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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9
작성일 : 18-12-26 00:07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6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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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적으로 수지는 박성우의 병실 CCTV 복사본을 구해왔다. 관리실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친근하게 다가갔던 이야기부터 먹을 것을 조공했다는 둥 재밌지도 않은데 억지로 웃느라 입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는 둥 거의 첩보 영화 한 편을 찍었다고 가슴을 졸였다. 어깨를 시작해 발목까지 차례로 마사지해 줬다. 뭉친 목덜미를 꾹꾹 누르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수지가 가져온 복사본을 고준서와 함께 봤다. 내가 놓친 걸 잘 캐치하는 능력은 고준서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도와준다고도 했고, 여러모로 편한 구석이 있었다.

 

  수지의 목격대로 정예찬은 몇 차례 박성우의 병실을 들렀다. 만나는 장면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데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애매한 영상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박성우의 얼굴은 험악했고 따지듯이 입을 여는 것 같았다. 반면 정예찬은 박성우를 만나는 내내 시선을 발끝으로 고정했다. 엄마한테 혼나는 아이 같았다. 상대는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 오류였지만.

 

  박성우가 정예찬의 뺨을 쓸어내렸다. 옷을 정리해주고 어깨를 툭툭 쳤다. 나가보라고 고개를 까닥이는 듯했다. 그러자 재빨리 병실을 나가는 정예찬의 얼굴이 땅거미 졌다. 몸이 물살을 갈라 깊이 들어가듯 푹푹 꺼졌다. 입술을 짓이기는 것 같다. 뭐가 그렇게 속상했는지 혹은 분했는지 묻고 싶다. 그러나 이 영상을 들이민다고 해도 정예찬은 아무런 대답이 없을 것이다. 또 나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침묵할 것이다. 털어놓았으면 좋겠는데, 뭘 시키지 않을 테니까,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안심시켜서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는데.

 

 

  소리가 없으면 이 영상도 무용지물이라고 고준서가 말했다. 나는 대꾸 없이 동의했다.

 

  “잠깐, 뭐 들고 있는 것 같은데?”

  “어?”

  “확대해볼게요.”

 

  고준서가 영상을 멈추고 종이를 든 박성우를 확대했다. 뭐라 적혀있는 글씨는 흐릿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내 가방에 든 것과 똑같아서.

 

  “후원명단.”

  “저게요?”

  “응.”

 

  쟤가 왜 저걸 들고 있지, 고준서는 턱을 쓸었다. 어떤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한참을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게 입술을 열었다.

 

  “박성우 만나보는 게 어때요.”

  “쟤 경호원도 있다.”

  “그래서요?”

  “얼굴도 보기 전에 까여. 나 쟤한테 위험인물 뭐 그런 거야.”

  “미끼를 던지면 되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준서가 작게 웃었다.

 

  “만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면 되잖아요.”

  “설마.”

  “어, 그 설마.”

  “미인계?”

  “미쳤어요?”

 

  고준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경악하는 모습을 보니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그럼 뭘까, 잠시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민했다.

 

  “증거를 내밀면 되지.”

  “증거?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고준서의 속내가 궁금했지만, 확신에 찬 듯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만들면 되지.”

 

  그리고 얘도 누구랑 같은 말을 했다.

 

 

  *

 

 

  도대체 증거를 어떻게 만들라는 거지. 밥을 먹을 때도 일을 볼 때도 잠을 잘 때도 종일 고민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만든다.’는 뜻을 모르겠다. 자고로 증거란 어딘가에 있다. 하는 의심에서 찾는 거지, 만들 수 있다면 정황, 동기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쨌든 그걸 떠나서 박성우를 어떻게 해서든 만나야 하긴 했었다. 지금은 박성우가 피해자 형식으로 재판이 돌아가고 있는데 거듭될수록 내 생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성우가 피해자가 아니라면?

 

 

  가정했다. 그가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만약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존재한다면 그건 동준과 정예찬과의 연결고리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여전히 학교폭력이 거슬렸다. 그가 주동자든 가담자든 겉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정 같은 건 이해했다. 가해자라고 낙인찍힌 동준의 말은 진실성이 요구된다면 정예찬만 보더라도 그렇게 당한 흔적이 있으면서 어째서인지 증언을 하기 꺼리는 것이.

 

  무엇보다 정예찬과 박성우, 그 둘의 관계가 의심된다. 박성우의 아버지에게 후원받는 정예찬, 박성우의 손에 들린 후원 명단을 보면 둘이 만났을 때 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오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에 대해 알리지 말라고 권력을 행사한 것은 아닐까.

 

 

  충분히 협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후원 명단은 왜 최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일까. 굳이 입막음을 시킬 용도였다면 사건이 터지고 공개로 전환할 필요는커녕 비밀에 부치는 것이 더 이득일지 몰랐다.

 

 

  일부러 알린 것일까.

 

 

  박성우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고소되고 며칠 뒤 명단이 올라온 타이밍을 재면 가능성이 있다. 우리 집은 이렇게 학교에 우수한 발전을 위해 가담하고 있으니 선처를 부탁한다는 어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무턱대고 찾아온 결과를 봐.’

 

 

  이 말은 '내가 너를 위해 인터넷에 올려줬잖아.’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박성우가 수지의 병원으로 이전한 것도, 과가 다른 수지에게 몸소 찾아와 부탁한 것도, 그건 박성우를 잘 보살펴달라는 소리가 아니라 나를 잘 도와달라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목격과 CCTV를 얻는 과정에서 수지의 도움이 절실했다. 더 나아가 현재 수지의 집에서 신세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렴풋이 김지빈이 동준의 무죄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박성우와 정예찬의 관계, 그 이상의 결과도 이미 아는 상태로 모든 걸 계획 아래에 움직이며 본인뿐만 아니라 외의 사람들까지 움직이게 했던 것은 아닐까, 문득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면 김지빈이 알고 있는 결과를 나도 알기만 하면 된다.

 

 

  *

 

 

  전화를 건 사람은 난데 어쩐지 내가 더 초조했다. 만날 수 있냐는 부름에 군말 없이 약속장소로 정한 카페에 나온 김지빈은 느긋하게 앉아 나를 바라봤다. 용건이 있어서 부르긴 했는데 할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저번에 왜 그랬어? 같은 치정극의 대사부터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 이게 아니라, 말을 고르고 골랐다. 그래서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침묵이 흘렀다. 김지빈은 재촉하지 않고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소리 없이 목을 가다듬고 건조한 입술을 열었다.

 

  “일하고 있었어?”

  “그렇지 뭐.”

  “사무실에서?”

  “그렇지 늘.”

  “내가 방해한 건….”

  “별로.”

 

  거참 말 짧게 한다. 귀찮은 녀석 잡아놓고 혼자 떠드는 것 같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나왔으니 대화하고 있고 방해도 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럼 당당하게 본론으로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말을 꺼내려던 찰나 불쑥 김지빈의 손이 내 쪽으로 뻗어졌다. 손목에 찬 휘황찬란한 시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항상 걸고 다니는 목걸이처럼 김지빈도 시계는 빼놓지 않고 차고 다녔다. 중요한 거로 생각하기에는 최신판이 많았다.

 

  그대로 내 얼굴에 돌진했다. 그 나른하고 건방진 눈빛이 한곳에 집중됐다. 난방이 세지 않은데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워질수록 숨이 멎었다. 이마에 손끝이 닿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손은 금방 떨어졌지만 바라보는 시선은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먼지.”

 

  김지빈이 느리게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냥 입 다물라는 의미가 아닐까. 남의 얼굴에 먼지가 붙어있다고 떼어줄 녀석은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슬쩍 뒤로 뺐다.

 

  “말해.”

 

  김지빈은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내라는 말을 저 두 음절로 압축했다. 명료한 말인데 도리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뭇거리자 눈이 가늘어졌다.

 

  “말하기 뭐 곤란한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근데 왜 그래?”

 

  아니, 네가... 까지 생각하다 변명 같아서 집어치웠다. 김지빈이 불편한 건 불편한 거고 할 말은 할 말이니까, 딱히 김지빈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나만 들릴 것처럼 작게 말해버렸다.

 

  “증거.”

  “증거?”

 

  용케 알아들은 김지빈이 대답했다. 이제 쭈뼛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김지빈한테 이런 소릴 하고 있자니 우스운 꼴이었지만, 어차피 쟤한테 난 그리 위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증거 만드는 방법이 뭔데?”

 

  말하면서 손에 땀이 났다. 김지빈은 예상치 못한 질문인지 잠깐 눈을 크게 떴다가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느냐는 황당한 얼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지한 얼굴이 된 건 더더욱 아니었다. 뭐라 단정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순간 됐다고 손사래를 칠까 고민했다.

 

  “왜?”

 

  궁금할 법도 하다. 갑자기 불러서 한다는 소리가 증거를 만드는 방법이라니. 무엇보다 첫 공판 때 김지빈이 했던 말을 그대로 담아둔 속 좁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고. 커피를 휘저으며 최대한 덤덤한 척 대답했다.

 

  “그냥. 증거를 만드는 방법이 있나 하는 거지, 난. 신기해서.”

  “.....”

  “그 저번에 만났던 남자애 있잖아. 우리 사무실 앤데, 걔도 증거를 만들라길래.”

 

  미묘했던 김지빈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 말투가 좀 시건방졌나 싶어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김지빈의 눈치를 살폈다. 기분이 나빠진 듯해서 그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근데 걔도 잘 모르더라고, 원래 입만 산 애야 걔는. 나도 잘 모르고. 너만 알아, 너만.”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 나조차 모르겠는데 김지빈이라고 알까.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에서 비롯한 말이 오히려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서 울상이 됐다. 그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김지빈은 대꾸가 없었다. 그럴 만두 하지. 갑자기 만두가 먹고 싶다.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지빈이 아주 옅게 웃었다.

 

 

  어? 뭐라고? 웃었다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지빈이 웃는 경우는 그래, 손에 꼽을 정도라 잘못 본 것으로 판단했다. 아니 진짜 어이없어서 비웃었을 수도 있고. 나는 긴가민가해서 물었다.

 

  “왜 웃어?”

  “그래서 불렀단 말이지.”

 

  내 말을 엿가락 끊듯 뚝 자른 김지빈이 언제 웃었냐는 듯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뻘쭘해져서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역시 잘못 본 게 맞았다.

 

  “의미가 좀 다른데.”

  “무슨 소리야?”

  “그때는 누나가 맨몸으로 변호했으니까.”

  “뭐?”

  “진짜 뭐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형편없는 재판인 건 나도 알았다. 달랑 수사 파일 하나 들고 시작해서 입도 벙긋 못 했으니까. 그런데 상대 검사가 직구로 각인시켜주니 머리가 공에 맞은 듯 띵했다.

 

  “지금은.”

 

  김지빈이 말을 멈추고 나를 흘겨봤다. 그 시선에 다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이번엔 좀 다른 의미로, 더워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김지빈은 나를 가끔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럴 땐 쓸데없이 감정이 곧이곧대로 나오는 성격이라 확실했다. 그런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기는 죽었지만, 오늘처럼 무뚝뚝한 표정에도 이런 감정이 들었던 적이 있었나,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난 얘한테 뭘 이런 걸 묻고 있는 거지. 진심으로 대답해줄 거로 생각했나.

 

  “별거 아닌데.”

 

  역시.

 

  “그런 표정 지을 만큼.”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지? 예상과 다른 말에 뒤늦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생각하는데 어쩐지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들렸다.

 

  “가서 증거 있다고 말해.”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김지빈을 바라봤다. 김지빈은 턱을 괸 채 웃고 있었다. 아까와 달리 명백한 크기의 웃음이라 나는 넋을 놓고 바라봤다.

 

  “없어도 있다고 말하면 그게 증거가 되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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