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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카이샤하스 제국 1권 ; 아이린 황비 폐하
작가 : Hella
작품등록일 : 2018.12.10

카이샤하스 제국의 황태자, 카우라 카이샤하스.
안하무인 독불장군인 그는 사실 남몰래 사랑하던 기억속 소녀가 있었다.

자그마한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데려온 새어머니가 그 소녀였다는거...?

아니, 저기요, 아버지. 계급장 다 떼고 얘기해 봅시다.
당장이라도 아버지 멱살잡고 패륜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에 한껏 비뚤어졌지만, 어느새에 그는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이건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카이샤하스 제국 황궁에 여러분을 꼬셔서 데려가기위한 달콤한 첫걸음이에요.....ㅎ

정치물과 전쟁물에 로맨스 두방울 뿌려 봤습니다. 심심해보여서 브로맨스도 한스푼 넣었고요, 오만사람들을 다 끌어모아 얽어놓는 바람에 등장인물 많습니다.

난 코난같은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읽어주는것만도 고맙습니다. 제가 꿈이 좀 커요ㅎ

언제나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막;궁전_10화
작성일 : 18-12-28 05:31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8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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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렌스는 황실 정 중앙에 놓인 거대한 황좌에 올라앉아 있었다. 본래의 일정대로였다면, 내일 있을 정상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제국에 방문한 종속국의 왕들과 점심 만찬을 함께 해야 마땅한 시간이었다.

 

  오전에 있었던 국정회의 막바지에 뛰어오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시종들이 갑자기 들이쳐서 기절초풍할 보고를 올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황비마마께서 말에 치이실 뻔 하였습니다!"

  "황태자 저하와 제 1 황자 저하께서 몸싸움을 하고 계시는 것을 시종들이 막고 있습니다!"

 

  로렌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앞이 아찔해져서 황비가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극진히 보필하라 명했고, 카우라를 포함한 모든 황자들과 그 근처에 주둔하던 모든 시종, 시녀들을 당장 황실로 끌고 오라고 호통 쳤다. 그리곤 시종과 함께 황실로 가는 도중에 아이린이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게 확실하냐고 약 삽십 여 번을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자초지종을 물으니, 시종은 '시온에게 승마를 배우던 아이린의 말이 명령을 듣지 않고 멋대로 움직이자 근처에서 승마하던 카우라가 막아서서 멈추게 만들었으며 그 일로 시온과 카우라 사이에 높은 언쟁이 오갔다. 그 당시 시종과 시녀들은 승마장 울타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들판 한복판에 있던 그들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였는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가 일어난 결정적인 사건은, 언쟁을 하던 중에 말에서 내린 아이린과 그녀를 보필하던 시온에게 카우라의 말이 앞발을 들며 포효했기 때문이란다. 그 우렁찬 포효소리를 들은 제론이 심하게 놀라 얼어붙었고, 그 순간 테디가 탄 말이 달려 나가기 시작해 제론이 고삐를 놓쳐버렸다는 것이 시종의 진술이었다.

 

  "말이 정확히 황비 마마를 향해 달려 나가서, 정말 심장이 나가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애절하게 말하는 시종의 얼굴은 아까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는지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급히 도리질 쳤다.

 

  로렌스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그냥, 언제나 아이린에게 친절한 시온의 안내로 목장의 말들이나 구경하고, 시온이 모는 말에 함께 타거나 그가 끌어주는 말에 얌전히 앉아 승마장 두어 바퀴를 도는 가벼운 승마체험 따위를 하길 바랐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커진 거야?

 

  황제는 황좌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팔걸이를 두들겼다. 본궁과 승마장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황제는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시종에게 아이린이 정말 어느 곳도 다치지 않은 것이 맞냐고 삼십여 번을 더 물었다.

 

  "아이린!"

 

  황태자와 황자, 그리고 많은 시종들이 한꺼번에 황실로 연행되었다. 그 와중에도 황제의 모든 신경은 아이린이었다. 그녀는 그 가녀린 몸으로 여전히 울고 있는 테디를 안고 있었는데, 황제는 황비를 발견하자마자 황좌가 있던 높은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가 곧바로 그녀에게서 테디를 빼앗듯 안아들었다.

 

  "아이린, 다친 곳은 없어? 정말이야?!"

  "로, 로렌스."

 

  아이린이 다친 곳은 없었지만, 난생 처음 황제의 품에 안겨본 테디는 목놓아 울던 것도 잊고 너무 놀라 딸꾹질을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렌스를 바라보는 테디의 손은 갈곳을 잃고 동그랗게 안으로 말려 있었다.

 

  "설마 이렇게 다 큰 황자를 여기까지 들고 온 건 아니겠지?"

 

  로렌스가 테디의 무게에 놀라서 물었을 뿐이지, 그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말이었다. 테디는 시온에게 안겼다가 아이린에게 안겼다가를 반복하며 황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그 경기를 일으키던 울음이 멎어가던 중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이리 주세요, 로렌스."

  "안 돼. 당신이 들기엔 무거워. 시온."

  "예, 폐하."

 

  시온이 곧바로 그 앞에 가서 테디를 받아들었다. 로렌스는 시온에게 넘겨주고 아직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테디에게 한마디 했다.

 

  "이제 다 컸으니 어머니에게 안아달라고 하지 말아라. 어머니 힘들다."

 

  테디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황제에게 차마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서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고, 로렌스는 그런 아들의 행동에 대해 왈가왈부할 정신머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로렌스는 곧바로 테디와 시온에게서 등을 돌리고 아이린의 얼굴을 가까이서 관찰했다.

 

  "울었어?!"

  "아, 아니에요."

 

  아이린이 급히 볼을 만지작거렸지만 로렌스가 알아차린 건 희미하게 남아있던 눈물자국이 아니라 잔뜩 붉어진 눈가였다. 그것은 방금 말에서 떨어질 뻔 하였다고 들은 테디와 꼭 같은 눈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결론적으로.

 

  "카우라야?"

 

  로렌스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아이린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또 말 안 하지."

 

  그가 으르렁거렸다. 언제나, 늘 언제나. 항상 이런 식이었다. 카우라에게 심한 말을 듣고 와서, 몰래 입궁한 황비들에게 갖은 수모를 겪고 와서, 그녀는 지금과 꼭 같은 눈을 하고 늘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로렌스는 이제 그런 말들엔 진절머리가 났다.

 

  으득, 하고 이를 간 로렌스는 곧바로 아이린을 안아들고 다시 황좌로 올라갔다. 아이린이 민망해 했지만 화가 난 황제는 그녀를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다들 온 건가?"

 

  로렌스의 살벌한 목소리에 황자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궁인들이 모두 깊이 고개를 숙였다. 로렌스는 꽤 많은 이들이 황실에 들어선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대충 전해 들었다. 제론."

 

  예상했던 대로, 처음부터 제론의 이름이 거론되자 시온이 실례를 무릅쓰고 끼어들었다.

 

  "폐하,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테디를 안고 있던 시온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어머니의 붉은 눈까지, 전부 다요."

 

  괜히 겁먹은 테디가 시온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동생을 잠시 내려다본 시온은 그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주었다. 로렌스는 그제야 시온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뺨 한 쪽이 발갛게 부어서 얼굴이 엉망이었다. 분명 저렇게 만든 것은 카우라렸다. 로렌스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 말 해 봐라."

 

  시온은 자신을 눈물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린을 잠시 응시했다. 아이린이 열심히 고개를 저었지만 시온은 얼굴을 굳히고 다시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카우라 황태자와 어머니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시온의 말에 카우라의 얼굴이 구겨졌다. 로렌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해졌고, 아이린이 새파랗게 질려선 로렌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래, 이거다. 그가 알고 싶었던 것. 시종이 멀어서 듣지 못했다던 높은 언쟁의 그것.

 

  로렌스는 카우라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확인하고는 목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새카만 불덩이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마음 한켠에선 '그럴 줄 알았다.'라는 생각도 자리 잡고 있었으나 이렇게 직접 들으니, 뭐랄까……. 기분이 굉장히 더럽달까.

 

  "아니에요, 로렌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어머니를 평민출신이라고 얕보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지 않습니다."

 

  시온이 딱 잘라서 말하자 아이린이 얼어붙었다. 로렌스가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시온을 내려다보았다.

 

  "사실이냐."

  "네, 사실입니다."

  "카우라-!"

 

  로렌스의 노기가 넓디넓은 황실 안을 가득 채우자 아이린이 다급히 그의 옷자락을 당겼다.

 

  "폐, 폐하ㅡ"

  "폐하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로렌스가 분노에 찬 얼굴을 바꾸지 못하고 아이린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린이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로…렌스……, 카우라 황태자님은……."

  "그런 말을 듣고도 덮으려는 이유가 뭐야."

  "로렌스……."

  "새파랗게 어린 황태자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고서도 감싸는 이유가 뭐냐고! 널 어머니는커녕 황비로도 보지 않는 놈한테!!"

  "그……건ㅡ"

 

 똑똑ㅡ

 

  많은 이들의 시선이 앞에 있던 황제를 떠나 뒤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열린 문 사이로 빼꼼, 테앙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 저기……. 나……, 들어가도 돼?"

 

  테앙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당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당히 얼빠진 질문이었는데,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상 순수한 표정의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노기 충만한 로렌스의 얼굴이었다.

 

  "안 돼."

  "응."

 

  형의 무시무시한 얼굴에 테앙은 단 한 치의 고민 없이 고개를 뒤로 빼고 문을 닫았다. 테앙의 뜬금없는 침입으로 잠시 페이스를 놓친 로렌스가 이마를 문지르며 뜨거운 숨을 뱉었다.

 

  "시온."

  "예, 폐하."

  "처음부터 찬찬히 설명해라."

 

  로렌스가 한층 진정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물론,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렸다간 그대로 터져버릴 것 같은 시한폭탄의 분위기를 풍기긴 했다.

 

  "카우라 황태자가 평민 출신인 어머니는 황실 승마를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고, 어머니가 승마를 배우는 도중 실수를 하자 크게 비난하며 니게르의 포효로 겁을 주었습니다."

 

  시온이 카우라를 흘끗 돌아보았다.

 

  "말의 울음소리를 들은 제론이 트라우마로 고삐를 놓친 것입니다."

 

  로렌스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는 몇 년 전에 시종이 올렸던 '황태자가 황자들을 말로 위협합니다.'따위의 보고를 기억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동안 레베카 전 황비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황태자에게 승마를 금지시켜야 한다며 넌덜머리나게 굴었던 것은 기억했다.

 

  시온이 조금은 예상한 바이지만, 말에서 떨어질 뻔 하였다던 막내아들과 니게르의 울음소리에 선 채로 기절한 둘째 아들은 완벽히 로렌스의 안중 밖이었다. 로렌스가 신경 쓰는 것은 단 두 명, 죽을 뻔 한 아이린과 그녀에게 못된 말을 지껄인 카우라였다.

 

  결국 그 두 명은 온전히 시온이 보듬어야했다. 시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형이나 엿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카우라."

 

  짜증어린 탄식을 내뱉은 카우라가 반 발짝 나와 서자, 로렌스가 분노에 찬 눈동자로 읊조렸다.

 

  "넌 황제가 되어야 할 황태자다."

  "……."

  "아직……, 황태자지."

  "……."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겠지."

  "……."

  "아직 황태자인 네가 어디 황비에게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않고 지껄이는 게냐?!"

 

  로렌스의 목소리가 황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카우라는 굳은 얼굴 그대로 애먼 카펫을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은 그에게 질문을 한 황제를 비롯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바라지 않았던 최악의 경우였지만 카우라는 결국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

  "황태자라고 오냐오냐 했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 거냐?!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위아래 못 가리고 기어오르는 거야!"

 

  아이린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황제를 쳐다보았다.

 

  "로, 로렌스……!"

  "네 어미가 황비 된 여인에게 평민이라 깔보라고 하며 죽었더냐!"

 

  로렌스의 말에 카우라의 얼굴이 팍 소리 나듯 구겨졌다. 카우라가 시선을 들고 로렌스를 정면으로 올려다보았다. 로렌스는 그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더욱 격노하여 소리쳤다.

 

  "네 행실은 황실 이름이 아니라 네 어미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다! 선대 황후를 욕보이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해본 게냐?!"

  "로렌스!"

  "네 어미가 아주 멋진 핏줄을 남기고 죽었구나! 황비한테 평민소리하며 깔보는 놈을 황태자로 꽂아놓고 죽다니, 아주 능력 있는 황후였어!"

 

  로렌스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아이린은 화에 잠식된 로렌스를 보며 울상이 되어갔다.

 

  "로렌스, 로렌스ㅡ 이제 그만ㅡ!"

  "당신이야말로 그만 해! 저런 위아래도 없는 놈은ㅡ"

 

  아이린이 로렌스를 끌어안았다.

 

  "로렌스, 이제 그만해요, 부탁이에요……."

  "……."

 

  로렌스가 곧 아이린을 마주 감싸 안더니 카우라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앞으로 황비에게 절대적으로 예의를 지켜. 궁인이든 하인이든 평민이든 천민이든, 그 누가 됐든 네가 황비에게 예의 없이 군다는 이야기를 전한다면 너는 곧바로 엄벌이다."

  "……."

  "아이린에게 사과해라."

  "……."

 

  로렌스가 눈을 찌푸렸다.

 

  "사과해."

  "……."

 

  카우라는 로렌스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순간 다시 화가 폭발한 로렌스가 소리쳤다.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느냐?!"

  "로, 로렌스- 난 괜찮아요,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것 봐요!"

 

  아이린이 로렌스를 보며 엷은 미소를 띄워보였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카우라를 바라보았다.

 

  "전 신경 쓰지 마세요, 황태자님, 괜찮습니다."

 

  카우라가 멈칫했다. 카우라와 눈이 마주친 아이린은 가슴속 깊은 곳에 겨우겨우 가라앉힌 바위가 튀어나와 심장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꾹 참고 카우라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넘쳐흘렀다.

 

  "전 괜찮습니다."

 

  아이린이 힘겹게 웃어보였다.

 

 

 

 

 

 *PS.

 

 

 

  "그럼,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

  "그럼 이제 나 가 봐도 돼?!"

 

  테앙이 눈을 반짝이며 레이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아까 시종들이 달려와 로렌스를 격분하게 했을 때부터 그 뒷일을 구경하고 싶어 제성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레이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겉으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회의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테앙의 엉덩이가 수십 번은 더 들썩였던 것을 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레이는 테앙이 가고 싶어 환장하는 장소가 '종속국 국왕들과의 식사자리'가 아니라 '형이 카우라를 포함한 다른 이들을 작살내는 황실'이라는 것쯤은 완벽히 직시할 만큼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네, 됩니다."

  "그럼 난 이만-!"

  "종속국 국왕들과의 식사자리에요."

 

  레이가 딱 잘라 말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던 테앙이 얼어붙었다. 그의 흔들리는 눈빛은 완벽히 잊고 있었던 점심 만찬을 다시 자각한 그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그, 그, 그치만- 형이 몇 시간씩 애들을 붙잡고 설교 할 사람도 아니고-."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로안이 곧바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솔직히 말하면 로안도 카이샤하스 대제국의 대공작 된 입장에서 점심만찬에 참석해야 옳았지만 제때 회의에 집중하지 않았던 로 모씨 때문에 꼬였던 세 명 분의 일정을 소화해내기 위해 만찬의 불참권을 얻어냈다.

 

  "들어가십시오, 대공작전하."

 

  레이가 고개를 숙이며 마주 인사하자 로안은 자신을 붙잡을 테앙을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아 꽤나 미안한 표정으로 급히 자리를 떴다.

 

  "레이, 같이 가자."

 

  테앙이 나름 애써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궁금해 죽겠어. 혼자 가기 무섭단 말이야! 구경만 하고 나오자, 응?"

  "안 됩니다."

  "아아, 제발. 응? 나 이러다간 너무 궁금해서 밥 먹다가 제대로 체할 것 같아."

  "체 하십시오."

  "너무해!"

  "안 됩니다. 도대체 괜히 끼어들었다가 욕만 먹을 짓을 왜 하려 하십니까?"

 

  여전한 미소로 웃는 레이가 타박했다. 테앙은 시무룩한 얼굴로 레이를 째려보았지만 레이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노려보셔도 소용없습니다."

  "나 혼자라도 갈 거야!"

 

  황실 문 앞에 가서 카우라가 무슨 욕을 들어먹는지 한 마디도 얻어듣지 못한다면 난 점심 만찬에 가지 않을 테야!! 레이는 이 막무가내 국왕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국 보고용 책자를 들고 일어선 레이가 턱짓했다.

 

  "괜히 황제 폐하께 얻어걸려서 점심 만찬에 늦기만 해보십시오."

 

  테앙은 신이 나서 레이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

 

 

 

  "안 돼."

  "응."

 

  곧바로 황실 문을 닫은 테앙이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레이를 울상으로 돌아보았다. 레이는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흐엉. 너무 무서웠어!"

 

  테앙이 레이의 케이프를 붙잡았다. 레이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국왕 폐하, 가끔 잊으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이지만 황제 폐하께 국왕 폐하의 생명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시는 겁니까?"

 

  레이의 걱정스런 물음에 테앙은 그런 것쯤은 이미 통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하지만 난 우리 형들이 황제 자리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고 생각해. 운 좋게 살아남아 지금까지 왕 해먹었으면 충분히 미련 없을 정도로 살았지 않아?"

 

  테앙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레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 그래서 막 살겠단 거야?

 

  레이의 미간이 아주 미미하게 움직이자 테앙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붙잡고 있던 공작 케이프를 흔들었다.

 

  "무슨 생각 해?"

  "이제 만찬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요."

 

  레이가 싱긋 웃었다. 테앙은 다시 울상이 되었지만 이미 형에게 문전박대 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릴 수 없었다. 테앙은 레이의 손에 질질 끌려서 결국 만찬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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