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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10
작성일 : 18-12-27 17:12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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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오늘 되게 마신다.”

  “내가 좀, 기분이 좋아서 그래.”

  “벌써 두 캔이야. 너 세 캔이면 훅 가잖아. 나 뒤처리하기 싫다.”

  “알어, 알어.”

 

  자주 가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맥주 캔이 쌓인다. 주량은 350mL 맥주 세 캔도 못 마시는 알코올 쓰레기면서 훨씬 많은 양을 구매해버렸다. 오늘은 왠지 따지지 않고 마셔도 필름은커녕 눈꺼풀 한 번 안 끊길 것 같다.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밤처럼, 기분이 들떠있었다.

 

  “왜, 무슨 좋은 일 있어? 고백이라도 받았어?”

  “비슷해, 나 있잖아.”

  “너, 뭐, 뭐가 있는데.”

 

  혀가 빙빙 꼬인 것 같은데 정신은 멀쩡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고 싶은지 정확히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다.

 

  “나 있잖아, 김지빈이.”

  “김지빈한테 고백받았다고?”

  “아, 좀 들어봐.”

  “.....”

  “걔가 나 막 못마땅해하고, 무시하고, 연상 취급도 안 하는 것 같고. 뭔지 모르겠지만 걔한테는 늘 그냥 지는 느낌이었는데.”

  “그랬지.”

  “속상했단 말이야.”

  “.....”

  “나 좋다고 고백할 때는 언제고, 좀 잘나간다고 좀 대단해졌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내 꼴이 더 초라해 보이고 진짜 한심해 보이고.”

  “.....”

  “부탁이니까,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걔가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기대해도 되지.”

 

  김지빈이 내 뒤에서 날 도와주고 있다고.

 

 

  *

 

 

  수지의 도움 없이 박성우를 찾아갔다. 병원 정문은 어찌어찌 통과했는데 병실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경호원에 의해 앞길이 막혔다. 용케 내 얼굴을 알아봤다. 좋아해야 하는 건가. 나는 잠깐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고 뜻을 전했다. 그게 무엇이냐고 받아쳐서 ‘정예찬.’ 이 한마디를 뱉으며 대신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속닥속닥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다 곧 기다리라고 한 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라면 기다려야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경호원이 문을 활짝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고 턱짓했다. 그러나 조금의 검문이 있었다. 녹음기를 가지고 있다면 이실직고하고, 핸드폰도 압수할 거라고. 나는 순순히 그 무례한 명령에 따랐다.

 

  드디어 병실에 들어가자 침대에 앉아 날 흘깃 쳐다보는 박성우가 있었다. 아무리 1인실이라도 이렇게 넓은 곳은 처음 봤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반짝거렸다. 탁자에는 보라색 꽃바구니가 놓여있었다. 구석에는 휠체어가 있고, 침대 옆에는 가습기가 안개처럼 퍼졌지만, 그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박성우의 손에 들린 시집이었다. 제목이 특이해서 나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행복에 관한 소재였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가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은 박성우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청량한 목소리였다. 얼굴도 단정하게 잘생겨서 첫인상이 좋았다. 동준이나 정예찬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경계하는 모습은 일절 없었다. 여유로운 병실과 위화감이 전혀 없어 보이는 박성우는 느긋하고 차분한 구석이 있었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게다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표정까지, 꼭 여우 같다. 범상치 않은 녀석일 것으로 생각했다. 나 또한 알면서 모르는 척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

 

 

  박성우는 힐끔 벽시계를 바라봤다. 내가 들어온 순간부터 내가 나갈 시간을 재는 것처럼. 첫째로 정예찬의 이름을 거론했으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둘째로 둘이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을 때 잠깐 인상이 구겨졌지만, 재빨리 돌아왔다. 같은 반 친구가 병문안을 온 것이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친구?”

  “네, 뭐가 잘못됐습니까?”

  "넌 친구 몸에 담배를 지지고 그래?“

 

  뚫어지게 얼굴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박성우가 동요하기를, 맞는다고 스스로 인정하기를. 분침이 세 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을 때도 미동조차 없던 박성우가 미끄러지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을 땐, 더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런 짓 한 적 없습니다.”

  “.....”

  “그리고 저 담배 같은 거 안 피웁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부정하는 박성우의 말간 얼굴을 보다 못해 베이지색 벽지를 깐 천장을 올려다봤다.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왜 이 순간 김지빈의 집을 나올 때 김지빈이 사 온 피자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지 알 수 없다. 암막 안에서 거실 바닥에 놓인 피자 상자가 습기에 젖어 흐늘거렸다. 내 것이라고 말했을 때 못 이겨는 척 한 번만 되물었으면 어땠을까. 그 피자는 정말 내 것이 됐을까.

 

  “증거가 있는데도.”

 

  박성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한 치의 부끄러움이나 망설임 없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마른세수하고 이번엔 큰 소리로 웃은 박성우가 말했다.

 

 

  줘 봐요, 증거, 어디 있는데요?

 

 

  동그랗게 뜬 눈에 실핏줄이 생겼다. 침대 위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나는 내일 그것을 가지러 갈 거고 당일 재판에 내놓을 거라고 말했다. 박성우가 주먹을 말아 쥐는 게 보였다.

 

 

  명확한 증거 따위는 없는데, 그런 증거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비로소 증거를 만든다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후에 박성우가 어떻게 행동할지 머리에 그려졌다.

 

 

  박성우, 정예찬, 담배, 폭력, 증거.

 

 

  이 연결고리의 공통점이 딱 한 곳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

 

 

  내 생각이 맞는다면 오늘 박성우는 이곳에 온다. 사건 당일 정예찬이 CCTV로 발견됐던 학교 2층 복도, 턱이 15cm 나와 있는 창문 앞으로.

 

  새벽부터 잠복했다. 옆에서 하품을 길게 하던 고준서는 괜히 도와준다고 말했다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교실 안으로 몸을 숨겨 복도를 주시했다. 평일인데 학교 기념일이라는 이유로 쉬면서 주변이 한산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은 하늘이 도운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 내 짐작도 틀리지 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와중이었다. 고준서가 내 팔을 있는 힘껏 흔들었다.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복도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창문 앞에 선 뒷모습은 박성우였다. 같이 온 경호원 한 명 없이 혼자였다. 잠깐 좌우로 두리번거리더니 창문을 열려고 낑낑거렸다. 오늘도 추위에 창문이 얼었나 보다. 한참을 버벅대다 겨우 연 박성우가 무언가 찾는 것 같았다. 지금이었다.

 

 

  지금이, 딱 나가 여우가 벌려놓은 현장을 잡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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