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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법의 재등장은 우리들 덕분.
작가 : 아니펜
작품등록일 : 2018.11.12

소꿉친구였던 3명의 소년소녀가 의문의 석판과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신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해요.

 
18. 잊은 기억 - 1 -
작성일 : 18-12-27 01:11     조회 : 240     추천 : 0     분량 : 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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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가게에 돌아온 순간 내가 본 광경은 의자에 앉아있던 베니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공포로 가득 찬 비명을. 깜짝 놀란 나와 샤머니는 얼마 안 남은 거리를 빠르게 뛰어갔다.

 

  “갑자기 왜 그래?! 언니? 언니!”

  “베니 일단 진정해!”

 

  시로아와 그래스트 형이 달라붙어 달래봤지만 소용없었다. 베니는 공포에 질려 어떤 소리도 안 들리는 듯했다. 눈동자는 떨렸고 이빨은 서로 부딪혀 따닥따닥 소리를 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겁에 질릴 수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무슨 일이야?!”

  “오, 오빠. 모르겠어. 갑자기 저 사람 손등을 보더니.......”

 

  시로아가 가리킨 사람을 봤다. 전신을 갈색 로브로 덮은 왜소한 체격의 남자였다. 쉴 새 없이 몸 여기저기를 발작하듯 까딱거리고 후드 안으로 보이는 초췌한 얼굴은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난 그를 쏘아보며 물었다.

 

  “당신 뭐야?”

  “......글쎄에?”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높고 탁한 목소리였다.

 

  “난 그냥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근데, 이렇게 무서워할 줄이야. 이건 나도 좀 충격인걸? 이히히히........”

  “......그딴 식으로 말할 거면 그냥 꺼져.”

 

  남자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계속 중얼댔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도 내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는데. 나도 살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으히히히.”

 

  그는 미친 듯이 웃어대더니 갑자기 오른팔의 소매를 걷었다. 드러난 손등에 붉게 빛나는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문양을 본 베니가 크게 몸을 떨었다. 비명을 지를 정신도 없는지 혼이 나간 표정으로 몸을 뒤로 빼며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팔과 다리마저도 떨리느라 바빠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난 그 모습에 참지 못하고 외쳤다.

 

  “당장 꺼져!”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노르스름한 액체가 남자의 얼굴에 쏟아졌다. 액체가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의자에 앉아 빈 맥주잔을 들고 있는 마리가 있었다. 날아온 액체는 저 잔 속에 들어있던 맥주이리라.

  마리는 씩 웃으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갑자기 술 뿌려서 미안한데요. 혹시 말도 못 알아먹는 저능아이신가요? 마렌이 계속 꺼지라고 하는데 왜 안 꺼지죠? 그리고 무슨 재미난 짓을 하셨기에 베니가 저런 반응을 보일까? 마음 같아선 붙잡아 패면서 물어보고 싶은데 그럼 베니가 진짜 자지러질 것 같으니까 참을게요. 빨리 꺼져요. 안 그럼 다음에 날아가는 건 맥주 따위가 아닐 테니까.”

 

  그녀는 씩 웃으면서 맥주잔을 흔들어보였다. 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었더니 혓바닥으로 본인의 입술 주변을 핥았다.

 

  “재밌군 아주 재밌어.......”

  “댁만 할까.”

  “그래...... 불청객은 그만 가도록 하지. 하지만......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거란 느낌이 드는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남자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멀어졌다.

 

  “언니! 그 사람 갔어! 정신 좀 차려봐!”

 

  시로아의 절박한 부름에도 베니는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결국 탈진한 듯 의식을 잃었다.

  그래스트 형은 의식을 잃은 베니를 들춰 업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 내 집으로 가자. 여긴 사람들 시선이 너무 몰려.”

 

  그 말을 듣고서야 웅성거리는 주변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우린 정신없이 가게를 나와 그래스트 형의 집으로 향했다.

 

 

  * * *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환자용 침대에 베니를 눕힌 그래스트 형은 동공, 맥박 등을 확인했다.

 

  “일단은 정신적 충격으로 기절한게 전부인 것 같다. 좀 있으면 금방 깨어날 거야.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나마 다행인 사실에 안도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난 베니를 제외하고 술자리에 있던 3명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술 잘 마시던 애가 갑자기 왜 그 지경이 돼? 아까 그 녀석은 뭐고?”

 

  그래스트 형과 시로아는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지었고 벽에 몸을 기댄 마리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어렵사리 입을 땐 건 시로아였다.

 

  “......우리도 잘 몰라. 오빠에게 샤머니를 보내고 얼마 안 있어 그 남자가 왔어.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그냥 취객인가보다 했지. 근데 갑자기 베니 언니한테 말을 걸더라고. 그리곤 갑자기 자기 손등을 보여주는 데. ......그 이후론 오빠가 본대로야.

  “무슨 말을 했는데?”

 

  잠자코 있던 마리가 대답했다.

 

  “요약해서 말하면 ‘역시 그 아이로군. 가까이서 보니까 알겠어. 살아있었나? 그 반응을 보니 날 잊어먹었나 보군.’같은 말들이었어. 상투적일 정도로 의미심장한 말이네.”

  “나도 하나 이야기할게 있다.”

 

  샤머니가 말했다.

 

  “그 남자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 그건 마법이었다.”

  “......또 뭔 소리야.”

  “나도 놀랐지만 분명 사실이다. 문양에서 분명 마나가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침묵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안 됐다. 머릿속에 선명히 남은 베니의 겁먹은 모습만이 이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려줄 뿐이었다.

  아니, 사실 하나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다. 하지만 언급할 순 없었다. 그건 베니의 치부다. 우리 남매와 베니만이 알고 있는 비밀. 그녀가 기절한 상태에서 내 마음대로 입 밖으로 꺼낼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그 치부를 알고 있는 이가 한명 더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베니가 망각한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이겠지. 결코 좋지 않은 인연.”

 

  시로아의 기억을 전부 본 샤머니는 베니의 기억상실도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마리가 흥미로운 미소를 띄웠다.

 

  “뭐야 이거. 이야기가 점점 커지네? 마법이 끼더니 이번엔 베니의 기억상실? 재밌어지는 건가?”

 

  그렇게 말하곤 나와 시로아를 번갈아 봤다. 시로아는 시선을 피했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샤머니에게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그런 걸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네 맘대로 지껄이지 마.”

  “이 지경까지 와서도 숨기려는 건가? 그건 그래스트와 마리에게 실례다. 사건에 휘말린 자는 사건의 전모를 알 권리를 가진다.”

 

  담담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샤머니가 놀랍도록 아니꼬웠다. 마음 같아선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그의 발언이 틀린 건 아니기에 꾹 참았다.

  다시 찾아온 정적. 이윽고 시로아가 내게 말했다.

 

  “오빠.... 샤머니 아저씨의 말대로 이건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만약 그 사람이 다시 온다면 마음 편히 도움을 청할 사람은 그래스트 아저씨와 마리 언니뿐이야. 게다가 못 믿을 사람도 아니잖아.”

 

  마리의 진지한 어조에서 심사숙고했음이 느껴졌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래스트 형을 봤다. 형은 어깨를 으쓱였다.

 

  “네 맘대로 해라. 베니는 지금 환자고 환자의 사정을 모른 척해주는 것도 차분하게 들어주는 것도 전부 의사의 역할이니까. 나 뭐든 좋아.”

  “난 그냥 듣고 싶은데?”

  “마리. 여기선 연장자의 멋짐을 보여야 할 때야.”

  “푸핫! 우리한태 그딴 게 어디 있다고 이제 와서?”

 

  나는 만담 같은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며 포기 반 결심 반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할게요.”

 

 

  * * *

 

 

  내가 9살이던 해. 부잣집 딸내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2명의 시중과 베로아 마을로 이사 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여자아이의 정체가 궁금했던 시로아는 여자아이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고 마찬가지로 흥미를 느꼈던 나는 수락했다.

  우리가 택한 방법은 뒷담을 넘는 것이었다. 높은 담을 낑낑거리며 넘어가 땅에 착지한 순간.

 

  “......너희 뭐야?”

 

  기둥 뒤에 숨어 얼굴만 내민 여자아이에게 걸려버리고 말았다. 베니와 우리 남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베니는 전형적인 부잣집 아가씨였다.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비싸 보이는 옷과 잘 정돈된 허리까지 오는 빨강 머리카락. 격식 있는 몸동작에 까칠하고 드센 성격까지. 시골 마을에선 볼 수 없는 그녀의 요소들에 끌린 우리 남매는 베니와 친해지기 위해 그녀의 집에 매일같이 찾아갔다. 갑자기 이사 온 시골 마을의 심심함과 외로움을 달랠 친구가 필요했던 베니도 우리 남매를 반가워했다. 우리 금세 친해졌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산에서 곤충을 잡는다거나.

 

  “오빠. 이거 봐 애벌레야. 애벌레~.”

  “우와. 엄청 크...”

  “히야아아악!”

  “깜짝아. 베니. 갑자기 왜 소리를 질러. 놀라게.”

  “징그러워! 빨리 버려!”

  “왜~? 귀여운데~.”

  “안 귀여워!”

 

  강에서 가재를 잡아 탕을 끓여 먹기도 하고

 

  “됐어. 이제 먹어도 돼.”

  “잘 먹겠습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아?”

  “시로아 봐봐. 잘만 먹잖아. 걱정 말고 먹어봐.”

  “...으으. ......응?”

  “맛있지?”

  “......흥. 먹어줄 만은 하네.”

  “오빠! 언니! 나 물뱀 잡았다!”

  “시로아! 그거 독 있는 거야! 빨리 버려!!!”

  “끼야야야악!!!”

 

  목검 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겼다!”

  “계속 베니 언니만 계속 이기네~.”

  “......도저히 상대가 안 되네.”

  “수도에 있을 때 스승님에게 배웠거든~. 난 절대 못 이길걸?”

 

  하지만 세 명이 함께 어울리는 나날은 1년을 넘어가지 못했다. 이어지지 못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셋이 모여 놀던 중, 베니가 우물쭈물 말했다.

 

  “나, 수도로 돌아가.”

  “으응?”

 

  시로아는 베니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언니 수도가? 엄청 멀잖아.”

  “응. 그, 그렇지?”

  “그럼 올 때 선물 사다주라~.”

  “어, 그게.......”

 

  베니는 순수한 눈빛으로 자기를 올려다보는 시로아를 어쩔 줄 몰라 나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나라고 특별한 수가 있는 건 아닌데..... 나도 갑자기 그런 소리를 들어서 마음도 엄청 뒤숭숭하고.

 

  “하아.......”

 

  한숨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무릎을 굽혀 시로아와 눈높이를 맞췄다.

 

  “베니는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이제 우리랑은 이렇게 매일 만나서 놀지 못해.”

  “......그럼 2일에 한번은 돼?”

 

  두 가지 선택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진실을 알게 해 슬프게 할 것인가. 거짓말을 해 모르게 하고 안심시킬 것인가. 난 전자를 선택했다. 지금 진실을 알며 얻을 슬픔보다 뒤늦게 베니가 수도로 돌아갔다는 걸 안 뒤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얻을 슬픔이 더 클 것이다 생각했다.

 

  “수도는 여기서 너무 멀어서 앞으로 베니는 보지 못할 거야.”

 

  시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베니에게 물었다.

 

  “언니 정말이야?!”

 

  베니는 애매한 표정을 짓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아는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세 명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정적이 무거웠다.

 

  “우윽...”

 

  시로아가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설마 싶어 시로아의 고개를 들췄다.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입은 터져 나오려는 통곡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와 베니는 착잡함에 젖을 새도 없이 시로아를 달랬다.

  며칠 후, 베니가 마을을 떠나는 당일이 됐다. 우리 남매는 마을 입구까지 베니를 배웅하러 나갔다. 마차에 막 오르는 참이었던 베니는 뛰어내려 우리에게 달려왔다.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훗날 어른이 되면 꼭 다시 만나자 약속했다. 지평선 너머로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 남매는 그 뒷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베니와의 재회는 1개월 뒤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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