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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영혼치기
작가 : 골드보이
작품등록일 : 2018.11.4

부딪히면 몸이 바뀌는 세상. 남의 몸을 욕망하는 사람들. 그리고 영혼치기.

 
33. 은영
작성일 : 18-12-27 10:43     조회 : 237     추천 : 1     분량 : 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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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영은 지하실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손가락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도 여전히 가윗날이 손가락을 파고드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것도 실감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고 아팠다. 너무 아팠다. 인간은 가장 아픈 곳만을 자각한다는데, 모든 곳이 아파서 감각이 마비된 건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저 여자는 괜찮은 걸까?

 

 저 여자가 여기 끌려왔다는 건 어떻게든 진우와 연관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진우의 탈출을 도와준 사람인지도 모른다. 진우의 여자친구일까?

 

 은영은 여자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장갑으로 틀어 막힌 입에서는 읍, 읍, 하는 신음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신음을 냈다. 여자가 살짝 꿈틀거린 것 같기도 한데, 눈에 고인 눈물 때문인지 실제로 여자가 깨어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나는 정말 죽게 되겠지.

 

 은영은 담담하게 생각했다. 지하실에 처음 묶였을 때는 설움이 복받쳐 오열했지만, 진짜 죽음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지막 소원이라면 저 여자가 무사하게 깨어나는 걸 보는 것이었다. 익호의 손에 죽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다. 나의 죽음은 어느 정도 자초한 면이 있으니... 하지만 저 여자만은 익호의 희생자가 돼서는 안 된다.

 

 은영은 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발소리. 익호였다. 그가 손에 든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이 지하실 전등 불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은영에게 다가왔다.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은영은 순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부릅떴다. 말도 할 수 없고,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눈빛만이라도 상대를 제압하고 싶었다. 아니 제압할 수는 없다고 해도 저주를 담은 눈빛을 익호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다.

 

 “은영아, 이제 작별인사를 해야겠구나.”

 

 익호가 조롱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은영의 입안에 있던 장갑을 거칠게 빼냈다.

 

 “너도 나한테 작별인사 한 마디는 해야지?”

 

 퉤, 은영은 익호에게 침을 뱉었다. 하지만 침은 익호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허, 네가 죽을 때가 되니 나한테 이런 더러운 꼴을 다 보이는구나.”

 

 익호가 칼끝으로 은영의 가슴을 더듬었다. 명치끝을 맴돌던 칼이 왼쪽 가슴으로 향했고, 다음 순간 은영의 심장에 칼이 꽂혔다.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익호가 기합소리를 내며 칼을 더 깊숙이 찔러 넣었다. 통각이 마비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은영의 몸에는 고통을 감지할 힘이 남아있었다. 부릅뜬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서서히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눈물 때문이 아니라 생명이 소멸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은영은 직감했다. 익호는 은영의 앞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져가는 은영의 얼굴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은영은 숨이 다하면서도 맞은 편 구석에 있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였다. 여자의 몸이 확실히 움직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여자가 잠에서 깨어나는 동물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다행이야, 여자가 무사했어.

 

 마지막 소원이 이뤄졌다고 안도할 겨를도 없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여자가 손목의 끈을 풀고 얼굴에 씌워진 검은 천을 걷어낸 것이다. 얼핏 봐도 야무진 얼굴이었다. 머리를 짚고 일어선 여자는 소리없이 기어가 지하실 바닥에 있던 벽돌을 집어 들었다.

 

 안 돼. 그러지 마. 당신은 이 악마를 이길 수 없어..

 

 은영은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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