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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길을 잃은 날에
작가 : 연시
작품등록일 : 2018.12.21

불에 타 죽은 고등학생이 저승에서 길을 잃은 되고
망자인 상태로 과거의 이승으로 돌아가게 된다.

과거에서 펼쳐지는 '오늘' 이야기.


*로맨스판타지 장르로 선택되었지만 '로맨스'가 주는 아닙니다.

 
문호
작성일 : 18-12-26 00:00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8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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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사건은 오 가문의 무사와 석곤, 혜성, 겨레만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 가문의 무사를 통해 사실을 전해 들은 근범이 움직였다.

  근범은 소식을 듣자마자 빠르게 입궐했다.

  반대쪽에서도 근범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중을 나갔다.

 

  궁궐의 가운데서 마주친 그들.

  그들은 길게 늘어선 줄의 선두에 선 채 서로를 바라봤다.

  상장군과 가짜 대장군의 만남은 오 가문의 무사에게 있어서 썩 좋은 만남은 아니었다.

 

  “오셨습니까.”

 

  “이게 무슨 난리냐.”

 

  화가 잔뜩 오른 근범의 앞에서 늘은 답하지 않았다.

  전날의 일을 겪어보니 근범 마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는 눈에 띄지 말거라.”

 

  자리를 옮기려는 근범의 다리를 붙잡은 건 늘의 말이었다.

 

  “저는 내일을 위해 대신 선 자리에서도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굳이 네가 가짜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 앞에서 눈에 띌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늘이 웃었다.

  그 냉소적인 웃음에 허탈함이 담겨 있었다.

 

  “저를 완전히 상실하라 하시는군요.”

 

  “너는 애초부터 내 품 안에 있지 않았냐.”

 

  “제 가치를 저에게서 지우라 하시는군요.”

 

  근범이 늘을 지나쳤다.

  그날 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일의 복수를 하기 위해 저지른 일일 뿐이었지만, 근범에게 대든 이유는 달랐다.

  싸늘하게 굳은 늘의 표정 뒤로 호위가 그의 눈치를 봤다.

 

  “임무에 나가겠습니까?”

 

  “그래.”

 

  늘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 힘을 가지게 된 이상, 얌전히 갇혀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이 불쌍한 몸 주인을 위해서라도, 운 좋게 살아남은 내가 도와야겠다.

  늘은 갑옷을 갖춰 입고 빠르게 궐 밖을 나섰다.

 

  국경 근처에서 도적질하다 한라로 넘어온 병조의 도적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병조는 한라와 맞닿아 있는 나라였다.

  문호를 마지막으로 땅을 넓히는 것을 그만두었는데 그곳에 병조가 있기 때문이었다.

 

  병조는 한라보다 땅이 좁지만, 역사와 군사력이 탄탄한 나라였다.

  한라와 별다른 교류를 하진 않지만, 암묵적으로 서로의 땅을 침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최근 들어 조금씩 깨지고 있었다.

  병조는 문호와 교류가 왕성했던 나라였다.

  병조는 교류가 끊긴 뒤에 조용해졌다.

  태풍이 오기 전의 고요함처럼.

  상장군은 항상 그런 병조의 틈을 노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것이 늘이 임무를 수행하는 이유였다.

  상장군의 관심이 병조에 있었다.

 

  한라와 병조의 국경으로 도착한 늘은 말에서 내려 쭈그려 앉은 병사들 앞에 섰다.

  병사들은 늘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늘을 포함해 세 명.

  아무리 봐도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하는 자들인가?”

 

  “병조의 국경 경비입니다.”

 

  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살폈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병사였다.

  늘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던 병사의 앞에 검을 던졌다.

  검은 병사의 코앞에 떨어졌다.

  푸른빛.

  들어본 적 있는 검이었다.

  전장에서 홀로 수백 명을 무찔렀다는 푸른 검의 고요한 학살자, 구룡성의 대장군에 대해.

 

  그가 벌떡 일어섰다.

 

  “실례하네만, 물어볼 것이 있다.”

 

  늘이 땅에 박힌 검을 뽑았다.

  국경을 넘었다는 소리.

 

  “이곳을 지나 한라의 땅으로 넘어온 도적을 본 적이 없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없는 것 같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대들은 언제부터 이곳에서 경비를 섰지?”

 

  “경비를 선 지는 석 달이 지났고 제가 경비를 선 건 보름쯤 되었습니다.”

 

  병사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나머지 병사도 자리에서 일어서 자세를 갖췄다.

  이렇게 경비가 허술해서야···.

  늘이 혀를 찼다.

 

  “이곳을 넘어온 도적을 본 자는 없단 말이냐.”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고개를 저었다.

  있어도 말할 리가 없었다.

  한라에게 작은 틈만 내보여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금시초문인 얼굴이었지만, 허튼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한라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자국의 땅 병조에서 먼저 죽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들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맙다, 참고하겠네.”

 

  늘은 다시 말에 올라탔다.

  병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늘의 시선과 마주치자 몸에 힘을 바짝 주었다.

 

  “만일 한라의 땅에서 병조의 도적들이 발견된다면, 이곳에 있던 자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했으니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목을 베겠다. 거짓을 말한 대가 정도는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그, 그런···.”

 

  “우리는 그대들과 전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이쪽에 해가 된다면 언제든 반갑게 되갚아주겠다.”

 

  늘은 그곳에서 자리를 떠 국경 근처의 모든 마을을 살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얘기를 들으며 수상한 자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문호의 마을이었지만, 구룡성의 대장군 늘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늘은 무사를 대하는 것과 사뭇 다른 태도로 주민들을 대하고 있었다.

  상인들의 음식을 얻어먹으며 웃기도 했다.

 

  그들에겐 이런저런 고민거리가 있었다.

  늘과 호위는 문호 곳곳에 머물며 그들의 고민을 듣고 다녔다.

 

  늘은 며칠 사이에 커다란 이야기 보따리가 되었다.

  대부분 백성은 문호의 왕이 무력 없이 문호를 한라에 넘긴 것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문호의 백성 스스로가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선 아무 피해 없이 자신들의 삶을 지켜준 왕에게 오히려 고마워했다.

  그리고 한라의 땅이 된 뒤부터는 사소한 분란이 사라졌다고 얘기했다.

  그들은 늘에게 허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물론 그건 상인들의 얘기였다.

  본인의 신조가 무너진 무사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혜성처럼.

 

  나흘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손이 없는 벙어리가 시체로 발견됐다고.

  자살 기도의 흔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시체였다.

  늘은 그가 단번에 누군지 알아차렸다.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살해할 만한 한 사람이 생각났지만, 함부로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고, 그러고 보니 근래에 목이 꺾인 무사 하나가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다들 가게를 접었던 적이 있었죠···. 어찌나 무섭던지.”

 

  상인 한 명이 혀를 끌끌 찼다.

 

  “목이 꺾인 무사 말입니까?”

 

  “예, 술청에서 난리를 비웠죠. 저희 가게에서도 다섯 접시는 깨고 갔습니다.”

 

  “그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없습니까?”

 

  상인은 턱을 쓰다듬으며 깊게 생각했다.

 

  “행색이 누추해 처음에는 웬 노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값비싼 검 하나를 차고 있기에 무사인 줄 알았지요. 같이 있던 대장장이가 말하더라고요.”

 

  “무어라 말하진 않던가요?”

 

  “궐로 돌아가 그놈과 단판을 벌인다는 둥, 죽인다는 둥 소리를 쳐댔죠.”

 

  주모를 부르는 소리에 상인은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하며 허둥대다 늘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떴다.

  궐이라···.

 

  “대장군, 문호에는 왕이 살던 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김중모가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한 번 조사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중모는 문호의 전왕이었다.

  목이 꺾인 무사의 말을 되짚어보면 그가 말한 ‘궐’이 구룡성을 뜻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상태로 구룡성을 다시 침입한다는 건 죽으러 온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말이었으니까.

  호위의 말대로 문호의 궁일 확률이 높았다.

  만약 그자가 문호의 왕가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전쟁으로 번질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입니다.”

 

  내전이다.

  늘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대문과 초소에는 사람이 없었다.

 

  김중모는 왕권을 잃어 궁 일부의 영역을 빼앗겼다.

  대문은 항상 열어두어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었지만, 문호의 사람들은 그곳에 들지 않았다.

  전왕에 대한 예의였다.

 

  늘과 호위는 세 갈래로 흩어져 전왕의 침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부분이 쓰지 않는 건물이라 궐내가 굉장히 어두웠다.

  이곳이 혜성이 살던 곳.

  늘은 건물들을 가볍게 둘러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중모의 침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늘이었다.

  침소는 낮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좁아진 전왕의 영역을 표하기 위함이었다.

  늘은 침소 주변을 돌아다니는 호위를 확인하곤 가까운 건물에 붙어 몸을 숨겼다.

  침소에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담 너머로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안쪽 담 가까이에서 나는 대화 소리였다.

  둘은 누군가에게 들릴세라 목소리를 낮췄다.

  그때 담 너머를 살피려 누군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늘은 놀라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혜성이었다.

 

  “대체 왜 그래. 가만히 좀 있어.”

 

  “아우 놈이 구룡성에서 무사 노릇을 하더니 버릇이 없어졌구나. 그래서 핏줄까지 버리고서 선 그곳에서의 너의 위치가 고작 그 정도였느냐? 대장군과 재미가 좋았나 보구나?”

 

  “함부로 말하지 마.”

 

  “아우의 눈빛이 형님을 찢어 죽이겠다. 내 이래서 구룡성의 무사들을 혐오한다. 힘이 권력 전부가 아니야.”

 

  “대장군이 눈에 불을 켜고 형을 찾고 있어. 들키는 건 시간문제야.”

 

  “그러면 나야 좋다. 우리 왕가가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호의 자립은 머지않았다. 한라의 시대도 끝이야. 문호의 독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는 대장군이라니, 내 그 대장군을 꼭 내 앞에 무릎 꿇리겠다.”

 

  “왜 자꾸 목숨을 걸고 담을 넘어?”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마침 무사들의 독이 보기 좋게 올랐다. 문호의 땅을 차지하는 데 대장군이 크게 이바지를 하였다고 퍼뜨리니 저들 좋을 대로 분노를 하더구나.”

 

  늘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여태 모든 죽음의 문턱 뒤엔 저자가 있었다.

 

  “나는 나대로 설 거야.”

 

  “핏줄을 버리더니, 이제는 나라까지 버리겠다는 게냐? 한라는 곧 무너진다. 네가 선 곳은 자꾸만 무너지고 실패하는구나. 네가 지금 선 절벽의 장점? 멋진 풍경, 그게 전부다.”

 

  “내 길은 가파른 오르막일 뿐이야.”

 

  “어리다, 어려. 아버지가 등신처럼 눈물만 흘리는 건 전부 너 때문이다.”

 

  “아버지를 배신하는 게 아니야. 문호의 무사는 이미 피눈물을 흘렸어. 나는 한 번으로 충분해.”

 

  “내 너를 잡지는 않겠다.”

 

  “형님도 목 관리 잘하십시오.”

 

  “네 이놈!”

 

  검을 뽑아든 소리가 들렸다.

  늘은 반대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호위에게 턱짓 후 담에 몸을 붙였다.

  검이 몇 번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중문이 거칠게 열렸다.

  혜성이 집을 벗어났다.

  그의 뺨에는 칼에 긁힌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멈추지 못하느냐!”

 

  그의 형이 그를 뒤쫓았다.

  내일과 늘을 공격했던 목이 꺾인 무사였다.

 

  그는 혜성과 형제 사이였다.

  한라의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 그사이가 뒤틀렸다.

  혜성은 강한 무사의 길을 걷기 위해 천룡도로 들어갔고 그의 형 해찬은 꺾인 자존심, 무너진 문호를 되찾기 위해 한라에 복수할 길만을 찾았다.

  각자 다른 무사의 길을 걸으며 엇갈렸다.

 

 

  혜성은 그 어느 곳에도 제대로 서지 못한 채 길을 잃었다.

  그는 본인 스스로 한라의 사람인지 문호의 사람인지 정하지 못하였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었다.

  한라의 비밀을 알면서도 문호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으며, 문호의 계략을 알았음에도 한라에 고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숨긴 것이 되었고 배신자가 되는 날도 머지않았다.

  자신만이 무거운 짐을 진 채 본인이 원하는 길을 가고자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혜성이 악을 지르며 질주했다.

  어느 곳에 머문다는 것은, 나의 과거를 등져야 한다는 것.

  어느 한쪽을 배신해야만 오는 나의 안식처.

 

  혜성과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해찬은 이를 악문 채 혜성을 잡으려 달렸다.

  그를 늘이 쫓았다.

  늘은 아주 가볍게 해찬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해찬은 섬뜩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검을 겨눈 늘과 마주침과 동시에 늘이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채 바닥에 나뒹굴다 벽에 등을 부딪쳤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옅은 모래 먼지 사이로 그가 몸을 들썩였다.

  제법 큰 소리에 혜성이 달리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또 보는구나.”

 

  늘이 그의 위에 앉아 양팔을 발로 짓눌렀다.

  그의 입속으로 검을 넣자 해찬은 눈을 크게 뜨며 칼날을 이로 물었다.

 

  “네놈 목소리가 너무 커서 잠이 오지 않는구나.”

 

  혜성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놀란 눈으로 늘을 바라봤다.

 

  봤다, 그가 전부 봤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고르지 않은 숨과 함께 무언가를 토할 것만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을 바라보는 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편이라고 수도 없이 말하고 싶었다.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몸과 머리가 제 것이 아니게 됐다.

  혜성을 흔드는 잡생각들을 유일하게 잊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모든 걸 꿰뚫어보는 듯한 그 눈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가장 좋지 않은 형태로 들켜버렸다.

  혜성은 좌절하며 이마에 올린 손을 주먹 쥐었다.

  자신이 걸어온 신조에 금이 간 것을 느꼈다.

  어쩌면 애초부터 뿌리째 썩어 있던 걸지도 모른다.

  늘의 앞에 당장 무릎을 꿇고 진정한 무사의 길에 대한 정의를 묻고 싶었다.

  그라면 알고 있겠지.

  그라면,

  무사라면,

  어디까지가 정의고 도(道)인지.

 

  답을 알고 있었다면 적어도 이런 형태로···, 당신을 보지는 않았겠지.

  혜성은 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것이 숨인지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작은 입김이 구룡성까지 닿아서 되겠느냐. 내 귀가 썩어가는 느낌이었다.”

 

  해찬이 검을 문 채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덜렁거리는 것 같았다.

  늘이 그의 입에서 칼을 빼내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네 이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아우야, 지금이다! 이 자의 목을 쳐라!”

 

  혜성이 흐느끼다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었다.

  늘은 혜성을 바라보지 않은 채 칼등으로 해찬의 턱을 눌렀다.

  혜성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래, 당장 죽여라! 나와 함께 돌아가자, 다 용서해주겠다!”

 

  혜성이 멍하니 넋을 놓았다.

  혜성의 모습에 달빛이 가렸다.

 

  그런 혜성의 앞에 검 한 자루가 그의 앞길을 막았다.

  하담이었다.

  하담은 바닥으로 단도를 던졌다.

  해찬이 늘을 공격하러 침소에 들렀을 때 사용한 단도였다.

 

  “아무리 봐도 이 문양. 문호의 것이잖아.”

 

  혜성과 하담의 눈이 마주쳤다.

  하담은 제법 핼쑥했다.

  며칠간 수련에도 임무에도 임하지 않던 그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담은 단도의 문양을 확인하고 문호에 잠복해 있었다.

  답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말 좀 해봐, 김혜성.”

 

  하담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지낸 벗이었다.

  천룡도에서 쉽게 어울리지 못한 혜성에게 가장 먼저 손 내민 게 하담이었다.

  혜성은 입을 열 수 없었다.

  존경하던 사람, 사랑하는 벗을 나도 모르게 배신한 기분이란, 문호에서 눈을 떠보니 한라의 사람이 된 기분과 다름이 없었다.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하담에게 변명할 말이 없었다.

  자신은 문호의 왕가 핏줄이었다.

 

  해찬이 둘의 모습에 헛웃음을 뱉었다.

 

  “사사로운 감정이 늘 사람을 애처롭게 만드는 것이다.”

 

  “애처롭구나.”

 

  늘이 해찬을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몇 년을 살다 죽는 삶이거늘, 내가 가장 만족하는 삶이 잘 사는 삶이 아니더냐.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나인 것을, 어찌 누군가의 자식으로 불리며 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단 말이냐. 그게 애처롭지 않을 수가 없다. 사사로운 감정이라 하였느냐? 그렇다면 너는 어찌 사사로운 감정 하나 없이 껍데기로 산 것이냐.”

 

  늘은 해찬을 보며 늘 자신에게 말했다.

  듣고 있다면, 듣고 있겠지.

 

  “너도 이미 대장군을 죽여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구나. 너에겐 네가 정의지만, 그것은 네 좋을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네 한 명의 마음으로 움직이는 땅이 아니다.”

 

  해찬이 코웃음 쳤다.

 

  “내 한 명의 마음이 아니니 움직이는 것이다.”

 

  “힘이 권력의 전부가 아니라 하였느냐? 네가 말하는 모든 가치가 내 앞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걸 보여주겠다.”

 

  늘이 거침없이 해찬의 양손을 잘랐다.

  절단된 두 개의 손이 모랫바닥을 굴렀다.

  문호에 그의 절규가 울렸다.

 

  “네 무사의 길에 검을 잡는 미래도, 아우를 안는 미래도 없다. 문호는 이미 한라의 품에 들어온 나의 사람들이다.”

 

  늘은 몸을 뒤트는 해찬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좀처럼 고개를 들 생각이 없는 하담과 혜성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늘의 커다란 그림자가 그들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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