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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들은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작가 : 영원한세월
작품등록일 : 2017.6.20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녀와 만났다.
다시는 역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격해졌다.
이성을 잃고 날뛰려는 감정을 억누른 채 내게 다가오는 그녀를 피했다.

나는 계속 피했고

그녀는 계속 다가 왔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과거의 상처.

다가오지 말았으면 했는데......!
제발 나를 무시해줬으며 했는데......!

 
4장. 마주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작성일 : 18-12-28 23:46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8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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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 미안! 엿들을 생각은 없었어.”

 “......”

 진 조화의 어색한 사과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아무 말 없이 과거의 기억을 뒤져봤다.

 과거에 이런 일도 있었나......?

 아직도 과거의 기억을 뒤지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누나의 말이, 담임선생님의 말이, 윤 나래의 말이 주마등 같이 스쳐간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누나 때문에.

 담임선생님 때문에.

 윤 나래 때문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과거의 기억을 뒤졌다.

  

 불쾌함을 느끼며 거부감이 들어도 계속 뒤졌지만, 역시나라고 하면 역시나라고 할까?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교무실에서 진 조화와의 어색만 만남은커녕 공개수업으로 인해 교무실로 불려왔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꿈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정말로 내가 겪었던 과거가 맞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조율아......?”

 “왜.”

 진 조화의 부름에 그녀를 돌아봤다.

 내가 또 무시할 줄 알았는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천하의 진 조화도 저런 표정을 짓기는 하는구나. 놀람과 동시에 멍하니 넋 놓고 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희귀한 모습임은 틀림없었다.

 지금도 과거와 같을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진 조화’는 전교생뿐만이 아니라 교내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완벽한 아이라고 평가받는 아이였다. 그렇기에 진 조화의 멍청한 얼굴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다.

 “할 말 없으면 난 간다.”

 “자, 잠깐만!”

 멍청한 얼굴로 아무런 말도 없었기에 교실로 돌아가려 했지만 다급하게 나를 붙잡는 작은 손에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리자 진 조화의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동자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과거의 나는 진 조화를 완벽한 아이로 만들어주는 것이 끝없는 자신감과 열정이라 생각했다. 봐봐. 어린 소녀가 무엇으로부터 자신감을 얻고 무엇에 열정을 불태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범상치 않다는 건 저 눈동자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왜. 이번에도 할 말 없으면 진짜 간다.”

 용건을 말하지 않으면 네가 붙잡는다 해도 무시할 거라는 확실한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진 조화는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기분 나빴다면 정망 미안해. 담임선생님한테 전할 말이 있는데 네가 담임선생님이랑 먼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서 방해하기 싫었던 거야. 진짜야, 믿어줘!”

 “......”

 아무 말 없이 진 조화를 바라봤다.

 역시 지금 이 상황 또한 과거의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진짜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별로 없네. 당시의 나는 대체 얼마나 주변에 무관심했던 거야?

 진 조화는 타인의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필사적으로 사과한 거다.

 내게 미움 받기 싫으니까.

 나를 통해 퍼질 악평에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진 조화는 일반적인 아이가 아니다.

 타인의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타인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해야 했고, 그러려면 결국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서 사는 가식적인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죄에 진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사죄의 목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심이라는 목적이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참 추악하고 더럽지 않을 수 없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아.”

 “그, 그래? 다행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낼 사이인데 서먹해지면 좀 그렇잖아?”

 “......”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한 나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뒤에서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무시해버렸다.

 당시의 진 조화가 내게 관심을 보인 이유는 흥미와 자존심 때문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진 조화는 우리 학교에서 유명인이었다.

 반은 물론이고 학년까지 뛰어 넘을 정도로 많은 관심과 사랑과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천재만능소녀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니 자기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 그 자부심이 컸겠지.

 하지만 당시의 나는 주변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내 짝이 진 조화건 누구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진 조화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고 그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내게 작은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을 거다.

 그 외의 이유라면 또 하나가 있다.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 진 조화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본 나는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진 조화가 보여주는 평소의 모습이 가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진 조화가 친근히 내게 말을 걸어왔을 때 난 무심코 말했던 거로 기억한다.

 “가식적인 얼굴로 나의 호감을 얻고 싶어 한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난 너한테 관심 없거든.”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내 말을 들은 진 조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충격적인 듯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었으니까.

 아마 예상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거다.

 나중에 본인을 통해 들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가식을 제대로 간파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인 소녀가 가식이 얼마나 심했으면 나 이외에 아무도 진 조화의 가식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이 날부터 진 조화는 앞서 설명한 이유와 좀 다른 흥미와 호기심을 느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이것이 나와 진 조화를 이어준 두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인연이라면 특별한 인연이라 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이연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와 진 조화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교실로 돌아온 진 조화는 쉬는 시간이건 수업시간이건 수도 없이 많은 말을 걸어왔다.

 내게 흥미와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무시로 대답했다. 진 조화의 말에 대답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를 향한 진 조화의 관심은 끊어지지 않았다.

 보통 애들 같았으면 기분 나쁘다며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 조화는 보통 애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이였다.

 자기 말에 반응조차 해주지 않는 내게 분노나 실망감, 불쾌함 따위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걸까? 아니다. 느끼지 않는 게 아닐 거다. 아마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 흥미와 호기심이 진 조화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

 아!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지만 사실 진 조화는 황소고집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반응을 보일 때까지 계속 말을 거는 것이었다. 게다가 난 진 조화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상한 자존심과 고집, 흥미와 호기심이 뒤섞여 나를 향한 집착이 더해질 수밖에.

 무시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던 걸까?

 후회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미 지난 과거의 이야기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을 때 진 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방과 후에 시간 있니?”

 “?”

 지금껏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대답이 들려왔었다면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그래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진 조화한테 돌렸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아이가 무언가에 커다란 호기심을 가진 눈빛에 가깝다.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냥 다시 무시해버릴까?

 “드디어 돌아봐줬네.”

 “!”

 저 말에 순간 놀랐다.

 물론 내가 놀란 이유와 눈앞의 진 조화가 던진 말의 의미는 다를 거다.

 하지만.

 무언가 때문에, 가슴이 격하게 뛰고 있다.

 이유를 모르겠다.

 이 고동은 뭘까?

 어째서 심장이 이렇게 요동치는 걸까?

 불쾌한 것 같으면서도 살짝 상쾌한 것 같은 이 모순적인 고동은 뭘까?

 “다름이 아니라. 혹시 오늘 방과 후에 시간 있니?”

 “......왜.”

 심장은 아직도 요동치고 있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너랑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난 싫은데.”

 직설적인 진 조화의 의사에 나 또한 직설적으로 내 의사를 전했다.

 진 조화는 원래 저런 애다.

 고집이 세며 직설적인, 평범한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그런 애.

 사실은 애 같아 보이지만 애 같지 않은 애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이외에 없겠지.

 “딱히 너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니까 침착하게 들어줘.”

 “......”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아무 말 없이 눈동자만 굴려 진 조화를 쳐다봤다.

 “왜 다른 애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거야?”

 “......”

 난 대답 대신 진 조화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진 조화의 눈동자에 담겨있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진 조화의 질문에 대답할 이유를 찾지 못한 난 입을 열었다.

 “네가 알 필요 없잖아.”

 “정말 고집이 세구나?”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한 번만 나랑 같이 놀아주면 안 될까?”

 “싫은데.”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하는 진 조화의 모습과 내 기억 사이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진 조화 성격상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모습인데.

 현재의 상황도 내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고, 괴리감을 느끼는 걸까? 이 꿈이 내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꿈인지 의심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기억과 맞아떨어지는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도 그렇다.

 자세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진 조화가 무언가를 계속 부탁했다는 것과 그 부탁이 방과 후와 관련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과 같이 말이다.

 “싫은데.”

 “내가 장담할게. 너한테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 될 거야. 그러니까 제발!”

 돌아올 대답이 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진 조화의 고집은 정말 대단함을 떠나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 이기적인 부탁인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나를 그렇게까지 꿰뚫어본 건 네가 처음이야. 그래서 너에 대해 궁금한 거야.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시간 좀 내줄 수 없을까?”

 오늘 거절한다면 다음 날 또 끈질기게 부탁해올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과 그 다음 날에도 계속 반복 될 거란 생각에 치가 떨려왔고⎯⎯

 “......좋아.”

 “고마워!”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활짝 웃는 진 조화의 얼굴에는 1%의 가식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난 무심코 한마디 내뱉었다.

 “그 얼굴, 보기 좋네.”

 “응? 뭐라고 그랬어?”

 “......아니. 아무 말도 안 했어.”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보기 좋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보다.

 이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 조화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난 꿈에서도 진 조화의 페이스에 휘둘리고 있었다.

 이 방향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과거에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과거와 같은 길을 걷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귀찮아서?

 그것도 아니면⎯⎯

 “......설마.”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있는 걸까?

 아직도 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결론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언제부터 이런 혼란에 빠졌던 걸까?

 과거의 그 날 이후?

 아니면 중학생 때?

 이것도 아니라면 최근일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갔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느덧 방과 후가 찾아온 것이었다.

 “......”

 정신적으로 지친 나머지 교실이 텅텅 비워질 때까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한동안 조용하던 진 조화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조잘조잘 옆에서 상당히 거슬렸기에 무시로 대답했지만, 결국 백기를 올린 것은 나였다.

 교실이 텅텅 비어 나 혼자 남았을 때 한 손에 교실 열쇠를 들고 있는 진 조화가 돌아왔다.

 “선생님한테 허락은 받았어.”

 교실 열쇠를 짤랑짤랑 흔들며 말하는 진 조화를 못마땅한 얼굴로 째려봤다. 

 “헤헤헤.”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음에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고 있는 진 조화의 모습에 뭐라 반응해줄 기력도 없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모든 감정을 다 지우며 물었다.

 “여러 가지 이것저것. 이 시간을 내가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아니?”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즐거움과 들뜸, 흥분을 표현하는 진 조화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이상하다 생각했을 거다.

 “나 돌아가도 될까?”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가방 메려고 하지 마.”

 재빠르게 의자를 돌려 나와 마주보고 앉은 진 조화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정말로 묻고 싶은 게 많아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

 넌 하고 싶은 말이 많을지 몰라도 난 없는데 말이야.

 “넌 분명 내가 궁금해 하는 걸 다 물어본다면 싫어할 거지?”

 “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오늘은 몇 가지만 물어볼게.”

 드디어 시작이다.

 다른 과거는 몰라도 지금의 상황은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와 진 조화의 인연이 이어지는 시점이기도 하며 당시의 질문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나름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이 나아올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안했다.

 “네가 내 가식을 간파했을 때는 정말 놀랐어. 그리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한테 흥미가 생겼어. 어떻게 내 가식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거야?”

 과거의 나는 저 질문에 대충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자세히 말해주기 귀찮기도 했고, 일부러 아픈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소고집인 진 조화는 계속해서 내게 그 이유를 물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진 조화에게 나는 “너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어.” 라고 대답했던 거로 기억한다.

 비록 겉모습이지만 지금의 나는 어린애의 모습이다. 하지만 속은 어느 정도의 성장을 마친 고등학생이다.

 부모님의 이혼은 오래 전 이야기이며 다시 떠올려도 딱히 그렇다고 할 감정은 없다. 또한 과거와 같은 대답을 한다면 앞으로의 상황이 내 기억 속 그대로 흘러갈 것이다.

 최근에도 경험했듯이 진 조화와의 기 싸움은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힘들다.

 그렇다면 내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딱 하나다.

 최대한 내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고르는 것.

 난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그냥 눈치가 빠른 것뿐이야.”

 “흐음⎯⎯? 그래?”

 진 조화는 의심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보통 애들 같았으면 내 대답에 아무런 의심 없이 수긍하며 그냥 넘어갔겠지. 애초에 이 자리를 깊이 있는 자리라고, 큰 의미가 있는 자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진 조화는 보통 애가 아니다.

 겉모습만 어린애이며 천재고 다재다능한, 범상치 않은 애다.

 과거의 나 또한 진 조화가 소문 이상의 아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같은 놈들끼리 알아본다는 말이 있잖아? 그럼 나도 범상치 않은 아이인 걸까?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눈치가 빠른 거 아냐?”

 “나이에 맞지 않게 정교한 가식을 꾸미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네 말이 맞아.”

 “혹시 그 이유를 알려줄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눈치가 빠른 이유를 알고 싶거든. 엄청 궁금해!”

 “......”

 엄청 흥분한 것 같다. 솔직히 좀 무섭다. 마치 흥분한 황소를 보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진 조화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록 꿈이지만 과거를 한 번 더 마주하고 있으니까 조금씩 주변의 새로운 면이 보이는 것 같다.

 당시의 담임선생님도 그랬듯이, 지금 내 앞에서 대답을 기다리는 진 조화가 이렇게까지 타인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아이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당시의 진 조화라는 인간은 자기주장이 강하며 황소고집이고 타인에게 적당한 가식으로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아이로 보이는 것이 끝이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지도 보지도 않았고 그러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범상치 않은 아이였지만 그래도 일단 어렸기 때문에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아마, 그렇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주변에 무관심한 내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윤 나래가 어째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약간이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가 좀 길어질 거니까 잘 들어.”

 “응.”

 “내가 처음으로 눈치라는 걸 보기 시작한 게 7살 때였어. 그 당시의 나는 친구들과 흙장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청소를 하고 있던 엄마가 보인 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달려가 안겼지. 근데 엄마는 내 몰골을 보고 순간 화를 내셨어.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상당히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지. 난 화난 엄마의 모습에 공포를 느껴서 울었고 엄마는 내게 사과를 하며 나를 달래주는 과거가 있었어. 난 그 뒤로 어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어. 내 말과 행동 때문에 누군가 내게 화를 내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난 거기서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타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눈치로 그 상대방의 마음과 상황, 생각을 읽어내서 거기에 맞춰진 말과 행동을 해왔지.”

 “그런 일이 있었구나......”

 다행히 진 조화는 납득하는 것 같았다.

 성장한 지금 내가 봐도 정말 사소한 계기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다시는 같은 충격과 공포를 맛보고 싶지 않았다.

 아프고 두려워서.

 “그래. 이게 다야.”

 “어떻게 본다면 나와 비슷한 경우구나......”

 내게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들렸다.

 이 상황에서 진 조화가 저런 말을 했었나......?

 당시의 기억을 보면 진 조화는 혼잣말을 몇 번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하지만 방금 전 확실히 들었다.

 어째서일까? 과거와 다른 시선을 갖게 된 것 때문일까?

 “그건 무슨 말이야?”

 “으, 응?”

 “방금 네가 ‘어떻게 본다면 나와 비슷한 경우구나.’ 라고 말했잖아.”

 “진짜로 들렸구나.”

 “그래.”

 “음......”

 진 조화는 갑자기 고민에 빠졌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너도 나한테 과거를 알려줬으니 나도 내 과거를 알려줄게. 내가 왜 가식적인 사람이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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