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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류 도진과 그의 단 하나뿐인 해에 관한 이야기.

 
9화.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작성일 : 18-12-27 20:43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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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이 생애 처음 참여한 시상식이었다. 레드 카펫을 걸어가다 넘어지면 어쩌지, 플래시가 너무 터져서 눈을 못 뜨면 어쩌지, 몇 명이나 손을 잡아줘야 할까, 인사할 때는 어디 봐야 하지ㅡ 도진의 고민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온갖 걱정을 하는 도진에게 해는 '쫄지 말고 앞을 봐.'라고 조언했다. 이 자리에 서보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자세였다. 떨지 않고, 당당하게.

 

  해는 늘 일할 때 핸드폰을 멀리하라고 했는데 오늘은 더욱이 주의를 주었다. 혹시나 카메라에 잡히면 안 된다고. 도진은 긴장감에 계속 핸드폰을 보게 될까봐 전화기를 꺼놓고 시상식에 들어갔다.

 

  「 제21회 백호 영화제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

  노련한 남자 배우의 진행에 맞춰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 배우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시상식 홀은 예상보다 더욱 광대하고 무대는 더욱 장엄한 느낌이었다. 편안해 보이는 배우들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가 그를 조금 더 뻣뻣하게 만들었다. 옆에 앉은 선배 배우가 그에게 농을 던져 겨우 웃을 수 있었다.

 

  「 올해의 신인남우상은 누가 될까요? 서희 씨. 」

  「 음, 너무 어려운데요.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신인 남자배우분들이 대거 등장했잖아요. 」

 

  시상식이면 으레 나오는 멘트들이 오가고, 커다란 화면 가득히 후보 영상이 나왔다. 그중에 도진도 있었다.

 

  데뷔작인 <타겟>은 첩보 액션 영화였는데, 그는 버림받은 국가정보원 역할로 나왔다. 알려져선 안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국가를 배신했다는 누명을 쓰고 모든 것을 빼앗겼고, 자신의 오명을 벗기 위해 그리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전국 방송에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게 된다.

 

  유명한 감독의 작품인 것도 한몫했지만, 신선하고도 매력적인 신인 배우가 스크린 가득히 등장해 모두를 홀렸다.

 

  「 올해 신인 남우상은, 타겟의 류도진씨 입니다! 」

 

  하나의 문장을 이해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선배가 도진의 등을 툭툭 쳐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제야 음소거를 제거한 듯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그에게 쏟아졌다.

 

  경직된 다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려니 관절 하나하나가 다 아렸다. 무대에 올라서 건네주는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고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조명 때문인지, 마음이 벅차 올라서인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득하고 흐릿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 진짜 꿈이 아니네요. 」

 

  그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해의 말을 되새겼다. 회사에서 혹시나 하고 외우라고 했던, 수상소감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읊었다. 연기하듯. 그는 그게 오히려 편했다.

 

  「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때 '배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도록, 더욱 열심히 연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쏟아지는 환호성에 귀가 다 멍할 정도였다. 무대 뒤로 내려와 비상계단으로 온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접고는 시멘트 바닥에 앉았다. 바로 핸드폰을 켜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꿈결을 걷는 기분도 잠시, 현실 감각이 그를 잔혹하게 깨웠다.

 

  직감 비슷한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휘감았다. 곧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음만이 그에게 응답했다. 그는 매니저를 불러 빌다시피 부탁해서 집으로 갔다.

 

  그를 위한 불은 여느 때와 같이 다 켜져 있는데도 그는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어딘가 적막하고 살풍경했다.

 

  시야에 들어온 그녀의 방의 모든 것은 온전한 모습으로 있었다. 그녀가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가방과 그녀의 검은색 옷 몇 벌 빼곤, 그가 채워준 것들은 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나뒹구는 트로피를 내버려 두곤 밖으로 뛰쳐나왔었다.

 

  그가 처음으로 배우로서 영광을 받아 누려야 할 때, 그녀는 그를 떠났다.

 ​

 

 

  해에게서 소년에게

  009

 

 

 ​

  전화가 너무 길어졌다. 입만 뗐다 하면 모터가 멈추지 않는 친구 때문에 지호는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해는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었다. 나가기 전보다 한 병쯤 더 늘어난 술은 10분 새 해가 다 해치운 듯했다.

 ​

  “누나? 자?”

 

  지호는 해를 콕콕 찔렀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십 번도 술자리를 했지만 해의 술 버릇은 아직도 모른다. 오히려 제가 다 보여줬으면 보여줬지, 해는 흐트러진 모습 한 번 보여주지 않았는데.

 

  10분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호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눈만 끔뻑였다. 집에 데려가야 하는데 업고 가야 하나, 아빠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던 사이 전화기가 울렸다.

 

  노랫소리가 아닌, 오래된 전화기 속 기본 벨 소리였다. 아주 단조롭지만 술집 사람들이 한 번쯤 돌아볼 정도로 특이했다. 당황한 지호가 허둥대며 폴더를 열었다.

 

  저장된 이름은 없었다. 소리 멈추는 법을 몰라 지호는 통화 버튼을 눌렸다.

 

  “여...”

  “-해야, 해야. 나 나온 거 봤어? 넘어질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거기 막 생각보다 깜깜해서. 아, 근데 진짜 배고파. 한 끼도 못 먹었어.”

 

  혼자 감정의 롤러코스터라도 타듯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목소리가 낯설었다.

 ​

  “- 해야. 왜, 말이 없어?”

 

  조금 낮아진 톤의 차분한 말투에 그제야 지호는 상대가 도진이라는 걸 깨달았다. 입술을 떼기가 더 어려웠다. 잠시 망설이던 지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 “아,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날아드는 음성이 칼날이라면, 이미 목 끝에 닿아 피가 흐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

  “아, 저 박지호라고 합니다. 그때, 저희 아빠가 밥해줘서 누나랑 같이 먹었잖아요. 기억하세요?”

 

  원래 싹싹한 편인 지호는 그의 기세에 조금 움츠려 들어 어느새 전화기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고 있었다.

 

  “- 네, 해는요?”

  “아, 그게, 누나랑 같이 저녁 먹고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었는데요. 제가 진짜 잠깐 전화받으러 갔다 온 사이 누나가 잠이 들어서.... 그렇게 많이 먹거나 한 건 절대 아니고요.”

 

  여자친구의 아버지랑 통화해도 이렇게 무서울까. 지호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다가 손사래까지 쳤다.

 

  “-제가 갈게요. 죄송한데 주소 하나만 문자로 보내주시겠습니까?”

  “네, 네. 그럼요.”

 

  지호는 전화가 끊고 나서 의자에 털썩 앉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와, 진짜, 카리스마 장난 아니네.”

 

  지호는 쿵덕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는 고갤 설레설레 저었다. 문자를 보내주고 난 뒤 지호는 엎드려 잠든 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슥 뒤로 넘기자 뽀얀 얼굴이 반만 드러났다.

 

  “근데 그 형도 누나 앞에서는 다 무장해제되나 보네.”

 

  지호는 턱을 괴고서 그녀를 빤히 보다 살짝이 미소 지었다.

 

  “나도 그런데.”

 ​

  달콤함과 다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를 술잔만이 들을 수 있었다. 금세 지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무릎 넘어서까지 내려오는 긴 파카에 큰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도 안에 목도리를 둘러 코까지 다 가린 사람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해를 살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호가 고갤 숙이며 인사했고, 그도 지호에게 고갯짓했다. 그는 가볍게 해를 안아 들었다.

 

  “앞좌석 차 문 좀 열어줄 수 있을까요?”

 

  처음보다는 누그러진 목소리에 지호가 "네, 그럼요."하고 고갤 끄덕였다. 가게 문을 열고 나가자 비상등을 켜놓은 자동차는 흔하디흔한 국산 중형 차였다.

 

  앞 좌석은 편하게 눕혀진 상태였고 운전석에는 담요도 놓여 있었다. 지호가 옆으로 비켜 서자 그가 조심스럽게 해를 눕히고는 담요를 덮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 아니에요.”

 

  도진은 조금 고개를 치켜들어 눈을 보여주곤 싱긋 웃었다. 상냥한데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차는 유유자적 빠져나갔고, 지호는 으아, 하고 제 뺨을 톡톡 두드렸다.

 

  “저렇게 멋있는데 누나를 이렇게까지 챙기는 건 반칙 아냐?”

 

  지호는 괜스레 샘이 나서 툴툴거렸지만, 그녀를 챙기는 그가 너무도 다정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도진은 천천히 운전하면서도 힐끗 힐끗 해의 상태를 살폈다. 술 먹다가 그녀가 이렇게 잠든 경우라곤 단 한 번 뿐이었다. 술을 먹던 중에 두통약을 먹었을 때.

 

  몇 해 전 그렇게 잠든 해는 영 깨어나질 못했고 놀란 도진이 그녀를 업고 병원에 갔었다. 다행히 응급실에서는 큰 이상은 아니라고 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위험하다고 주의를 단단히 줬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길래 약을 먹은 걸까.

 

  주차시키고 난 뒤 다시금 안아 들었다. 해는 도진이 매번 드는 벤치 프레스에 비하면 한없이 가벼웠다. 끼니를 잘 챙겨 먹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도진이 침대 위로 사뿐히 그녀를 눕혔다. 그게 조금 아쉬웠다. 품에서 빠져나간 온기를 찾는지 그녀가 몸을 웅크리며 말았다.

 

  “어쩜 이렇게 귀엽지 진짜?”

 

  고슴도치 같은 모양새를 보고 도진이 살포시 웃음을 터트렸다. 전기장판부터 켜주고는 그녀의 머리에 베개를 베어주곤 이불을 덮었다.

 

  제 방에 들어온 도진은 목도리를 풀고 커다란 파카를 벗었다. 짙은 그레이 빛깔의 슈트에 붉은색 행커치프까지, 오늘 시상식을 빛냈던 그 차림 그대로였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을 조금도 들여보지 않은 채 평소에 쓰는 큰 욕실 대신 제 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에서 씻고 나왔다.

 

  반바지에 반팔 티 차림에 검은색 안경까지, 그는 그제야 제 모습을 살폈다. 빛나고 반짝이는 차림은 한순간이다.

 

  이게 진짜 자신이다. 진짜 류 도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류 도진. 해가 어벙이니 꺼벙이니 하며 놀렸던 류 도진.

 

  작은 전등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침대 대신 바닥에 이불 하나만 깔고 쪼그려 앉았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잠자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그녀의 코끝에 손가락을 가져댔다. 얕은 숨이 닿자 그는 그제야 안심했다.

 

  “해야.”

 

  그의 목소리는 작은 숨에도 흩어질 듯 애처롭고 가녀렸다.

 ​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르지?”

 

  그때의 그 절망감과 공포는 살면서 받았던 그 어떤 고통보다도 압도적이었다. 바닥에 떨어뜨린 트로피는 두 동강이 났고 도진은 그것을 버렸다.

 

  매년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이후로 몇 년간 시상식을 가지 않았다.

 

  “상 같은 거 다신 안 받아도 좋아.”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겼다. 달빛을 머금은 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찬연한 빛이었지만.

 

  “네 곁에 있을 수 있는 게 영광인 걸.”

 

  그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이 입술을 맞췄다.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기다려줘, 해야.”

 

  해에게 닿지 못하고 바스러질 이야기를 달만이 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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