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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주 사소한 연애
작가 : etcetera
작품등록일 : 2018.12.23

뛰어난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인정받은 30대 톱스타 배우 수한. 그러나 무성한 소문과 스캔들 속에 소속사에선 꿍꿍이를 숨긴 채 새로운 여자 매니저를 고용한다. 취업시장에서 허우적대다 톱스타의 매니저로 취직하게 된 지완. 자신의 역대 장래희망란에 ‘매니저’가 있어본 적은 없다. ‘연예인’은 있었어도. 그래도 사활을 걸기로 한다. 월급은 소중하니까.

 
6. 당신이 잠든 사이에
작성일 : 18-12-27 16:52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5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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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복도를 분주하게 서성거린 데다 초조함과 긴장감으로 뒤엉켰던 탓에 지완의 숨이 불안정하고 가파르게 헐떡거렸다.

 

 수한은 팔짱을 낀 채 그런 그녀를 가만히 주시하다 뒤돌아섰다.

 

  “들어와.”

 

 지완은 엉거주춤 그의 뒤를 따르며 그와중에 혹시 다른 사람의 흔적이 없는지 조심스레 살폈다.

 

 그러다 불시에 돌아본 그와 눈이 마주쳐 잠시 움찔한 그녀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지완의 탐색하는 시선을 눈치 챘을 텐데도 수한은 아무 말이 없었다.

 

 주방 쪽으로 걸어간 그가 컵에 물을 따라 가지고 돌아왔다.

 

  “마셔.”

 

  그가 베푸는 의외의 친절을 멍하니 바라보다 컵을 받아들고 물을 꿀떡꿀떡 삼켰다.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기자는 어떻게 됐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엘리베이터 타고 다시 내려갔어요. 아직 호텔에 있는 거 같아요.”

 

  “그렇군.”

 

  그는 별 일 아닌 것처럼 무심히 대꾸했지만 지완의 심정은 도저히 그와 같이 평온해질 수 없었다. 욕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저는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데 지나치게 태평하시네요.”

 

  그가 한쪽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 또한 지금까지 무수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을 테니까.

 

  “사실 아까 좀 헷갈렸어요. 물어도 되는 질문인가 해서요. 그런데 이제 보니 물어야 했던 게 맞는 것 같아요.”

 

  수한이 계속 말하라는 듯 차분히 지완을 응시했다.

 

  “호텔엔 무슨 볼 일이신가요?”

 

  “내가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나?”

 

  “...의무는 아니지만 지금 기자까지 붙은 마당에 호텔에서의 수한씨 사생활이 신문 지면에 실리면 제게도 불상사가 생길 테니까요. 알아야 뭐라도 할 수 있죠. 협조 좀 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아, 그 놈의 월급.”

 

  수한이 다소 심술궂게 그녀를 놀리듯이 말했다. 그의 장난기는 다행히도 오래가지 않았다.

 

  “호텔에 뭐하러 오겠어. 자러 왔겠지.”

 

  “혼자...주무시는 거고요?”

 

  그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지완을 빤히 내다봤다.

 

 지완의 얼굴이 민망함에 조금씩 달아올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주문처럼 자신의 직업을 상기시키며 부딪쳐오는 그의 시선을 애써 피하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너까지 둘이지.”

 

  그가 뒤돌아 다시 욕실로 향하며 능청스럽게 내뱉었다.

 

  “그럼 나부터 씻고 올까.”

 

 지완은 다소 불그스름해진 얼굴을 잔뜩 구기며 그의 뒷모습을 뚫어질 듯 쏘아보았다.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지완의 가슴은 긴장감이 아닌 안도감으로 가득 찼다.

 

 

  수한이 샤워 후 돌아왔을 때 지완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채 잠들어있었다.

 

  “...지나치게 무방비한데.”

 

  그가 혀를 차며 어이없다는 듯이 지완을 바라보다 미니 바로 가서 언더락잔을 들고 돌아왔다.

 

 침대를 둘러싼 몇 개의 조명만 남기고 모든 불을 끄자 룸 내부에 은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남자는 창가로 다가가 서울의 야경을 감상했다. 아무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장난감같이 작아진 차들이 오가고 멋없이 층수만 높이 쌓아올린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하나의 붐비는 도시가 있을 뿐이었다.

 

 수한의 시선이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가 들려오는 소파로 향했다.

 

 피곤했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자신의 새 매니저는 제법 눈치가 빠르고 일을 영리하게 처리할 줄 아는 듯 했다.

 

 꽤 괜찮은 인재를 영입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일을 잘 할 사람으로 그녀를 뽑진 않았을 것이다.

 

 수한은 도훈의 시커먼 속을 너무나 잘 알았다.

 

 자리가 불편한 듯 뒤척거리는 지완을 잠시 바라보다 수한이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로 이동했다.

 

  “뭐 침대야 넓으니까.”

 

  지완을 눕히며 수한은 진심으로 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조금의 사심도 없이 지완의 옆에 아무렇지 않게 누울 수 있었다.

 

 

  지완을 의식 저편에서 건져 올린 건 미약하게 시작해서 점점 커지고 있는 발신지 불명의 소음이었다.

 

 쿵쿵쿵쿵. 문 열라니까?

 

 앞에 건 층간 소음이고 뒤에 건 옆집 커플이 또 한바탕 하는 소린가?

 

 아, 근데 오늘따라 지나치게 생생하다. 이봐요들, 지금 제가 눈은 못 뜨겠지만 안 봐도 뻔히 한밤중이겠구만. 우리 낮에는 몰라도 밤에만이라도 제발 매너인들로 살면 안 됩니까, 예?

 

  “한수한, 문 열어!”

 

  그 소리에 잠이 다 달아났다. 술에 취한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대로 있어. 뒤돌아보지 말고.”

 

  불시에 날아든 남자의 목소리에 그나마 남아있던 잠기도 완전히 가셨다.

 

 순식간에 돌이 된 듯 굳은 지완이 아직 얼어붙지 않은 머리로 더듬더듬 짚어보기로 했다.

 

 가만 보자, 그러니까 여기는 호텔이고 제 몸뚱아리를 받치고 있는 건 침대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지완도 머리 복잡해지는 건 질색이다. 하지만 첫 출근과 동시에 계속해서 밀려오는 상황들이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너는 그대로 자는 척만 하면 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문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더 소리 키우지 말고 들어와.”

 

  수한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는 달리 꽤나 사납고 냉담하게 들렸다.

 

 비틀거리는 듯 일정치 못한 여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문이 다시 닫혔다.

 

  “빌어먹을 한수한, 네 얼굴이 그렇게 비싸?”

 

 취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격앙된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을 때 지완은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김혜린이었다.

 

  “너도 연예인이야. 호텔에서 눈에 띄기라도 하면 나보다 네가 더 곤란해져.”

 

  “하! 왜? 난 여배우니까? 아니면 넌 바람둥이 난봉꾼으로 소문난 문제의 H씨라 잃을 게 없고, 난 청순녀 김혜린이니까? 이제 다 필요 없어. 다 떠벌리고 다니라 그래!”

 

  “김혜린.”

 

  남자의 음성은 다정해지지 않았다. 그는 경고를 주듯 차갑게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을 뿐이다.

 

  “으흑.”

 

  풀썩 주저앉는 소리와 함께 이윽고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든 소리에 고스란히 노출된 지완은 지금 이 상황이 더없이 버겁고 불편했다.

 

 이불을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 안으로 식은땀이 잔뜩 배어났다.

 

  “수한씨, 내가 잘할게. 나 피하지 마. 응?”

 

  그녀가 안쓰럽게 매달렸지만 수한의 눈은 냉담하기만 했다.

 

  “나는 네가 정도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마.”

 

  그 말에 혜린이 움찔했다.

 

  “예전엔 안 이랬잖아. 내 얘기도 잘 들어주고 가끔씩이라도 얼굴 보여줬었잖아.”

 

  “그거야 네가 협박해서 그런 거고.”

 

  그 말에 지완은 놀랐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으며 잠자코 있었다.

 

  “내, 내가 언제 협박했다고 그래!”

 

  “김혜린, 더 이상 사람 목숨가지고 장난치지 마.”

 

  수한의 서늘한 음성에 혜린이 시선을 피하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거짓말 하지마. 내가 언제 그랬다고. 수한씨 변했어. 말해봐. 애인이라도 생긴 거야?”

 

  “......”

 

  수한이 침묵으로 일관하자 혜린이 펄쩍 뛰었다.

 

  “뭐야. 정말로 그런 거야?”

 

  눈을 크게 뜨고 부들부들 떨던 혜린이 순간 객실 안에 떠도는 위화감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제야 이곳에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수한이 누웠을 침대의 옆 자리에 잠을 자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말도 안 돼.”

 

  놀란 혜린이 그녀에게 접근하려 하자 수한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소란피우지마. 밤새 피곤하게 시달리다 이제야 잠들었으니까.”

 

 그 말에 놀란 건 혜린뿐만이 아니었다.

 

 잔뜩 긴장한 채 초조한 마음으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완의 심장 또한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당신...”

 

  혜린이 울먹이며 수한을 원망스럽게 노려보다 호텔룸을 뛰쳐나갔다.

 

 수한은 태연하게 그녀가 미쳐 다 닫고 가지 않은 문을 닫아걸고는 느긋하게 걸어 들어왔다.

 

 지완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혹시나 싶어 자신이 입고 있는 옷들을 이리저리 확인했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휴우.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의도치 않게 잠을 깨웠군.”

 

  지완을 슬쩍 보며 말을 던지곤 수한은 바로 다가가 술잔을 채워 돌아왔다.

 

  “단순히 잠을 깨워서 미안한가요?”

 

  그는 심기불편한 얼굴로 물어보는 지완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말하고 싶은 게 뭐지.”

 

  “이 일을 하기로 한 이상 수많은 불편과 수고들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하지만,”

 

  지완이라고 이런 말을 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단단한 결심으로 빚은 용기를 어렵게 끌어올렸다.

 

  “당신의 사생활에 저를 이용하진 말아주세요.”

 

  수한과 지완의 시선이 오래도록 부딪쳤다.

 

 그는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말없이 한참동안 바라볼 뿐이다.

 

  “조금 전의 일은 사과하지.”

 

  바로 이렇게 수긍하고 말끔하게 사과까지 할 줄은 몰랐다.

 

 속으로 조금 떨고 있던 지완의 긴장이 탁 하고 풀렸다.

 

 그녀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잔잔하게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수한이 지나가듯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

 

  “네?”

 

  뜬금없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지완은 알 수 없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건 참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지금처럼.”

 

  강압이나 강요 없이 그의 말은 부드럽게 힘을 가진다. 지완은 수한의 진지한 시선에 가만히 붙들렸다.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니까. 이쪽 일 하면서는 더욱 그렇고. 또 넌 특별히 거기에 장기가 있는 것 같으니까.”

 

  수한이 가볍게 술을 들이키곤 창가로 향했다.

 

  “자신의 장점을 계속 지켜 나가라고, 신입 사원.”

 

  그가 웃으며 지완을 돌아봤다.

 

  의외의 말에 스위트룸의 침대에 앉은 신입 월급쟁이가 그를 보며 마주 웃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지완은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자고 가지 그래.”

 

  수한의 무덤덤한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지완은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건 좀...그렇지 않나요?”

 

  그녀가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수한이 근처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새벽 세시야. 거기다 지금까지 잘만 자 놓곤 갑자기 뭐가 좀 그렇다는 거지?”

 

  “그건 저도 모르게 곯아 떨어졌을 때 얘기니까 그렇죠.”

 

  지완은 점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조금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자고 가.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그런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이 침대가 대따 넓긴 하지만 성별이 다른 배우와 매니저가 같이 쓰긴 좀 그렇죠. 제발 조금만 더 상식적으로 생각해주시죠, 저를 위해서라도.”

 

  “흠.”

 

  지완의 부탁 아닌 부탁에 수한이 잠시 생각해보는 눈치더니 드디어 상식적인 허락(?)이 떨어졌다.

 

  “그게 편하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네에, 감사합니다.”

 

  자고 가라는 그의 배려가 도리어 곤란함으로 다가왔기에 지완은 냉큼 일어서서 후다닥 갈 준비를 마쳤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 퇴근할게요.”

 

  수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며 문을 나섰다. 호텔 주차장에 무사히 안착해 있는 회사 세단을 이끌고 낮과는 전혀 다른 텅 빈 도로를 달렸다.

 

 새벽 세 시. 퇴근이라기에는 너무 늦어져버린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늘 하루 또 무사히 위기를 넘긴 것에 마냥 감사하고 안도하게 된다는 점에서 여느 직장인들의 퇴근길과 같았다.

 

 그래서 한 톱스타의 매니저는 새벽 세시의 도로를 그저 신이 나게 달렸다. 내일이 무섭고, 또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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