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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유해화합물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이건 금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의 정의를 다르게 쓰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9화. 가까워지는 중.
작성일 : 18-12-27 21:07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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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데이트의 정석인 영화관에서 아현은 표를 들고 초조했다. 8월의 영화는 공포 스릴러, 아니면 액션이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는 말에 쉽게 수긍하는 것 같았던 소현은 눈치 빠르게 침대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어떤 남자냐고 캐물었다.

 

 스쳐 지나가듯 만난 사람은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연애나 남자 경험이 없는 아현을 아는 소현은 오히려 몇 해는 더 산 것 같은 언니처럼 쳐다봤다. 그런 거 아니라고 딱 잡아뗐는데 식탁에서 밥 먹다가도, 아침에 나가는 길에도, 마주칠 때마다 ‘누구야?’라고 벙긋거려 대서 이러다 다른 가족에게도 들키겠다 싶어 터놓았다.

 

 ‘그냥, 알게 된 오빠야.’

 ‘오오. 미술쌤 아니고?’

 ‘쌤은 진짜 쌤이라니까.’

 ‘알겠어. 그래서 그 오빠와는 뭐야? 앞으로 잘해보기로 한 거야? 아니면 썸?’

 

 소현은 능숙한 카운슬러처럼 물었다. 아현은 홀랑 넘어가 다 얘기할 뻔 했지만 적당히 걸러내고 그냥 호감 가는 사람이라고만 둘러대고 영화 보러 가기로 했는데, 정도만 말했다.

 

 ‘무조건 공포야. 알았지? 그런 거 보면서 약간 어머, 하면서 기대기도 하고 손도 잡고 해. 언니 원래 무서운 거 못 보니까 놀라는 건 연기 안 해도 되겠지만, 무조건 놀랄 땐 그 사람 쪽으로 놀라는 거야. 알았지?’

 ‘그, 그런 거 못 해.’

 ‘왜, 못 해. 여기 앉아봐.’

 

 소현은 상황 극에 상대역 연기와 해야 할 행동까지 다 정해줬다. 미래의 직업 중 실제로 연애 조작단이 있다면 소현은 단숨에 팀장 자리까지 승진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공포 영화 본다고 미리 말해주지 마.’

 ‘아, 어떻게 그래. 공포 영화 나처럼 싫어하는 사람이면 어떡해.’

 ‘그럼 더 땡큐지. 서로 찰싹 붙을 텐데.’

 

 — 결국 질렀다. 약간 긴장해서 자신을 잡아오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귀여워서 예매를 안 할 수가 없었다.

 

 팝콘을 좋아하려나, 어떤 음료를 마시려나, 탄산보다는 아무래도 커피나 이온 음료 쪽일 것 같은데. 파란 빛이 넘실거리는 산토리니에서 자전거를 타는 상쾌한 느낌의 광고나 따뜻한 색감의 집에 앉아 커피를 내리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광고 쪽이 역시.

 

 “아현아.”

 “네?”

 

 상상에 빠져 있던 아현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던 거야?”

 “아, 아니에요.”

 “시간 조금 남았지? 팝콘 먹을래? 음료수는 뭐 마셔?”

 “물이요.”

 

 회색 모자를 쓰고 얇은 긴 팔의 흰색 티의 약간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그가 주문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쳐다보는 아현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했다. 옷보다 몸이다, 아니 그보다 분위기인가.

 

 조금 느리게 깜빡이는 속눈썹이 긴 눈은 얇은 쌍커풀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는 눈을 살짝 문지르다 여리게 웃었다. 아현은 제가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죄송해요.”

 “아냐. 그냥 조금 수줍었어.”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가 팝콘보다 더 달콤하다. 큰일이다. 유혹은커녕, 매번 제가 더 반해서.

 

 영화관은 비교적 한적했다. 좌석에 앉자 소현의 말이 떠오르면서 그와 가까운 왼쪽이 마비된 듯 뻣뻣해졌다.

 

 “불편하지? 이거 너한테 줄게.”

 

 어색하게 집어가는 손을 보고 그는 팝콘을 가져가는 게 힘들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품에 통을 안자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아현은 닥쳐올 영화의 공포를 생각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온 시소는 내용은 나쁘지 않은데 공포 연출이 별로 없어 시시하다는 감상평을 남겼고 옆자리의 제로가 오히려 더 긴장되게 만들어서 자신이 얼마나 겁이 많은지 까먹었다.

 

 팝콘 통이 찌그러지고 다리가 자꾸 흠칫 흠칫 뜨는 바람에 결국 팝콘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을 감고 있어도 막아지지 않는 소리는 더욱 몸을 떨리게 했다. 소현이 무슨 조언을 했는지도 싹 다 잊어먹었다. 괜히 보자고 했어. 김소현, 집에 가면 죽었어.

 

 그 때 눈 위로 손이 올라왔다. 아까보다 더 기울여진 몸의 감촉과 함께 아주 희미하게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무서운 거 지나가면 말해줄게.”

 

 소현님, 당신을 잠시나마 원망한 어린 양을 용서하소서.

 

 아현은 그리고 나서 다시 무난하게 흘러가는 스릴러 영화가 오히려 미워질 것 같았다. 눈동자만 굴려 힐긋 쳐다보니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아현은 편하게 고갤 돌렸다.

 

 최근 맡은 작업 때문에 바빠서 연락이 안 될 거라 해서 살짝 의심도 했지만 그래도 믿는 수밖에 없어 조용히 기다렸다. 끝나고 온 연락에 만날 수 있냐고 해서 데이트를 잡았고 아까까지는 제 기분에 들떠 몰랐는데 이제 보니 그는 몇날 며칠 잠도 못 자고 나온 듯 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은 창백하기 까지 했고 살짝 내려 온 다크 서클에 이 습도 높은 여름에 입술까지 부르텄다.

 

 아현은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는 투정 부리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무엇보다 일에 매진한다는 것도, 상냥하게 타인을 대하지만 본인에겐 엄격한 사람이라는 것도, 자신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도.

 

 

 영화가 끝나고 밥을 간단히 먹고 헤어졌다. 아현은 재빠르게 택시에 혼자 올라타서 갔고 제로는 밤거리를 걸어 회사 5층 가장 끝에 위치한 제 작업실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2시간짜리 영화에선 30분 정도의 앞부분만 기억나고 밥 먹으면서 영화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는 걸 보니 제가 잤다는 걸 모르는 척 해주는 것 같았다. 무리해서 나간 건 맞지만 그래도 이왕 나간거면 신경 쓰이지 않게 해줬어야 했는데. 제로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조금 헝클였다 모자를 내려놓고 다시금 컴퓨터 파일을 켰다.

 

 제로, ZERO. 이름에 큰 의미가 있었냐고 하면 별로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라고 둘러대면 그럴싸했다. 세민이 모두에게 소개한 순간 자신의 정체성은 그게 전부였다. 음악 하는 제로.

 

 “로로.”

 

  세민은 매번 제 기분 따라 부른다. 팔을 흐느적대며 들어와서는 소파에 앉아 있던 제로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제로는 익숙하다는 듯 읽고 있던 책에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얼굴을 올려다보던 세민은 돌아오지 않는 관심에 손가락을 들어 콕콕 제로의 턱을 찔렀다.

 

  “맥주 마셨지?”

  “핫. 어떻게 알았지.”

 

 웬만한 술은 웬만큼 알코올 분해가 잘 되는데 이상하게 맥주만 먹었다하면 빨리 취했다. 몸을 채우고 있던 수분이 젤라틴으로 변해 몰랑몰랑해지고 흐물흐물해지는 느낌.

 

 잘 노는 레이블로 유명한 더 히든에서도 특히나 잘 모이고 자주 술 마시는 멤버들이 있다. 그 중심엔 사장인 세민이 있다. 세민은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봐도 사실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먼저 친한 척 장난 치고 웃지만 같이 있는 사람들을 배려한 날에는 회사 건물 지하 1층으로 초대했다.

 

 지하 1층은 와인부터 시작해 소주, 맥주, 양주, 샴페인 등 각종 술이 보관되어 있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기본 시스템과 각종 냉동 음식이 들어 있는 냉장고가 있었다. 회사 소속 멤버면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세민이 주도하지 않으면 다들 잘 안 내려왔다. 뒤처리가 귀찮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늘도 거기서 한 잔 걸친 게 분명했다. 평상시에도 사람들이 거의 오는 일 없는 제로의 작업실을 제 방 드나들 듯 놀러온다.

 

 안경을 낀 얼굴은 다른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사람을 대할 때 제로가 대부분 향이 좋은 헤이즐넛 커피 같다면 집중하고 있을 때면 산골짜기의 샘물 같다. 방해 받기 싫어하고 날카롭게 차가운 느낌. 그 얼굴에 기죽지 않는 건 세민밖에 없다.

 

 “우노 노래 음원사이트 전체 1위 했어.”

 “그래?”

 

 소속 가수 우노의 이번 노래를 작곡 및 프로듀싱한 건 제로다. 기뻐하면 좋을 텐데. 제로는 표정 변화 없이, 평소 말투 그대로 대답했다. 여러 번 있는 일이라 감흥이 없는 게 아니다. 처음 작곡한 곡을 세민이 발표해서 1위 했을 때도 남의 일처럼 “잘했어, 고생했어.”라고 말했다.

 

 잘 웃는 것 같은데도 그의 감정은 기쁨이나 행복에서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고 불행하거나 우울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보기엔 일정한 감정 폭을 유지하는 것 같은데 그 말은 곧, 대부분의 감정을 숨긴다는 말처럼 들린다.

 

 “온아.”

 

 이 이름을 부를 때만 그는 찰나 동요한다. 책을 내려놓고는 세민의 미간을 꾹 눌렀다. 심술부리지 말라는 듯. 세민은 그제야 헤, 하고 입술을 조금 벌리며 천진하게 웃었다.

 

 “집에 가서 자.”

 “너랑 같이 갈려고.”

 “난 아직 작업 할 거 있어.”

 “내일 해. 또 여기서 밤새지 말고 잠은 좀 집에서 자.”

 

 매번 하는 잔소리가 지겨운 건 그보다 세민이다. 주변에서 둘이 사실 사귀는 거지? 할 정도로 세민이 그를 챙기거나 붙잡고 늘어지는 것도 그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여자 친구 안 생기는 건 다 너 때문이야.”

 “그치, 넌 나 같은 여자 좋아하잖아.”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를 부정하지 못했다. 손목, 발목이 가늘고 피부가 하얗고 평상시 얼굴과 웃는 얼굴의 간극이 큰 여자.

 

 “그러니까 이제 그만 튕기고, 나랑 사귈까.”

 

 세민이 그의 턱을 살며시 쥐며 물었다. 그가 피식 웃었다.

 

 “나 감당할 수 있어?”

 

 나른하게 흐르는 목소리에 세민이 부르르 떨며 먼저 두 손 들었다.

 

 “와. 진짜 소름. 지금 존나 섹시했어. 이 마성의 남자. 어, 나 다음 앨범 그런 느낌으로 갈까?”

 

 제가 말해놓고도 솔깃해진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세민은 주로 작업할 때 컨셉을 잡고 곡을 의뢰하고 가사를 썼다. 그래서 공연에 강할 수밖에 없었다.

 

 “퇴폐미 넘치는 거 있잖아. 죄가 될 정도로 홀려주세요, 그런 거.”

 “찌라시 또 엄청 돌겠네.”

 

 고등학교까지 외국에서 다니다 20살에 한국에 들어온 세민은 길거리 캐스팅부터 아이돌 그룹 제의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본인이 거절하고 힙합 판에 뛰어 들었다. 잘생긴 얼굴 덕에 들은 환호만큼 실력에 대한 의구심이나 쉽게 떠드는 소문들도 만만찮았다. 스폰서가 있다거나 호스트로 몇 년을 굴러다녔다느니 외국에서 난잡하게 놀았다느니.

 

 오만과 편견, 세민은 그걸 발판 삼아 뛰어 넘고 다녔다. 오히려 자기 입으로 말한다. 랩보다 얼굴이 더 잘생긴 미남 래퍼, 우디. 그러면서도 얼굴보다 기가 막힌 랩을 선보인다.

 

 그렇게 험한 이 바닥에서 6년을 비빈 세민은, 레이블까지 보란 듯 성공시켜 어떤 의미에선 진짜 아이돌이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사람.

 

 “재밌겠다. 이번엔 무슨 썰 나려나.”

 

 아현에게 했던 말은, 사실 세민이 자주 하던 이야기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믿는 것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실제로 그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세민을 보면, 부럽다.

 

 “이번에도 잘 부탁합니다, 작곡가님.”

 “오냐.”

 “일단 지금은, 사장님 말 듣고 퇴근하자.”

 “네.”

 

 둘은 금방 쿵짝 잘 맞추는 서로를 보고 키득거렸다. 지난 3년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많은 의미로 동반자가 되었다.

 

 “로로.”

 

 세민이 문득 벽면에 걸린 작업 일정을 보다 말했다.

 

 “왜.”

 “만약에, 말이야.”

 “응.”

 

 세민은 주욱 그어진 푸른 선 아래의 글자를 만졌다. 한우주.

 

 “우주가 좋아하는 사람이, 네가 아는 사람이면 어떡할래?”

 

 금방 떼어지려던 입술을 돌아보며 세민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가령, 네 여동생이라면.”

 

 그리고 그 입술은 오래토록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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