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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카이샤하스 제국 1권 ; 아이린 황비 폐하
작가 : Hella
작품등록일 : 2018.12.10

카이샤하스 제국의 황태자, 카우라 카이샤하스.
안하무인 독불장군인 그는 사실 남몰래 사랑하던 기억속 소녀가 있었다.

자그마한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데려온 새어머니가 그 소녀였다는거...?

아니, 저기요, 아버지. 계급장 다 떼고 얘기해 봅시다.
당장이라도 아버지 멱살잡고 패륜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에 한껏 비뚤어졌지만, 어느새에 그는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이건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카이샤하스 제국 황궁에 여러분을 꼬셔서 데려가기위한 달콤한 첫걸음이에요.....ㅎ

정치물과 전쟁물에 로맨스 두방울 뿌려 봤습니다. 심심해보여서 브로맨스도 한스푼 넣었고요, 오만사람들을 다 끌어모아 얽어놓는 바람에 등장인물 많습니다.

난 코난같은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읽어주는것만도 고맙습니다. 제가 꿈이 좀 커요ㅎ

언제나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막;궁전_9화
작성일 : 18-12-28 05:30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7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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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그만해!"

 

  시온이 다가와 그를 제지했지만 카우라는 지지 않고 소리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게다가, 이론 수업도 하나 없이 가르치겠다고 말에 태운 넌 뭐야?! 기본적인 지식도 없고 스킬도 없는, 거기다가 몸도 약한 여자를 함부로? 승마는 무슨 다른 수업들도 하나도 안 받아 본 게 당연한 평민을ㅡ"

  "형이 평민보다 뭐가 잘났다고 큰소리야?!"

 

  시온이 그의 말을 자르고 고함치자 카우라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뭐?"

 

  "황비님께 그딴 식으로 말하는 거 보면 형이 평민보다도 못 해 보이는 거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만 좀 해! 형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ㅡ"

  "야, 너 말 다 했냐?! 난 쟤가 겁도 없이 말 앞에 맨몸으로 서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 말한테 한 번 잘못 채이면 숨통 끊어질 수 있는 것도 모르고 생각 없이 서 있던 거면 말 다 했잖아!"

 

  카우라가 아이린을 삿대질하며 무서운 기세로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미 시온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는 상황. 평소 그렇게 온화하던 시온도 전에 없이 사나운 눈빛으로 황태자에게 맞섰다.

 

  "형이 알려 준 적이라도 있어?! 말 앞에 그냥 서 있으면 위험하다고 말해준 적, 단 한 번이라도 있냐고!"

  "내가 그걸 왜 알려줘?! 기본 중에 기본 아냐?! 평민이 순식간에 계급 상승하니까 당연히 모르지!"

  "그래! 어머니 평민이셨다, 그렇게 잘 아는 형이 어머니를 배려해 주진 못할망정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타박하는 건 뭔데?! 어머니가 잘 모르는 거 다 알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하는 게 말이 돼?!"

 

  "그만……."

 

  시온이 말을 멈추고 아이린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숙인 고개 앞으로 고동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있었다.

 

 

  "그만 하세요……, 싸우지 말아요."

  "어머니-"

 

  아이린이 울먹거렸다. 그녀는 황궁에 와서 처음 카우라를 보았을 때, 그의 새카만 눈동자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의 눈은 아이린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던 지인, 퓨트레 페이키스 남작과 꼭 같은 눈이었다.

 

  아이린의 친오빠와 절친한 휴젤 퓨트레 페이키스는 카우라와 꼭 같은 흑발에 흑안이었다. 털어놓기 부끄럽지만, 아이린이 로렌스와 혼인하기 전 몰래 짝사랑하던 남자였다. 큰 키에 굵고 낮은 목소리, 늘 차분한 무표정과 단단한 눈빛을 가졌던 그는 아이린이 난생 처음으로 머리에 울리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게 만든 사람이었다.

 

  한 때 아이린은 멋모르고 휴젤을 투영한 카우라의 눈동자에 위안을 얻었다. 옛사랑과 비슷한 카우라의 눈빛이, 표정이, 단 하나의 아는 사람 없이 궁 안에 내던져진 아이린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남작이 아니라 이 대 제국의 단 하나뿐인 황태자, 카우라 카이샤하스였다.

 

  그는 자신보다 어린 어머니가 된 아이린을 경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아버지'와 결혼한 아이린을 증오했다. 대귀족 영애들이었던 황비와 황빈을 폐비시킨 평민 출신의 그녀를 힐난했다.

 

  아이린이 황태자에게서 페이키스 남작의 눈빛을 바라지 않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니, 그녀는 이제 카우라의 차가운 눈빛만 스쳐도 몸서리가 쳐졌다. 황비 된 몸으로서, 그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버텼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욕심이 지나쳤습니다……. 순전히 제 잘못이에요……. 황비인 제가 모자라서 그런 것입니다, 싸우지 마세요……."

 

  아이린의 목소리가 떨리고, 시온이 그녀를 달래려고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처음이라 그렇지, 두어 번 연습하시면 금방 익힐 수 있으신데 황태자가 괜히-."

  "제 욕심이 과했습니다……."

 

  아이린은 더 이상 카우라 앞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의 앞에만 서면, 그의 얼어붙은 목소리를 들으면, 그녀는 금방이라도 바스라들어서 한줌의 먼지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시온이 그녀를 아무리 열심히 달래도, 그녀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와 박히는 카우라의 눈빛은 여전했다. 아이린은 그 서늘하고 끔찍한 기분에 양 팔로 몸을 감쌌다.

 

  "제 불찰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제가 잘못입니다."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시온과 눈을 마주쳤다. 순간 시온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이린의 말간 눈물이 그녀의 상기된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주세요, 황자님. 제가 죄송합니다."

  "……어머니."

  "내려주세요."

 

  아이린이 애써 괜찮아 보이려고 노력한 표정이 일그러지고, 시온이 카우라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당장 사과드려."

 

  시온의 명령과도 같은 요구에도 카우라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아까보다는 얌전해진 얼굴로 가만히 시온을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시온은 속으로 인내심을 기르며 다시 한 번 읊조렸다.

 

  "사과드리라고. 당장."

  "아닙니다. 승마는, 승마는 하기 싫어졌습니다. 변덕 부려서 죄송합니다, 황자님. 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아이린이 막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시온을 말렸다. 시온은 애먼 말을 더하여 간청하는 아이린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카우라를 쳐다보았는데, 형의 가늘게 떨리는 눈빛을 알아차리곤 멈칫했다.

 

  ……양심은 있는 새끼였어?

 

  하지만 시온이 알아차린 양심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카우라는 사과하지 않았고, 따라서 시온의 화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려주세요, 제발……."

 

  아이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애처롭게 빌다시피 하였다. 시온은 카우라의 눈빛이 고정된 곳을 돌아보았다. 위태롭게 고삐를 쥔 아이린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시온이 급히 말에서 뛰어내려 그녀의 백마 바로 옆으로 다가갔다.

 

  "어머니, 이 쪽."

 

  울던 아이린이 그대로 시온에게 안겨 땅에 내려섰고, 다리가 풀려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녀를 시온이 급히 안아서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어머니?"

  "윽."

 

  억지로 울음을 삼킨 아이린이 시온에게 양 팔을 내맡긴 채 반쯤 주저앉았다. 그 때, 카우라가 니게르의 고삐를 세게 잡아당겼고, 니게르는 두 발로 서며 크게 포효했다.

 

  그것은 니게르의 발 아래에 놓인 시온과 아이린에 대한 경고였다.

 

  니게르가 다시 제자리에 서자 카우라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시는 오지 마."

 

  시온은 자신의 팔을 붙잡은 아이린의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린은 제대로 서지도, 시온에게 온전히 기대지도 못한 채 힘겹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저 새끼를 어떻게 조지지.

 

  시온은 아이린의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카우라에게 격분해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있는 힘껏 카우라를 노려보았지만 카우라는 아무런 감정 없는 사람처럼 고요한 무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바로 그때. 조용하던 승마장 들판을 가르는 어린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시온과 카우라, 아이린의 고개가 비명이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갔고, 그 곳엔 그들을 향해 돌진하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은 다름 아닌 테디를 태운 말이었다. 그 뒤엔 니게르의 포효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제론이 얼어붙어 있었다.

 

  말은 공격적으로 달렸고, 테디는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안장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테디!!"

  "황자님!!"

 

  시온과 아이린이 하얗게 질려서 소리쳤다. 그 순간, 온전히 시온을 의지하고 있던 아이린의 손이 강하게 그의 팔을 뿌리쳤다. 아이린은 그녀에게로 돌진하는 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달렸다. 그녀의 뒤로 믿을 수 없는, 카우라의 갈라진 목소리가 울렸다.

 

  "아이린!!"

 

  그 순간은 정말이지, 실로 끔찍한 장면이었다. 아홉 살 배기 황자를 등에 태운 채 자기 멋대로 질주하는 말과, 그 말을 향해 혈혈단신으로 달려든 가녀린 황비는 주변에 있던 황태자와 황자들, 그리고 승마장 밖에서 지켜보던 시녀 시종들이 그들 생에 최고로 참혹한 장면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승마장 밖에서 대기하던 시녀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마!!"

  "저하!!"

 

  아이린은 카우라가 한 말을 기억했다.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저렇게 빠르게 달리는 말에서 테디가 떨어진다면, 그 또한 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테디는 겨우 9살이었다. 만약, 만약 테디가 말에서 떨어진다면……, 그래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아이린은 그 일 만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황비는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말 앞에 양 팔을 벌리고 섰다.

 

  "안 돼!!"

 

  카우라가 크게 외치며 고삐를 당겼다. 니게르가 다시 한 번, 앞발을 들고 크게 포효하며 맹렬히 달려나갔다. 시녀 하나가 입술이 파랗게 질려서 기절했다. 아이린은 점점 가까워지는 말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말은, 왠지 모르지만, 화가 난 것 같아보였다.

 

  '제발, 멈춰 줘.'

 

  아이린은 속으로 외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미친 듯이 질주하던 말은 거짓말처럼 아이린 앞에 급정거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이린은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자신의 코앞에 멈춰선 말과 눈을 맞추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한 눈빛에 아이린은 다리가 풀렸다.

 

  테디가 기겁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시온이 급히 달려가 테디를 말에서 내려 안아 올렸다.

 

  "테디, 테디."

  "형아아아!"

 

  막 죽을 고비를 넘긴 테디는 그 아찔했던 순간이 머릿속을 떠나가질 않아서 경기를 일으켰다.

 

  카우라가 말에서 내려 급히 아이린에게 달려갔다.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카우라를, 아이린은 기력이 다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황……태자님."

 

  카우라가 곧바로 아이린을 끌어안았다. 테디를 달래던 시온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본의 아니게 카우라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게 된 아이린도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놀란 이유는 카우라가 그녀를 끌어안아서가 아니라, 엄청나게 울리는 그의 심장소리 때문이었다.

 

  아이린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리는 그의 심장소리는 다소 위협적일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쿵쾅거렸다. 그의 심장 소리가 아이린의 머리에 울렸다.

 

  "황태자님-!"

 

  아이린을 끌어안은 카우라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귓가에 느껴지는 그의 숨은 뜨겁고 거칠었다.

 

  그는 아이린을 강하게 포박한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지금 당장 그녀를 끌어안지 않으면, 그녀가 살아있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마치 자기 자신이 바스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살아있다, 살아있어.

 

  아이린을 감싸 안은 단단한 팔 아래로 그녀의 떨리는 몸이, 따스한 체온이,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카우라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 끔찍한 장면을 최대한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온 마음을 다 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그 참혹한 장면은 마치 뇌리에 박힌 것처럼 쉬이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의 거센 심장소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만약에, 만에 하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이린이 말에 치이고, 아니…… 말에게……, 밟히…….

 

  카우라가 저도 모르게 짓씹은 입술 안쪽에서 비릿한 핏내가 올라왔다.

 

  시종들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달려왔다. 9살짜리 황자에게만 허용되는 행동범위였지만, 단 한 분뿐인 황비 마마와 막내 황자 저하가 동시에 생사의 갈림길을 왔다 갔다 한 지금으로선 그딴 것은 문제될 게 없었다. 멀리서 수업 중이던 페오와 딘슨까지 말을 타고 달려왔다.

 

  "어머니!!"

  "테디!"

 

  "마마!!"

  "저하! 괜찮으십니까?!"

 

  여전히 테디는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다. 테디의 비명과 같은 울음에 정신이 든 아이린이 황급히 카우라를 밀어내고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테디에게 다가갔다.

 

  "황자님!"

  "아아아악!"

 

  테디가 비명을 지르며 아이린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테디에게 팔을 벌렸다.

 

  무거우니 받지 말라고 시온이 말렸지만 황비는 고개를 저으며 결국 황자를 안아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나 힘에 부쳐서 그대로 주저앉고야 말았다.

 

  그녀는 시녀들이 뭐라고 울부짖건 맨바닥에 앉은 그대로 아이가 안정될 때 까지 강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마치 카우라가 그녀에게 해준 것처럼 말이다.

 

  자신을 밀치고 테디에게 간 아이린의 뒷모습을 조용히 눈으로 쫓던 카우라가 움직였다. 방향은 테디를 태우고 날뛴 말이었다.

 

  카우라가 말의 고삐를 짧게 붙잡고 채찍으로 그의 뒷다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말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하지."

 

  카우라가 잇새로 중얼거렸다. 테디를 달래던 아이린이 말의 비명소리에 카우라를 돌아보곤 놀란 얼굴로 그를 말렸다.

 

  "죽이면 안 돼요!"

  "뭐라고……?"

 

  카우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죽이지 말라고? 이 말을?

 

  "제정신이야?"

  "그저, 그저 화가 난 것뿐이었어요."

  "화가 났다고?"

 

  네가 뭘 알아. 이 말이 화가 난 건지 변덕을 부린 건지.

 

  "그렇게 잘 안다면 왜 화가 났는지도 물어봐. 정상참작 해줄 테니까."

 

  카우라가 이를 갈았다. 아이린은 분노에 잠식된 카우라의 눈빛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황태자는 황비가 얼어붙어 말이 없자 반항적인 콧김을 내뱉는 말을 거칠게 잡아당겨 마구간지기에게 넘겼다.

 

  "따로 가둬."

  "예, 황태자님……."

 

  마구간지기는 낯빛이 창백했다. 그의 머릿속엔 미래에 잘려 나가가게 될 말의 모가지와 자신의 목이 동일시되었다. 정말, 정말 순한 말이었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이란 말인가.

 

  파들파들 떨리는 마구간지기의 손에 고삐를 쥐어준 카우라의 시야에 저 멀리에서 새파랗게 질린 채로 굳어 있는 제론이 들어왔다.

 

  "저 새끼-!"

 

  카우라가 제론을 향해 달렸다. 제론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카우라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지만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두 번째로 니게르의 포효 소리를 들었을 때, 제론은 거의 혼절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이 미친 새끼가-!"

 

  카우라의 억센 주먹이 제론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눈에 초점이 없던 제론은 카우라의 주먹질에 겨우 중심만 잡을 정도로 크게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본 시온이 아연실색하여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카우라!!"

  "정신 안 잡고 살아?!"

 

  카우라가 휘청거리는 제론의 멱살을 붙잡고 다시 한 번 뺨을 강타했다. 제론은 힘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고꾸라진 제론을 강제로 붙잡아 일으켜 세우려는 카우라의 얼굴을 달려온 시온이 때렸다. 온 몸의 무게를 실어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시온의 공격에 카우라가 제론을 놓치고 휘청했다.

 

  "형 미쳤어?!"

  "미치긴 누가!"

 

  이번엔 카우라였다. 카우라의 주먹에 얼굴이 돌아갔던 시온은 금방 중심을 잡고 그를 돌아보았다. 난데없이 이어지는 주먹싸움에 아이린과 테디에게 몰렸던 시종과 시녀들이 다시 카우라와 시온에게로 달렸다.

 

  "저하!"

  "저하, 고정하시옵소서!"

 

  시종들이 소리치는 가운데, 시온이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렸다. 아까보다 감정이 실린 손찌검에 뒤로 밀려난 카우라가 시온을 노려보았다. 시온이 불타는 하늘색 눈동자로 으르렁거렸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지 마. 특히 제론.

 

  시온이 경고했던 말이 카우라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어릴 적의 제론. 카우라는 그 옛날에, 제론의 코앞에서 니게르의 포효를 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비슷한 이유였다. 승마하는 데 방해 되니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그리고 제론은, 자신의 머리보다 높이 앞발을 들고 크게 울부짖는 니게르의 앞에서 경기를 일으켰다.

 

  ……그래서? 나 때문이라고? 저 애가 니게르의 포효소리를 듣고 경기한 게 나 때문이라고? 넌 왜 항상 모든 게 내 탓이야? 고삐를 놓친 건 저자식이야.

 

  카우라가 시온에게 달려들었다.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시온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번에도 시온이 큰 휘청거림 없이 곧바로 자신을 노려보자 카우라가 낮게 읊조렸다.

 

  "사람이 둘이나 죽을 뻔 했는데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시온이 달려들려는 것을, 가장 빠르게 달려온 시종이 몸을 던져 막았다. 시온이 가로막히자 카우라가 달려들려 하였고, 그들 사이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만하세요!!"

 

  아이린이었다. 카우라가 멈칫하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에서 테디를 안고 있는 그녀는 온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그만해요……."

 

  아이린은 테디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 틈을 타, 카우라에게도 시종들이 달려들었다.

 

  카우라는 아이린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억지로 떼어내 바닥으로 떨구었다.

 

  입술에 피가 터져서 그런가, 입안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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