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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덥다~”
삐로롱~
흐으~ 에어컨을 켜고 누워 있으니 살 것 같다.
여름방학이 시작 되었다.
방학 때 근로 장학생 신청에서 떨어진 아영이는 다른 알바를 찾아서 집으로 들어갔다.
학교 주변에 할 만한 거라고는 편의점뿐이었으니까.
나도 자취방에 혼자 남아있기 싫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방학하고 집으로 간 날, 엄마는 저놈의 기지배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저녁으로 갈비찜을 해 줬는데, 요즘은 집에 밥도 없다.
"송이나 너 또 에어컨 켰지!!!"
오 어머니 제발..
"아 전기세 얼마 안 나온다니까~ 에어컨 왜 샀어. 그럼!!"
"나중에 더우면 켜라니까!"
"지금 30도가 넘었는데 얼마나 더 더우라고!!"
"창문 열어 놓고 가만히 있으면 맞바람 쳐서 시원하다니까? 얼른 꺼!"
"아 덥단 말이야~~"
"전기세 네가 낼래?"
삐리링...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에어컨의 구슬픈 정지 소리와 함께 땀이 뚝뚝 떨어진다.
나가야겠다...
어디 가냐고 엄마가 또 잔소리를 했지만 나 토익 공부하러~ 하니까 아무 말도 안 하셨다.
후후후 완전 거짓말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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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전신에 느껴지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 살 것 같다. 나는 자몽 에이드를 시켜서 자리에 앉았다.
책을 가져 오기는 했지만,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준아~] 오후 2:23
[웅? 우리 애기 일어나쪄?] 오후 2:25
[아까 일어났지~~ 나 엄마가 에어컨 못 켜게 해서 카페 왔어 힝 ㅠㅠ] 오후 2:26
[그게 뭐야 귀엽네ㅋㅋㅋㅋㅋㅋㅋ] 오후 2:28
[준이 넌 오늘 뭐해?] 오후 2:30
[난 오늘 우리 애기 만나지~] 오후 2:35
[엥?] 오후 2:35
[어디야?] 오후 2:37
[여기 우리 집 근처에 ‘카페 디 쇼콜라’라고 있는데, 내가 주소 찍어 줄게] 오후 2:38
[웅ㅋㅋ 얼른 갈게. 우리 이따 같이 저녁 먹을까?] 오후 2:40
[응 얼른 와♡] 오후 2:44
예전에 너무 못해준 것 같다고, 잘 해줄 테니까 다시 만나자고 한 고백처럼
민준은 내게 다정했다. 가끔 소소한 선물을 사주기도 했고, 연락도 자주 했다.
오늘같이 이렇게 갑자기 나를 보러 오기도 한 적도 많았다.
재혁이와의 이별도, 멀어진 수연이와의 우정도 내게는 관심 밖이었다.
처음 그와 만났을 때 내가 꿈꾸던 연애가 이제야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행복했고, 그거 하나면 충분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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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준아! 왔어?”
“응~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아니야 나 기다리면서 공부했어! 짜잔~”
나는 토익 책을 펼쳐서 민준에게 보여줬다.
“우리 애기 공부 열심히 했네? 상 줘야겠다”
민준이 내 입에 뽀뽀를 쪽 한다.
“얘가..! 카페에서 무슨 짓이야”
“우리한테 아무도 관심 없거든요~~ 오늘 뭐 할까? 저녁까지 시간 좀 있잖아”
“음~ 준이 넌 뭐 하고 싶은데? 영화라도 볼까? 요즘 뭐 하나...”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지금 상영하는 영화를 검색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나는 영화 말고 누나 보고 싶은데”
“지금 보고 있잖아 바보야~”
민준이 내 옆으로 좀 더 가깝게 앉으며 배시시 웃는다.
“우리 아까 한 뽀뽀 이어서 하자”
“..여기서?”
“당연히 여기서는 안 되지~ 나가자”
민준의 손을 잡고 우리는 모텔로 갔다. 사실 늘상 있는 일이었다.
둘이 영화를 보나, 모텔에 가나 가격은 비슷했으니까.
나를 꼭 안고 있을 수 있어서 좋다고 민준은 말했다.
...물론 정말로 우리가 안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 들어가자마자 한 번, 씻고 나와서 TV를 보다가 한 번,
어쩔 때는 퇴실 시간이 다 돼서 나가기 전에도 또 한 번...
데이트 할 때마다 모텔을 가니까 얘가 나랑 자려고 만나나 이런 생각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민준과 하는 게 나도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라서 그런 생각은 접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원래 그런 걸 좋아하나 싶기도 했고,
민준이가 좋은 건 다 해줄 수 있으니까 상관없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우리 제주도 갈까?”
여느 때처럼 관계가 끝나고 담배를 피면서 민준이 물었다.
“갑자기 웬 제주도?”
“여름이잖아. 가서 물놀이도 하고 회도 먹고 그러자 누나”
“그럴까? 요즘 성수기라서 비싸지 않아?”
“그래도 남들 놀 때 우리도 놀아야지, 가자~ 나 이번에 면허 땄잖아.
차 렌트해서 돌아다니자“
..이번에 딴 면허로 차를 빌리자고...? 불안한데...
“야 초보운전이 차 운전해도 되겠어?”
“어허 오빠 못 믿나! 운전하려면 선글라스 있어야겠다. 안 그래도 갖고 싶었는데”
“선글라스? 내가 사 줄까?”
“어! 진짜?”
“음~ 음... 생일 선물로?”
“아싸!! 지금 백화점 갈까??”
“뭐~ 그래도 되고~”
“나가기 전에 한 번만 더 하자”
신나서 나갈 준비를 하나 싶더니, 민준은 다시 침대로 올라와 내게 입을 맞췄다.
그럼 그렇지, 웬일로 한 번만 하고 나가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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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저기 서 봐”
“이렇게?”
“응 예쁘다”
나와 민준은 8월 초 제주도로 2박 3일 떠났다. 여행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기 전
섭지코지에서 민준이 내 사진을 찍어 준다고 난리다.
여행 첫 날, 차를 빌려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온 순간, 주차 되어 있는 트럭 백미러에
차를 살짝 긁고 난 뒤에 민준은 첫 날부터 기분이 저기압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후부터 제주도에는 폭우가 내려서 아무 것도 못하고 펜션으로 들어갔다.
“별로 표시도 안 나니까 괜찮을 거야.. 기분 풀고 놀자 응?”
“아오 씨발...”
민준은 욕을 중얼거리며 렌터카 계약서와 휴대폰 검색만 하고 있었다.
“비와서 아쉽네...”
창밖을 보며 내가 말했지만 민준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아 짜증나 빡친다...”
한참을 보다가, 민준이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지면서 말했다.
나름 달래봤지만 계속 짜증만 내서 나도 민준의 눈치만 보면서 조용히 있었다.
TV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어느덧 조용한 민준을 보니 잠들었다.
시간을 보니 아직 저녁 9시도 안 된 시간이다.
“휴...”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TV를 끄고 민준의 옆에 누웠다.
등을 돌리고 자고 있는 민준이 야속했지만 속상해서 그렇겠지 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민준의 기분이 좋아보여서 우리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라도에서 짜장면도 먹고, 전복이 들어간 해물찜도 먹고, 이상한 박물관도 갔다.
여행하는 동안 은근히 비가 자주 왔는데, 그래도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면 신기하게
비가 그쳤다. 차로 갈 수 있는 만큼이었지만, 한라산에도 올라갔다.
아직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행을 했다. 내가 더 많이 낸 것 같긴 하지만...
그날 밤 펜션에서 먹었던 컵라면도 맛있었다.
고작 컵라면이었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둘이라서 좋았던 것 같다.
이번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몇 시간을 돌아다니면서 산 선글라스를 낀 민준이와
사진도 잔뜩 찍었다. 한라봉 아이스크림은 새콤달콤했고, 민준과 함께 있는 시간은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했다. 지나가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서 산 버터구이 오징어를 먹으며,
바다를 옆에 두고 드라이브를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이거 잘 나왔다 프사 해야지~”
김포공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는 민준과 찍은 사진으로 프사를 바꿨다.
민준이의 새로운 프사는 내가 찍어준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뭐야아~ 너도 나랑 같이 찍은 사진으로 하지”
“이게 더 잘 나왔잖아”
치... 뭔가 아쉬웠지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 마지막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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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학기가 개강했다.
나는 이번 학기 전공 학점이 부족해서 수업을 좀 빡빡하게 넣었는데,
지혜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학교에 나오면 된다고 했다.
아영이도 수업이 별로 없어서 혼자 듣는 수업이 늘었지만,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1학년 때는 혼자 수업 듣는 게 신경 쓰이고 그랬는데, 이제 4학년이라 그런지
오히려 혼자가 더 편한 느낌도 든다.
이번에 들을 게 없어서 1학년 수업 ‘마케팅의 기초’를 신청했는데,
교수님께서 첫 날 등록금을 총 강의 시간으로 나누면 이게 한 시간에 얼마짜리 수업인 거라고,
부모님께서 힘들게 번 돈인데 술 먹고 자체 휴강을 하는 일은 없게 하라고 엄포를 놓으신다.
1학년들한테 한 소리셨지만, 4학년인 내가 이제야 비싼 등록금과 수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선배의 위엄을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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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쪽은 제 여자 친구요"
"안녕하세요~"
개강 첫 주에 민준은 학과에서 자기랑 제일 친한 형이 있다며 나를 소개시켜 줬다.
나보다 두 학번 위인 신태성 오빠는 술고래인 준이보다 훨씬 잘 마시고,
훈훈한 외모에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입은 좀 거칠었지만.
방학이 끝나고 찾은 학교에는 달빛 주막 옆의 노래방이 없어지고 ‘에비스’라는 술집이
새로 생겼는데, 오늘은 거기서 셋이 한잔하고 있었다.
어?
창가 쪽에 앉아 있었는데 지혜와 아영이 들어온다. 나를 알아 본 지혜가 손을 흔든다.
술집 새로 오픈했다고 바로 오다니 무시무시한 것들~
[얔ㅋㅋ너네 왜 이쪽으로 왔냐. 맥팡 간다며?] 오후 9:20
[아 거기 사람 너무 많아서, 그리고 여기 안주 싸다고 해서 왔지 잠깐 올래?] 오후 9:22
음..
"태성 오빠 저 잠깐 옆 테이블 갔다 와도 돼요? 과 친구들이 와서"
"아 그래? 갔다 와~ 갔다 와~~"
민준과 둘이 한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둘은 낄낄대며 신나 보였다.
잠깐 빠져도 괜찮겠다 싶어서 마음 편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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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희 뭐 시켰어?"
"뭐였지 우리? 나가사키 짬뽕?"
"또 그거 먹어? 강아영이 골랐지?"
"아니거든~ 옆엔 누구야?"
"아~ 민준이 학과 선배래. 좀 괜찮지 않아? 소개해 줄까?"
"됐거든~"
"오~ 웬일로 김상현하고 오래간다?“
“저번에 헤어지기 직전까지 싸우긴 했는데, 뭐... 대충 화해했어”
“이번엔 또 왜 싸웠어?”
“들어봐 쏭, 강아영 싸운 얘기 완전 웃겨. 아니 김상현이 무슨 서프라이즈를...”
상현이 서프라이즈로 꽃다발을 가지고 온 걸로 엄청 싸웠다는 아영의 얘기를
하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덧 20분이나 지나있었다.
에고, 너무 오래 비웠나? 이제 슬슬 다시 돌아가야지 하는데 우리 테이블로 민준이 왔다.
민준은 웃으면서 지혜와 아영에게 인사를 하고 나보고 잠깐 얘기 좀 하자면서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술 냄새가 많이 난다.
"준아 술 많이 마셨어?"
"...야"
"응??"
"야.. 넌 내가... 후... 마련한 자리잖아.. 어? 내가 오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한테
너 소개 시켜 주는 자리인데 그렇게 자리 비우면 되냐?"
"태성 오빠한테 얘기 했는데.."
"했어도!!"
민준이 옆에 있는 전봇대를 발로 찼다.
?? 얘가 미쳤나..
"내가!! 내가 뭐가 되냐고!!"
"알았어 알았어.. 그만해"
말리려고 했는데, 민준은 분이 덜 풀렸는지 주차 되어 있는 차를 발로 걷어찼다.
헐
자동차 전조등이 깨져서 조각이 바닥에 뒹굴고 차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쪽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준아.. 화 내지마 응?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미안? 네가 뭐가 미안한데? 응? 내가 병신이지 씨발"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서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쪽팔리기도 하고,
차 주인이 오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애가 술에 많이 취해서 그런 것 같은데 어쩌지...
"준아.."
"아 놓으라고 좀!"
민준을 말리려고 그의 옷깃을 잡은 내 손을 민준이 세게 뿌리쳤고,
나는 무게 중심을 잃고 그대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촤아악
“아얏... 아... 씨...”
손바닥이 쓸려서 쓰라리다. 아... 피 난다... 넘어진 나를 보고 정신이 들었는지
민준이 달려와서 나를 부축한다.
“누나! 괜찮아???!!”
"야 서민준 안 들어오고 뭐 하냐?"
가게에서 나온 태성 오빠가 민준을 부른다.
"오빠.. 여기..."
오빠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내 표정과 주변을 둘러보더니 상황 파악을 한 듯 한숨을 쉬었다.
"형.."
"너 내가 술 곱게 처먹으라고 했지"
"아니 형.. 그게 아니고.. 진짜 죄송해요. 오늘 제가 여자 친구 소개 시켜 준다고 한 건데..
얘가 자리 비우고 있으면 형이 뭐가 돼요...“
"야 나한테 잠깐 다녀와도 되냐고 물어 봤잖아 난 괜찮은데 왜 지랄이야"
"아니 그래도..."
나한테는 큰소리 뻥뻥 치던 민준이 태성 오빠가 오니 찍소리도 못 한다.
"이 미친 새끼가, 야, 이거 네가 그랬냐?“
오빠는 바닥에 나뒹구는 전조등 조각들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 그게.."
"이나야 일어날 수 있겠어? 너 손은 왜 그래? 피 나잖아!“
“아.. 괜찮아요...”
나는 까진 손바닥을 뒤로 감췄다.
“그것도 이 새끼가 그랬어?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너 따라와.
이나야 아까 술집에 친구들 있다고 했지? 오늘은 그 쪽 가 있을래? 미안하다“
“아뇨.. 저 괜찮아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민준이는요?”
“이 새끼 오늘 내가 데려 갈게. 고생 많았다"
"네.. 죄송해요..."
여전히 뭐라 뭐라 떠들고 있는 민준을 데리고 태성 오빠는 사라졌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흩어졌고, 나는 피가 나서 쓰라린 손바닥을 감추고
지혜와 아영이 모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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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손바닥에 쓸린 상처에 딱지가 생길 무렵의 어느 날 아침,
자취방 문이 깨져라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누구세요?"
"배달이요~"
배달? 무슨 배달이지 택배인가? 내가 뭐 샀더라.
문을 열었더니 커다란 꽃바구니가 문 옆에 놓여 있다. 택배 기사님은 바쁘신지
계단을 총총 내려가고 있었다. 꽃 사이로 꽂혀 있는 카드를 열어보니 민준이다.
「누나 안녕
누나 깜짝 놀래켜 주려고 꽃 배달 시켰지 내가 누나를 너무 마음고생 시키는 것 같아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우리 처음 만났을 때하고 여러 가지 생각난다.
우리애기 오빠가 많이 못 챙겨줘서 미안해 그래도 오빠가 너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오빠 지금 쭈그려서 쓰고 있어서 글씨체가 엉망이네 오빠가 많이 사랑해~
내일은 더 사랑 할게요~ 이거 받고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어~ 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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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 아니냐? 이중인격도 아니고 진짜.. 와~ 송이나 넌 이거 왜 그때 우리한테 말 안 했어?”
"어..? 내가 이거 얘기 안 해줬어?"
"걔가 보내준 꽃은 네가 마르고 닳도록 자취방에 꽂아놨으니까 알고 있었는데,
그 전에 술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지. 알았으면 진짜... 와.. 개새끼...“
아영의 입이 험해짐과 동시에 지혜도 거든다.
“도대체 넌 걔랑 왜 사귀었냐? 무슨 분노조절장애야 뭐야? 너 더 크게 다쳤음 어쩔 뻔 했어”
지혜의 말에 나는 손바닥을 내려다 봤다.
그런 상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제 티도 안 난다.
"다시 사귀자고 한 건 그 새끼였다? 뭐, 이게 다 내가 죄 많은 여자라 그런 거지...
예쁜 것도 죄야.. 휴우..“
머리카락을 뒤로 휙 넘기자 둘의 표정이 가관이다.
"지혜야 또띠아 하나 더 먹을래?"
"응 나 줘 여기"
지혜가 아영에게 그릇을 건네고 아영이 또띠아와 스테이크를 덜어 준다.
"얘들아? 나 누구랑 얘기하니?"
"이거나 마저 마셔 맥주 시키게"
"매정한 년들.. 나 그냥 맥주 마실래. 크림 맥주는 별로다"
"그러게, 보기에는 진짜 예쁜데, 맛은 그저 그래.."
"사진 찍었으면 됐지~ 사장님~ 여기 맥주 오백 세 잔이요~"
그와의 연애는 예뻐야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것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대놓고 싫다고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의 손을 잡으면 내 세상은 그 사람으로 가득 찼다.
이상과 다른 현실에서 나는 행복해야 했기에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 무방비하고 행복한 여자가 바로 나였다.
그 행복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그 무방비함이 나를 힘들게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