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렁쩌렁한 함성으로 뜨거웠던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월드컵만큼이나 밥그릇 싸움에서 밥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젊은이여 야망을 품으라’을 실천하다가 쌩 똥을 쌌던 젊은이인 정수리가 사도유화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안순희의 빈 손에 박스 하나를 전달하고 있었다.
“벌써 나왔어?”
“자기가 요구한대로 700장 들어있다.”
박스를 받아 들자 마자 길바닥에 내려 놓았다.
“아휴~~ 무거워. 자기가 들어.”
“저도 들고 갈 짐은 많고 손은 두 개뿐이니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그 좋은 머리에 신통 방통한 방법이 뭐 없사옵니까?”
수리가 말한, 들고 갈게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박스 속에서 봉투 한 장만 꺼내보고 쑥스러운 미소로 수리 눈을 마주치고 있다. 히죽이 웃으며 수리가 더 큰 짐을 순희 손에 올려주었다.
“아이고 무거워. 이건 뭐야?”
“응! 토종 꿀! 자재, 총무, 연구실 있는 사람들 인원 수에 맞춰 원 플러스 원으로 준비했다.”
들고 있던 토종 꿀이 든 박스로 내려간 순희 눈은 살벌하게 바뀌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내려 놓는다는 표정을 본 수리 가슴이 뜨끔했지만 상상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살포시 내려놓은 뒤에 동작을 보고 수리가 방심했다. 내려놓은 뒤 주먹은 속사포로 돌변했다. 순식간에 수리 가슴에 정확하게 꽂혔다.
“앞으로 돈 들어 갈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 정말! 음료수면 충분한데 이 비싼 토종 꿀! 아~~진짜! 미치겠네. 우리 부서만 주면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이 샀어? 아~~ 정말 대책 없네.”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머리가 산발로 풀어헤쳐졌다. 입 바람을 코 속으로 불어도 넣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버쩍! 내릴 때와 전혀 다르게 차에 다시 실을 작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앙탈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척, 수리가 경비실로 가서 목을 길게 뻗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경비실 안에서 지켜보던 백발의 경비아저씨가 밖으로 나오면서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 그래! 정 사장 왔어. 축하해. 우리 순희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한테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이런 말을 듣고도 순희가 선물을 차에 다시 집어 넣는다면 수리는 이 걸 두고 평생 동안 군것질거리가 필요 없는 입가심거리로 삼았을 것이다. 반면에 멈칫한 순희 입장에서는 평생을 두고 후회할 경제적 타격을 가져 온 셈이었다. 눈 찔끔 감고 차에 다시 넣어버렸다면, 하다못해 새우 깡 살 돈이라도 줄었을 텐데 가계 살림에 낭비를 자초해버렸다. 앞으로 있을 순희의 눈곱만한 실수 중 하나였다.
누구 눈에서 눈물이 나올 지 훤히 알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저씨가 수리 눈 앞에 주먹을 내밀었다. 예의상 몸을 움츠려 뒤 걸음으로 피하면서, 순희 이미지에 딱 맞는 말로 족집게처럼 꼬집는 바람에 순희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막에 던져놔도 벌목공들 등골 휘게 할 사람인데요 뭐! 혼자서 내버려둬도 잘 해요. 허허허!!”
말똥말똥 아기 호랑이, 강아지, 고양이, 여우, 토끼의 눈이 서서히 사라질게 분명하다는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급변해있었다. 혈기왕성한 호랑이, 불독, 고양이 눈이 돼 으르렁거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그나마 눈에 토끼 이미지는 조금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기 얼굴에 침 뱉지 않으려면 앞으로 언어 교정해라. 특히 내 이름이 나오는 말에는 무조건 예쁘게만 말해. 알았어? 사막도 울창한 수림으로 개간할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아. 나를 아예 피나 빨아먹은 흡혈귀로 취급해. 어이 씨!”
핏대와 핏발이 보이지 않았을 뿐! 그런 식의 과격한 흥분이 나왔을 때와 똑 같은 목소리였으니 경비 아저씨가 감기몸살에 걸린 듯이 벌벌 떠는 건 당연했다. 살벌했던 모양이었다. 빨리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여기서 이럴 시간에 빨리 가서 요식절차 마치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둘이 찌지고 볶던 해라. 힘없는 영감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어서 가”
청첩장만 해도 어깨로 받쳐야 할 정도 한 짐하고 있었다. 동그래진 눈으로 청첩장을 보던 수리는 비겁할 짓을 당하고 말았다. 정답게 같이 들고 가는 척하다가 수리가 경비 아저씨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그 틈을 노려 가벼운 음료수 한 박스만 달랑 들고 쪼르르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수리에게 어이없는 표정이나 화난 얼굴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화색이 밝아지고 있었다. 순희 몰래 공장장에게 줄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잖아도 눈치채지 않게 어떻게 줄까? 오는 내내 고민했던, 가장 큰 골치덩어리였다. 트렁크 깊숙이 머리를 넣어 사각형의 판때기 두 개를 들고 총알처럼 순희가 사라진 길을 따라 쫓아갔다. 짐을 은밀한 곳에 숨겨두고 순희가 도와줬으면 했던 짐을 세 번에 걸쳐, 사무실에 들락날락한 뒤에야 들어갔다. 한마디로 순희는 수리 눈에만 눈꼴 사나운 짓을 하고 있었다. 수리가 들락날락하는 봤던 직원이 수리와 눈을 마주쳤다. 그 사람도 민망했던 것 같았다. 머쓱하게 눈인사만 서로 나누고, 수리가 공장장실 쪽으로 손짓을 했다. 그 사람도 그러라고 하는 걸 확인하고 공장장에게 갔다.
투명인간 취급했던 이완호와 박한철이 사라진 사무실 분위기는 부장이 나타나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와 화기애애했다. 수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게 한 원흉이었던 토종 꿀을, 자기가 직접 원산지에서 공수해 온 것처럼, 물 만난 물고기처럼 꼬리를 흔들어대며 이자리 저자리, 헤엄치듯이 빠르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수리 어머니가 봤으면,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이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아직 살아있어. 영악한 년. 하면서.
“공장장님 계시죠?”
수리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음탕한 눈으로, 넘겨짚어 말을 했다.
“어머! 사장님! 처음 뵀을 때 덩치가 엄청 좋았는데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요? 언니가 많이 괴롭히는가 봐요. 호호호. 그런데 그게 뭐에요?”
비서가 다가와 만지려고 했다.
“노! 터치! 저 테러범 아닙니다. 허허! 이해해줘야죠. 자기도 그 나이까지 참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저도 힘들었지만 어쩌겠습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희생해야죠. 허허허!!”
“아이! 너무 야하다.”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모습에 수리는 잠깐! 후회하고 있었다. 세상에나! 이 회사는 얼굴만 보고 뽑나? 오늘따라 비서가 엄청 예뻐 보여서였다. 순희 피부는 피부도 아니었다. 부딪히면 튕겨나갈 것만 같았다.
“어! 정사장! 왔어. 축하해!”
판때기 놓을 자리부터 먼저 둘러보고, 조심스럽게 놓고, 집안의 품위에 손상되지 않게 정중히 허리를 굽혀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형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해마다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장장이 헛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야 이놈아! 아니지! 정사장! 여긴 자네 집안이 아니네. 그런 식의 인사는 내가 어색해. 허허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깡패 두목인 줄 알겠다. 그런데 해마다 는 뭐고 저 판때기는 또 뭐냐?”
수리가 일어서 문을 살짝 열고 비서에게 말했다.
“저! 공장장님께서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라고 하십니다. 차도 필요 없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딸깍’ 소리가 나게 문을 잠그고 판때기를 나란히 펼쳤다.
“형님! 이건 ‘야망’이고 이건 ‘품속’입니다.”
공장장 입에 닫혀지지 않았다. 바람이 계속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뭐냐! 가만! ‘이런 직깨미가 송영석에게’ 이런 직깨미가 누구냐? 작가 이름이야? 이왕이면 뒤에 공장장도 붙여달라고 하지.”
입술을 툭 내밀어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며 어깨에 힘을 꽉 주고 말했다.
“공장장으로 직장생활 마감하실 마음 전혀 없잖습니까? 거기 보십시오. 날짜도 있습니다.”
흥분이 가라앉으려면 꽤 걸릴 것 같아 보였다. 수리와 사진을 번갈아 보다가 귀를 쫑긋하게 하는 말이 나왔다.
“사진에 대해 잘 모르지만 바다와 하늘을 부셔버릴 정도로 붉게 물들인 태양을 보고 ‘야망’이라 설정한 자네 마음을 알겠고, 노랗고 파랗고 불그스레한 석양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네 말대로 ‘품속’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야! 이걸 보고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눈에 힘이 들어간 수리가 물었다.
“형님도 글쟁이입니까?”
공장장 눈이 수리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형님도란 자네도 란 말인데. 그래! 맞다. 나는 시인으로 등단했다. 자네도? 잠깐만!”
책장에서 시집 한 권을 가져왔다. 송영석이란 이름이 있는 시집을 보고 인상이 바로 찌그려져 버렸다. 곧 투덜댔다.
“형님! 벌써 ‘게발 선인장’ 제목으로 책을 내버리면 어떻게. 제가 준비하고 있는 게 이 제목인데.”
고개를 몇 번 갸웃하며 물었다.
“자네는 왜 이 제목을 설정했어? 나는 꽃이 활활 불타는 거 같아, 찾아보니 꽃말이 불타는 사랑이더라. 그래서 지었는데. 자네는?”
“저는 그냥 지나치다가 꽃이 멋있어, 쳐다 보고 있을 때 꽃집 주인이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면서 마디 하나를 잘라 버리기에 주워서 키우게 됐습니다. 붉게 만개한 꽃 사이 사이에 녹색 잎사귀들은 파란 바다 물결 같았고, 터질 듯 말듯한 연붉은 꽃망울들은 새 색시 뺨 같기도 하고, 또 바다를 노랗게, 붉게 수놓은 여명 같기도 하고, 아무데서나 자라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터전이 이 나라에도 있었으면 하는, 그 바램이 가장 많아 제목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꽃말처럼 젊음을 불태우고 싶었구나.”
검지 손가락으로 이마를 한번 긁으며 미간을 좁혔다가 대답하고 있었다.
“여명 같이 활활 타오르는 젊은 혈기로 시작해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을 헤엄치며 날아다니다가 어머니 품속 같은 석양으로 들어 가는 인생을 그리며 사업을 시작했는데 땅은 바다보다 더 거칠다는 현실만 실감하고 있습니다. 형님에게 맑고 푸른 하늘이 담긴 사진도 드리고 싶었지만 가식이란 생각을 가진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더군요.”
“그래! 자네와 같은 영감인지 모르지만 낮이 푸르듯이 보이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푸르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흑들! 나는 내 시에 그들까지는 넣을 마음은 생기지 않더라. 자네처럼 가식들이 은근슬쩍 끼어든 것 같은 글. 그래서 낮에 보이는 사물을 표현하기가 가장 어렵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는 울기도, 미워하기도, 화를 내기도 하는 사람들 표현이 가장 어려워. 사진을 보니까 자네는 아닌 것 같아. 자연을 표현하려고 애쓴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면 건방져 보이겠지만 사람 마음 읽기가 가장 쉽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는 제 마음을 몰라서 답답하죠. 그래서 사진을 찍고 자연을 보면서 네가, 자연 당신이, 표현하려는 게 뭐냐며 계속 묻고 있습니다.”
심각하게 말하는 수리와 달리 공장장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