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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8
작성일 : 18-12-25 03:46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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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우의 변명 같은 진술이 먹힌 듯했다. 박성우의 혐의는 풀렸고 여론은 다시 동준을 저격했다. 휠체어를 탄 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었으니 그 말이 거짓이래도 믿을 수밖에 없다며 형사가 말했다. 박성우가 끝까지 가해자로 인정됐다면 동준의 재판이 병아리 눈곱만큼이라도 수월했을지 모르지만, 세상 불공평한 게 뻔히 증거가 있는 박성우는 말 한마디에 죄가 사라졌고, 증거도 없는 동준은 여전히 살인미수 용의자로 재판을 거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네.

 

  지금쯤 병실에 누워 나 몰라라 귤이나 까먹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까 피가 거꾸로 솟았다. 검찰국장 아들이면 다냐고, 어디 뒷돈이라도 쥐여준 거 아냐? 진짜 병원 앞에서 피켓이라도 들고 서 있어야 했나. 거실 물걸레질을 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청소하기 좋게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린 수지가 감자 칩을 큰 소리로 씹었다. 재방송하는 드라마 소리와 겹쳐서 그건 상관없었는데 바닥으로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는 많이 신경 쓰였다.

 

  아니, 좀. 의지와 달리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짜증이 나는 것 같은데 짜증 낼 수는 없으니 냉수나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물 떨어진 지 좀 됐는데 몰랐냐고 수지가 귀신같이 말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나는 입맛을 다시며 도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 대신 수돗물을 틀었다. 머그잔 가득 받았다. 맛이 딱 수돗물 같은데 속은 시원해졌다. 너도 마실 거냐고 턱짓했더니 역시나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걸레질하기 위해 밀대를 잡았다. 수지가 감자 칩 봉지를 돌돌 말아 공기가 빠지지 않게 고무줄을 끼웠다. 더 안 먹는 건가 싶어서 속으로 안심하던 찰나 무언가 떠오른 듯 수지가 어깨를 들썩였다.

 

  “아, 맞다.”

 

  시선은, 서로 네 탓으로 돌리며 헤어지는 순서를 밟는 드라마 남녀 캐릭터에게 가 있었다. 다리를 편하게 내린 수지가 깔깔 웃었다. 뭐가 그리 웃긴 장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보다 뭔데? 궁금해서 몸이 둔해졌다. 천천히 걸레질했다.

 

  “박성우 몇 번 면회 온 친구가 있는데.”

 

  수지가 뜨문뜨문 말했다.

 

  “정예찬이라고, 너 아는 애 아냐?”

 

  그 언젠가 수지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다. 동준에 대해, 박성우에 대해, 정예찬에 대해. 그중 하나인 정예찬이 박성우를 만났다니. 자신도 피해자라고 순순히 불었던 정예찬은 박성우를 끔찍하게 여기진 않는 건가.

 

  밀대를 거실 바닥에 내려놨다.

 

  둘 사이에 무언가 더,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한데.

 

 

  *

 

 

  병원에 들어가서 곧장 박성우를 찾았지만 1인 병실을 지키고 서 있는 경호원 두 명 때문에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무슨 톱스타인가 유명인인가. 그 잘난 얼굴 좀 보려고 했지만 근처도 못 가고 다시 데스크로 돌아온 나를 시니어가 슬쩍 쳐다봤다. 뭐 찾으시는 게 있냐고 의무적으로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 치는 연기를 했다. 시니어의 눈이 세모로 바뀌는 것을 확인한 동시에 점퍼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시선이 온통 내 손길에 머물렀다.

 

  아, 저는 이런 사람인데.

 

  하고 운을 뗐다. 명함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이 순간을 위해 며칠 전 따끈따끈하게 만든 것이었다. 비록 국선이지만, 변호사라고 적힌 명함을 받고 의아하게 바라보던 시니어가 그래서요? 하고 묻는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주시했다.

 

  제가 바로 변호사입니다만.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곤소곤 대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요? 하고 이번엔 입 밖으로 말했다. 무뚝뚝한 목소리에 일단 좀 들어보라고 손짓했다.

 

  “병실 CCTV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시니어가 경계하는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박성우에겐 미안하지만 과장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시니어는 박성우의 이름이 나오자 낯빛이 바뀌었다. 내용이 어떻든 변호사에게 협조할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대로 몇 번 더 부탁하다가 들이닥친 경비원에 의해 쫓겨났다. 이런 이유로 다신 병원에 발 들이지 말라고 으르렁거렸다. 여기서조차 갈 곳 잃은 신세라니. 서러워서 살겠나.

 

 

  다음 날, 그다음 날도 병원 정문에서 피켓을 들었다. 박성우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사건의 재조사를 바란다, 악질 검사는 사실을 규명하라는 것이 적힌. 마지막 문구는 어쩐지 별로 들지 않았지만, 1인 시위를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 여기 수지가 다니는 병원이지.

 

 

  *

 

 

  안 그래도 나 때문에 병원 내부가 시끌시끌하다고 했다.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불편하다는 민원도 많이 접수되는 모양이다. 수지는 말로 하면 되지, 하고 혀를 끌끌 찼는데 대화가 통했다면 나도 추운 데서 벌벌 떨며 그러진 않았을 거라고 조용히 반박했다.

 

  피켓에 빨간색 매직으로 김지빈의 이름만 강조한 글씨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린 수지가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수지의 표정이 오묘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질책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이래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뒤이어 말하는 목소리에 나도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뭐라도 해야 하잖아, 특히 나 같은 사람은.

 

  난 김지빈처럼 똑똑하지 않아, 인맥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이런 거밖에 없는데 뭘 해 그럼.

 

  처진 내 등을 수지가 토닥거렸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다. 수지에게 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잊어버렸다. 부탁인 것 같았다. 뭐였더라.

 

  “내가 뭘 도와야 한다면 말해.”

 

  나는 그저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수지가 내 손을 제지했다.

 

 

  *

 

 

  그 뒤로 시위는 나가지 않았다. 병원은 내가 포기했다고 좋아하겠지만 내겐 다른 수가 생겼을 뿐이었다. CCTV를 복사해 오는 것은 관계자가 아니라 본인도 장담할 수 없다고 수지가 말했다. 그땐 정말 어쩔 수 없지만 모든 짓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수지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답게 최대한 가지고 올 수 있게끔 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수지의 말이 백 퍼센트 이행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신뢰가 있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저렇게 말한 이상 가능성이 높았다.

 

 

  *

 

 

  마티즈 보닛 위를 가로지른 날카로운 자국이 어디서 생긴 건지, 블랙박스를 돌려볼까 하다가 그냥 수리를 맡기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배차 시간을 확인했다. 5분 뒤에 오고 8 정거장을 가야 하니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지각은 면할 것 같다. 올해 겨울은 겨울치곤 날씨가 따뜻하더니 하루 사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바람에 입술이 덜덜 떨렸고 귀와 콧등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코트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다. 손이 시려 주머니 안에서도 주먹을 말아 쥐었다. 기모 바지를 입을 걸 그랬나 생각했다. 어떤 아주머니가 길을 걷다 멈춰 뚫어지게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눈빛이 강렬하게 변해서 아는 사람인가 떠올렸다. 빠르게 다가오더니 대뜸 당신의 기운이 밝다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머리 굴려 고민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최근에 좋은 일만 생기지 않느냐고 아는 척 물었다. 나는 이것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어야 한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모른 척 되물었다.

 

  “좋은 일, 있었죠. 뭔지 아시겠어요?”

 

  그녀는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해줄 테니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나는 푸시시 웃었다. 때마침 버스가 도착해서 일어섰고 또 마침 문자가 도착해서 확인했다. 마티즈 스크래치가 심해서 카센터에선 어떻게 안 되겠고 공장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머리를 누가 잡고 돌리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나는 그 문자를 아주머니에게 들이밀었다.

 

  참 좋은 일이네요.

 

  내가 들어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충전식 카드를 찍는데 요금이 부족하다는 요란스러운 기계음이 울렸다. 다른 카드는 안 가져왔는데. 잔돈이 있는지 의심된다. 나는 오만 원 지폐를 들고 허망하게 웃었다. 기사님의 얼굴이 곧 욕이 튀어나올 것처럼 굳었다. 운도 지지리 없네, 아주.

 

 

  *

 

 

  고준서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재판이 끝났다고 소리 질렀다. 초반엔 변호를 맡은 의뢰자가 거짓말을 해서 방향이 안 좋게 흘러가는가 싶더니 결국 승소했다. 기지개를 쭉 켜고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돌아봤다. 나는 언제 끝나는지 눈으로 묻는 것도 같고 그냥 부러워하는 마음이 티가 났나 싶기도 해서 고개를 내렸다.

 

  “이 변호사님은?”

 

  고준서가 걸어오며 말했다. 책상에 있는 서류를 정리하는 척하며 뭐가? 하고 대답했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내가 또 좀 도와줘요?”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일까. 아니 사실 인간이란 게 온전히 혼자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고준서의 말이 신경 쓰인다 해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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