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저 가물치란 옆에 앉아서 기분을 맞춰주래”
“예?”
지혜가 화들짝 놀라며 이모를 쳐다 본다.
“아니! 다른 뜻이 아니고 고민이라는 사람이 짓궂어서 여자만 옆에 있으면 장난을 친대. 음탕한 사람은 아닌데 장난이 심해서 혹시 네가 오해하고 상처 받을까 싶어 가물치란 사람 옆에 앉아 있으래. 딴 뜻은 없어”
지혜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을 시키지만 자혜는 왠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언니! 저 그냥 집에 먼저 가면 안될까요?”
“오늘 너 환영회인데 주인공이 빠지면 되나?”
왠지 팔려 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혜는 이러려고 이 집에 온 게 아닌데 뭔가 이상하게 흘러 간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신랑의 한을 풀어 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당장이라도 이 차에서 뛰어 내려 집으로 쫓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혜가 가방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를 악물며 일행을 따라 횟집으로 들어갔다.
“자! 예쁜 여사님부터 먼저 한잔!”
고민이가 능글맞게 웃으며 가물치 옆에 앉은 지혜에게 먼저 술잔을 채운다.
“야! 내가 채워야지. 넌 임마! 이 여사님에게 껄떡거리지 말고 네 파트너에게나 잘해!”
가물치도 능글맞게 웃으며 이모에게 술을 따른다.
지혜는 파트너란 말에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며 숨을 가눌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 와서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 나가 소리 내 울고 싶었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눈물이 가슴에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짜릿한 촉감이 지혜 젖꼭지를 스쳐 지나가 버렸다.
지혜는 온몸을 움츠려 경멸로 가득한 눈으로 가물치를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다.
“어! 미안! 그런 게 아닌데… 나는 그저 어깨에 손을 올리려고 했는데… 미안! 미안!”
지혜의 성난 눈초리에 분위기를 알아차린 가물치가 얼른 수습을 하고 있다. 지혜가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어이 씨! 저 년 왜 저래? 실수할 수도 있지! 이모! 저 년 보내. 술 맛 떨어지게”
금방이라도 쓰러져 잠에 골아 떨어질 듯한 고민이가 지혜 뒤를 쳐다 보며 말한다.
“죄송해요. 저 애가 신랑을 떠나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해해주세요”
“씹할! 그러면 일 마치고 조용히 집에 가야지. 이런 자리에 왜 와! 가물치야! 네가 택시 태워 집에 보내 줘라! 우리가 아무리 술에 취해도 이러면 안되지!”
고민이 술에 취해도 사람의 도리도 취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 이모! 우리 같이 나갑시다. 우리가 알았으면 이러지 않았죠. 나갑시다”
가물치가 일어 나려는데 이모가 자기가 택시 태워 보내겠다며 밖으로 나간다.
“지혜야! 저 사람이 실수 했다잖아. 네가 이해 해. 응!”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를 하는 말에 지혜는 서러움이 더 북받쳐 올라와서 펑펑 울기만
하고 그런 지혜를 안에서 보던 가물치가 일어나자고 한다.
“고민아! 그냥 가자.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허 참!”
“그래! 가는 게 좋겠다. “사장님! 여기 얼마에요?”
가물치가 계산대 앞에서 계산을 하려고 할 때 지혜가 눈물을 닦다 말고 얼른 계산대로
쫓아 온다.
“아뇨! 제가 계산 할게요. 사장님이 우리 회식하라고 주셨어요”
가물치와 고민이 서로 마주 보며 놀란다.
“그 놈 뒤질 때가 다 됐나? 별 일이네. 허허. 어쨌던 오늘 잘 먹었습니다. 그럼!”
공짜 술에 정신이 번쩍 든 고민이 인사를 하고 나가는 뒤를 따라 가물치도 나간다.
“자! 그럼 잘 가요!”
평소 같았으면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택시를 잡는 가물치지만 오늘은 불쾌할 수 밖에 없다는 걸 고민도 잘 알기 때문에 한잔 더 하자는 말도 하지 않고 손을 흔든다.
“잠깐만요!”
지혜가 불이 나게 가물치가 탄 택시에 같이 탄다.
“저 놈은 또 왜 저래?”
고민이 놀라 이모를 쳐다 보며 묻는다.
“놔 두세요. 할말이 있겠지 뭐! 한 잔 더 하실래요?”
“허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저 아주머니! 기분이 꿀꿀하네요. 그냥 집에 갈랍니다”
고민이 이모를 먼저 택시에 태워 보내고 비틀거리며 택시에 탄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예민했나 봐요. 아저씨! 죄송한데 저 여기 내려 주세요, 가슴이 너무 갑갑해서..... 죄송합니다”
가물치가 호위무사나 된 것처럼 지혜 뒤에 바짝 붙어 한 숨으로 가득 찬 사과를 받아 드린다.
“아뇨! 당연하죠. 그런데 뭐 그렇게 놀래요. 참 내!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제가 지혜씨 잡아 먹는 줄 알았겠네요. 허! 허! 술 더 드셔도 돼요? 애기 기다릴 건데…”
가물치가 지혜를 걱정스럽게 쳐다 본다.
“괜찮아요. 그런데….”
지혜는 우두가 왜 이 사람을 극진히 모셔야 되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려다 입을 다문다.
“뭐! 물어 볼게 있어요?”
“아뇨! 죄송해서요. 다른 뜻은 없어요”
“허! 제가 그렇게 지저분한 놈으로 보였어요? 그만하고 갑시다. 다 이해하니!”
가물치가 일어 서다가 지혜를 다시 쳐다 본다.
“혹시! 같이 노래나 한 곡하고 갈래요?”
“예?”
깜짝 놀란 지혜가 가물치를 멀뚱히 쳐다 본다.
순간적으로 '죄송합니다.
남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에게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라는 어쭙잖은 변명이 튀어 나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지나치는 택시를 얼른 잡으려고 힐끗힐끗 차도를 쳐다 보며 걷는다.
앞서 걸어가는 가물치의 뒤 모습에서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다가 살짝 젖 가슴을 스쳐갔던 그 순간 그 짜릿한 묘한 기분도 같이 스쳐 지나 갔다.
지혜는 그런 자신이 창피하기도 해서 헛웃음을 치며 무의식적으로 뒤를 따라 걷는다.
지혜가 뒤따라오는 지도 모르고 한참을 걸으며 택시가 지나칠 때마다 가물치가 손을 흔들며 택시를 잡으려 애를 쓴다.
자기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을 따라 가는 지혜는 자신을 이렇게 순식간에 영악한 인간으로 변해버리게 하고 떠나 버린 신랑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신랑을 떠 올리니 형식이가 또 떠오른다.
형식이 우두 모두 인간으로써 가치를 잃은 인간 말세 들인데 그 놈들과 어울리는 저 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오늘 잠시지만 하는 짓을 봐서는 그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어 지혜 머리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택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