교실에서 아니 학교 전체에, 내가 그와 사랑을 나누었던 거라 우리의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이라 여겼던 행위가 담긴 사진들을 뿌리면서 나에게 공개적인 ‘창녀’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힘겨운 줄다리기 했던 천진했던, 더없이 순수해서 내겐 너무 안타까웠던 내 외사랑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때문에 단순히 남자에 고픈 천박한 걸레 정도가 되어서 학교에서 두고두고 조리돌림을 당하였다. 천하의 기만적인 악녀이자 창녀로 나는 벼랑 끝에 몰렸고, 끝내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없었다.

 

  세상은 힘이 없는 자는 쉽게 죄인으로 만들어버렸고, 그렇게 한 번 죄인이 되면 고개조차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무겁게 짓눌러버렸다.

 

  나는 세상이 너무 무서웠고, 사람은 그보다도 훨씬 더 무서웠다. 그래서 집 밖으로 한동안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 간신히 검정고시를 통해서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하고, 간신히 치열한 입시 경쟁률을 뚫고 대학생이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버텨왔는데,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이렇게 10년 동안이나 삼키고 삼켜왔던 말을 그 남자에게 전부 쏟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하고픈 말이 너무 많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것들이 성대를 짓눌러서 오히려 목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그 자리에서 그 녀석의 멱살을 잡은 채 죽을힘을 다해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가증스럽게도 두 눈에 습기가 가득 찬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됐어. 너한테 30분이나 쓸 필요도 없어.”

 “잠깐만! 가지 마….”

 

  신현욱은 카페를 벗어나려는 내 팔목을 붙잡았다. 나와 그 남자에게 주문된 커피를 가져다주려다가 심각해진 이쪽 분위기 때문에 커피 두 잔을 얹은 쟁반을 들고 덜덜 떨며 어색하게 서 있던 여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지만. 신현욱은 굳이 나를 돌려세우더니 나한테 애절하게 매달리면서 말했다.

 

 “전에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전부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하지만 너한테 옛날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여기까지 와서 대체 무슨 말을 또 하고 싶은데?”

 “……그 때 난 널 사랑했었어.”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신현욱의 의도와 꿍꿍이가 무엇이던 간에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끔찍한 악몽이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지독한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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