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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왕비님의 알바일지
작가 : 박티티
작품등록일 : 2018.12.7

만년 배우 지망생 희우는 오늘도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낙담한다. 그러던 와중 왕비역을 구한다는 알바 공고에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하는데, 뭐? 진짜 마왕이 왕비를 구하는 거였다고? 1년의 계약기간동안 마왕성에서 벌어지는 왕비님의 흔한 알바일지

 
#13-과연 이것까지 버틸수 있을까?
작성일 : 18-12-25 00:10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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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숲을 헤쳐나가는 두 개의 발소리가 다급하다. 꽉 붙들린 손은 이제 얼얼하다 못해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고, 쉬지 않고 움직인 다리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으며, 가슴 속 심장은 당장이라도 뻥하고 터져버릴듯이 격렬하게 움직인다. 디노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달리던 희우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쓰러질것처럼 위태로운 가운데,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힘이 빠진 발목에 굵은 나무뿌리가 걸려 희우가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버렸고, 디노가 깜짝 놀라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

 "희우씨!"

 ​

 디노가 얼른 일으켜 주었지만 이미 지쳐버린 희우의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겨우 부축을 받아 일어서는 순간, 넘어지면서 발목이라도 삐었는지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윽하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디노가 어두운 얼굴로 희우를 평평한 곳에 앉히며 묻는다.

 

 "괜찮아요?"

 "글쎄요..."

 

 희우는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디노가 망설임없이 희우의 신발을 벗긴다. 그 모습을 본 희우가 잠시 당황한 듯 얼굴이 빨개졌지만, 곧 그의 손이 닿는순간 짜릿하니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통증에 다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말았다. 디노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

 "이런..."

 ​

 방금 전 삐었는데도 이미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을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 디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을 데려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거에요? 왜 우릴 공격하는거죠?"

 "모르겠어요. 배신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

 디노의 표정은 여지껏 희우가 본 것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다. 그의 눈썹이 걱정스럽게 움츠러들었다.

 ​

 "체로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에요. 내가 처음 이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도와준게 바로 그녀였죠. 그 뒤에도 몇번이나 위험한 적이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체로니가 날 구해줬는데... "

 ​

 디노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에 몰두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억을 곱씹어봐도 자신이 체로니를 배신할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 이렇다할 실마리를 얻지 못한 그가 답답한 마음을 한숨으로 대신한다.

 ​

 "우선은 여길 빠져나가야겠어요. 이대로는 너무 위험..."

 ​

 그 때 사샥거리며 숲을 헤쳐오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자 디노가 얼른 고개를 틀어 주위를 둘러본다. 어둠속에서 번뜩이는 두개의 붉은 눈. 그러나 그것은 곧 네개로 늘어났고, 여섯개, 여덟개를 넘어 금새 수십개로 늘어난다. 어느새 알로시네들이 디노와 희우를 동그랗게 포위하고 말았다. 눈을 번뜩이던 그들 중 하나가 입을 쫙 벌리며 달려드는 순간, 희우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며 몸을 움츠리고 말았지만 다행히 디노가 마력탄으로 녀석을 튕겨보낸다. 팡하는 충격음에 이은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미세한 탄내와 함께 어두운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

 "체로니! 듣고있지? 진정하고 나랑 얘기 좀 해!"

 ​

 디노는 어딘가에서 그녀가 듣고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커다랗게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샥거리며 달려들 기회를 엿보는 알로시네들의 발소리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한마리의 공격. 디노는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알로시네를 날려보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

 "내가 당신을 배신할 이유가 없잖아!"

 ​

 발악을 하듯이 외쳐봐도 대답은 없다. 알로시네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며 동시에 공격할 기미를 보이자, 디노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검을 소환했다. 스릉하는 서슬 퍼런 소리와 함께 검이 나타나는 순간 알로시네들이 떼로 달려들었고, 디노가 칼을 휘둘러 녀석들을 막아낸다. 그렇지만 그의 칼끝은 전에 히로칸들을 상대할 때와는 달랐다. 디노는 알로시네를 완전히 베는 것이 아니라 검을 휘두르며 생기는 풍압으로만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거미들은 공격을 받아도 잠시 쓰러질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어나 달려들기를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끝이 없다. 디노가 이를 갈며 욕설을 뱉었다.

 ​

 "빌어먹을...!"

 ​

 부웅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또 한마리를 보기좋게 날려보낸 후, 디노는 잠시 공격이 빈 틈을 타 땅에 검을 깊숙히 내려꽂았다. 그리고 칼자루를 쥐고 눈을 감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같은 것을 외운다. 그러자 디노 주변의 땅이 부르르 떨리는 듯 싶더니, 곧 그를 중심으로 생겨난 커다란 충격파가 미끄러지듯 퍼져나가며 알로시네들을 공중으로 날려보낸다.

 

 "꺄아아악!"

 

 거미들은 마치 트램펄린이라도 탄 것처럼 느닷없이 수미터를 튀어오르더니 금새 쿵하고 추락한다. 그 때문에 묵직한 충격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다행히도 공격의 효과는 톡톡히 본 것 같다. 디노는 알로시네들이 기절한 것을 확인한 뒤 겨우 숨을 돌리고는 희우를 돌아본다.

 ​

 "희우씨, 괜찮..."

 ​

 겨우 한고비 넘겼다고 생각한 순간, 푸슉하고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디노가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해낸다. 어두운 나무 틈새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법이구나, 디노리스. 거미줄에 걸려서 징징대던게 엊그제같은데 말이야..."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풀 너머에서 체로니가 무시무시한 오오라를 풍기며 그들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방금 전에 들린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반복되더니, 이번엔 이전보다 훨씬 큰 덩어리가 디노의 오른팔을 완전히 감싸듯 달라붙는다. 희우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떼어내려 손을 뻗었지만, 디노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저지한다.

 

 "손대면 안돼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이익하고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코 끝을 찌른다. 디노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이를 악물었다.

 

 "크윽...!"

 "그대로두면 뻐까지 녹을거다."

 

 희우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채 디노를 바라본다. 뭐라도 해야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의 손이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디노가 어금니를 꽉 깨문채 남은 손을 거미줄이 덮인 오른팔에 갖다대더니 검은 마력탄을 발사한다. 그 덕분에 독침은 화르륵 타올라 사라졌지만, 이미 그 아래에 있던 팔뚝은 마치 심한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희우가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숨을 들이켰다.

 

 "파... 팔이..."

 

 자칫하면 뼈가 드러날듯이 녹아버린 팔은 이미 제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디노는 오른팔을 축 늘어뜨린채 희우를 자신의 뒤로 감추려한다.

 

 "물러서요. 당신은 살짝 닿기만해도 죽을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당연히 안 괜찮죠. 젠장, 더럽게 아프네."

 ​

 그래도 대답하는 것을 보니 아직 쌩쌩해보여서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 된다. 마족이라 저런것도 견딜수 있는건가? 하지만 그 이유가 어찌됐든간에 이래가지고는 검은 커녕 제대로 손을 움직일수조차 없을 것이다. 디노가 체로니에게 소리친다.

 

 "체로니, 제발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배신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냐고? 뻔뻔하구나, 디노리스."

 "돌겠네. 뭐라고 설명이나 해주고 화를 내든가!"

 

 결국 디노 역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지만 여전히 체로니의 분노는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수많은 거미줄이 뻗어나오더니 눈 깜짝할 새에 디노와 희우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중구난방으로 뻗어나온 거미줄은 첩보영화에서 보던 레이저망처럼 불규칙하게 드리워져 있었고,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였다간 바로 닿을듯이 그 간격이 좁다. 희우의 얼굴이 불길한 공포로 가득 차올랐다.

 

 "마족들이 인간과 손을 잡고 다른 종족들을 말살시키려고 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마계에 쫙 퍼졌어. 헛소문이기를 바랐는데 너부터가 스스로 그 증거를 보였으니,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구나."

 "뭐?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변명은 나중에 하렴, 만약 네 입과 혀가 남아있다면 말이다."

 

 체로니의 섬뜩한 경고와 함께 거미의 입에서 또 다시 아까와 같은 독침이 튀어나온다. 디노는 희우를 끌어안으며 등으로 공격을 그 공격을 대신 받아낸다. 그 덕분에 희우는 상처하나 입지 않았지만 디노의 옷과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자글자글하니 울린다. 희우가 그 잔인한 소리를 듣고 얼굴이 사색이 된다.

 ​

 "디노!"

 "큿...!"

 ​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바짝 짓눌린 신음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낄 수 있다. 디노가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아내더니 희우에게 물었다.

 ​

 "희우씨, 혹시 방패를 쓸 수 있겠어요?"

 "네, 네...?"

 "이 상태에서는 나도 체로니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파티때 그거, 기억하죠?"

 ​

 디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문제는 그 때 어떻게 쉴드를 발동했는지 희우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 희우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디노는 쫓기는 기색 없이 차근차근 설명한다.

 ​

 "자, 눈을 감고 이미지를 떠올려봐요. 쉴드는 투명한 반구형 보호막이에요. 이건 희우씨가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하, 하지만... 등이..."

 ​

 디노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희우의 손을 강하게 감싸쥔다. 그는 고통을 숨기려 애쓰며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

 "괜찮아요. 나는 괜찮으니까 마음 놓고 집중해요. 그 날 당신이 본 것... 그걸 그대로 여기에 가져온다고 생각하면 돼요."

 ​

 희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떨리는 날숨을 길게 내쉬더니 눈을 감는다. 투명한 듯 하면서도 반짝거리는 재질의 촘촘한 실로 이루어진 작은 돔. 먼지바람이 지나가고 디노가 나타났을때 그를 감싸고 있던 그것. 인상적인 광경은 다행히도 희우의 기억 속에 아직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것을 여기에 가져온다. 그 보호막이 우리를 감싼다. 두 사람 주위에 흐릿한 무언가가 아지랑이처럼 나타나는 것을 보자 디노의 표정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그 때, 또 다시 공격받은 그가 저도 모르게 아픈 신음을 흘린다. 희우가 그 소리를 듣고는 놀라서 번쩍 눈을 뜨고 말았고, 그와 함께 그들의 주위에 막 생겨나려던 쉴드가 금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희우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아, 안되겠어요..."

 "할 수 있어요. 진정하고 다시... 큭!"

 

 그러나 다시 또 한번 공격을 맞자 이번에는 결국 디노도 참아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희우가 거의 이성을 잃은채 고개를 거세게 가로젓는다. 디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그녀를 품안으로 끌어안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체로니를 설득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

 "체로니, 그만둬! 진짜 날 죽일 셈이야?"

 ​

 디노가 애원했지만 다시 한 번 독침이 날아온다. 불쾌한 탄내와 타들어가는 소리가 연달아 이어질수록 그의 신음소리가 더욱 진해진다. 그러나 디노는 신음을 억지로 삼키고 또 다시 체로니의 이름을 외친다.

 ​

 "체로니...!"

 

 이젠 코가 둔해져서 타는 냄새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희우는 디노가 얼마나 다쳤는지 볼수조차 없었다. 공격을 당하면 당할수록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는 디노의 팔힘이 너무나 강했던 탓에, 고개를 내밀기는커녕 옴짝달싹 할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체로니는 이제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희우는 거미의 입에서 이전것보다 훨씬 더 크고 진득한 독침이 고이는 것을 보고 눈앞이 캄캄해진다. 체로니의 무심한 입술이 냉정하게 중얼거린다.

 ​

 "과연 이것까지 버틸수있을까?"

 

 안돼. 그만해. 멈춰. 하지마. 희우가 필사적으로 빌었지만 그녀의 바람은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결국 푸슉하고 독침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목표물에 명중하는 순간, 디노가 크게 움찔거린다.

 

 "컥...!"

 ​

 맥이 끊기는 단말마와 함께 디노가 끝내 힘을 잃고 축 늘어지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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