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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King's Road
작가 : Xien
작품등록일 : 2018.11.2

왕도(王道)란 무엇인가? 왕이 될 자는 누가 선택하는 것이고 누가 그 길을 것는 것인가?

강대국 리엔왕국에서 소리없는 왕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과연 왕이 되는 자는 누구인가?

 
31화
작성일 : 18-12-25 14:00     조회 : 345     추천 : 0     분량 : 6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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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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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도리스 왕국으로 가는 동안 스케리브는 베렌과 카렌과 함께 했다. 물론 체칠리아와 카렌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배 위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스케리브는 베렌에게 검술을 알려달라고 했고 매일 아침 베렌에게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검술의 기본기는 알고 있었기에 베렌은 좀 더 섬세한 부분을 가르쳤다. 베렌은 훌륭한 선생이었고 스케리브 역시 열정적으로 그의 가르침을 따랐으나 곧 한계에 다다랐다.

 

  “사내 녀석이 그렇게 힘이 없어? 마른 나뭇가지도 네 손목보단 굵겠다. 투기장에서는 힘 꽤나 쓰나 했더니 이건 뭐···. 계집애보다도 못하겠네.”

 

  왕궁에서 곱게 자란 스케리브에게 베렌처럼 울룩불룩한 근육이 있을리 만무했고 검을 오래 쥘수록 팔에 힘이 빠지며 자꾸 자세가 흐트러졌고, 수업이 끝났을 땐 검을 휘두르지 못할 정도로 팔에 힘이 빠져 저녁식사 때 숟가락을 간신히 들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스케리브는 베렌의 말에 부끄러우면서도 자존심이 상했다. 더욱 그럴 것이 쩔쩔매는 스케리브를 바라보며 카렌은 격려의 말 대신 그를 놀리기에 바빴다.

 

  “스케리브. 그런 식으로 해서 어디 여자 손이나 잡아 보겠니? 아이고 체칠리아도 불쌍하다. 남자친구가 저리 비리비리해서야. 매일 눈물바람으로 밤을 지새우겠··· 아! 아프다고!”

 

  큰소리로 스케리브를 놀리던 카렌을 노려보며 체칠리아가 그녀의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제발 둘은 나 수업 받을 때 딴 곳에 가 있으라고요! 가뜩이나 힘든데 그런 말 들으니 정말 맥 빠지네.”

 

  스케리브의 투덜거림에 카렌은 이죽거리며 말했다.

 

  “여기선 재밌는 일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난 매일 이 재미로 사는데 어딜 가란 말이야?”

 

  “뭐, 네 입장도 이해가 간다만. 난 오히려 네가 자극될 수 있게 옆에서 바람 넣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앞으로 매일 팔굽혀 펴기 50개, 윗몸일으키기 50개씩 하도록 해.”

 

  베렌의 말에 스케리브가 절망의 탄식을 내뱉자 카렌이 소리쳤다.

 

  “그렇게 해서 근육이 붙겠어? 거기에 날 업고 앉았다 일어났다 50개 추가!”

 

  카렌의 말에 베렌이 손뼉을 딱 쳤다.

 

  “좋은 제안이에요. 카렌씨. 알겠지, 스케리브?”

 

  “카렌누나 진짜 양심 없는 거 아니에요?! 자기 몸무게는 생각도 안하고···. 차라리 가벼운 체칠리아를 업고 할게요.”

 

  스케리브의 말에 카렌은 체칠리아를 흘끗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히죽거렸고 베렌은 휘파람을 불었다.

 

  “내가 양심이 없었네. 나보다야 여자친구를 업고 하는게 덜 힘들지, 암. 참~ 좋을 때다.”

 

  “아니라고!!”

 

  놀리는 말에 체칠리아와 스케리브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고 카렌과 베렌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느라 바빴다.

 

  그렇게 스케리브는 배 위에서 혹독한 베렌의 수업을 받았고 드디어 배는 도리스 왕국의 일렌(Illen) 항구에 정박하였다. 일렌 항구는 델 마리노 항구보다 규모가 더욱 컸고, 각종 배들로 북적거렸다. 고기잡이를 떠나는 어선, 타국에서 물건들을 잔뜩 실은 무역선, 귀족들의 호화로운 여객선까지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배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 같았다. 항구에 발을 디디니 이제는 익숙해진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쳤고 갈매기는 쉴 새 없이 끽끽 거리며 머리 위를 날아 다녔다. 항구는 매우 복잡했는데 사람들의 억양과 옷차림에서 타국에 왔다는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곳 사람들의 옷차림은 리엔 왕국보다 조금 더 파격적이었고 격식이 없었다. 남자들은 거의 상의를 입지 않았고 그나마도 맨몸에 가벼운 조끼 정도를 걸친 정도였다. 특히 여자들의 옷차림이 눈에 띄었는데 방금 전 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여성들이 지나갈 때 스케리브는 내심 깜짝 놀랐다. 그녀들 중 일부는 상의가 레이스로 되어 속살이 비치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민들로 보이는 여성들의 옷차림도 과감했다. 머리를 화려한 색의 끈으로 높이 질끈 묶고 소매가 없는 상의에 아랫단을 질끈 묶어 배꼽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스케리브. 입 좀 다물지 그래?”

 

  “아, 확실히 여긴 분위기가 다르네요. 뭔가 좀··· 개방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자들이 참 매력적이지? 누구처럼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카렌은 장난스럽게 스케리브에게 윙크를 했다. 스케리브는 카렌을 보다 그만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녀가 투박한 사제복의 허리끈을 질끈 매고 치마를 들어 올리며 요염한 포즈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살피던 체칠리아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얼굴이 굳어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체칠리아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손을 흔들며 체칠리아에게 달려왔다.

 

  “아가씨! 체칠리아 아가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간 건강하셨죠? 뭐, 말씀 안하셔도 건강해 보이시네요. 아가씨가 이쯤 오신다고 해서 매일 항구에서 기다렸다니까요? 덕분에 제 피부가 가무잡잡해졌지만요. 제 얼굴에 주근깨가 더 생기면 그건 분명 아가씨 때문이에요. 아, 여기서 주근깨가 더 생겨버리면 전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아참! 마님께서 아가씨가 오시면 백작님과 다 같이 저녁식사라도 하자고 하셨어요. 아가씨가 오시기도 전에 벌써 드레스며 장신구며 모자며 아주 아주 화려한 것들로 잔뜩 사셨다니까요? 아마 보시면 눈이 휘둥그레해 지실 거예요. 물론 마님이 아가씨를 봐도 눈이 휘둥그레해지실 것이 분명하고요. 아! 옆에 분들은 일행분들 이신가요? 반가워요. 전 스펜타리안 가문의 하녀 에밀리라고 해요. 어머, 멋진 호위무사님도 함께 했군요. 전 아가씨가 설마 단신으로 오실까봐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 몰라요. 사제님도 계시네! 얼마 전 신전에 갔는데, 신전 창틀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더라구요! 그렇다고 사제님보고 청소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하녀인 입장에선 그런게 먼저 눈에 띈다는 거죠. 어머, 너 정말로 잘생겼구나? 아니, 여잔가? 아, 미안 남자구나. 내 애인이 이렇게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어. 어쨌든 다들 반가워요.”

 

  속사포 같은 에밀리의 말이 끝나자 스케리브는 자신도 숨이 찬 것 같아 숨을 크게 들이 내쉬었다. 베렌과 카렌도 엄청난 수다에 멍한 표정이었다. 다만 체칠리아만 얼굴을 찡그린 채 머리를 가볍게 손으로 짚고 있었다. 에밀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를 돌아 소리치며 누군가를 불렀고 곧 마부처럼 보이는 하인이 와서 체칠리아의 짐을 가져갔다.

 

  “아가씨. 빨리 가서 씻으시고 옷도 갈아입고 치장하시려면 시간이 얼마 없어요! 방금 저택으로 아가씨가 도착했다는 전갈을 보냈거든요. 저녁 식사 전까지 준비하려면 빠듯해요!”

 

  체칠리아의 손을 잡아끌며 재촉하는 에밀리를 무시하며 체칠리아가 말했다.

 

  “스케리브 넌 어차피 신전이 수도에 있으니 카렌씨랑 같이 태워줄게. 베렌씨도 혹시 수도 쪽으로 가세요?"

 

  “일단 수도로 갈까 합니다.”

 

 체칠리아가 귀족자제인 것을 알자 베렌은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약간 딱딱해졌다. 그렇게 스케리브와 카렌, 베렌은 체칠리아와 에밀리의 뒤를 따라 그녀를 데리러 온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스케리브는 혹여나 마차가 작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마차는 5명은 족히 탈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매우 고급스러워 보였다. 마차를 본 카렌은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고 베렌은 얼굴이 더욱 뻣뻣해지며 입을 다물었다. 일행이 모두 마차에 오르자 마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마부는 항구도시를 빠져나갈 때까지는 사람 걸음걸이 속도보다 약간 빠른 정도로 마차를 몰았으나 교외지역으로 빠져나오자 꽤 빠른 속도로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카렌은 마차를 처음 타본다는 듯 폭식한 벨벳 의자를 손으로 쿡쿡 찔러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마차 안을 훑어보다 이내 마차 창문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베렌은 팔짱을 끼고 눈을 지긋이 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차 안에서 오직 에밀리만이 끊임없이 말을 했다. 그녀의 말에 스케리브와 카렌만 간간히 대답을 해주었지만 에밀리는 그들의 대답은 듣는둥 마는둥 자신 할 말만 해서 결국 그 둘도 입을 다물었다. 몇 시간 동안 한자세로 앉아있어 엉덩이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 마차의 속도가 줄었다.

 

  “드디어 수도 에르멘(Ermen)에 도착했어요.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톰 아저씨가 서둘러줘서 다행이에요. 아까 신전에서 내리신다고 했죠? 호위 무사 아저씨는 어디서 내리실 거예요?”

 

  에밀리의 말에 스케리브는 고개를 빼고 마차 창밖을 보았다. 교외지역을 빠져나갈 때 가까이 보이던 산세들이 저 멀리 성큼 떨어져 보였고 길이 잘 닦인 도로가 나타났다.

 

  “신전에서 내리면 됩니다.”

 

  1시간 뒤 신전 앞에서 스케리브와 카렌, 베렌을 내려주고 마차는 출발했다. 체칠리아는 오랜만에 온 집이 반갑지 않은 듯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차는 천천히 수도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저택으로 향했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저택이었다. 정원엔 다양한 여름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나비들이 한가로이 날아다녔다. 정원 옆의 작은 연못엔 물고기들이 천천히 유영하고 있었다. 정원 한 켠에 마차가 정차하자 에밀리는 엉덩이와 다리를 손으로 두들기며 마차에서 내렸다. 체칠리아도 뒤따라 내려 자신의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저택을 한 번 올려다보고 한숨을 쉬고 에밀리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갔다. 에밀리의 말대로 저택에선 저녁만찬을 위한 준비로 달콤한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에밀리는 뭐가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를 걸었고, 체칠리아는 음식냄새를 맡자 속이 좋지 않았다. 에밀리가 방문을 열자 체칠리아는 남의 집에 들어가듯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거의 1년 만에 와보는 것이었지만 체칠리아가 12년 동안 지냈던 이 방이 그녀에겐 낫설게만 느껴졌다. 에밀리가 조잘대며 방 한쪽 면을 모두 차지하는 큰 창에 달린 커튼을 쳤다.

 

  “이 방은 다 좋은데 창이 너무 커요. 뭐, 리나는 창이 커서 매력적이라는데 그건 걔가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아침엔 너무 햇살이 강해서 눈이 따갑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면 꼭 번거롭게 커튼을 매번 쳐야 하잖아요. 또 청소할 땐 얼마나 힘들다고요. 자, 아가씨 어서 그 낡은 옷 벗으세요. 마침 지금 목욕물을 준비해놔서 식기 전에 어서 씻어야 해요.”

 

  체칠리아는 보통 귀족 여인들이 그러하듯 하녀가 목욕시중을 드는 것이 아직도 몸서리치게 싫고 부담스러웠다. 에밀리도 체칠리아의 그런 점을 잘 알았다.

 

  “아이참.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저 나가 있을 테니까 편하게 씻으세요. 대신 너무 오래 씻으시면 안돼요? 욕조에 너무 오래 앉아 있다 얼마 전 바레인 귀부인이 쓰러진 난리가 있었다니까요? 뭐, 아가씨야 젊으시니까 걱정 없겠지만요. 참고로 바레인 귀부인은 올해 65세가 되셨어요.”

 

  마지막까지도 쫑알대는 에밀리를 쫓아내고 체칠리아는 옷을 벗고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천천히 몸을 담갔다. 배 위에서 제대로 씻지 못했던 지라 몸이 뜨끈한 물속에 들어가니 노곤해지며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곧 에밀리의 폭풍 잔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부지런히 머리와 몸 구석구석을 닦고 에밀리가 미리 준비해 놓은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에밀리는 이미 체칠리아가 입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벌의 화려한 드레스를 침대 위에 펼쳐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로 서있었다.

 

  “아, 아가씨. 여기 앉으세요.”

 

  에밀리의 말대로 체칠리아는 화장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이 화려한 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저도 모르게 일그러진 미소가 얼굴에 서렸다. 에밀리와 또 다른 하녀는 체칠리아의 머리를 수건으로 연신 물기를 털어냈다. 그 때문에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눈에 들어가 체칠리아는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얼마 후 하녀가 체칠리아의 얼굴에 이것저것 화장품을 찍어 바르기 시작했다. 에밀리는 체칠리아 뒤에 서서 그녀의 검은 긴 머리를 올려 올림머리를 만들었다. 하녀의 손길이 멈추자 체칠리아는 눈을 떴다. 거울에는 생소한 얼굴의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허한 붉은 눈 때문에 마치 사람을 모델로 한 밀랍 인형 같아 보였다.

 

  “음, 애니.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난 이게 더 마음에 들어. 아가씨는 피부가 하얀 편이고 머리가 검으니까 이 색이 더 잘 받을 것 같거든.”

 

  애니란 하녀의 말에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붉은 계열의 드레스 한 벌을 들어올렸다. 체칠리아가 일어나자 애니와 에밀리가 골라둔 드레스를 체칠리아에게 입혀주었다. 드레스는 보이에는 매우 예쁘고 아름다웠지만 막상 입으니 너무도 갑갑하고 불편했다. 마치 온몸에 감옥을 두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드레스를 다 입자 에밀리가 이번엔 여러 가지 액세서리를 가져왔다. 팔찌, 반지, 목걸이, 귀걸이 그 수만 해도 수십가지는 되었다. 에밀리는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해 보이는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를 골라 체칠리아의 귀와 목과 팔에 걸어주었다.

 

  “짜잔! 이제야 귀족 아가씨다워요! 애니! 어서 거울 가져와!”

 

  에밀리가 자신의 손으로 완성한 체칠리아의 모습에 만족했는지 연신 손뼉을 치면서 애니를 재촉했고 애니는 벽에 걸린 거울을 떼어 다급하게 체칠리아 앞에 대주었다. 체칠리아는 어색한 자신의 모습에 거울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에밀리와 애니는 저녁만찬이 시작되면 모시로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방을 나갔다. 체칠리아는 발을 옥죄는 딱딱한 높은 구두를 벗어던지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에밀리가 봤다면 머리가 망가진다며 기겁할 일이었지만 그녀는 상관없었다. 귀족들은 왜 밥을 먹을 때도 먹으면 바로 체할 것 같이 불편한 옷을 입는지, 가족들과 있을 때도 치장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체칠리아는 방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리나라는 하녀의 말대로 매우 매력적인 방이었다. 성장기의 소녀라면 한번쯤은 꿈꿔봤을 그런 아름다운 방이었다. 과하지 않은 장식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고, 방안의 소품들은 하나하나가 다 세련되었다. 하지만 체칠리아에겐 이곳은 그저 아름다운 감옥과도 같았다. 창살이 없는 감옥이 있다면 이런 형태이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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