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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별을 준비하는 다섯 가지 방법
작가 : 멀이
작품등록일 : 2018.12.10

[일상물/잔잔물/결혼 이후로 시작하는 이야기/시한부남주/와 지켜보는 가족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이상형은 아가사 당신이니까요.”
“나 나쁜 사람 만드는 데에는 일가견 있어요, 당신.”
“별말씀을.”

시원스레 응수하고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튼 레슬리는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노래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해야 어디 도망을 안 가죠.

“누가 들으면 도망갈 준비만 하는 사람인 줄 알겠어. 도망갈 사람은 당신 아니에요?”
“저런. 아가사 말은 바로 해야죠. 나는 남겨질 사람이고, 앞으로 가는 사람은 당신이에요.”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죠. 앞으로 나아가기. 순간 부는 바람은 모든 소리를 잡아먹고 공기마저 멈춘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정적을 가져다주었다. 설풋 고운 눈매가 일그러지기가 무섭게 레슬리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싫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하죠.”

뒷말을 짐작이라도 한 모양으로 가라앉은 표정에 가벼이 입을 맞춘 레슬리는 누가 들을 새라, 조그맣게 속닥였다.

“세상 누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겠어요? 몇 없는 특권을 누리는 중이랍니다, 나는.”
“말은 참 잘해요, 레슬리.”
“그럼. 사업가인데.”

그래서, 레슬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아가사는 짙은 녹음 속에 잠긴 자신의 남편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멋진 준비를 하는 중인가요?”
“그럼요.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9화
작성일 : 18-12-25 14:46     조회 : 189     추천 : 0     분량 : 3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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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해봤는데요.”

 “네, 아가사.”

 “당신도 나도 영 성격은 좋은 것 같지 않아요. 안 그래요?”

 “잘 맞으면 됐죠, 뭐.”

 “이렇게 뻔뻔한 사람인줄 알았으면 더 고민해보는 건데.”

 “죽어도 안 놔줄 거랍니다. 포기해요. 그게 편할걸?”

 “봐서요-.”

 

 삐진 남편을 달래듯 머리를 토닥인 아가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래도 사랑해요. 불을 끈 집은 어린 어느 날처럼 물속에 잠긴 듯 먹먹하게 다가왔다. 좌우로 흔들거리면서 왈츠의 음을 흥얼거리며 아가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준 레슬리는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사랑해요. 우리 여보 만나서 사람이 됐지. 응. 나 아프다고 좀 위아래가 없었거든요.”

 “알아요. 처음 만났을 때 보였어요. 그래서 그냥 얼굴 최대한 적게 마주치자, 싶었고.”

 

 응.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렸다. 널따란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싸한 약의 냄새와 레슬리가 쓰는 향수의 향이 뒤섞여 코끝을 살며시 자극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의 머리칼을 살살 쓸어주며 시선을 맞춘 아가사는 환히 웃었다.

 

 “그런데 어떡해요, 당신이 내가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어. 당연한 거예요.”

 

 달빛이 비춰 은은하게 푸른빛으로 물든 뺨을 감싸 쥐고 말랑한 입술을 마주 꾹 누르며 레슬리는 작달맣게 속닥였다. 숨결이 엉기고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스칠만한 거리에서 가벼운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당신이 눈에 들어온걸요.”

 

 ❦

 

 젊은 백작과 백작부인은 유독 말수가 없어, 저택에 큰 소리가 나는 일은 그들이 결혼하고도 1년이 가까워지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사용인들 역시 그에 맞춰 소란스럽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었고, 다들 그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 큰 소리가 나는 곳은 저택의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지표 같은 것이었다.

 

 “비켜! 난 이 저택에 들어올 권리가 있어! 대체 누가 날 방해해?”

 

 레슬리가 외출한 탓에 홀로 점심을 먹고 있던 아가사는 쨍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에 미간을 좁히고 손에 쥔 나이프를 내려두고 입가심하듯 물을 한 모금 넘겼다. 알버트. 저택의 총괄 집사를 향한 부름에 머리가 새하얗게 샌 이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내가 모르는 점심식사 약속이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저택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없었습니다, 마님.”

 “그럼 지금 소리치는 인간을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요.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쥐고 식사를 시작한 아가사는 긴 복도를 걸어와 식당의 문을 쾅, 열어젖힌 이가 씩씩거리며 들어올 때까지도 어느 한 곳에 눈길을 주는 일이 없었다. 세월이 지났어도 그 미색마저 잃을 수는 없었는지 관리한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매끈한 얼굴의 여자는 목소리를 높이며 쨍하니 소리치다, 식당에 앉아있는 이가 아가사 뿐이라는 것을 알고 미간을 사정없이 구겨냈다.

 

 “지금 사람이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는 거니? 그래, 레슬리가 결혼을 했다고 하더니, 어디서 못 배워먹은 애를 들였어!”

 “알버트.”

 “네, 마님.”

 “주방장 좀 불러줘요. 오늘 고기가 잘 구워진 것 같네.”

 “이봐, 너! 사람이 말을 하면 인사를 해야지. 따지고 보면 내가 시어머니 쯤 되는 거 모르니?”

 “나 와인 한 잔만 따라줄래요?”

 

 조용히 서 있는 사용인 중 하나를 찍어 심부름을 보내는 것을 끝으로, 아가사는 제 몫의 고기를 꼭꼭 씹어 삼켰다. 일그러지는 표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두던 그는 접시를 싹 비우고 나서야 불청객-엠마 부인-을 바라보았다.

 

 “네 부모가 그리 가르쳤든? 아-, 돈 때문에 결혼한 애한테 할 말은 아니지, 참?”

 “…….”

 “내가 친절히 알려줄 테니, 귀 열고 잘 들으렴. 나는 네가 모셔야 할 사람이고, 정중히 대해야 할 사람이야. 알았으면 어서 상석을 내어주지 않고 뭐하니?”

 

 와인을 따르고, 그 향을 맡듯 코끝에 가까이 가져다 댄 아가사는 와인잔을 멀리 떨어뜨려 가볍게 돌리고 제 팔을 휙 치켜들었다. 궤적을 따라 흩뿌려진 와인이 매섭게 노려보는 얼굴을 향해 끼얹어지고, 고급스런 옷감을 물들이자 귀를 찌르르 울리게 하는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어디서 개가 짖니. 이봐요, 부인. 부모가 안 가르치던가요? 사람답게 굴어야 사람처럼 대하지.”

 “너-, 너!”

 “한 번만 말해줄 테니 잘 들어요. 나는 내 남편처럼 마냥 봐주는 사람이 아니거든? 여긴 내 집이고, 난 백작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어. 그러니 제발 위아래를 따지고 덤벼들길 바라요, 엠마.”

 “마님, 부르셨-.”

 “멜. 오늘 디저트는 서재로 올려줘요. 저녁 전까지는 거기 있을 거야.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애들 중에서 힘 좋은 애들을 불러서 여기 이,”

 

 짧은 순간 입가에 스쳐지나가는 비웃음이 언뜻 보인 것도 같았다.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와인에 흠뻑 젖은 이를 위아래로 훑어본 아가사는 조금 더 분명한 미소를 띠고 우아하게 그를 지나치며 말을 맺었다.

 

 “정신 나간 여자 분 좀 내쫓으라고 해요. 잡상인 출입 금지, 팻말이라도 달아둬야 할까봐.”

 

 저, 저! 아악! 드문드문 끊기고 뭉개진 소리가 식당 문 너머로 들려왔으나, 아가사는 꼿꼿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서재를 향해 걸어갔다.

 

 

 “-부인이?”

 “예. 엠마 부인이 오셔서 조금 소란이 있긴 했습니다만, 마님께서 잘 쫓아내셨습니다.”

 “부인은, 서재에?”

 “예.”

 

 볼일을 마치고 귀가한 레슬리는 조금 번잡스러운 집안의 분위기에 총괄집사를 찾다가 이제 겨우 정을 붙인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늘어놓은 덕에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다 들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서재로 돌린 그는 서재로 들어서기 전 잠시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결혼한 지 1년이 될 즈음에서야 나타난 이도 문제였지만 모든 것을 의연하게 넘기는 이도 문제라면 문제가 아니겠나. 울고 있으면 더 미안한데.

 

 “네, 들어오세요.”

 

 목소리는 괜찮네.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늦은 오후의 햇살이 창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창문 앞에서 무언가 생각하듯 밖을 내다보고 있던 이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몸을 돌리다 마주한 사람의 모습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늦을 줄 알았는데요.”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요. 밖은 이제 좀 쌀쌀할 텐데, 거기 서 있어도 괜찮나요?”

 “내가 당신보다 건강해서.”

 

 뚜벅뚜벅 다가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사람을 바라보던 레슬리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가사의 손끝을 잡고 느린 한숨을 뱉어냈다. 분명 서로 말을 나눴던 부분이었고, 서로 동의를 했던 부분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고 보니 괜한 자책과 미안함이 뒤섞이는 건 처음과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기 때문일까.

 

 “알버트에게 들었어요. 곤란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알고 결혼했고. 후계구도 복잡하지는 않다지만 짜증은 나겠네, 싶었고. 말했잖아요. 나는 내 관리 하에 있는 것들이 내 손을 벗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알고 겪는 것이 낫다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미안합니다. 배려가 부족했어요.”

 “레슬리. 다시 말하지만 괜찮아요. 이런 일이 앞으로 없었으면 싶지만.”

 “조치하겠습니다. 내가 결혼했으니 공공연하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어요.”

 

 후계자만 낳으면 될 줄 알았지. 시선을 내려 눈꺼풀을 길게 내리뜬 레슬리의 말에 아가사는 잡힌 손을 가볍게 흔들며 고개를 기울여 눈길을 마주했다. 감정 없이 바라보던 이가 점차 또렷해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나쁜 감각은 아니었으니까.

 

 “아가사. 부인.”

 “듣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정말 많이 아껴요.”

 “이렇게, 뜬금없이?”

 “모르는 척은 곤란한데.”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 레슬리는 아가사의 이마에 제 고개를 얹으며 희게 웃었다. 고마워요. 미안하고. 조금씩 시나브로 물들어가는 마음이 마치 가득 찬 물에 한 방울 더 더해 넘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겨울을 닮아 무감하던 눈동자에 봄이 깃들었다.

 

 “잘 알고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준만큼 닮아간 미소가 입가에 마주 걸렸다. 쏟아지는 햇빛만큼 눈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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