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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12
작성일 : 18-12-28 00:54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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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었다. 눈을 뜨니 수지가 보였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걱정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뜨거운 한숨을 이마 언저리에서 뱉었다. 자연 곱슬이라 손질하지 않으면 눈에 띄게 엉킨 머리를 우악스럽게 쓸었다. 말을 하다가 끊다가 하다가 끓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혀로 입안을 꾹꾹 눌러 볼을 볼록하게 만들었다. 허리를 굽혀 앉았다. 일어나는데 눈 밑으로 무언가 굴러떨어졌다. 눈을 깜박였다. 볼을 타고 턱을 타고 허벅지 위에 닿았다. 축축해서 깨달았다. 눈물이라는 것을.

 

 

  자면서 울었나?

 

 

  손을 들어 물길을 닦았다. 어째서? 나는 고개를 들어 수지를 바라봤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수지가 등을 아프게 때렸다.

 

  “아.”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자 찰싹거리는 것을 멈추고 대신 쓰다듬었다.

 

  “놀랐잖아.”

 

  수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데 다시 한숨을 쉬었다.

 

 

  밤사이 앓았다고 했다. 악몽을 꾸는지 식은땀도 흘리고 눈물도 흘리고 놀라서 다가와 어깨를 흔들었는데 그것도 안 돼서 소리도 쳤지만 깰 기미가 안 보였다고 했다.

 

  “아닌 거 아는데 이대로 안 깨어날까 봐 걱정했잖아.”

 

  입술을 혀로 축인 수지가 말했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꾼 거냐고 물었다.

 

  나는 김지빈의 꿈을 꾼 기억밖에 없어서 그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 꿈이 악몽은 아니었는데.

 

 

  좀 그렇네.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

 

 

  박성우를 만난 사실을 정예찬에게 말했다. 정예찬은 이미 모든 걸 아는 눈치였다. 그런데도 나를 원망하거나 탓하지는 않았고 박성우의 앞일을 물었다.

 

 

  가해자, 나는 그렇게만 대답했고 이제 더는 널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이려다가 그만두었다. 상처에 시선이 집중되지 않을 정도로 아문 얼굴에 대고 본론을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 겨우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될 정예찬에게 저번에도 그랬지만 무언가 바랄 생각은 없었다.

 

  정예찬과 박성우의 관계가 확실히 드러난 이상 재판에서 정예찬을 증인으로 신청하라는 고준서의 말이 머리에서 둥둥 떠다녔다. 박성우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걸까, 그런 소릴 꺼내봤자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라고 노발대발할 게 뻔했다.

 

  정예찬이 이 판을 뒤집을만한 중요한 증인이긴 했다. 이젠 웃지 않을 것처럼 표정이 없는 동준을 생각해서라도 정예찬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입술을 벌리기를 머뭇거렸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정예찬이 먼저 선수를 쳤다.

 

  “증언이요?”

  “아, 응, 안 한다고 한 건 아는데.”

 

  나는 어쩐지 가슴이 아파졌다. 그다지 재판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나로서는 이렇게 길고 어려운 논쟁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점점 확신에 차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이런 일을 김지빈은 몹시도 수많이 겪었을 것이다.

 

  “생각해볼게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예찬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건 완전 부정의 뜻이 아니었다. 의외의 대답에 놀라 눈이 커졌다.

 

  “그리고 아직 얘기하지 못한 말이.”

 

  더 있어요.

 

 

  *

 

 

  공장에 들어갔다 나온 마티즈는 새것이 되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보는 김에 이곳저곳 손봤다고 돈을 더 뜯어갔지만, 확실히 돈이 좋긴 좋았다. 마이 카, 마이 붕붕이, 보고 싶었다고 사이드미러에 뽀뽀 열 번쯤은 해주고 오랜만에 드라이브나 할까 하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이게 이래 보여도 김지빈 시계 하나 값이라고. 으하하 하고 웃었더니 직원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그럼 좋지요. 출근길 만원 버스, 그거 아무나 탈 수 있는 거 아니라니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루는 추행도 당했는데 그 순간 변호사고 뭐고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엉덩이를 슬금슬금 만지는 손을 꽉 잡아 뭐 하는 짓이냐고 머리로는 수십 번도 플레이했던 영상이 막상 입을 떼려니까 덜덜 떨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세 정거장 앞서 내리는 것으로 나름 해결했지만,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혼자 그 감각을 지우려 애썼다. 가방을 뒤로 옮기는 버릇이 생겼다.

 

 

  기분 탓인지 핸들링도 예전보다 매끄러웠다. 노래를 틀고 그 어떤 고민에서 벗어나 부드럽게 질주한다. 신호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서 있고 목적지가 어디인지 정하면 길은 뚫려있는 도로에서 사방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이 여유로운 하늘 한 번 보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게 아닌가 하고.

 

 

  *

 

 

  차는 어느새 익숙한 길로 들어섰다. 집에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을 실행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므로 풍경을 좀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흩어지는 장면을 눈에 새긴다. 가끔 헤드라이트와 쨍한 가로등에 눈살이 구겨져도,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순간이라도 착각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갓길에 정차했다.

 

  김지빈이 누군가와 나란히 서 대화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여자였다.

 

 

  *

 

 

  여자 친구인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보기 드물게 웃고 있는 김지빈 때문이었다. 김지빈은 평소 무뚝뚝한 표정이랑 웃는 표정의 갭이 상당했다. 차가운 인상에 다가오지 못했던 사람들도 어쩌다 김지빈의 웃는 모습을 보면 용기 내 말을 거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김지빈이 살가운 성격은 아니기에 금방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뭐 얼굴이 그럭저럭 생겨서 대학 때부터 주변에 사람이 끊이질 않았으니 현재도 인맥 걱정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걔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슨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저 여자도 그렇게 걸린 물고기인가.

 

 

  김지빈이 여자를 만난 적이 있던가. 솔직히 김지빈의 차가 몇 대인지도 모르는 내가 김지빈의 여자관계까지 알 리 만무하다. 김지빈이 여자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긴 했다. 그러니까, 쟤는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이상한 장면을 엿보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왜 굳이 멈춰서 김지빈의 얼굴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있는 건지. 누가 봐도 이상한 건 나였다.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김지빈이 여자를 만나든 남자를 만나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닌데 그저 김지빈이 보였다는 이유로 멈췄을 뿐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아.”

 

  막 갓길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김지빈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옷차림도 멋스러웠다. 마지막 공판은 아직인데 진짜 데이트라도 한 모양이었다. 벗은 코트를 여자에게 내미는 것이 보였다. 추워해서 코트는 벗었는데 차마 둘러주기까진 부끄러운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진짜 무슨 상관이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지빈이 벗은 코트를 건네받은 여자가 웃을 때 손등이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목이 콱 막히는 느낌도 들었다.

 

 

  그제야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다. 차분하고 긴 생머리, 쌍꺼풀 짙은 눈이 크다.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맑고 청순한 얼굴처럼 하늘하늘한 분홍 원피스가 잘 어울렸다. 나는 대학 다닐 때도 저런 원피스를 입은 적이 없다.

 

 

  그럴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속이 얹힌 듯 답답하고 불편한 기분에서 왠지 배신을 당한 것처럼 부글부글 끓는 느낌으로 변했다.

 

 

  노래는 절정을 달렸고, 나도 결국 그 자리를 빠져나와 달렸다. 다시 목적지는 내비게이션이 알 수 없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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