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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가사리(不可殺伊)
작가 : 비내린
작품등록일 : 2018.12.20

이름 모를 타지에서 죽고 눈을 떠보니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 구 아니, 한 명의 시체를 둘러싼 이야기.

 
3. 헤야
작성일 : 18-12-26 23:53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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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도 아닌가요?”

  헤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어딘지 기억 안 나고요?”

  그 말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시간이어서 교주도를 다 둘러보는 건 턱도 없고, 그저 마을 위주로 빠르게 돌아다녔다. 나의 특성상 주변을 빠르게 돌 수 있었다. 밤에 내가 안고 돌아다닐 때 잠을 설치던 헤아도 내가 조금이나마 흔들림 없도록 노력하고, 그녀도 익숙해진 덕분에 안 깨고 잘 자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간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이웃마을이라든가 내가 살던 마을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요!”

  나는 헤아가 애써 힘차게 말하는 게 느껴졌다. 많이 지친 거 같았다. 하긴 그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잠은 이동하면서 자는 것이 익숙해졌다지만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마을에서 하루 묵고가기로 했다.

  “에이 아니에요. 갈 길이 바쁜데요.” 라고 헤아는 말하긴 했지만 기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제 딴에 감춘다고 감춘 거겠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나는 헤아를 데리고 마을로 들어섰다. 가면은 쓸까말까 고민했지만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숙소부터 잡자꾸나.”

  “예.”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헤아랑 속도를 맞추다보니 벌레가 많이 끼었다. 산적 때나 도적 때가 얼마나 많은지 지금 고려가 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것은 그것이고 나나 헤아에게 좋은 점은 돈들이 스스로 걸어 들어오니 나쁘지 않았다.

  그들을 상대할 때 나는 무력을 그리고 헤아는 돈을 뜯는 것을 맡아 착실하게 그들을 뜯어낸 결과 꽤 돈이 모였다고 헤아가 좋아했다. 그리고 그 돈을 육포와 같이 이동하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만 구매하다보니 돈이 꽤 남았을 것이다

  “저기 어떠냐.”

  마을은 성과 다르게 입구에서 그렇게 크게 누군가를 조사하지 않았다. 지금 시대가 흉흉해 자경단이 존재하는 거지 그러지 않았다면 무기대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강과 산 그리고 들판. 나는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러다 마을에 비해서 커보이는 주막이 하나 보였다.

  “저기서 하루 묵을까?”

  그 말에 헤아는 고개를 절래 저었다.

  “아니에요. 저기 비싸 보여요.”

  “우리 돈이 있잖아.”

  그 말에도 헤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껴야죠.”

  하지만 나는 헤아의 눈에서 저곳에서 하루만이라도 묵고 싶다는 열망을 읽었다. 물론 내 착각이며, 내가 살았을 때 하지 못한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하고 싶었다.

  “가자.”

  “꺄악.”

  나는 헤아를 들쳐매고 저 큰 주막으로 향했다. 헤아는 내 어깨에서 발버둥을 쳤지만 솔직히 그렇게 싫지는 않은지 그렇게 크게 하진 않았다. 주변에서도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주막 앞에서 헤아를 내려놓았다. 헤아는 짐짓 화가 난 듯 양 허리에 손을 얹고 불을 부풀렸지만 눈이 환하게 휘어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화는 그만 내고 들어가자.”

  하고 나는 모르는 척 헤아의 등을 떠밀었다. 헤아도 못 이기는 척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나는 헤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역시 값이 조금 나가는 모양이었다. 헤아는 종업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안으로 들어갔다. 헤아는 주막 주인과 가격협상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하지만 이 주막은 협상이 되지 않는지 헤아의 표정이 울것만 같았다.

  “가장 좋은방 한 개, 두명 다 목욕을 할 거고.”

  나는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은 헤아의 머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이 아이에게 좋은 옷도 하나 구해주시오.”

  하면서 내 옷에서 돈을 꺼내 건넸다.

  “어? 아저씨가 돈이 왜 있어요?”

  “나이가 있는데 이 정돈 있어야지.”

  사실 나한테 돈이 있다는 건 얼마 전에 알았다. 옷을 험하게 굴렸더니 여기저기 찢어져 있어서 한숨을 쉬며 찢어진 부분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이 돈이다. 아마 국경에 있던 산적 두목인 창식이가 넣어준 것이리라.

  나는 이 돈을 쓰는데 거리낌이 많았다. 나는 그들과 더 이상 역일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나에게 창을 들이밀고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을 이 옷과 고려 안으로 들여보내 준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교주도에 들어오고 헤아를 만나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녀석들을 도와줄 고민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뺏은 아니, 가져온 이 옷뿐만 아니라 그들이 호의로 준 돈도 마음 편하게 먹고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돈이 조금 남는데 손님의 옷도….”

  “됐습니다.”

  내 말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잔돈을 내게 거슬러 주었다.

  “물이 준비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그리고 나와 헤아는 준비된 방으로 들어갔다.

  “햐아.”

  다른 귀족들이나 묵는 곳은 안 가봤지만 여기는 그곳보다 훨씬 못할 것이다. 하지만 헤아는 지금은 그런 거 상관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듯이 반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감탄은 지금의 헤아와 한 몸이었다.

  그렇게 작지만 멋있는 방을 둘러본 헤아는 한쪽에 잘 개져 있는 이불을 만져보았다.

  “푹신푹신해!”

  그리고 기분이 좋은지 계속 만지작거렸다.

  “손님 물 데워놨습니다.”

  그때 밖에서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몸을 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일까. 그 목소리가 아주 감미로웠다.

  “먼저 씻겠느냐.”

  내 말에 헤아는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나는 서둘러 말을 바꾸었다.

  “먼저 씻어라.”

  “아니에….”

  “먼저 씻어라.”

  내가 같은 말을 두 번 하자 그제야 헤아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종업원을 따라 나섰다. 그렇게 평온하게 오늘은 막이 내릴 것이다.

 

  “여기입니까.”

  “예. 맞습니다.”

  “아직 강시가 안 온 것일까요.”

  그 말에 공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크게 이상한 점은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마을도 비슷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마물을 쫓을 때는 오히려 흔적을 남겨주는 마물이 더 편하다. 흔적도 없으니 뒤쫓기가 너무 힘들었다.

  “날이 저뭅니다.”

  한 승병의 말처럼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피를 흘리는 태양이 저물고 있었다.

  “여기에 강시가 왔던 아니던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가야합니다.”

  그 말에 공저는 고민을 했다.

  “공저스님. 저희는 강시와 언제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특히 스님께서 가장 앞서시겠지요. 근데 스님 마지막으로 쉬신 날이 언젭니까.”

  “그건….”

  그 말에 공저는 입을 닫았다.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3일 전이었을 수도 있고, 5일 전일수도 있다. 아니, 더 과거였을 수도 있다. 잠은 잤지만, 쪽잠밖에 자지 못했다.

  “푹 쉬셔야 합니다. 곧 전투가 일어날 겁니다.”

  “하아. 알겠습니다.”

  공저는 항복을 표현했다. 다른 승병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공저는 그들이 보기엔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말갖춤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있는 것과 같아 보았다. 언제 떨어져도, 말이 날뛰어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래서 모두 공저가 휴식을 취한다고 했을 때 안도함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면 제가 쉴 곳을 알아보겠습니다.”

  하면서 한 명의 승병이 말을 타고 마을 안으로 향했다. 나머지 인원들도 공저와 함께 천천히 이동했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안으로 들어갔던 승병이 그들을 향해 오는 게 보였다.

  “다행히 16명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주막을 찾았습니다.”

  “그리 큰 마을은 아닌데 그런 곳이 있다니. 운이 좋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면서 먼저 들어갔던 승병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큰 주막이 하나 있었다.

  “저곳입니다.”

  “확실히 저 정도면 모두 수용할 만하군요.”

  “예. 손님도 한 방밖에 없다고 합니다.”

  “쯧쯧. 풍경은 좋은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렇겠지요.” 그 말에 다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밖이 시끄럽네요.”

  “손님이 왔나 보지.”

  그러면서 나는 따뜻한 바닥에 누웠다. 물론 헤아가 따뜻하다고 좋아한 것이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씻고 나서 따뜻한 바닥이라니. 내가 바라던 삶의 일부였다.

  “흐음.”

  나는 갑자기 나빠진 기분에 침음을 흘리면서 인상을 썼다.

  “왜요. 바닥이 너무 뜨거워요? 온도 좀 낮춰달라고 할까요?”

  내 기분에 따라 헤아도 뭔가 불안한 듯 내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아니다. 그냥…. 그냥 그렇다.”

  나도 왜 기분이 나쁜 것인지 몰라서 그렇게 둘러댔다. 헤아는 그 좋아하는 이불을 만지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내가 왜 기분이 나쁜 것인지 몰라 더 불안해졌다. 이것이 강시의 성품인가 싶어서였다.

  “밖에 누가 왔는지 한번 봐줄래?”

  나는 불안해하는 헤아에게 무언가라도 시켜야 할 거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아픈 부모를 앞에 두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의 모습 같아서였다. 작은 부탁이라도 해 줘야 이 아이가 불안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예!”

  혜아는 거의 들어온 순간부터 놓지 않던 이불을 놓고 밖으로 후다닥 나갔다. 그리고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문을 쾅 닫았다. 나를 쳐다보는 헤아의 눈은 경악이 담겨있었다. 작지만 숨을 몰아쉬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일이니.”

  “바… 밖에 스님들이 잔뜩 있어요!”

  헤아는 작게 소리를 질렀다. 나도 그녀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혹시 들릴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

  “스님들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나빴구나.”

  헤아는 아까보다 더 불안한 눈빛으로 내 옆에 와 앉았다.

  “많이 아파요?”

  그 말에 나는 기분이 조금 풀리는거 같았다.

  “아니, 아프진 않단다. 그저 기분이 조금 나쁠 뿐이지.”

  그 말에 헤아는 조금 안심한 듯 숨을 후 하고 내쉬고 말했다.

  “정말 나쁜 스님들이에요. 왜 아저씨를 못되게 굴어요!”

  그 말에 나는 기분 좋게 웃었다. 스님들보고 나쁘다니.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스님들보다 아저씨가 더 좋니?”

  “예!”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오히려 물어본 내가 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왜?”

  “하지만 절 구해준 건 아저씨인걸요!”

  그 말에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강시로 그리고 살아있을 때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부처님 앞에 가서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적어도 한 명의 소녀에겐 내가 당신보다 더 소중하리라고 말이다.

  “아저씨 빨리 도망가요.”

  헤아는 그 말을 하면서 계속 이불을 쳐다보았다. 저 이불 헤아가 정말 좋아하는데 말이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고 마음을 평안하게 먹은 다음 고민을 해 보았다. 그리고 헤아에게 말했다.

  “아니, 여기 있는다.”

  그 말에 헤아는 눈물을 흘릴 거 같이 눈가가 촉촉해졌다.

  “안돼요. 아저씨. 막 스님들한테 죽으려 하는 건 아니죠.”

  “아니다. 오히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야. 자신들 가까이에 내가 있다는 건 모르겠지.”

  “하지만 아저씨는 스님들을 느꼈는걸요.”

  “그건 스님들이 많아서 일 거다. 난 혼자고, 설마 자신들과 같은 곳에 있겠는가는 생각에 오히려 섣불리 도망치는 것보다 스님들이 떠나길 바라면서 여기 있는데 더 안전할 수 있어다.”

  내 군 생활에서 배운 몇 가지 중 하나다. 내가 어디 있었느냐. 바로 별동대다. 사람이 도망치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다. 진짜로 살고 싶으면 예상치 못한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마 스님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곳은 이곳일 것이다.

  “알았어요. 하지만 정말로 위험해지면 도망쳐요.”

  헤아는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줄 아는지 아직도 불안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 알았으니 어여 가서 이불이라도 만지고 있어라.”

  헤아는 나와 이불을 계속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에 미소를 그렸다. 그 표정을 보고 안심했는지 헤아는 후다닥 이불로 가서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나를 계속 힐끔거리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이곳에 남는 이유는 한 개 더 있다. 만약 내가 스님들에게 죽더라도 헤아를 걷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생각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얼마 전까지 살려고, 죽어도 살려고 발버둥 쳤는데 이제는 이 작은 소녀를 걱정하고 있다. 내가 죽더라도 이 소녀만큼은 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딱히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솔직히 몰라도 됐다. 지금 이 느낌, 이 삶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선을 천장에서 헤아쪽으로 돌렸다. 마침 헤아도 날 바라보고 있었다. 헤아를 향해 한 번 씩 웃어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 또한 군에서 마음 수양을 위해 누군가가 어디서 얻어온 것이었다. 눈을 반개하고 호흡에 집중했다. 옆에서 이불을 만지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아마 헤아도 나를 따라 하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그 느낌에 다시 한번 미소가 맺혔다.

  나는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가 원하는 것은 스님들의 기분 나쁜 기운이었다. 내게 기분나쁜 기운이면서 스님들의 기운이면 마치 생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잠시나마 명상을 해보았지만 느낀 것은 단 하나였다.

  “쓸모가 없어.”

  전혀 없었다.

 

  밥은 안으로 갔다 달라고 한 뒤 먹었다. 헤아가. 방 안에만 있는 것이 심심하고 답답할법하지만 헤아는 투덜거리지 않고 조용히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정말로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할 게 없어서 저러는 건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밖에 안 나갔다 와도 되니?”

  “…. 네!”

  많이 심심한 모양이었다.

  “나가서 놀다 오렴.”

  그 말에 헤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아저씨….”

  “걱정하지 말아라. 지금 스님들이 가득해서 널 버리고 도망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하고 나는 하하 웃었다. 헤아도 그 말이 조금이나 안정을 줬는지 볼을 부풀리고 양 손을 허리에 척 얹었다.

  “저 버리려고 하셨어요?”

  “당연히!”

  하고 잠시 뜸을 들인 후.

  “아니지!”

  그 말에 헤아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당연하죠. 제가 있어야 아저씨가 더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걸요? 아저씨는 이제 저 없으면 안 된다고요!”

  그런 모습에 나는 흐뭇한 미소가 다시 얼굴에 맺혔다.

  “그러니 어디 가면 안 돼요.”

  “알았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그렇게 헤아는 기분 좋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쫓듯 문만 멍하니 바라보다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오지 않는 꿈을 찾아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

 

  헤아는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마을 규모는 완전히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넓었다. 그곳의 구석구석을 모험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이미 무리로 모여 놀고 있는 같은 나이 또래 친구들을 만나 같이 놀기도 했다. 그 친구들도 다른 사람들을 사귀는데 어려워하지 않고, 헤아의 친화력이 좋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해가 지자 다들 집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헤아도 그것을 보고 다시 주막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나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마을을 더 돌아다니기로 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이 아이가 왜 이렇게 들어오지.”

  밖이 꽤 많이 어두워졌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들어올 시간이 훨씬 지났다. 하지만 나는 헤아가 늦게 나간 점을 고려하여 조금 더 기다려 보았지만 들어올 생각이 없다는 듯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집어들었다. 여전히 코끼리 가면이었다. 나는 그것을 쓰고 문을 살짝 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쏜살같이 주막을 벗어났다. 뒤에서 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주막을 빠져나왔다.

  주막을 빠져나오자 나는 가면을 벗었다. 밖은 축제도, 장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이 더 이상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주막에서 가면을 쓰고 스님들과 마주쳤다면 분명 들켰을지 모르겠다.

  나는 마을 곳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마을은 생각보다 넓었고 나 혼자 헤아를 찾기엔 무리가 있었다.

  “총각!”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 소녀를 찾는 건가?”

  지팡이를 턱에 괴고 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였다.

  “혹시 보셨나요?”

  나는 당장 할머니 앞으로 달려갔다.

  “그만 놓으라고 말하고 싶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자경단 놈들도 다 쓸모가 없어. 다 한패야.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을 거야. 나라가 엉망이니 사람들도 엉망이 된게지.”

  그 말에 나는 어떤 상황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인신매매였다.

  “어디입니까.”

  “가지마. 난 그저 포기하라고 알려준 것뿐이야. 포기해.”

  “안 합니다.”

  “개죽음당할 것이야,”

  “제가 개처럼 두둘겨 패고 그 소녀 데리고 무사히 오겠습니다.”

  “흐음….”

  내 말에 할머니는 고민하는 듯 고개를 좌우로 조금씩 흔들었다.

  “저어기.”

  할머니가 힘겹게 든 손의 끝은 작은 뒷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저 산에 녀석들의 본거지가 있다고들 하지.”

  하면서 다시 손을 내려 지팡이를 잡았다.

  “가면 죽을 거야.”

  할머니는 경고하듯 내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는 걱정이 없었다. 그 누가 날 죽일 수 있겠는가.

  아, 저 스님들 빼고.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공저는 종업원이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 그곳에 서있는 사람은 종업원이 아니었다. 몰골이 누추한 아이였다. 밤이 돼 더 쌀쌀한 날씨에 과연 저런 옷을 입고 버틸 수 있을까 한 모습이었다.

  “밖이 추우니 안으로 들어오거라.”

  공저는 그저 밖이 추워 동냥을 하러 온 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공저도 궁금증이 들었다. 이 아이가 왜 왔을까.

  “이놈!”

  그때 주막 주인이 헐레벌떡 아이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옷을 잡고 짐짝 끌고가듯 밖으로 끌어냈다.

  “스님!”

  아이는 나를 애타게 불렀다.

  “시주님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아닙니다. 이놈들 저희가 눈을 돌릴 때 마다 와서 구걸이나 해대니!”

  “허허. 괜찮습니다. 잠시면 됩니다.”

  공저의 계속된 권유에 주막 주인은 아이의 옷깃을 놓았다. 그러자 아이가 헐레벌떡 달려와 공저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님. 살려주십시오.”

  “이놈이 이상한 소릴!”

  “무얼 말이냐.”

  중간에 주막 주인이 막으려 했지만, 공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에게 물었다.

  “저희 마을에 사람들이 계속 잡혀갑니다. 자경단도 그것을 알고서 잡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와주는 거 같습니다. 그들은 저희 같은 부랑아를 잡아갑…!”

  “이놈!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

  하면서 주막 주인이 직접 나서 아이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둘의 사이로 파고들진 못했다. 주막 주인의 소란에 다른 승병들도 모두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주막 주인과 공저, 아이의 사이를 막았다.

  “계속해 보아라.”

  “스님! 더 이상 들어줄 필요 없습니다.”

  공저는 주막 주인의 외침에도 아이에게 더 다가가 미소를 보였다.

  “괜찮다. 우리가 도와주마. 다 말해보아라.”

  그러자 아이가 울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도… 오늘도 한 소녀가 잡혀갔습니다. 가끔 그들이 내려와 잡아갑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무도 봐도 그들을 쫓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와줍니다.”

  “다 거짓말입니다! 납치라뇨! 말이 됩니까.”

  “그렇지요. 납치가 일어나는 동내가 이리 조용 하단요. 저희는 시주님을 믿습니다.”

  그 말에 주막 주인은 의기양양해졌고, 아이는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아이야. 혹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다음에 나온 공저의 말에 순식간에 아이와 주막 주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니 왜!”

  주막 주인의 비명 같은 질문에 공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어느 마물을 쫓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본 것들이 그 마물일지도 모르니 저희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저의 말에 주막 주인은 다급해졌다.

  “아닙니다. 마물이라뇨. 그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이 녀석들이 빌어먹으려고 하는 거짓말이지요.”

  “거짓말 아니에요!”

  “이놈이!”

  주막 주인과 아이가 싸우는 동안 무장을 마친 승병들이 주막 앞에 모였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나와서 그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공저도 한 승병이 가지고 나온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었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혹시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 줄 수 있겠니?”

  그 말에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공저는 몇몇 사람이 다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승병들은 모두 자신의 말까지 가져오자 공저는 아이를 자신의 앞에 앉히고 말했다.

  “어디로 가야 하니.”

  “저기요.”

  아이가 가리킨 곳은 몇몇 사람들이 다급히 뛰어간 방향이었다.

  “출발!”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선 공저는 힘차게 말의 옆구리를 찼다.

 
작가의 말
 

 오타나 이상한 점 있으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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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7. 불가사리 2019 / 1 / 21 253 0 4686   
27 7. 불가사리 2019 / 1 / 18 257 0 3145   
26 7. 불가사리 2019 / 1 / 17 282 0 5051   
25 6. 도술서 2019 / 1 / 16 262 0 4795   
24 6. 도술서 2019 / 1 / 15 267 0 5064   
23 6. 도술서 2019 / 1 / 14 271 0 5072   
22 6. 도술서 2019 / 1 / 13 256 0 5879   
21 6. 도술서 2019 / 1 / 12 281 0 5339   
20 6. 도술서 2019 / 1 / 11 249 0 4599   
19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9 279 0 4184   
18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8 281 0 4959   
17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7 264 0 5667   
16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6 265 0 5829   
15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4 283 0 3600   
14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3 273 0 4900   
13 4. 고향 +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2 268 0 5729   
12 4. 고향 2019 / 1 / 2 274 0 3996   
11 4. 고향 2018 / 12 / 31 287 0 5180   
10 4. 고향 2018 / 12 / 30 270 0 11914   
9 4. 고향 2018 / 12 / 28 255 0 9966   
8 3. 헤야 2018 / 12 / 27 248 0 10268   
7 3. 헤야 2018 / 12 / 26 235 0 10056   
6 3. 헤아 2018 / 12 / 25 322 0 9854   
5 2. 강시 2018 / 12 / 24 242 0 9790   
4 2. 강시 2018 / 12 / 23 260 0 11043   
3 1. 고려로 2018 / 12 / 22 242 0 9382   
2 프롤로그 + 1. 고려로 2018 / 12 / 21 240 0 9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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