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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왕비님의 알바일지
작가 : 박티티
작품등록일 : 2018.12.7

만년 배우 지망생 희우는 오늘도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낙담한다. 그러던 와중 왕비역을 구한다는 알바 공고에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하는데, 뭐? 진짜 마왕이 왕비를 구하는 거였다고? 1년의 계약기간동안 마왕성에서 벌어지는 왕비님의 흔한 알바일지

 
#15-물어볼게 있는데...
작성일 : 18-12-29 00:05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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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나 디노의 상처가 말끔히 나은 뒤 그들은 알로시네들의 배웅을 받으며 늪을 떠나 성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한 모습이었지만-디노의 상의가 너덜너덜해져서 걸레짝이 된 것만 빼면-, 아직까지 조금은 멍한 상태였다. 하룻밤, 아니 고작 몇시간 사이에 너무 여러가지 일을 겪은 탓일까. 희우는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희우씨."

 "네, 네엣?"

 

 갑작스레 이름이 불리자 희우가 꽥하고 소리를 지르듯이 대답한다. 그러나 그런 희우를 보고 놀란 것은 디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휴, 놀래라. 괜찮아요?"

 "아, 미안해요..."

 

 희우가 얼떨떨하니 사과했지만 디노의 표정은 영 개운치가 않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사과를 건넨다.

 

 "아니에요, 희우씨가 무슨. 나야말로 미안해요."

 "...뭐가요?"

 "오늘 일이요. 괜히 위험한데 데려가서 고생만 시킨 것 같아서..."

 

 갑작스런 사과에 희우는 잠시 어리둥절하니 디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일부러 그랬던 것도 아니고..."

 

 막상 따지고보면 온갖 위험은 디노 혼자서 다 뒤집어쓰지 않았던가. 디노가 걸친 너덜너덜한 셔츠를 보니 아까 본 시커멓게 변해버린 그의 등이 다시 생각나서 모골이 송연해지고, 희우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떤다. 지난 일이라지만 그 순간 느낀 공포가 아직 희우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야. 그제서야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나고 마음이 홀가분해지자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디노는 희우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래서 그녀를 붙잡았다. 그의 검은 동공이 전에 없이 커다랗게 부풀어 있었다.

 

 "진짜 괜찮은거 맞아요? 아까 다친 발목이..."

 "괘, 괜찮아요. 그냥 긴장이 풀려서..."

 

 하지만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희우는 쉽사리 일어서지 못했고, 그걸 알아챈 디노가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희우를 번쩍 들어올렸다,

 

 "뭐, 뭐하는거에요?"

 "뭐하긴요. 옮기고 있잖아요."

 

 난데없이 디노의 양팔에 번쩍 안긴 희우가 깜짝 놀라서 물었지만 디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희우를 침대에 내려놓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옷 가져다줄테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요."

 "네? 아, 아니에요. 혼자 돌아갈 수 있어요."

 "딱봐도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소리에요? 그리고 희우씨가 여기서 자는게 뭐 이상한 일도 아니고."

 "하지만..."

 

 희우가 곤란한듯이 웅얼거렸지만 디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짓도 안할테니 걱정하지 말고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

 "아니면 잠깐 쉬다 가기라도 해요. 괜히 무리하지 말고."

 

 아예 이불까지 덮어주며 권하니 차마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다. 희우는 옷을 가지러가는 디노의 뒷모습만 어쩔수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

 ​

 "컥...!"

 ​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려오자 그의 팔이 느슨해진다. 팔이 축 늘어지고 목이 꺾여 자신의 쇄골에 파묻히며, 따뜻하던 몸은 서서히 식어가고 눈동자는 생기를 잃는다. 희우는 쓰러진 디노를 끌어안았다.

 ​

 "디노...?"

 ​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러보지만 디노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냐, 그럴리가 없어. 희우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길한 상상을 있는 힘껏 몰아내고 그를 깨우려 애를 쓴다.

 ​

 "괜찮아요? 디노?"

 ​

 하지만 몇번을 반복해서 불러도 디노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부르고 흔들어봐도 그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이러지 마. 죽지 마. 그러나 아무리 빌고 애원해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희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죽는다. 싫어. 안 돼. 제발. 제발!

 ​

 그 때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고 밝은 빛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놀란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는 희우의 모습은 넋이라도 나간 듯 멍해보였다.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숨은 살짝 들떠있었고, 얼떨떨한 눈동자는 자신이 무엇을 보는지 모르는 듯 하다. 그녀는 겁에 질린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옆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뚝 멈췄다.

 ​

 "디노...?"

 ​

 침대 맡에 엎드려 잠든 그가 내쉬는 숨소리가 새근새근 고요하기만 하다. 그런 디노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희우의 얼굴이 조금씩 차분해지더니, 결국 깊은 한숨과 함께 딱딱한 어깨에서 긴장감이 사라진다.

 ​

 "꿈이었나..."

 ​

 왜 꿈을 꿔도 하필 그런 꿈이지. 희우는 괜히 기분이 찜찜해져서 다시 디노를 쳐다본다. 흰 피부와 오똑한 콧날에서는 소위 말하는 귀티가 났고, 길게 뻗은 손가락은 크기만 좀 더 작았다면 여자손이라고 해도 문제없을 정도로 곱다. 이렇게 보니 태어나서 고생이라고는 해본적도 없을 도련님처럼 보이지만, 막상 어젯밤만해도 등의 살갗이 다 타서 녹아 흘러내리는 험한 꼴을 겪었던 사람이다.

 

 희우는 안쓰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손 끝에 갖다댄다. 손가락을 타고 넘어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끼자 이상하게도 가슴 속 불안감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 같다. 묘한 기분에 희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순간, 얌전히 뻗어있던 디노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더니 그가 잠에서 깨어난다. 희우는 후다닥 손을 거두며 고개를 훽 돌리고 말았다.

 

 "어... 언제 잠들었지..."

 ​

 자신조차도 여기서 잠들었던 것을 잊었는지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몽롱하게 중얼거린다. 디노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린뒤 희우를 보고 물었다.

 ​

 "어... 일어났어요?"

 ​

 내가 방금 뭘 한거지? 희우는 당황스러워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뒤늦게서야 슬금슬금 디노를 쳐다본다. 그가 걱정스럽게 희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아파요? 얼굴이 빨개요."

 "네? 아, 아뇨..."

 

 어물어물 대답했지만 디노의 미간에 잡힌 주름은 도통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갑작스레 다가오는 그의 행동에 희우가 움찔거리려던 순간, 커다란 손이 자신의 이마를 가득 덮었다. 디노는 희우의 이마를 짚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벼, 별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여기서..."

 "자면서 끙끙대길래 옆에 있었는데... 정말 괜찮아요?"

 ​

 꿈을 꾸면서 잠꼬대라도 한걸까. 희우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

 "전 진짜 괜찮아요."

 ​

 희우가 거듭 대답하며 몸을 일으켜 앉자 그제서야 디노가 마음이 놓였는지 얼굴의 긴장을 풀고는 기지개를 편다.

 ​

 "으으, 벌써 아침이네. 아직 피곤하죠? 좀 더 자요. 난 어차피 나가봐야 하니까."

 ​

 자신에게 휴식을 권하는 것과는 달리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디노를 보고 희우가 의아한 얼굴을 한다.

 ​

 "벌써요?"

 "오전에 회의가 있어요."

 ​

 디노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희우는 괜히 미안해진다. 어제 죽다 살아난걸로 모자라 제대로 잠도 못자고 바로 일이라니. 왕이란건 이런걸까. 새삼 디노가 대단해보이기도 하고 왠지 대단해 보이기도 해서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디노가 돌아서서 희우를 쳐다본다.

 ​

 "저기, 그런데..."

 ​

 갑자기 머뭇거리는 디노의 낌새가 뭔가 이상하다. 희우는 의아한듯이 그를 쳐다보다가 끝내 말이 이어지지 않자 결국 대답같은 질문을 던졌다.

 ​

 "왜 그래요?"

 "음... 물어볼게 있는데... 어제 방패 말이에요."

 "방패요?"

 ​

 디노의 말에 잠시 생각을 더듬던 희우는 결국 방패를 원래대로 되돌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표정이 굳는다. 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되는거지? 혹시 물어내라고 하는건 아니겠지?

 

 불안한 상상 가운데 무슨 말이 이어질지 희우는 가슴을 졸이고, 디노는 유난히 길게 뜸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저런 얼굴도 할줄 알았던가? 평소 뻔뻔해보일만큼 당당하고 여유로웠던 그가 갑자기 말꼬리를 질질 끌며 입술을 인으로 말았다 펴기를 반복한다. 민망해하는것 같기도 하고, 쑥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디노는 한참을 쭈뼛거리다 겨우 말을 꺼냈딘.

 ​

 "저... 희우씨가 그렇게까지 날 생각해주는지는 몰랐어요. 그게 완전 귀속이 될 정도로..."

 ​

 희우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잠시 멍해진다. 그러고보니 체로니가 그런 말을 했었다. 완전 귀속.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강했기에 일어났다는 그것. 그리고 그 뒤에 그녀가 덧붙인 말이 또 있었다.

 ​

 "이런게 바로 진정한 운명의 상대란 것이겠지."

 ​

 진정한 운명의 상대? 에이, 설마. 근데 말도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묘하게 자꾸 신경쓰이는 이유는 뭘까? 희우는 슬쩍 떠오르던 의구심을 무시하고 대답한다.

 

 "괜찮아요. 그건 당연한건데... 사람이 죽는걸 보고만 있을수는 없잖아요."

 "아..."

 ​

 그 때 디노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리며 그의 표정이 굳었다. 뭐야, 왜 저러지? 희우는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어리둥절해진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무슨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공허하면서도 혼란스럽다. 디노는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희우를 쳐다보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한다.​

 ​

 "...아... 네... 물론 그렇죠..."

 ​

 이상하네. 어디 아픈가? 희우는 확연해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당황한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그렇지만 디노는 이미 돌아서서 방을 나서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착 달라붙을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

 "그럼 쉬어요."

 ​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오늘따라 차갑게 들리는건 기분 탓일까? 희우는 한동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닫혀버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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