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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가사리(不可殺伊)
작가 : 비내린
작품등록일 : 2018.12.20

이름 모를 타지에서 죽고 눈을 떠보니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 구 아니, 한 명의 시체를 둘러싼 이야기.

 
4. 고향
작성일 : 18-12-28 22:59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9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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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향

 

  “캬아~ 이렇게 얻어먹기만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괜찮습니다.”

  나와 헤아는 그 보부상과 묵고 있는 주막에 앉아 막걸리를 하고 있었다. 헤아는 술을 싫어하는 듯했고, 나는 마시지 못하니 보부상 혼자만 마시고 있는 형국이었다.

  “빨리 얘기 좀 해주십시오. 진짜로 미치겠습니다.”

  “쯧. 정말로 기억을 잃은 건가.”

  “예. 전 제 이름을 여태껏 돌쇠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헤아는 옆에서 픽 하고 웃었다. 나도 아명같은 이름인 것을 알기에 뭐라 할 수 없다.

  “자네 이름은 이 태석이네. 내가 자네를 처음 본 곳은 북계였네.”

  그 말에 나와 헤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교주도가 아니라요?”

  “진짜로 기억을 잃었나 보군. 그래. 교주도가 아니라 북계였네. 동계와 인접해 있는 곳이었지. 흠, 가장 가까운 동계의 마을과 서경의 딱 중간지점이었던 거 같네.”

  “북계와 동계의 중간지점….”

  나는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 기억해 뒀다. 아니, 기억해 두려 했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네.”

  “예? 왜요? 할아버지가 데려다주시게요?”

  헤아는 보부상의 말을 빠르게 받았다.

  “이놈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럼 뭔데요.”

  “그 마을은 사라졌어.”

  그 말에 헤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마 내 표정도 저것과 같으리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르신.”

  “평화로운 마을이었지. 그건 확신할 수 있어. 하지만 홍건적이 내려오는 그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들었네. 아쉽지만 나도 그곳에 있던 사람이 아닌지라 소식만 들었지 자세히는 모른다네.”

  그러면서 목이 탄 듯 막걸리를 꿀꺽꿀꺽 마셔댔다.

  “어르신. 혹시 그 마을의 위치를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신가요?”

  “내가 반년 전에 한번 가봤어. 그곳은 그때도 폐허였지. 아무도 그곳을 찾지 않는게야. 자넨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

  그 말에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그럼 위치를 말해주지. 먼저 서경으로 가게나. 거기서 동쪽으로 쭉 가면 되네. 근처에 마을이 있다면 월휴(月休)마을을 찾는다고 말하면 되네. 달도 쉬었다 가는 마을. 참 아름다운 마을이었거늘….”

  보부상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저, 혹시 제 아내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그 말에 보부상은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

  “같이 오거나 한 것이 아니었나? 아내도 잊어버렸어?”

  “예….”

  나는 아내도 잊어버린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쯧. 어쩔 수 없지. 자네 아내는…. 무척이나 신기한 사람이었지.”

  “신기했다고요?”

  “그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거 같았어. 자네도, 마을 사람들도 잘 모르는 거 같아 그냥 두었지만 말이야.”

  “어르신은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 일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야. 내가 몇 명을 만났을 거 같나? 뭔가 숨기고 있는 것쯤은 쉽게 볼 수 있네. 다만 내 일이 아니어서 그냥 넘겼을 뿐이지만 말일세….”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잘 얻어먹었고, 나는 슬슬 일어나 봅세.”

  “예? 벌써 가십니까?”

  그 말에 보부상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내 일이 이거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오늘 밤 꼬박 걸어야 다음 마을 장에 자리를 잡을 수 있네. 그리고 내가 아는 것도 그게 끝이야. 자네의 아내가 특이해서 자네를 기억하는 것뿐이지 솔직히 자네랑 친했거나 한 것은 없네.”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내 일 때문에 그를 굶게 할 수 없으므로 말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짐을 메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막 입구에서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이 서방. 자네가 찾는 것 모두 찾길 바라겠네.”

  하고 다시 몸을 돌려 주막을 나갔다. 나는 멍하니 자리에서 그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헤아는 내 옷깃을 잡으며 나를 불렀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오히려 들떠 있었다. 처음이었다. 내 과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북계로 가자.”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굳건했고, 단호했다. 헤아도 그 목소리를 듣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웠다.

  “네!”

  그리고 그 어느 때 보다 즐겁게 대답했다.

 

  서경은 고려의 3경 중 하나다. 개경, 남경과 더불어 고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물론 얼마 전에 홍건적에 의해 한번 함락된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 중요성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요한 도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바로 길이 잘 닦여 있다는 것이다.

  나와 헤아는 이제는 굳이 마을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도를 이용해 빠르게 올라갔다. 돈이 살짝 걱정되기도 하지만 전에 털었던 산적들이 조금 두둑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린 산적을 찾으러 산으로 가지 않았다.

  서경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누군가 본다면 헤아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짹짹짹짹.

  새들이 우는소리. 그리고 낙엽을 밟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물들. 이 모두 내가 죽었기 때문에 놓쳤던 것들이다. 살아있는 존재들의 삶. 나는 내 동경(憧憬)을 바라보며 천천히 서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짤랑.

  불길한 방울 소리가 울리고 주변은 계속 피바람이 불었다.

  “생각보다 저항이 거세구나.”

  “강시 두 구 한테 호되게 당했으니 지금이라도 방비를 한 것이겠지요.”

  “쯧. 귀찮구나.”

  그러면서도 암군은 계속 방울을 흔들었다.

  “막아!”

  “원군은!”

  “물러서지 마라!”

  이미 강시에 의해 뚫린 산성은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누구든 오라는 듯 뻥 뚫려있는 문에서 승병과 병사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강시들을 막을 순 없었다.

  “으…. 으아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 한 명이 무기를 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리를 지켜라!”

  그 모습에 장수로 보이는 자가 소리 질러 보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은 너도나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수는 이를 바득 갈았다. 도적 떼에게 문을 열어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다시 저런 사이한 자들에게 열어줘야 하는가. 하지만 그는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은 도망치고 전투를 치룬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 단 한 구도 죽이지 못했다. 창과 칼도 통하지 않는다. 검차도, 기병도 의미가 없었다. 승병들만이 힘을 내고 있지만 적이 너무 많았다. 이미 대부분의 승병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다.

  “퇴각하라!”

  퇴각을 알리는 북을 울릴 필요도 없었다. 한마디 했을 뿐이지만 병사들이 썰물 빠지듯 퇴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것은 그저 도망이었다.

  장수는 퇴각 명령에도 강시들과 싸우는 스님들을 보았다. 20여 구의 강시와 승병 약 30명이 싸우고 있었다. 장수는 그들의 근처에 갔다. 그리고 강시 한 구의 앞을 막아섰다. 강시의 공격을 칼로 막아냈다.

  “윽.”

  나름 힘이 세다고 자부하는 장수가 강시의 공격 한 방에 팔이 덜덜 떨렸다.

  ‘이러니 병사들이 도망치지.’

  두 번 세 번까지는 가능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장수는 이를 악물고 반격은 생각도 못 하고 한 번 더 방어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서 퇴각하십시오!”

  “으아아악!”

  그때 승병 한 명의 가슴을 강시의 손이 꿰뚫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승병이 이를 바득 갈았다. 장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강시의 공격을 한번 더 쳐내고 뒤로 빠졌다. 검을 보니 한 번 더 막았으면 장수의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 검이 깨졌을 것이었다.

  “퇴각하라!”

  장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승병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뒤를 돌아 도망치는 병사들을 쫓았다. 그들이 장수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장수는 승병들의 복잡한 마음을 그들의 눈동자에서 보았다. 분노와 안타까움.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장수도 승병들의 끝자락에서 그들과 함께 뛰어 병사들을 쫓았다. 뒤에서 강시들이 천천히 통통 튀면서 오다가 다시 산성 쪽으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장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려의 국경을 지키는 산성은 한 번 더 문이 열리고 말았다.

 

  “뭐라고!”

  한참 사이비 종교에 빠진 마을에서 조사를 벌이던 공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보아라.”

  “약 30구의 강시가 국경을 넘어섰습니다. 항마군을 주축으로 방어하고 있지만, 강시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길!”

  이 주변에서 마을 사람들을 교화시키며 도망친 강싱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다.

  “개경은. 개경에서 내려온 말은 없느냐.”

  “승병들과 병력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국경에만 300여명의 승병이 올라갔다. 이미 그곳에 있던 자들까지 합치면 족히 500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밀리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한 것이냐.”

  간단한 셈으로도 강시 한 구당 적어도 15명의 승병이 상대한다. 근데도 밀린다는 것은 강시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다.

  “공저 스님!”

  그때 소식을 들었는지 승병들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당장 준비하게요. 국경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강시는….”

  “지금 그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리 분별을 할지 아는 강시보다 무분별하게 백성을 해치는 강시가 중요합니다!”

  “예!”

  그 말은 다른 승병들도 공감했는지 별말 없이 그들은 바로 이동을 위해 움직였다.

  “스님.”

  공저에게 소식을 알려 준 전령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그리고 안북도호부사(安北都護府使)께서 스님을 뵙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공저에게 건넸다. 그 모습에 공저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안북 도호부를 책임지는 자의 초대를 함부로 거절한 순 없었다. 그는 안북도호부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 아닌가. 그러니 만나고자 하면 만나야 했다. 특히 이럴 때는 더더욱 말이다.

  “알겠다.”

  공저는 전령이 건네는 편지를 받아 뜯어서 안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품속에 편지를 넣었다.

  “이만 쉬어라. 우린 가야 할 길이 머니.”

  그 말에 전령은 방을 빠져나갔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쿵.

  그렇게 문은 닫혔고 공저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고작 보름 남짓이다. 보름 동안 강시가 들어왔고, 한 구는 교주도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국경이 뚫렸다. 여기저기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

  힘들어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면 된다.

  공저는 자신의 갑옷을 걸치고 봉을 들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니 그곳엔 승병들이 자리에 서 있었다.

  “갑시다.”

  그 말에 승병들은 모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금방이네요.”

  “그러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조금 지친 거 같다. 물론 육체가 아닌 정신적으로 말이다. 그 이유는 헤아가 하루라도 빨리 도착해야 하지 않냐면서 나를 들들 볶은 덕분이었다. 때문에 빨리 도착하긴 했지만 힘들어도 티 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 헤아를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말리는 것은 또 나도, 헤아도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밤까지 걸어가며 서경에 도착했다.

  “엄~ 청 크네요.”

  아마 헤아가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말했을 것이다. 거기다 성벽 밖에 다시 성벽이 있는 구조는 아마 적 병사가 바라본다면 토가 나올만한 모양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네. 가자.”

  우린 어차피 저곳으로 가지 못했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나는 저곳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때문에 헤아를 위해서라도 빨리 다음 마을로 가기 위해 동쪽으로 발을 돌렸다. 헤아는 성을 구경하듯 계속 바라보았다. 그리고 성의 전체적인 외형이 보일만 한 곳으로 왔을 때쯤 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줄이 엄청 기네요.”

  나는 그 말에 성을 바라보았다. 보니 북문에 사람이 유독 많았다.

  “북문에 사람이 많구나.”

  다른 데로 사람이 많긴 했다. 하지만 북문이 유독 많았다. 그리고 아까와 다른 문들의 줄의 길이가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을 보니 검문을 철저하게 하는 거 같았다.

  “검문도 철저하게 하는가 보네.”

  그 말에 헤아가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쟁…. 인가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나는 전쟁이란 말에 창식의 말이 떠올랐다.

 

  “저희 정보에 의하면 곧 홍건적이 다시 국경을 침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저흰 정말 살아남기 힘듭니다.”

 

  홍건적이 다시 쳐들어온다. 분명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 말에 나도 몸을 살짝 떨었다.

  ‘그놈들이 벌써 들어온 건가?’

 

  “두목. 이번엔 저번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들리는 소문만 해도 10만입니다. 10만!”

 

  10만. 10만이 어느 정도의 숫자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드는 생각은 비슷했다. 그만한 숫자가 오면 고려는 멸망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드는 다른 생각은 과연 내가 고려를 위해 싸울 수 있을까였다.

  나는 강시고 국경엔 승병이 있다. 솔직히 완벽히 고려를 위한 마음에 싸운다는 것은 아니다. 나를 죽인 것이 홍건적이니 복수를 겸해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움도 솟아올랐다.

  나는 공저 스님에게 당한 팔을 보았다. 옷을 걷어내자 화상 자국이 보였다.

  ‘과연 홍건적 중에 나를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없을까?’

  그리고 나는 날붙이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아예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화살에도 몇 번 뚫렸었고, 칼과 창에 베인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아물지 못하고. 10만 아니 그의 1할의 병력에 휩쓸리고 나면 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하려면 고려군과 함께해야 하는데 승병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복수하려면 혼자 해야 한다. 결국 난 저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저씨.”

  “어? 어.”

  나는 헤아의 부름에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빨리 가요. 저 보고 싶어요. 달도 쉬어가는 마을이요.”

  그 말에 나는 입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고향은 아주 아름다운 곳이니까 말이다.

  “그래. 빨리 가자꾸나.”

  나는 헤아의 손을 잡고 다시 고향을 향해 걸어갔다.

 

  “바로 전장으로 이동합니다.”

  “예!”

  공저의 표정은 스님의 인자함이 아니라 야차의 분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경으로 오자마자 안동도호부사를 만났고, 이 시대에 저 자리까지 오른 자라면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러니 공저또한 십중팔구로 이상한 놈을 만나고 왔다는 말이 된다.

  “공저 스님. 하루 머물고 가시는 거 어떻습니까.”

  승병들이 서둘러 이동준비를 할 때 화려한 갑옷을 입은 장수 한 명이 다가왔다.

  “아닙니다. 저곳에서 모두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육체를 빼앗긴 강시들과 그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백성들과 병사들…. 저희는 서둘러 그들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역시 공저 스님입니다. 비록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그 의기를 본받고 싶을 정도군요.”

  “별말씀을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공저는 서둘러 승병들이 가져온 말을 타고 도망치듯 성을 벗어나기 위해 성도를 달렸다.

  “나름 괜찮아 보이는데 왜 저자를 피하십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습니다.”

  그 말에 승병은 공저가 왜 그러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저들은 모든 병력을 서경으로 불러 강시를 막을 생각입니다.”

  “그것 또한 괜찮지 않습니까. 밖에서 싸우는 것보다 성안에서 싸우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습니까.”

  “예. 원래대로라면 그렇지요.”

  그 말과 동시에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2중으로 되어있는 옹성의 문까지 열리자 밖에 있는 백성들이 눈에 보였다. 밤 동안 닫히는 성문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어떻게든 성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예. 성안에도 백성들이 참 많았지요.”

  마을 곳곳 몸을 뉠 수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자리를 깔고 있던 백성들이 다시 눈에 밟혔다.

  “하지만 이들은 다행이죠. 곧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테니 말이죠. 하지만 안북도호부사는 저 멀리서 강시들을 피해 도망치는 백성들을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왜 병사들이 서경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강시들과 싸우고 있는지 아십니까.”

  “왜입니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저 단단한 서경을 두고 밖에서 싸우고 있다니.

  “백성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령이 전해준 편지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었다.

  “그런….”

  “그러니 서둘러 가야 합니다. 한 손이라도 더 거들기 위해.”

  그 뒤로 더 이상의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기 위해서.

 

  “이곳에서 이틀은 쉬고 가자꾸나.”

  “아니에요!”

  내 말에 뜨거운 것을 만지면 바로 후다닥 때는 내 아니, 살아있는 사람의 몸처럼 바로 헤아는 거절하였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가기 싫다면 싫은 것이었다.

  “내가 지쳐서 그렇다.”

  “예? 아저씨가 왜 지쳐요.”

  하면서 헤아는 내 몸을 이곳저곳 살피기 시작했다. 두꺼운 곰가죽 옷을 입고 있어 뭐가 보이기는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몸이 지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지쳐서 그래. 거기다 고향 근처까지 왔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 거 같구나.”

  “흐음.”

  그 말에 헤아는 팔짱을 끼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결과는 같은 것이다.

  “알았어요. 여기서 이틀만 쉬고 가죠.”

  그 말에 나는 씩 웃었다. 그리고 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맙구나. 그럼 빨리 들어가자.”

  이제 익숙한지 발버둥 치지 않고 내 손길을 느끼는 헤아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헤아의 손을 잡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안은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일단 주막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주막 주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흐음. 자네도 피난을 가는 길인가?”

  주막 주인은 대뜸 우리에게 피난을 가느냐고 물어봤다. 그 말 덕분에 전쟁이 일어난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피난이 아닙니다. 다만 어딜 들릴 곳이 있어서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여행이라고? 지금 얼마나 흉흉한데. 그러다 죽어. 자네야 어떨 줄 모르지만 자네 딸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꼭 들려야 할 곳이라서요. 그리고 저와 이 아이는 지킬 힘은 있습니다.”

  “쯧. 그렇게 자신만만하다 먼저 가지.”

  주막 주인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방은 있습니까?”

  “많아. 아주 넘치는 게 방이야. 이참에 방 두 개 잡는 것이 어떠한가?”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방 한 개에 둘 다 씻을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하면서 나는 돈을 건넸다. 주막 아주머니는 혀를 쯧 하고 차고 그 돈을 받았다.

  “방은 아무 데나 들어가. 준비되면 바로 부르도록 하지. 조금만 기다려.”

  “예.”

  라고 대답하고 방으로 가기 전에 나는 발을 멈추고 주막 주인을 다시 불렀다.

  “주인장.”

  “왜 그러신가. 손님.”

  “혹시 월휴라는 마을을 아십니까?”

  그 말에 주막 주인은 잠시 몸이 굳은 것처럼 보였다.

  “그 마을은 왜 찾는가? 혹시 가야 한다는 곳이.”

  “그 마을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뭔가 아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 아는 건 단지 홍건적이 그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끌고 갔다는 것과 그 때문에 그 마을을 재건할 사람도 없고 해서 지금도 터만 남아있다는 것이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끌려갔다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잘 몰라. 그곳 출신의 어느 여인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그곳 출신의 여성 말씀입니까?”

  “그래. 궁금하면 조금 들려주지. 홍건적이 한참 난리일 때 피난을 갔다 돌아와서 마을을 다시 세웠지. 그 후 조금 시간이 지나서 한 여인이 월휴마을에 가기 위해 이곳에 들렸다고 했지. 나도 들리는 소문이 있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마을은 폐허가 됐을 거라 말했지. 그러니 그녀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잡혀갔고, 마을을 재건할 사람도 없다는 걸 안다고 말했지.”

  “그 여자. 그 여자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나에 대해 그리고 내 아내에 대해 아주 중요한 단서인 그 여성을 찾고 싶었다.

  “가끔 마을로 내려오네. 때가 잘 맞으면 만날걸세. 요즘은 잘 안보이는 거 같지만 말이야.”

  “그녀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생긴 것을 모르면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글쎄. 흠. 예뻤지. 아주 예뻤어. 그리고 뭔가 묘했어.”

  “묘했다고요?”

  그러면서 주막 주인은 뭔가 고민하듯 계속 생각을 하고 입을 열었다.

  “뭔가 비밀이 많아 보이는 여성이었네. 그래서 오묘한 느낌이 났어.”

  나와 방 앞에 서 있는 헤아는 그 말에 몸이 굳었다.

 
작가의 말
 

 내일은 하루 쉽니다! 그리고 이번화는 소제목이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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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6. 도술서 2019 / 1 / 16 262 0 4795   
24 6. 도술서 2019 / 1 / 15 266 0 5064   
23 6. 도술서 2019 / 1 / 14 271 0 5072   
22 6. 도술서 2019 / 1 / 13 255 0 5879   
21 6. 도술서 2019 / 1 / 12 281 0 5339   
20 6. 도술서 2019 / 1 / 11 248 0 4599   
19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9 277 0 4184   
18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8 279 0 4959   
17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7 262 0 5667   
16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6 264 0 5829   
15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4 281 0 3600   
14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3 272 0 4900   
13 4. 고향 +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2 268 0 5729   
12 4. 고향 2019 / 1 / 2 272 0 3996   
11 4. 고향 2018 / 12 / 31 286 0 5180   
10 4. 고향 2018 / 12 / 30 269 0 11914   
9 4. 고향 2018 / 12 / 28 255 0 9966   
8 3. 헤야 2018 / 12 / 27 247 0 10268   
7 3. 헤야 2018 / 12 / 26 233 0 10056   
6 3. 헤아 2018 / 12 / 25 320 0 9854   
5 2. 강시 2018 / 12 / 24 241 0 9790   
4 2. 강시 2018 / 12 / 23 260 0 11043   
3 1. 고려로 2018 / 12 / 22 240 0 9382   
2 프롤로그 + 1. 고려로 2018 / 12 / 21 238 0 9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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