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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주 사소한 연애
작가 : etcetera
작품등록일 : 2018.12.23

뛰어난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인정받은 30대 톱스타 배우 수한. 그러나 무성한 소문과 스캔들 속에 소속사에선 꿍꿍이를 숨긴 채 새로운 여자 매니저를 고용한다. 취업시장에서 허우적대다 톱스타의 매니저로 취직하게 된 지완. 자신의 역대 장래희망란에 ‘매니저’가 있어본 적은 없다. ‘연예인’은 있었어도. 그래도 사활을 걸기로 한다. 월급은 소중하니까.

 
3. 초대받지 않은 손님
작성일 : 18-12-25 22:34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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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9시 50분. 회의 시작 10분 전. 시간을 확인하던 도훈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검토하던 서류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똑똑.

 

  “들어와.”

 

  “한수한씨 지금 도착했다고 합니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자 수한이 2층 회의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수한이 도훈을 마주치고도 본 채 만 채 지나치려고 하자 도훈이 입을 열어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잠깐 사무실에서 얘기 좀 하자.”

 

  “아시다시피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수한이 빈정대며 웃어 보이곤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돌아섰다.

 

  “한수한.”

 

  이렇다 할 별다른 말도 없이 도훈이 그를 단호하게 바라보고만 서 있다.

 

  수한이 그런 그를 마주보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도훈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뒤이어 도훈이 따라 들어가고 사무실 문이 닫혔다.

 

  “지난 번 같은 일은 없도록 해.”

 

  사무실 내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수한은 관심 없다는 듯 사무실 내부를 이리저리 훑어볼 뿐이다.

 

  “웃으면서 아양 떨라고도 안 해. 가만히만 앉아 있어.”

 

  “인형처럼 말이지?”

 

  수한이 입가에 비웃음을 담고 응수한다.

 

  “그게 내가 제일 잘 하는 역할이긴 하지.”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형이 제일 좋아하는 역할이기도 하고.”

 

  도훈의 눈빛엔 별다른 동요가 없다.

 

  “네가 아무리 그래봤자 나한텐 별 효과가 없다는 것만 알아둬라.”

 

  도훈이 자기 할 말은 다 끝났다는 듯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가려고 하자 이번엔 수한이 그의 발길을 붙들었다.

 

  “무슨 꿍꿍이야?”

 

  도훈이 다시 돌아보며 무슨 소리냐는 듯 수한을 쳐다봤다.

 

  “그렇게 순진한 표정 좀 하지 말고. 새 매니저. 누구 맘대로?”

 

  끝없이 빈정대기만 할 거 같던 수한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냉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속내가 뭐야.”

 

  “그런 거 없어. 민철이랑 회사 식구들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너 쫓아다니고 뒤치다꺼리 하는 거 미안하지도 않냐? 필요하니까 뽑은 거야.”

 

  “장난치지 말고. 그럼 뒤탈 없이 구를 남자를 뽑았어야지 왜 여잔데?”

 

  “너 여자 좋아하잖아.”

 

  날카롭게 도훈을 쏘아보던 수한의 눈가가 어이없이 일그러졌다.

 

  “날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그렇게 모르는 척 하면 안 되지. 그래 뭐, 됐다. 형이 꼬리를 보여주면 뱀이 아니고 미꾸라지게.”

 

  수한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서 사무실을 빠져 나간다. 도훈은 수한을 마주하던 그 상태 그대로 미동 않고 자리해 있다.

 

  한수한. 네 말이 맞아. 난 너를 너무 잘 알아. 언뜻 보면 매섭고 단단해 보이지만 그건 잔챙이들한테나 먹히는 거고. 알고 보면 읽히기 쉽고 그 속은 물러 터진 놈이지. 그래서 넌 나한테 안 되는 거야.

 

  뒤늦게 돌아선 도훈이 회의실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수한이 회의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가 혜린이 앉아 있는 곳을 힐끗 바라보곤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직원들 자리 중에 하나를 차지했다.

 

  “수한씨 자리는 김혜린씨 옆에...”

 

  당황한 직원이 그를 위해 마련된 자리를 일러주자 수한이 능숙하게 받아친다.

 

  “아무 데나 앉죠. 자리가 뭐 중요합니까. 사람이 중요하지. 안 그렇습니까?”

 

  수한이 혜린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람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천하의 한수한이 지각도 안 하고 이 자리에 멀끔하게 앉아 있는 게 어딘가.

 

  사람들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자리 문제는 그렇게 자연스레 넘어가는 듯하다. 그 분위기에 당황했던 직원도 한숨을 돌린다.

 

  다만 단 한 사람. 수한이 회의실을 들어설 때부터 줄곤 그만을 응시하던 혜린의 얼굴만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붉으락푸르락해질 뿐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한동안 보이지 않는 수한 때문에 초조해 하던 지완은 그가 팀장실을 나와 회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곤 그때서야 마음을 놓았다.

 

  회의 시작까지는 아직 좀 더 걸리는 듯 분주한 회의실 내부를 살펴보는데 수한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좇는 한 여자의 시선이 눈길을 잡는다.

 

  김혜린. 아는 연예인이 얼마 없는 지완도 알아볼 만큼 유명하고 잘 나가는 여배우. 정말...예쁘다.

 

  짙은 쌍꺼풀의 큰 눈과 붉고 도톰한 입술이 인상적인 그녀는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만큼 화려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또 실감하는 지완이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줄곧 독차지하고 있는 한수한은 아마 복 받은 남자일 테다.

 

  “아씨... 김혜린이 왜 저기에 있어. 원래 여자 모델은 쟤가 아니잖아?”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완이 고개를 돌려 보면 언제 왔는지 민철이 제 가까이서 회의실 내부를 건너다보고 있다.

 

  민철의 목소리를 들은 듯 한 여직원이 그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갑자기 바뀌었대요. 광고주 측에서 원했대나 어쨌대나. 김혜린이 M전자 사장하고 소문이 좀 있었잖아요. 지금 보니까...”

 

  “입조심해.”

 

  불현듯 나타난 도훈의 등장에 여직원이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하고는 울상을 지으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민철이 여전히 난감한 표정을 풀지 않으며 도훈에게 살짝 머리 숙여 인사했다.

 

  “네가 잘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다.”

 

  도훈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기고선 멀어지고 이내 민철이 죽을상을 지었다.

 

  도통 영문을 모르겠는 지완이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자니 어쩐지 저도 초조해지는 것만 같다.

 

  마지막 주자인 듯 회의실 안으로 도훈이 들어서자 조금씩 닫히기 시작하는 문 사이로 김혜린의 모습 또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한 남자를 좇고 있다.

 

  지완은 생각했다. 아마...그런 건가 보다.

 

  민철 선배가 발을 동동 구를 정도의 그 난감함의 중심에는 그녀가 서 있을 것이다.

 

  “막내야.”

 

  민철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 지완이 그를 돌아봤다.

 

 “아침부터 수고해줘서 참 고마운데 바로 또 중요한 일 좀 거들어줘야겠다.”

 

  지완을 보는 민철의 입가에는 힘 빠진 웃음이 걸려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꾹 닫힌 회의실 문 어딘가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웃음이 사라져 있다.

 

  “회의 끝나고 김혜린이 형한테 들러붙지 못하게 좀 감시해줄래.”

 

 생각지도 못한 부탁에 지완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들러붙거든,”

 

  민철이 예의 그 난감한 표정을 다시 짓는다.

 

  “요령껏 떼어내.”

 

  요령껏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자신은 사람을 사람에게서 떼어낸다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하물며 10대 열혈팬이 달려들어 수한을 와락 끌어안는 치기 어린 행위를 자제시킨다든가 하는 것과는 좀 차원이 다른 거 아닌가. 집요하게 그에게 달라붙던 그녀의 시선을 누구 한 사람도 어쩌지 못 한 것처럼.

 

  어쩐지 민철의 말에 영 자신이 없어지는 지완이다.

 

 

  회의가 끝나고 그 문을 제일 먼저 열고 나서는 사람은 역시 수한이다.

 

  수한이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2층 복도를 가로지르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지완을 보고는 걸음을 멈춘다.

 

  “왜 그러고 서 있어?”

 

  “하하. 제가 수한씨 매니저잖아요.”

 

  “너 지금 매니저 안 같고 경호원 같아.”

 

  지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나 지금 미션 수행중이라구요.

 

  “민철인?”

 

  “아까부터 화장실에...”

 

  “뭐 긴장되는 일이라도 있나 보군.”

 

  수한이 엷게 웃으며 2층 한 켠에 마련된 휴게실로 걸어 들어갔다.

 

  잠깐 스친 그의 미소가 꽤나 따뜻했던 거 같아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지완이다.

 

  수한이 사라짐과 동시에 민철이 긴긴 시간 끝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씨... 이놈의 버릇은 7년이 다 돼가도 안 없어지네.”

 

  민철이 저 멀리서 회의실을 빠져 나오는 혜린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사람 참 드럽게 안 변해. 그치?”

 

  지완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말투.

 

  혜린이 잠깐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민철을 알아보곤 이쪽을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빠르지만 요란하지 않고, 도도하면서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다.

 

  지완은 그녀가 다가올수록 왠지 긴장이 되는 것만 같아 괜스레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민철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죠?”

 

  “하하. 저야 뭐. 못 본 사이 더 예뻐지셨네요.”

 

  “어머, 그래요? 빈말이래도 기분은 좋네요.”

 

  “빈 말은요. 혜린씨 예쁜 거야 다 아는 사실인데요.”

 

  “글쎄요. 안 그런 사람도 있겠죠. 예뻐 보이고 싶은 사람한테 예뻐야 좋은 건데 말이죠.”

 

  그녀의 웃음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지완이다.

 

  혜린이 민철 옆의 지완을 의식한 듯 누구냐는 표정으로 민철을 바라본다.

 

  “수한형 새 매니접니다.”

 

  수한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의 눈빛에 묘한 움직임이 인다.

 

  잠깐동안 말없이 지완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겐 어떻게 느껴질까.

 

  그 짧은 시간에도 지완 자신에게만큼은 그녀의 시선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만 같다.

 

  “안녕하세요. 새 매니저 윤지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완의 싹싹한 웃음과 인사에는 그녀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혜린의 눈빛엔 수한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의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저도 잘 부탁해요.”

 

  지완이 고개를 꾸벅 숙여가며 건네는 인사에 혜린이 특유의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수한씬 참 보기가 힘드네요.”

 

  “형이야 원래 그런 사람 아닙니까. 매니저인 저도 얼굴 보기가 참 힘들다니까요. 하하”

 

  “민철씨도 참...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면서. 그래도 수한씨한텐 참 좋은 동생이네요. 보기 좋아요.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나중에 봐요.”

 

  그녀가 둘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멀어져 가고 민철이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은 뒤 형은 지금 어디 있냐고 물었다.

 

  지완이 휴게실에 있다고 말하자 그리로 향하는 민철을 보며 저도 따라갈까 하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그런 지완의 옷깃을 슬쩍 잡아당겼다.

 

  “김혜린씨 매니전데요.”

 

  지완 또래의 젊은 남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지완에게 말을 건넸다.

 

  “혜린씨가 그쪽 통해 수한씨한테 전해 달래서요.”

 

  남자가 두 번 정도 곱게 접힌 종이쪽지를 지완에게 건넨다. 그 또한 아까의 민철처럼 곤란하고 싫어 죽겠는 표정이다.

 

  왜 항상 난감한 건 저희들 쪽인가.

 

  지완이 무슨 말을 건네기도 전에 남자는 어느새 멀어져 가고 있다. 마치 어려운 미션을 수행해낸 병사처럼 가볍고 성급한 걸음으로.

 

  지완은 손에 어정쩡하게 남겨진 종이쪽지를 곤혹스럽게 쳐다보았다.

 

  쪽지를 건네줄 사람으로 민철이 아닌 저를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짧은 순간에 판단을 내려 플랜비를 실행시켜낼 만큼 그녀는 똑똑하고 저돌적이다.

 

  적지에 쳐진 바리케이드에서 어디를 공략할지 아는 사람이자 바리케이드를 쳤음에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꺼이 그것을 뛰어넘을 줄 아는 대담한 여자.

 

  민철선배에게 건넸다면 이 쪽지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아니, 이것은 필요 없는 가정이다. 그에게라면 애초에 건네지지 않았을 테니.

 

  지완은 일단 쪽지를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고 더딘 발걸음으로 휴게실을 향해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민철이 같은 자리를 맴돌며 왔다갔다 하고 있고 수한이 소파에 앉아 한쪽 팔걸이에 턱을 괸 채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강민철. 정신 사나워.”

 

  “형은 참 여유 있어서 좋겠수다.”

 

  민철이 짐짓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너도 신경 꺼.”

 

  “아씨. 한동안 조용하길래 난 걔가 형 포기한 줄 알았지. 근데 걔 눈빛 봤어? 어우...형, 장난 아냐. 또 작정하고 덤비면 덤터기 쓰는 건 우리 쪽이라구. 고게 아주 여우라니까.”

 

  민철이 고개를 흔들면서 진저리를 친다. 뭘까 이 분위기는. 주머니 안에 넣어놓은 쪽지가 더없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지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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