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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길을 잃은 날에
작가 : 연시
작품등록일 : 2018.12.21

불에 타 죽은 고등학생이 저승에서 길을 잃은 되고
망자인 상태로 과거의 이승으로 돌아가게 된다.

과거에서 펼쳐지는 '오늘' 이야기.


*로맨스판타지 장르로 선택되었지만 '로맨스'가 주는 아닙니다.

 
전생 기억법
작성일 : 18-12-29 00:09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7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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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내일이 구룡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뛰었다.

  석곤을 찾기 위해 천룡관을 나섰던 세 천룡이 멈춰 섰다.

 

  “대장군 아니야?”

 

  “어디 가시지?”

 

  “뭐해? 따라가야지.”

 

  하담, 겨레, 혜성은 차례대로 내일을 발견하고선 그를 따라 뛰었다.

 

  “대장군!”

 

  내일이 멈춰선 곳은 마구간이었다.

  황급히 말 한 필을 풀고서 나오던 도중 세 천룡과 마주쳤다.

 

  “비켜.”

 

  “어디 가세요?”

 

  내일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다.

  하담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일을 바라봤다.

 

  “비켜. 나중에.”

 

  내일이 그들을 밀치고 말에 올라탔다.

  혜성이 눈치 빠르게 말 한 필을 풀었다.

  겨레도 그를 따르자 하담이 머뭇거렸다.

  아직 말을 탈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지는 않았다.

 

  “너희···.”

 

  “타.”

 

  혜성이 말에 올라타 하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담이 손잡기를 머뭇거리자 혜성이 재촉하듯 손을 흔들었다.

 

  “빨리 타. 대장군 놓친다.”

 

  겨레가 먼저 내일을 따라 출발했다.

  하담이 혜성의 손을 붙잡았다.

 

  “설명하는 게 더 귀찮으니까.”

 

  같이 가는 게 나아.

  혜성이 뒤에 하담을 태우고 고삐를 당겼다.

  순식간에 세 마리의 말이 궁을 질주했다.

 

  구룡성 대문과 가까워지니 문 앞을 지키고 선 무사들이 보였다.

 

  “비켜!”

 

  내일이 검을 꺼내 들고 속도를 높였다.

  무사들이 창으로 문을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내일이 그대로 벨 듯이 검을 높이 들자 무사들은 머뭇거리다 길을 텄다.

  빠른 속도에 미처 문을 다 열지 못한 무사들이 공포심에 주저앉았고 문이 부서졌다.

  파편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부서진 문의 구멍으로 겨레와 혜성의 말이 내일을 따라 질주했다.

  무사들은 멍하니 부서진 문을 바라봤다.

 

  내일은 곧장 용왕각을 향했다.

  용왕각과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발굽 소리에도 묻히지 않는 울음소리가 내일의 심장을 조여왔다.

  내일은 대문 앞에 다다르자 미끄러지듯 말에서 내렸다.

  뒤이어 달리던 세 천룡도 말에서 뛰어내렸다.

 

  늘의 처소인 유성각 주변에 무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며 반쯤 열린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안에는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울부짖는 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켜.”

 

  내일이 무사들을 밀치고 유성각으로 들어갔다.

  무언가가 내일의 볼을 스치며 벽에 부딪혔다.

  내일은 깨진 호롱을 밟고 천천히 늘에게 다가갔다.

 

  “악! 아악!”

 

  늘이 반쯤 미쳐버린 사람처럼 손에 닿는 것들은 족족 던져버렸다.

  늘을 말리지 못하고 밀린 서해가 내일을 붙잡았다.

 

  “내일아! 늘이···.”

 

  “어머닌 나가 계세요.”

 

  내일은 늘에게서 등을 돌려 서해를 보호했다.

  입을 막고 눈을 질끈 감은 서해의 눈가에 깊게 주름이 팼다.

  내일은 무사에게 서해를 넘기고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늘이 숨을 헐떡거리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내일이 재빨리 늘을 받아들고 바닥에 깨진 것들을 발로 밀었다.

 

  “늘아···.”

 

  늘이 내일의 멱살을 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눈은 퉁퉁 부은 지 오래였다.

  딸꾹질처럼 숨을 세다가 다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내일은 그런 늘을 힘껏 껴안았다.

 

  늘을 보는 내일의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늘이 우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고통이 제 것이 된 것 같았다.

  늘의 고통을 모두 가질 수 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져갈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늘을 안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늘아, 늘아. 나다.”

 

  내일은 늘을 감싸 안고 그녀의 귀에 볼을 맞댔다.

  몸이 타들어 갈 듯이 뜨거웠다.

  내일은 눈을 질끈 감고 늘의 호흡을 느끼며 천천히 그녀를 달랬다.

 

  “나다. 나야.”

 

  늘의 호흡이 천천히 진정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몸을 축 늘어뜨렸다.

 

  “늘아?”

 

  내일이 늘에게서 떨어져 늘을 살폈다.

  검지를 들어 그녀의 숨을 확인했지만, 숨이 통하지는 않았다.

  놀란 마음에 재빨리 맥을 짚었다.

  짧은 찰나였지만, 심장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희미하게 뛰는 맥박을 따라 내일의 한숨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기절했다.

  자세히 보니 몸 곳곳이 상처였다.

  어딘가에 찢긴 게 아니라 잡아 찢은 듯한 옷이 엉망이었다.

 

  내일은 조심스럽게 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주변을 살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폭주한지 모르겠다.

  내일이 늘을 안아 든 채 침상에 눕히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이불을 찾았다.

  그냥 덮어주기엔 이불도 엉망이었다.

  내일이 이불을 들고 유성각 문을 열자 그 앞에 서 있던 무사들의 관심이 내일에게로 향했다.

 

  “늘이는?”

 

  서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일을 붙잡았다.

 

  “기절했어요.”

 

  이마를 짚고 옆으로 쓰러지는 서해를 시녀들이 부축했다.

 

  “어머니 데리고 침소로 돌아가.”

 

  시녀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서해를 데리고 사라졌다.

  내일은 구석에서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못하는 옥란을 발견했다.

  그녀가 늘의 전담 시녀였다는 것을 기억해낸 내일이 옥란을 불렀다.

  옥란이 깜짝 놀라 재빨리 내일에게 허리를 숙였다.

 

  “이불이 망가졌으니 새것을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옥란은 고개를 숙인 채로 이불을 가지고 사라졌다.

 

  “대장군!”

 

  오 가문의 무사 사이에 섞여든 세 천룡이 질겁한 얼굴로 내일을 불렀다.

  내일이 이마를 쓸어 넘기며 유성각을 내려갔다.

 

  “왜, 왜 그러십니까?”

 

  하담이 상처가 아물지 않은 손으로 내일의 소매를 붙잡았다.

 

  “나도 모르겠다.”

 

  “늘 대장군이 맞지요?”

 

  겨레의 말에 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그러고 싶지만, 기류왕 문제도 있고 상장군 때문에 안 돼. 너희도 얼른 돌아가.”

 

  “싫습니다.”

 

  혜성이 처음으로 내일의 명령을 거절했다.

 

  “김혜성.”

 

  “늘 대장군 얼굴을 보게 해주십시오.”

 

  혜성의 말에 겨레가 내일의 눈치를 보며 혜성을 툭 쳤다.

 

  “저도 보고 싶습니다.”

 

  하담이 거들었다.

  내일이 헛웃음을 뱉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다.”

 

  “이미 문제는 많습니다.”

 

  혜성이 오 가문의 무사들을 돌아보며 꼿꼿하게 섰다.

  내일이 제자리에서 이마를 짚은 채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다 자리를 비워.”

 

  내일과 눈이 마주친 하담이 눈을 크게 떴다.

 

  “너희 말이야.”

 

  내일이 오 가문의 무사를 돌아봤다.

  오 가문의 무사는 잠시 저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더니 두 갈래로 갈라졌다.

 

  “유성각을 나오시면 다시 경비를 서겠습니다.”

 

  그들은 내일을 향해 짧게 인사를 올린 후 열을 맞춰 사라졌다.

  동시에 옥란이 자신의 몸보다 큰 이불을 안고 돌아왔다.

 

  “자, 잠시만요.”

 

  옥란이 먼저 유성각 안으로 들어갔다.

  내일과 세 천룡은 늘을 만나기 위해 유성각 계단을 올랐다.

  빠르게 이불을 깔고 나온 옥란이 문 앞에서 마주친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고맙다.”

 

  “아닙니다.”

 

  내일을 따라 마지막으로 유성각에 들던 혜성과 고개를 들던 옥란의 눈이 마주쳤다.

  옥란은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혜성의 얼굴을 보며 갸웃거리다 몸을 들썩였다.

  안뜰에서 마주쳤던 놈이었다.

 

  “구면이네.”

 

  혜성이 옥란을 향해 눈썹을 들썩이며 유성각 안으로 사라졌다.

  옥란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 채 탄식을 뱉었다.

 

  “아···.”

 

  내부로 들어온 세 천룡은 말을 잃었다.

  작은 전장이 따로 없었다.

  벽에 채 굳지 않은 피가 하담의 손에 묻어났다.

 

  “의원을 불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누이가 난동을 피운 덕에 쫓겨났다.”

 

  의원이 쫓겨난 뒤에 늘의 소식을 전해 들은 내일이었다.

 

  “시녀도 연유를 모른답니까?”

 

  “그냥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고 했어.”

 

  내일이 늘의 옆에 쭈그려 앉아 그녀의 이마를 쓸어 넘겼다.

  하얗게 질린 피부가 안쓰러웠다.

 

  “발이···.”

 

  혜성이 까맣게 더럽혀진 늘의 발을 발견했다.

  혜성의 말에 내일이 늘의 발을 잡아 확인했다.

  분명 유성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텐데 발이 더럽혀질 이유가 없었다.

  내일이 검지로 늘의 발바닥을 쓸자 그의 손가락에 검은 재 같은 것이 묻어나왔다.

 

  “그게 뭐죠?”

 

  하담 역시 고개 숙여 확인했다.

  내일은 그것을 엄지로 매만진 후 냄새를 맡았다.

 

  “탄 내.”

 

  “재요?”

 

  “이게 왜 누이 발바닥에···.”

 

  내일이 주변을 살폈지만, 그녀의 침소에서 탄 흔적이나 재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어나.’

 

  헉.

  마치 시공간을 통과한 것처럼 숨을 거칠게 토한 늘이 눈을 떴다.

  자신을 깨우던 천오는 사라지고 내일의 얼굴이 보였다.

 

  “늘아!”

 

  그리고 세 천룡이 그에게 바짝 붙어 늘의 얼굴을 확인했다.

  늘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선 입술을 깨물었다.

  오히려 깨고 나니 어디가 현실이었는지 구분되지 않았다.

  모든 생의 기억들이 뒤엉키며 늘을 괴롭혔다.

  마음이고 몸이고 머리고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수전증을 시작으로 온몸이 떨렸다.

  세게 깨물지 않은 입술에선 피가 터졌다.

 

  “늘아.”

 

  늘은 자신을 붙잡는 내일의 손길마저 털어내고 고개를 저었다.

  머리카락이 베개에서 아무렇게나 흐트러졌다.

  이것 저곳에서 튀어 오르는 새로운 기억 탓에 눈을 감아도 온전한 암흑을 찾을 수 없었다.

  머리를 찌르는 통증과 함께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다시 숨을 토했다.

 

  “아, 아.”

 

  늘이 간헐적인 비명을 내지르며 다리를 구르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아무리 눈을 막아도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승자의 표정을 짓던 칠칠과 근범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무언가가 폭발했다.

  버스가 추락하며 오름각이 무너졌다.

 

  헐떡이는 늘을 내일이 재빨리 껴안았지만, 늘은 내일의 어깨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하담이 경직된 얼굴로 늘을 바라보다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장군, 제 얼굴이 보이십니까?”

 

  늘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내일은 계속해서 머리를 박는 늘의 머리를 꽉 껴안았다.

  제압당한 늘이 몸을 들썩였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늘은 주먹 쥔 손으로 내일의 어깨를 밀 듯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늘아, 제발.”

 

  내일이 늘의 손마저 붙잡았다.

 

  늘은 절규했다.

  목 놓아 서럽게 우는 늘을 바라보니 내일도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뭐가 그리, 왜 그리 슬픈 걸까.

 

  목소리는 이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쉬어버렸다.

  그게 더욱 애처롭게 만들었다.

  겨레는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계속 보고 있자니 머리가 망가져 가는 기분이었다.

 

  늘은 그렇게 숨이 넘어갈 때까지 울다가 내일의 멱살을 붙잡았다.

  내일은 늘에게 간단히 가슴을 내주었다.

 

  “나를···.”

 

  겨우 쥐어짜는 목소리였다.

 

  “죽여.”

 

  늘은 굳은 내일의 얼굴과 마주 봤다.

  마치 시간을 멈춘 것처럼 누구 하나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긴장만이 시간을 세며 유성각을 돌았다.

 

  “오늘.”

 

  화가 잔뜩 오른 내일의 목소리였다.

  늘은 고개를 숙이다 내일의 칼집에 꽂힌 칼을 발견했다.

  혜성이 이상한 낌새를 먼저 눈치챘지만, 늘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늘은 내일을 밀치고 동시에 칼을 뽑아냈다.

  자신을 위협하기 위해 칼을 거꾸로 돌려 잡았지만, 내일이 재빨리 늘의 손을 쳐냈다.

  손목을 강타한 충격에 늘이 칼을 떨어뜨렸고 혜성이 떨어뜨린 칼을 발로 당겼다.

 

  “대장군!”

 

  “오늘!”

 

  내일이 늘의 양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너 대체 왜 그래?”

 

  악에 받친 내일의 목소리였다.

  늘이 그의 손을 쳐냈다.

 

  “내가!”

 

  늘이 비틀대며 일어섰다.

 

  “내가 나인 것을 흉내 내다···, 이 불쌍한 몸을 위해 살다가.”

 

  늘이 소리를 내자 모두가 거짓말처럼 입을 닫았다.

  간신히 뱉는 늘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그 불쌍한 몸과 머리가 전부 나인 걸 알았을 때! 내가! 내가···. 얼마나···.”

 

  늘은 고개를 쳐들고 눈물을 삼켰다.

 

  내 앞에서 나를 보고 있는 이 아이는, 내가 지독히도 보고 싶던 아이였다.

  숨 쉬는 이 삶은, 내가 지독히도 갖고 싶던 삶이었다.

  모두를 다 가졌는데 지옥 같았다.

 

  그때 내가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생각하며 나를 이해하고 달랬지만, 더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았다.

  나 혼자만 이 척박하고 잔인한 땅에 버려진 것 같았다.

  전생의 삶에, 현생의 삶에, 저승의 삶에 녹으며 나와 그 경계마저 희미해졌다.

 

  분명 내일 너는, 내가 죽으며 함께 죽을 운명이었던 아이다.

  이렇게 아무리 살아 숨 쉰다 한들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내일을 보는 시선에 오직 죄책감만이 남았다.

  내가 죽은 망자라면 너 마저도 내 욕심에 불러들인 환상이 아닐까 겁이 났다.

  이 불쌍한 삶에 대체 무슨 여한이 남아 있던 건지 남은 분노만이 나를 괴롭혔다.

  더 삶을 망쳐놓고 싶지 않아.

  차라리 칠칠의 손에 죽고 싶어.

  차라리 그만하고 싶어.

 

  ‘정신 차려, 악귀.’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오 가문의 무사를 불러와.”

 

  내일의 말에 혜성이 눈을 살짝 찌푸렸다.

 

  “예?”

 

  “빨리.”

 

  혜성이 유성각을 나갔다.

  내일이 늘을 침상에 앉히며 숨을 차분하게 삼켰다.

 

  “잘 들어.”

 

  “···.”

 

  “내가 널 살렸잖아.”

 

  늘을 바라보는 내일의 눈동자가 붉게 타는 것 같았다.

 

  “죽을 셈이라면 차라리 내 삶이라 생각해. 내가 너를 살렸으니 내 뜻대로 하는 거다.”

 

  “내가 어떻게···.”

 

  “가장 좋은 걸 하자.”

 

  늘이 이를 꽉 물었다.

 

  “누이가 가장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자. 이렇게 죽는다면 분명 네가 말한 저승에서도 피눈물을 흘릴 게 분명하다.”

 

  내일은 어찌 다 알고 있다는 말로 나를 달래는 걸까.

  끝까지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약속이다.”

 

  내일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늘은 잔뜩 굳은 얼굴로 단단한 그의 손가락을 바라볼 뿐이었다.

 

  “얼른.”

 

  내일이 재촉하듯 손을 흔들자 늘이 그의 새끼손가락이 검지를 걸었다.

  완벽한 형태로 약속하긴 싫었다.

  형편없는 반항이었다.

 

  “좋아, 내가 다시 확인하러 올 테니 그동안 밥 꼬박꼬박 먹고 다시 수련하기야. 내가 상장군께 처소는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할 테니.”

 

  혜성과 오 가문의 무사가 돌아오는 바람에 늘에게 제대로 대답을 듣지 못한 내일이 일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유성각을 정리해. 날카로운 물건은 모두 치우고 시녀를 종일 붙여야겠다.”

 

  “감시라면···.”

 

  “감시가 아니야, 누이가 용왕각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할 테니 유성각을 지키는 무사의 수를 줄여.”

 

  “알겠습니다.”

 

  오 가문의 무사가 내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일은 멍하니 앉은 늘을 돌아봤다.

  혜성은 잠깐 사이에 얌전해진 늘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

  내일과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일 기세였는데.

 

  “나 간다.”

 

  늘은 내일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조금 진정이 되자 그제야 세 천룡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늘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추한 꼴을 제대로 보였지.

 

  “인사도 안 해주고···.”

 

  “가.”

 

  내일은 늘의 짧은 대답이 아쉬웠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유성각을 나섰다.

  진정이 되었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내일을 따라 세 천룡이 줄줄이 유성각을 나왔다.

 

  “오늘 너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다.”

 

  “용왕각도 오지 않았습니다.”

 

  세 천룡은 내일의 말을 빠르게 이해했다.

  내일은 상장군을 만나기 위해 구룡성 복귀 길에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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