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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가사리(不可殺伊)
작가 : 비내린
작품등록일 : 2018.12.20

이름 모를 타지에서 죽고 눈을 떠보니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 구 아니, 한 명의 시체를 둘러싼 이야기.

 
3. 헤아
작성일 : 18-12-25 23:51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9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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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아-

 

  “어이, 형씨.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나에게 나가오는 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킬킬 웃어댔다.

  “뭐가 미안하지?”

  나는 담담하게 그의 말을 받아줬다. 녀석은 날 언제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솔직히 네 녀석이 저년의 오라비인지 남편인지 알 바 아니지만 이런 험한 시대에 혼자 다니면 쓰나. 이런 좋은 옷을 입고 말이야.”

  하면서 그는 날이 몽둥이만큼 뭉툭한 칼을 어깨에 걸치면서 내가 뺏은 아니, 받아온 곰 가죽 옷을 툭툭 쳤다. 그리곤 내 귓가에 얼굴을 들이대고 이곳에 있는 세 명 모두에게 들리지만 자기 딴엔 속삭이는 것이라는 듯 선심 쓰듯이 말했다.

  “우리 두목이 지키지 못할 보물은 죽음과 같데. 특히 요즘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말이야. 그러니 빨리 옷을 포함해서 가지고 있는 것 모두 두고 가. 그러면 내가 두목한테 잘 말해서 살려 보내줄게.”

  그 말에 옆에 있던 한 녀석이 킬킬 웃기 시작했다.

  “빨리 결정해. 우리 대장은 참을성이 많지 않다고. 지금도 속으로 왜 널 안 죽이고 있나 아우성일걸?”

  하면서 계속 나를 재촉했다.

  “재촉하지만 고민 중이니까.”

  “뭘 고민하는 거지?”

  그의 장난기 있는 말투가 온데간데없고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롭게 섰다. 옆에 있는 녀석도 싱글벙글한 표정에서 사나운 표정으로 지었다.

  “너희를 죽일지 말지?”

  “뭐?”

  “너희를 죽이면 부처님이 기뻐하실까 화를 내실까.”

  “그건 직접 가서 물어봐.”

  더 이상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는지 나에게 장난을 걸던 녀석이 내 목에 칼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칼에도 베이지 않던 내 살이 이런 뭉툭한 칼에 끊어질 리가 만무했다.

  나는 뒤로 밀리지도 않고 목을 타고 오는 충격을 받아냈다. 녀석은 당연히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뭐야! 놔!”

  녀석은 발버둥 쳤지만 난 그 말을 들은 채 만 채했다.

  “네가 부처님에게 여쭤봐야겠네.”

  그리고 난 녀석의 명치를 힘을 조절해서 쳤다. 다행히 전처럼 내 주먹이 녀석의 몸을 뚫고 지나간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혼절하면서 눈을 뒤집어 깔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 뒷목에 한 번 더 충격이 왔다. 내 옆에 있던 녀석이 자신의 도끼로 내려친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나에게 피해를 주진 못했다.

  “너도 가서 한번 여쭤봐.”

  나는 그 말을 하면서 혼절한 녀석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녀석의 목을 잡고 꺾었다. 닭 목 비틀리듯 투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이 꺾였다. 그리고 바로 혼절한 녀석의 목도 꺾어버렸다.

  “이놈!”

  그와 동시에 십여 명 되는 도적때가 우르르 나에게 몰려왔다. 제일 앞엔 우두머리가 서 있었다. 덩치가 다른 녀석을 2명 붙여놓은 듯 한 거대한 몸집으로 나에게 돌진했다. 나도 그 녀석에게 맞춰 적당히 뛰어갔다. 하지만 나는 쫓기는 대상이 언제나 말이었으므로 나에게 있어 적당히도 꽤나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나는 선두의 우두머리와 몸이 부딪쳤다. 나는 어깨를 통해 우두머리의 뼈가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몸을 더욱 깊숙이 밀어 넣어 2~3명을 더 밀어내고 녀석들의 반대편까지 와서야 내 발을 멈췄다. 3, 4번째로 부딪힌 녀석까지는 괜찮아보였다. 몸 한두 군데는 부서진 듯 했지만 어떻게든 몸은 일으켰다. 하지만 우두머리와 2번째로 부딪힌 녀석은 이미 죽어있었다.

  나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이 아닌 눈을 보았다. 그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오랜 군생활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씩 웃었다. 그리고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양떼 속의 늑대 아니, 호랑이였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던 전멸. 3할이 죽으면 전멸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녀석들은 4명 정도가 죽자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나는 굳이 녀석들을 뒤쫓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최대한 선하게 살아야 하는 입장에선 도망치는 이들까지 잡아서 죽이는 무분별한 살생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감사합니다.”

  이제 가던 길을 가야지라고 마음먹고 발을 옮기려고 할 때 소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옷은 어느새 죽은 녀석의 것을 뺏어 입은 모양이었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다시 든 소녀의 얼굴은 꽤 아름다웠다. 말랑할 것 같은 볼에 큰 눈이 사슴 같아보였다. 내가 죽은 몸이 아니라 살아있는 몸이었다면 안고 싶었을지도 모를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가라.”

  하지만 소녀에게 다행히도 나는 강시였고, 몸이 죽어있었다. 그리고 여유가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 말을 하고 나는 발을 옮겼지만 소녀는 무슨 생각인지 내 옷깃을 잡고 질질 끌려왔다.

  “무슨 힘이 이렇게 쌔요. 좀 힘자랑 하지 말고 얘기 좀 해봐요.”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며칠 전에 나를 죽이려고 했던 인간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 대화 좀 나눠달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삶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 전엔 죄송했어요. 하지만 녀석들이 시키는 걸 어떻게 해요. 그리고 보니까 다치지도 않으셨잖아요. 안 다치셨으면 됐죠!”

  소녀는 오히려 당돌하게 나에게 대들 듯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조금은 소녀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볼까도 생각했다.

  “그럼 말해봐.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저를 데려가 주세요.”

  “거절하지.”

  많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는 쫓기는 몸이다. 그것도 기병들이 주가 되어 나를 뒤쫓는다. 그런데 내가 혹을 하나 달고 다니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저 쓸모 많아요. 도둑질도 좀 할 줄 알고요, 원한다면 밤일도 할 수 있어요!”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외친 것이 그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그 말에 소녀는 양 손을 허리에 턱 얹고 말했다.

  “원하는 사람하고 하는 거랑 당하는 거랑은 다르죠!”

  나는 피식 웃었다.

  “필요 없다.”

  그 말에 소녀는 씨익 웃었다. 마친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본 어부처럼 말이다.

  “아뇨. 아저씨는 제가 필요 하실 걸요.”

  “어째서?”

  “아저씨는 강시일 테니까요.”

  그 말에 나는 걸어가던 발길을 멈췄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몸을 돌려 소녀를 바라보고 말했다. 소녀는 뭔가 지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고아에요. 어렸을 때부터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왔죠. 그리고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정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나는 그 말에 살짝 놀랐다. 나도 얼마 전에 느낀 것을 이 소녀는 벌써 깨달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요즘 국경을 넘어온 강시가 계속 내려온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리고 그들의 특징도 대충 들어놨고요.”

  똑똑한 아이다. 그러니 내가 강시라는 것을 눈치 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저씨가 남들은 잘 모르는 길을 가야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들이 모르는 길?

  “어때요?”

  “뭐가?”

  “이제는 제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 말에 나는 침음을 흘렸다.

 

  소녀의 말은 맞았다. 나는 소녀의 안내에 따라 남들이 잘 모르는 험한 길을 갔다. 물론 그런 길은 내가 소녀를 안고 안전하게 지나가야 했지만 이동 속도나 시선 면에서 확실히 전보다 좋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죽은 몸이어서 그냥 달리면 됐지만 소녀는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때문에 자고, 먹고, 싸고 인간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를 해야 했다. 잘 때는 내가 안고 가고, 쌀 때는 잠시 기다리면 되지만 먹을 때는 그러지 못했다. 강시인 나와 부랑아인 소녀가 돈이 많을 리가 없었다. 도적 녀석들의 시체를 탈탈 털어 몇 전을 마련해 보았지만 그것도 충분치 않았다. 그 후엔 나는 소녀를 위해 사냥까지 해야 했다.

  어쩌면 나는 그냥 소녀를 버리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여기도 아니라고요?”

  나는 소녀의 말에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다른 곳으로 가보죠.”

  그 말을 하고 소녀는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지친 개처럼 그녀의 뒤를 쫓았다.

  교주도를 며칠 동안이나 고려의 눈을 피해 마을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내 기억속의 마을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비슷한 부분은 여기저기 있지만 다만 비슷한 부분일 뿐이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들 비슷하니 그런 부분이 익숙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무룩하지 마요. 곧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소녀는 나를 위로했다.

  “너는 어째서 나를 따라다니는 거지?”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다른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계속 돌아다니다 보면 나는 고향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소녀와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소녀는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가 두렵지 않은가?”

  바보 같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며칠이지만 나는 그녀와 계속 지내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북계에선 나와 같은 존재들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스님들은 여전히 내 뒤를 밟고 있을 것이다. 근데 나와 싸울 힘도 없는 소녀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처음엔 두려웠죠. 특히 함정을 모두 박살내고 벽을 기어오를 땐 죽는구나 했죠.”

  아, 그때부터인가.

  “근데 아저씨가 굳이 막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고, 저를 구해주신 것도 있고 해서요. 그땐 살려고 함께 있었죠.”

  “살려고?”

  “예. 두 번쨰 만났을 때 아저씨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라고 말씀드렸었죠.”

  기억난다. 그대 살짝 놀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얼마 전에 느낀 것을 벌써 깨닫다니 하면서 말이다.

  “근데 그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뭐지?”

  대충 짐작은 갔다. 하지만 소녀가 산 삶을 조금이나마 엿보고 싶었다.

  “무력이요.”

  그리고 그녀의 삶은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살아남을 수 없어요. 돈이 많으면 그 돈으로 하는 첫 번째 일이 자신의 돈을 지킬 무력을 사는 일이에요.”

  그 말에 나는 공감을 했다. 군대는 여기저시서 많이 들어오고 나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대에서 다른 일을 하다 온 녀석들이 얘기하는 것을 몇 번 들은 적 있었다. 당연하게도 귀족의 집을 지키거나 그와 비슷한 일을 하고 온 자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저는 쥐꼬리만큼의 정보만 있고, 저 자신도 지킬 돈이 없어요. 하지만 아저씨가 나타났죠.”

  그러면서 날 바라보았다.

  “고려 전체가 두려워하는 아니, 원나라조차도 두려워하는 강시죠.”

  “아니, 원나라조차도 두려워 한다는 말은 무리가 있지 않나?”

  “아니죠. 이번에 강시사건과 연루되어 죽은 사람들만 수천 명이에요. 물론 반란이라는 명목이 있긴 하지만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연관된 사람들을 철저하게 찾아서 벌했다고 해요.”

  그 말에 나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 정보를 다 어디서 얻는 거야?”

  그 말에 소녀는 입을 꼭 다물었다가 잠시 고민하고 말했다.

  “비밀이에요.”

  그런 소녀의 행동이 어른스럽게 보이려는 아이의 모습처럼 보여서 뭔가 귀여움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자꾸 고향에 있을 자식 생각도 많이 났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소녀가 가슴에 못이라도 박힌 듯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묻지는 않았지만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럴 확률이 가장 높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모든지 다 한다. 내 상황과 비슷하다. 비록 아내가 있다곤 하지만 그녀 또한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 아이 혼자 세상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니 소녀가 남 같지가 않아졌다.

  나는 말없이 소녀의 머리를 꾹꾹 누르듯이 쓰다듬었다. 소녀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소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이름이 뭐야?”

  그 말에 소녀는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왜…. 물어보시는 거죠?”

  그리 큰 의미는 있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도 함께 다녀야 하는데 이름을 알아야 편하지 않을까.”

  그 말에 소녀는 내가 본 표정 중 가장 밝게 웃었다.

  “헤아에요!”

  “헤아라…. 좋은 이름이구나.”

  나는 글을 잘 몰라 그냥 발음이 좋아 그렇게 말했다.

  “흥. 뜻이나 알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말에 소녀 아니, 해아는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당연히 모르기 때문에 고개를 절래 저었다.

  “친구들이 정해준 거예요. 항상 헤~ 하고 웃는 아이라고 해서 헤아요!”

  그러고 보니 헤~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소가 많은 소녀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그 친구들도 각자 이름을 가지고 있겠네.”

  “당연하죠. 모두 이름을 붙여줬어요.”

  헤아는 즐겁게 아이의 이름 하나하나와 왜 그 이름이 붙었는지를 말해줬다.

  “그 친구들은 모두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거야?”

  나는 혹시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는다면 헤아의 친구들을 도와줄 방법을 찾기 위해 물어봤다. 하지만 헤아는 잠시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바로 더 밝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죽었어요.”

  “….”

  “모두요.”

  여전히 밝은 미소였다. 하지만 왜 웃느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못했다. 그곳에도 있었다. 먼저 간 전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웃고, 직접 가족을 찾아가던 녀석들이. 모두 겉은 웃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어두운 마음을 품고 있던 녀석들이 말이다.

  나는 그곳에서도 그들을 마음을 품지 못했다. 아쉽게도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헤아의 마음속에 깊은 어둠이 보이긴 하지만 그걸 풀어줄 능력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나와 헤아는 그렇게 조용히 산속을 거닐었다.

 

  “빌어먹을!”

  이 욕을 내뱉은 사람이 누군지 본다면 다들 깜짝 놀랄 것이다. 스님이 욕설이라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공저의 행동에 뭐라 할 수 없었다.

  “교주도에 내려온 지 벌써 3일째입니다. 근데 아직도 강시를 찾지 못했다뇨!”

  이곳에 들어오기 전 까지만 해도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주도에 들어선 그 순간 강시는 자취를 감췄다. 뿌려달라는 현상수배지도 없는 성도 많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그리고 공저는 그 대상이 국가와 백성을 지켜야 하는 관료들이 그랬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국경이 더욱 튼튼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공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금이나마 삭일 수 있었다.

  55명의 수원승도들과 처음 강시가 내려왔을 때 차출된 스님들만이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 그 정도면 단 10구의 강시만 들어와도 밀리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원천에 공격을 봉쇄하는 것도 아니고 강시로 뚫린 곳으로 가서 막아야 하는 아주 수준 낮은 방어체계였다. 하지만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던 사부덕분에 국경에서 멀어진 후로 약 7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원군을 요청하기 무섭게 100여명의 승병과 300여명의 기병, 보병을 더해줌으로써 드디어 군(軍)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규모가 되었다. 이제는 강시들이 올만한 곳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들은 바로는 병력이 계속 충원될 것으로 점점 좁은 곳이 아니라 국경 전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후우.”

  공저는 다소 안정된 국경을 떠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마음 한곳에선 계속 교주도에 들어온 강시가 떠올랐다. 분명 강시는 살생(殺生)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것이 꼭 그의 잘못인가도 생각하게 되었다.

  강시를 본 자들은 모두 도적이었다. 그리고 심문결과 먼저 강시를 공격했고, 역으로 당한 것이다. 물론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마물이라면 어떨까. 남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마물이 고작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만 죽이고, 도망친 자들은 살려뒀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공저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빨리 그 강시를 찾아야 합니다.”

  찾는다면. 그러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조직적인 방해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강시는 찾아내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공저는 생각했다. 갔던 곳이 아니라 갈 곳을 찾을 수 있다면….

  “공저스님!”

  그때 회의를 하고 있던 방 밖에서 누군가 급하게 공저를 불렀다.

  “들어오세요!”

  공저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그를 방안으로 불렀다. 한명의 늙은 관료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국가에서 붙여준 책사였다.

  “강시가 다음에 갈 곳을 찾아냈습니다.”

  그 말에 안에 있던 승병들과 공저는 벌떡 일어났다.

  “어디입니까.”

  방 안에 들온 자는 탁자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의 어느 부분을 짚었다.

  “이곳입니다.”

  그곳엔 지도상에 아무것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공저는 갑자기 그에대한 불신이 피어올랐다.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지도엔 없지만 있습니다. 작지만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강시는 분명 그 마을을 찾아갈 것입니다.”

  “마을이요?”

  공저는 알 수 없었다. 마물의 종류인 강시라면 마을을 찾아가는 것이 말이 된다. 물론 그 이유는 살생을 위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교주도에서 강시에 의한 살생은 도적때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살생을 하지도 않을 거면서 마을을 돈다? 왜?

  “그 정보 확실한 겁니까?”

  “거의 확실합니다. 저희 눈을 숨기기 위해 험한 길을 다니지만 약초꾼이나 사냥꾼들에 의해 발견됩니다. 커다란 곰가죽 옷에 가린다고 가리지만 괴상한 가면은 더 눈에 띄죠. 그들의 이야기로 이동경로를 확인해본 결과 마을들을 쭉 훑으면서 내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말에 공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뭐라도 해봐야 한다. 공저는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자가 손가락으로 짚었던 곳은 지금 공저가 있는 곳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만약 지금 출발한다면 강시를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어린 소녀를 하나 데리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 말에 공저는 뒷골이 땡기는게 느껴졌다. 강시가 살생을 주저하는 것도 모자라 소녀를 데리고 다닌다고?

  “하아. 이건 진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죠.”

  강시는 퇴마하더라도 소녀는 어떻게든 대화를 나눠볼 수 있으리라. 그러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 가도 강시보다 늦는다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결국 뒤꽁무니만 찾게 되겠죠.”

  그 말에 그는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공저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 그자도 그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압박에 무언가는 해야겠고 해서 결국 우리가 강시를 찾지는 못하지만 정답에 가까운 차선을 말해준 것이리라.

  당장 그를 다그쳐 진실을 말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위에서 압박을 주는데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할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공저에겐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닌 그것을 거부하고 정의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특별한 사람이 되도록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씀하세요. 지금 강시로 인해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시는 실제로도 백성들을 죽일 수 있고요. 빨리 그를 멸해야 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공저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주위에 있는 승병들도 고개를 숙이며 만 목소리로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그는 그들의 모습에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공저와 승병들은 모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지도에 세 개의 표지를 했다.

  “이곳들이 강시가 다다음에 갈 곳으로 추정됩니다.”

  세 곳이다. 지금 있는 승병들이 15명이니 5명씩 나누면 된다. 하지만 그 강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5명으로 부족할 수 있다. 공저는 그 사실에 인상을 깊게 썼다.

  “그렇게 인상 쓰지 마십시오. 고작 이정도로 말하고 끝내면 제가 녹봉을 받아먹고 살지 않겠지요.”

  그 말에 공저는 드디어 밝게 웃을 수 있었다.

  “저희가 이동경로를 모두 조합해본 결과.”

  그는 표시한 세 곳 중 한 곳에 표시를 더 겹쳤다.

  “이곳으로 갈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이곳으로 갈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그는 바로 들어오는 공저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씩 웃으며 약간의 간격을 주고 말했다.

  “9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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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8 280 0 4959   
17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7 262 0 5667   
16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6 264 0 5829   
15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4 282 0 3600   
14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3 272 0 4900   
13 4. 고향 +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2 268 0 5729   
12 4. 고향 2019 / 1 / 2 272 0 3996   
11 4. 고향 2018 / 12 / 31 286 0 5180   
10 4. 고향 2018 / 12 / 30 269 0 11914   
9 4. 고향 2018 / 12 / 28 255 0 9966   
8 3. 헤야 2018 / 12 / 27 247 0 10268   
7 3. 헤야 2018 / 12 / 26 233 0 10056   
6 3. 헤아 2018 / 12 / 25 321 0 9854   
5 2. 강시 2018 / 12 / 24 242 0 9790   
4 2. 강시 2018 / 12 / 23 260 0 11043   
3 1. 고려로 2018 / 12 / 22 240 0 9382   
2 프롤로그 + 1. 고려로 2018 / 12 / 21 240 0 9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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