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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류 도진과 그의 단 하나뿐인 해에 관한 이야기.

 
13화. 백야
작성일 : 18-12-28 11:13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7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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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청소 시간이 남아있는데 선생님은 도진을 교무실로 불렀다.

 

  「전화 좀 받아볼래?」

 

  선생님이 내민 전화기를 도진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받았다.

 

  - 네, 여보세요?

  - 아, 도진아. 아줌마인데. 오늘 정문으로 나오지 말고, 저번에 내가 알려준 뒷길로 빙- 돌아서 올래? 아줌마 친구가 지나가다 봤는데 방송국 차가 와있다고 하더라고.

 

  상대는 많이 당황한 눈치였다. 도진은 꽤 야무진 목소리로 대답하곤 선생님의 허락하에 뒷길로 빠져나왔다.

 

  도진의 어머니, 배우 '유희연'으로 살아가던 여자의 실제 '류연화'의 삶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그 관심은 아무도 모르던 '아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교실의 아이들까지도 도진의 비밀을 다 알았고, 소심하고 숫기가 없는 그는 한없이 불편하고 낯선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방송국에서는 다큐 제작을 끊임없이 제의해왔고 이제는 학교까지 찾아와 아이를 설득할 심산이었다.

 

  도진은 뒷동산으로 길을 올랐다.

 

  「이쯤에서 이렇게 꺾어 내려가는 거라고 했던 거 같은데.」

 

  도진은 조그맣게 중얼거리곤 주위를 살폈다. 똑같은 나무들이 수천 개 심어진 산의 풍경은 지나온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앞쪽에 놓인 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도착하겠지'라는 긍정과 '이러다 길을 잃으면 어쩌지'라는 불안 사이에서 점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럼에도 아줌마가 표시해놓은 노란색 리본은 보이지 않았다. 겨울의 해는 야속하게도 짧았고 점점 노을빛이 꺼져가는 산속에서 도진은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추워 괜스레 서러움이 치솟아 올랐다.

 

  노을이 끝나면 앞이 보이지 않을 테고 그러면 이 산에서 고립될 테고, 난 곧 죽게 될까.

 

  우울한 생각에 힘이 빠진 도진은 털썩 쪼그려 앉았다. 등에 나무를 기대고 바라본 하늘은 붉은빛이 후-하면 날아갈 듯 연약해져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폭 파묻었다. 어둠은 삽시간에 주변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엄마.」

 

  외로움과 무서움 앞에 도진은 채 몇 번 불러보지 못한 그 낯설고 어색한 단어가 자연스럽게 입안에서 뱉어져 놀랐다. 그와 동시에 너무도 그리운 느낌이 들어 눈물이 쏟아졌다.

 

  어릴 적부터 유모는 '아줌마는-'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고, 어머니는 2,3년에 한 번 정도 밥 한 끼 정도 먹는 사이였다.

 

  "엄마"라는 말은 서로가 불편해서인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고작 도진은 초등학생인데도 그랬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죽음이 와닿지 않았다. 장례식도 가지 못하고 유골함이 담긴 납골당에 가서 청순하게 미소 짓고 있는 사진의 그녀를 보고도 울음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눈앞에 닥치니 그 어떤 날보다 그녀가 저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도진?」

 

  제 이름에 놀라 도진이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손전등을 하나 쥔 여자아이가 어둠을 가르고 등장했다. 새하얀 얼굴에 작은 여자아이.

 

  안심이 되어서인지 더 눈물이 났다. 여자애는 비웃거나 당황하지 않고 쫑쫑 걸어왔다. 많이 닳은 것 같은 회색 운동화는 제 손바닥만 한 느낌이었다.

 

 「내가 데려다줄게. 그러니까 울지 말고 일어나.」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말을 건네며 여자아이는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일어난 도진이 손을 놓지 않자 아이는 빤히 쳐다보다가 별말없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그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 어둠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앞장서 조심조심 걸어나가는 앞을 밝히는 손전등 빛이 아이가 뿜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 이름은 뭐야?」

 

  도진은 용기 내 질문을 했고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술을 열었다.

 

  「해.」

  「해?」

  「응. 윤 해.」

 

  해는 힘을 주어 이름을 불렀고, 도진은 이름을 웅얼거렸다.

 

 「해야.」

 

  그 부름에 해는 발걸음을 멈추곤 살짝 고개를 돌렸다. 마주한 눈동자는 태양만큼이나 강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포하고 있었다.

 

  은하계를 떠돌던, 약하고 비루한 소행성이 태양의 축복을 받게 된다면 그런 느낌일까. 그때 그 이름의 울림은 도진의 귓가에는 구원의 소리처럼 다가왔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013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줄래? 금방 돌아올게.’

 

  도진의 간절한 음성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해는 그 음성을 지워내기라도 하듯 머리를 젓고는 다시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손에 힘을 주어 반듯하게 접어냈다.

 

  어차피 이번에는 도망치듯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도진을 설득시키고 그의 인생에서 멀어질 셈이었다.

 

  차곡차곡 개어진 빨래를 들고 도진의 방으로 들어갔다. 연예인 답지 않게 옷방이 없었다. 여름용과 겨울용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옷장은 방 한편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녀는 제 자리에 옷을 챙겨 넣었다. 망설임 없는 손길이었다.

 

  도진의 방에서는 라벤더 향이 살짝이 배어났다. 그를 편안하게 하는 것들로 방 안은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틈이 없는 침대와 옷장, 곳곳에 놓인 향초, 스님이 오래전에 써주신 부적, 그리고 머리맡에 놓인 액자.

 

  “바보.”

 

  사진 속엔 절을 뒤로 한 도진과 해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이 했던 한 해의 마지막이자 새해의 시작이던,눈이 오던 날.

 

  털 모자를 눌러 쓰고 활짝 웃으며 브이를 그리는 도진의 옆에서 희미하게 미소 짓는 해.

 

  ‘새해 소원 빌었어?’

  ‘응.’

  ‘뭐라고?’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고. 넌?’

  ‘나는 해의 소원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했는데, 바꿔야겠어. 해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달라고 할래.’

  ‘바꾸는 거 없어. 소원은 하나밖에 못 빌어.’

  ‘치이. 그럼 내년에 그렇게 빌 거야.’

 

  냉소적이고 틱틱 거리기 일수였던 해에게 도진은 바보같이 헤헤거리며 속 좋은 소리를 했다. 처음 만난 이후로 도진은 몇 번이나 길을 잃으면서도 절에 올라와 해의 곁을 빙빙 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좁아진 거리는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진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여자친구도 생기겠고 더 좋은 친구들도 만나면 자신을 잊겠거니 했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을 올랐다.

 

  그 덕인지 도진은 처음 봤을 때보다 무려 30cm 이상 자랐고 살도 빠지고 몸엔 근육도 붙어 누구나 한 번쯤 반하고도 남을 왕자님 같은 모습을 했다.

 

  그가 성장할수록 자신의 상황을 더욱이 냉정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꿈속의 왕자님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거다. 자신은 꿈속의 공주도 아니고, 꿈꾸는 여주인공도 아니다.

 

  그저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또 버텨내는 처지의 여자아이였다. 꿈같은 건 꿔본 적도 없는.

 

  “류 도진.”

 

  사진 속의 통통한 류도진은 산에서 저를 만났을 때부터 착각하고 있다. 해가 구원의 천사인 줄 안다.

 

  그저, 애가 길을 잃은 것 같다고 울며 뛰쳐 올라온 여자분의 부탁으로 스님과 나눠져 귀찮아하며 찾으러 간 것이 다일뿐인데.

 

  그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살인자여서 산 속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어 산 지리에 익숙한 것일 뿐인데.

 

  그 진실을 차마 도진을 잡고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생긴 것과 달리 툭하면 눈물부터 쏟아내는 울보에, 상황 판단 못하는 바보에, 매번 넘어지고 덜렁대는 멍청이에, 엄살도 많이 부리고 겁도 많은 어리광쟁이이지만 그래도.

 

  “행복했어.”

 

  도진 덕분에, 분에 넘치게. 그 행복을 손에서 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해는 액자를 제자리에 놓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나왔다. 이곳에서 빨리, 저 사진이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며.

 

  집 안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를 다 하고 맛있는 밥을 한 상 차려 놓고 시끌시끌한 텔레비전을 틀어놓았다.

 

  화면 속 이야기는 눈 감은 채,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곱씹었다. 끌어안은 무릎에 얼굴을 폭 파묻었다.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고 삼켜냈다.

 

  “연예가 뉴스입니다. 류도진씨의 열애 사진이 특종 매거진 리얼에서 나왔습니다.”

 

  단박에 고개를 추켜올렸다. 색색의 빛을 뿜어내는 텔레비전 속에 사진 몇 장이 떠올랐다.

 

  “리얼에서는 여자분의 정확한 인적 사항은 밝히지 않았지만, 류도진씨와 같이 지낸 시간이 꽤 오랜 시간이며 상당한 미모의 여성분이라고 합니다. 일반인이기에 얼굴은 가렸다고 리얼 쪽에서 말하자 리얼의 접속 서버를 해킹해서 원본을 구하려는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했습니다. 현재 류 도진씨의 소속사 홈페이지는 접속자 수 폭발로 인해 마비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전화기가 울렸지만 해는 폴더를 열지 못했다. 힘이 다 빠진 손은 덜덜 떨렸다. 숨을 몇 번이나 들이셨다가 뱉어내려고 했지만 자꾸 호흡이 엉켰다.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저릿저릿 해져오는 손발과 지끈거리는 머리의 고통이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묶었다.

 

  띠링. 문이 열리고 허겁지겁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갤 든 시야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다 젖은 신발을 벗지 못하고 한 손에는 엉망이 된 꽃다발을 든 도진이 보였다.

 

  “아.”

 

  안심일까, 불안일까. 한 음절이 터졌다.

 

  “그게...”

 

  도진은 제 몰골을 그제야 살피는 듯했다. 신발을 일단 벗고는 꽃다발을 매만지며 걸어왔다.

 

  “진짜 예쁘게 해서 내가 직접 샀는데 호근이형한테 전화가 와서, 놀라서. 혹시, 해도 놀라서, 사라질까 봐.”

 

  잔뜩 당황한 얼굴만큼이나 혀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도진은 소파 위 쪼그려 앉은 해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해야.”

  “류 도진.”

  “응.”

  “내가 먼저 말할게.”

 

  도진은 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짓 같은 건 조금도 담아내지 않을 것 같은, 맑은 눈동자에는 저만이 일렁거린다. 담담하고 깨끗한 빛이 자신을 비춘다.

 

  “나, 널 사랑하지 않아.”

 

  조금 메마른 듯한 작은 입술에서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노랫소리보다 가장 부드럽게 여기고 듣기 좋아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네 곁에 있으면 불행해져.”

  “해야.”

  “미안해.”

 

  도진을 떠났다가 돌아온 날에도, 해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해는 '미안하다'라는 말 같은 건 질색이라고 했다.

  어차피 그 말로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런 상황을 안 만들게 하라고. 그런데 지금 해가 그 말을 뱉었다. 입술을 떼려던 해가 말 대신 눈물을 떨어뜨렸다.

 

  도진은 꽃다발을 내려놓고는 주먹 꼭 쥔 손을 감쌌다. 새하얀 손은 눈처럼 차갑고 보드라웠다. 금방이라도 제 손안에서 녹을 것 같았다.

 

  “해야. 내가 그랬잖아. 널 붙잡지 않겠다고.”

 

  그의 목소리는 떨림 하나 없이 덤덤하고 따뜻했다. 해는 꽃다발도, 바닥에 닿은 그의 무릎도, 눈동자도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사랑한다고 이야기 한 건, 네가 내 곁에 남고 싶게 만들려고 한 거였어.”

 

  도진은 촬영장에서 해가 쓰러질 때, 바로 코너 옆에 서 있었다. 해의 얼굴에 핏기가 점점 없어지는 게 걱정이 되어 옆에서 기다렸었다. 감독과 조금도 멀었던 제가 그 이야기를 들은 거면 해는 선명히 들었을 거다.

 

  액션스쿨 1년과 극단 생활 6개월, 혼자서 다져 온 1년간의 연기 세계를 가지고 이 세계에 들어섰을 때 자신은 '엘리제의 아들'이란 타이틀을 원치 않지만 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가 데뷔와 동시에 스타 감독 영화의 주인공을 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비난을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선 잘해야 했다. 그 방법뿐이었다.

 

  '엘리제'는 넘어야 하는 산인 줄 알았는데 바다였다. 넘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숨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버티는 것.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는 것.

 

  그는 화살이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쓰러지는 순간 느꼈다. 자신과 해는 다르다는 것을. 수많은 화살이 겨눈 세계에서 해는 작은 새 같은 존재라는 걸. 날개를 펼칠 수도 없는 새라는 걸.

 

  “네가 다치는 것도 겁났는데, 네가 없는 건 더 무서웠어. 나빴지, 내가?”

 

  해는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 못했다. 어느새 손은 그의 온도를 흡수해 시리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서 이렇게 수많은 걸 뺏는데 왜 넌 모를까.

 

  해는 마음을 꾹꾹 눌렀다.

 

  “할 말이 있어.”

 

  해는 떨리는 목소리를 삼켜냈다. 젖은 눈을 애써 말려내려고 깜빡이지 않았다. 도진은 응, 하고 늘 그렇듯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나 있잖아, 사실은.”

 

  이 말을 언젠가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수백 번을 연습했다. 그리고 수 천 번을 더 그려봤다. 도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윤 해가 아니야. 원래는, 정 윤해.”

 

  정 씨는 아빠의 성이었다. 윤은 엄마의 성이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아빠의 성과 엄마의 성, 그리고 외자 이름이 합쳐진 걸로 아이 이름을 짓고 싶어 했다.

 

  엄마는 꽤 상당 비용을 변호사에게 지불해놓았는데, 나중에 아빠가 기소가 되고 나면 해가 아빠의 호적에서 나와 엄마 쪽의 성을 가지고 살도록 했다. 살인자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경찰에 붙들려 가고 얼마 있지 않아 동네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 해는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했지만 선생님들은 불편해하며 모른 척했다.

 

  그 길로 해는 숨어 지냈다.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겐 괴물일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피를 스스로 의심하기도 하며.

 

  “내 아버지는, 살인자였어.”

 

  두 사람이 같이 한 지는 벌써 13년의 시절이 지났다. 일생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나누었고 도진과 많은 이야기를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는 이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잊고 싶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없어, 라는 해의 말에 도진은 아주 많이 공감했다. 나도 그래,라며 좋아했었던 거 같기도 하다.

 

  도진의 손이 해의 손에서 떼어졌다. 해는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도진이 제 품으로 꽃다발을 밀어 넣었다.

 

  “그런 아버지를 모두가 싫어하겠지만, 너도 싫을 수 있겠지만, 오늘만은 감사하다고 해야겠다.”

 

  도진은 해를 향해 웃었다. 조금의 티도, 망설임도 없이 아주 해사한 웃음이었다.

 

  “오늘 네 생일이야, 해야.”

  “아…….”

  “해야. 너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든, 네가 정윤해든, 윤해든, 넌 나한테 그냥 해야.”

 

  꽃다발 위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 바깥의 빗방울인지 이슬인지 해의 눈물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무서워서 도망치길 바랐어? 네 비밀을 숨겼다고 화라도 내길 바랐어?”

 

  도진이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키다 말고 해가 앉아 있는 소파 옆을 짚었다. 마주한 도진이 콩-하고 이마를 살짝이 부딪혔다.

 

  “해야.”

  “…….”

  “나의 해야.”

 

  도진은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놀라서 뒤로 살짝 물러남에도 도망갈 곳 없는 그녀의 얼굴을 조용히 감쌌다. 눈가를, 그리고 볼을, 그리고 코끝 앞에 멈춘 그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안되겠어. 역시.”

  “…….”

  “그냥, 사랑하자.”

 

  해는 그 웃음을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달콤한 목소리가, 다정한 눈동자가, 사랑스러운 그가 다시 물결처럼 밀려왔다. 도진은 그녀의 입술을 감쌌다.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생의 어둠을 단번에 삼켜내던 너의 존재. 아무리 아프고 괴로워도,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나를 감싸고 위로하던 존재. 이 백야에선 난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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