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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가사리(不可殺伊)
작가 : 비내린
작품등록일 : 2018.12.20

이름 모를 타지에서 죽고 눈을 떠보니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 구 아니, 한 명의 시체를 둘러싼 이야기.

 
2. 강시
작성일 : 18-12-24 22:37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9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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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고려라.”

  “그렇습니다.”

  암군은 어느 동굴 안에서 왕처럼 옥좌를 동굴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금과 보석들도 치장 한 뒤 그 위에서 수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수하들 양 옆에는 서른에 달하는 강시들이 일렬로 양 팔을 앞으로 뻗은 채 서 있었다.

  암군은 손에 있는 방울을 살짝 흔들어가며 고민에 빠졌다. 그 소리에 수하들은 숨을 죽이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동굴은 방울의 짤랑거리는 소리만 가득할 뿐이었다. 암군의 바로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자도 암군의 오른팔이라 하지만 그도 그의 뒤에 있는 다른 자들도 고요함을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진언이라며 암군의 말에 반(反)하는 말을 했다가 강시들 손에 찢겨나간 자들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고작 두 구의 강시에 쩔쩔맨다는 말이지. 그것도 한 구는 실험작일 텐데도 말이야.”

  “그렇습니다.”

  한구는 말이 실험작이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헌데 암군은 그것을 낮춰보고 있다는 문제점을 그는 알고 있었지만 괜히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와 많은 대화는 나눠봤자 얻는 것이 죽음이 빨리 온다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암군은 조금 더 고민하는 척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더 이상의 기다림은 없다. 그 정도에도 벅차한다면 우리가 더 무슨 수를 쓸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서른 구의 강시로, 힘으로 그들을 굴복시키고 내가 고려의 왕이 되겠다.”

  그 말에 회천회 사람들 모두 오체투지를 하며 말하였다.

  “모든 것은 암군의 뜻대로.”

  그 말에 암군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건 다름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인간들이 나를 죽이려고 드는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죽음. 다시 한 번 죽음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무호흡으로 가파른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 뒤로 여러 기의 기마병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기마병이 따라 붙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군에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잘 알고 말이다.

  기마병의 무서움은 그저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아니다. 무거운 말과 인간과 그 인간이나 말에 두르고 있는 갑주의 무게까지 합쳐져서 빠른 속도로 부딪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저 기마병에게 달려가 정면으로 몸통박치기를 해도 내가 아니라 말과 기마병이 죽을 것이다. 저들이 간간이 나를 공격해보기도 하지만 나에게 딱히 피해를 주지 못하고 지금은 그저 감시자의 역할만을 하는 이유기도 했다.

  ‘다 죽일까.’

  솔직히 거리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군대에서 하던 일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명령에 따라 누군가를 죽이는 일말이다. 거기다 저들을 죽이면 나의 위치를 숨길 수 있고, 그러면 나는 죽음과 멀어진다. 그건 3 살배기 아기도 알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아니야.”

  하지만 나는 그런 본능을 거부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 나는 죽은 자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혹시 살아날 수 있는데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걱정 때문에 내 뒤에 있는 방해꾼들을 함부로 떼어낼 수 없었다. 나는 일부로 기마병도 쉽게 들어갈 수 없어 보이는 경사지고, 우거지고, 험한 길만 골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인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고향으로.

 

  “계속 남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태산의 말에 공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계속 내려가는 것일까요?”

  공저는 녀석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물들이 좋아하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거부하면서까지 바라는 그의 목표가 있다고 말이다. 이태산은 잠시 턱을 긁으며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양동… 작전이 아닐까 합니다.”

  “양동작전이요?”

  그 말에 이 태산은 확신에 찬 눈빛과 어투로 말을 이었다.

  “예. 듣기로는 강시를 만든 존재는 원나라에 있는 회천회라는 조직이라 합니다.”

  “들었습니다. 사악한 녀석들이죠. 사자(死者)를 이용하단요…. 천벌을 받을 녀석들이지요.”

  “제 생각엔 그 조직에서 일부로 내려보낸 게 아닌가 합니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기 위해서 말이죠.”

  “회천회는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외부적으로는 그렇지요. 하지만 정말로 회천회가 사라졌을까요. 강시가 이렇게 고려 안에 돌아다니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공저는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강시가 저 둘이 끝이 아니란 얘기가 된다.

  “그리고 저런 별동대가 내려오면 그들을 잡기 위해선 더 많은 숫자의 병력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강시를 막을 수 있는 분들은 도사님들이나 스님들 드리고 몇몇 장수들 밖에 없겠지요. 저도 실력이 부족한 터라 강시를 멸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고려에서 놈들과 싸울수 있는 존재는 스님들 밖에 없다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도사님들은 저희 고려에 별로 없으시니 말이죠. 근데 놈을 잡기위해 모두 남으로 시선이 돌려진 틈을 타서 갑작스럽게 침입해 온다면….”

  “크음…. 국경이 바로 꿇리겠군요.”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저는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태산님은 60의 수원승도들을 이끌고 다시 국경으로 가셔서 지켜주세요. 그리고 개경에 전령을 보내 더 많은 항마군을 요청하시고요. 이들처럼 풀어놓은 존재들이 아니라 군대처럼 움직이는 강시들이 더 많은 숫자로 들어온다면 저희만으론 부족합니다. 적어도 2백 이상의 인원이 보충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저스님. 여기서 60을 빼면 남은 인원은 10여 명입니다. 그들로는….”

  “해야 합니다.”

  공저는 이 태산을 똑바로 굳은 눈빛을 내며 바라보았다. 이 태산은 요즘 자주 일어나는 전쟁과 군인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런 표정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만 군인이 아닌 스님의 표정에 나타났다는 점이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언제나 이 표정을 보면 드는 생각은 같았다.

  ‘막을 수 없다.’

  무거운 책임감을 두른 자들의 말이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가려는 자들 말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10명 아니, 5명이라도 더 데려가십시오.”

  그 말에 공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려 했다.

  “저희는 병력이 더 추가가 될 겁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저 강시가 계속 날뛰면 문제가 생깁니다.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최대한 손해를 입지 않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10명은 너무 적습니다. 더 데려가셔야 합니다.”

  그 말에 공저는 짧은 고민을 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서둘러서 국경 방비를.”

  “맡겨만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인원 분배를 끝내고 서로 갈려졌다. 이 태산과 55명의 수원승도는 북으로 나머지는 남으로.

 

  호흡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호흡하는 것은 은근히 귀찮은 작업으로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마을이나 성에 들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호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저 사세요~”

  “저~ 멀리 원나라에서 가져온….”

  때마침 마을은 장이 열렸는지 주위가 어수선했다. 그때 병사들이 나를 지나쳐 내 뒤에 있는 벽에 벽보를 붙이고 빠르게 어디론가 향했다.

  “뭐지?”

  나는 강시라는 존재로 군에 쫓기고 있는 입장라 그런지 병사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나는 벽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곳에 적혀있는 글자? 모른다. 다만 벽보에 그려져 있는 사람이 내 얼굴을 그린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전에 있던 마을에서 가져온 가면을 얼굴에 썼다. 다행히 장을 하는 동안 여러 공연도 하고, 여러 가면도 파는지 마을 곳곳에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말이다.

  “아빠, 저거 뭐야?”

  그때 어떤 아이가 내 얼굴 아니,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글…. 글쎄.”

  그 질문에 아이의 아버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지만 난들 알 수 있을까. 나도 바닥에 있던 걸 슬쩍 가져온 건데 말이다.

  내가 대충 봤던 가면의 모습은 코처럼 보이는 부위가 오른쪽 뺨을 모두 덮을 정도로 길었던 것 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이 세상에 그런 짐승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아이의 아버지도 이리저리 눈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나와 자신의 아버지를 번달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그 동물은 코끼리라고 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코끼리?”

  나와 아이의 아버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고, 아이는 신기한지 크게

  “코끼리!”

  하고 따라 말했다.

  “그렇습니다. 꼬마 도련님. 코끼리라고 합니다.”

  “코끼리가 뭐에요?”

  이름만 쑥 가르쳐주고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는 그에게 아이는 순진무구하게 물어보았고, 그는 아이의 질문에 한번 씩 웃고는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코끼리는 말이죠. 크흠. 큼, 갑자기 목에 먼지가….”

  그 행동에 아이의 아버지는 작게 웃으면서 철전을 몇 닢 사내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 마저 이야기하고 막걸리라도 한잔 하게나.”

  그 말에 그는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쿠 감사합니다. 이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런 허례는 필요 없네. 거, 코끼리가 뭔지 빨리 들어보세.”

  “맞아요!”

  아이의 아버지와 아니는 빨리 그를 재촉했다. 우연찮게 나는 내 가면의 정보에 대해 공짜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코끼리는 말입니다. 저어어어기 머나먼 이국에 있는 덩치가 작은 언덕만 한 짐승을 이르는 말입니다요.”

  “어허. 어떻게 덩치가 작은 언덕만 할 수 있는가.”

  “그게 놀라운 사실이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코끼리가 풀만 먹고 산다고 합니다.”

  “예끼. 사람이 거짓말을 하려면 조금 더 제대로 해야지 어떻게 덩치가 언덕만한데 풀만 먹고 사나?”

  그 말에 사내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거짓말이면 조금 더 그럴싸하게 지어내지 않았겠습니까. 진실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겁죠. 저도 코끼리에 대해 말할 때 마다 매번 듣는 소리긴 하지만 모두 진실입니다요.”

  그의 애절한 변명이 통한 것일까 아이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계속 말해보게나.”

  “예. 알겠습죠. 계속 말씀 드리자면 이 코끼리는 코가 얼마나 긴지 아십니까. 자, 여기 가면을 보면서 코가 이렇게 길지 않습니까?”

  하면서 내 가면을 만졌다. 느낌을 보아 코를 만지는 것 같은데 바로 뒤에 벽보가 있는 나로서는 살아있을 때의 느낌대로 말하자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코끼리는 이렇게 코가 길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때도 코를 이용해 먹는다고 합니다.”

  하면서 한 손으로 코끼리의 코를 흉내 내는지 어깨부분을 코에 대고 팔을 마구 흔들었다.

  “와! 코가 길어서 코끼리래요!”

  아이의 아버지는 한번은 참았지만 계속되는 사내의 거짓말에 화를 내려고 했지만, 아이의 해맑은 미소에 화는 자취를 감추고 아이와 같은 미소만이 입가에 맺어졌다. 그리고 사내의 말이 지나갈수록 아이의 눈빛은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그리고 사내의 말이 끝났을 때 아이도

  “나도 코끼리~”

  하면서 한쪽 어깨를 코에 댄 상태로 아버지의 옷깃을 잡고 조르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작은 한숨을 쉬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사내에게 몇 닙의 돈을 더 얹어주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하네.”

  “아이쿠. 아닙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좋은 이야기로 만나 뵙기 바랍니다.”

  사내는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리고 아이와 아버지 또한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코끼리! 잘 가!”

  아이는 발을 옮기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이라….”

  나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에 반대로 슬퍼질 수밖에 없었다.

  “내 아이도 지금쯤이면 저리 컸을까….”

  그와 동시에 내 뒤에 있는 벽에 붙어있는 벽보가 떠올랐다.

  “볼 수 있을까….”

  어느 날 나타난 아버지. 그리고 알 보고니 그 아버지가 고려를 떠들썩하게 만든 강시였다. 아이의 입장에선 어떨까. 내가 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나는 슬슬 밀려드는 현실에 고개를 저었다.

  ‘멀리서, 멀리서 만이라도 보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고향을 향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섰다.

  ‘내 고향이 어디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교주도 어딘 가였다는 것이다.

  ‘교주도 어디지.’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내 눈 앞에 병사들이 나를 향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이 마을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는 병사들을 피해 자리를 떴다. 그리고 멀리서 본 그 병사들은 내 벽보를 거칠게 뜯은 것 같았다. 나의 착각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볼 수 없을 거라고 나는 계속 생각했다. 정확한 위치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 가장 컸다. 계속 생각해 봤지만 주변 풍경만 생각나고, 아내만 생각날 뿐 그 외에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았다. 고향을 떠올리면 언제나 아내와 군으로 떠나는 나. 그 모습만 그려질 뿐 고향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볼 수 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내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계속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나는 북계에서 서해도를 지나 교주도로 들어왔다. 내가 내 고향이 있다고 생각이 든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교주도가 넓어도 너무 넓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지치지도 자지도, 먹지도 않으니 계속 돌아다니다 보면 되지만 현실적으로 뒤에서 따라오는 스님들 때문에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제길. 어떡하지.”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나의 목표였다. 죽기 직전의 목표였고, 강시가 된 후에 유일하게 내가 강시임에도 존재해야할 단 하나의 이유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꺄아악.”

  그때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살짝 고민했지만 역시나 삶을 되찾기 위해선 선행을 많이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엔 한 소녀가 피를 흘린 채 끄러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향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라는 생각이 들땐 이미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을 때였다. 등에 이상한 느낌이 나 더듬어보니 나무쪼가리들이 가득했다.

  “한명 걸렸어요!”

  밖에선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활발한 목소리였다. 나는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내가 떨어진 자리를 제외하곤 바닥에 뾰족한 나무가 가득했다. 아마 저런 것이 여기에도 박혀있었겠지. 하지만 내 몸은 날붙이도 들지 않는데 나무쪼가리로 상처라도 입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그리 높지도 않은 벽을 천천히 기어 올라갔다. 벽이 살짝 딱딱했지만 나무로 구멍냈던 팔인데 이런 벽에 손가락을 박는 것 쯤은 간단했다.

  “꺄아악!”

  나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나를 이곳으로 부른 소녀가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벽을 타고 빠르게 기어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이번엔 진짜 비명을 질렀다.

  “빨리 와요! 벽을 타고 오고 있다고요!”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외쳤다. 아마 같이 이런 일을 하는 도적때겠지. 나는 그들을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구멍을 다 기어 올라왔다. 그러니 구멍을 동그랗게 6명 정도의 사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처음 봤던 소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저들과 관련 없는 사람인냥 말이다..

  “힘은 좋아 보이는군. 그럼 노예로 팔면 될 거 같은데.”

  “일단 가지고 있는 것부터 다 내놔. 그러고 시작하자고.”

  그 말에 내 입에 비웃음이 맺혔다. 이들은 내가 얼마 전에 싸웠던 진짜 강시나 살짝 마주쳤던 스님들에 비하면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런 애송이들이 시비를 걸자 나도 모르게 비웃음이 나왔고, 그것을 본 도적들은 분노하면 나에겐 귀여운 수준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흉흉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놈이 비웃어? 오냐. 한번 사지가 잘리고도 그럴 수 있나 보자!”

  다들 그 말에 동감했는지 딱히 대답은 없고 나를 향해 자신의 조잡한 병장기를 내밀었다. 나는 이들보다 이들 사이에 끼어있지 않은, 나를 이곳으로 부른 소녀가 더욱 궁금했다. 마치 그들과 한 무리이면서 아닌 거 같은 느낌을 풍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면서 이곳을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동안 녀석들은 나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나는 별 위협이 되지 않고, 그것들을 모두 피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 맞아주었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내지른 병장기가 모두 튕겨져 나갔다. 녀석들은 그 모습에 당황해 했고, 나는 그들을 중 한명을 힘껏 쳤다. 이들이 날 공격한 곳은 명백히 급소였다. 사람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곳 말이다. 나는 군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굳이 나의 적이 된 녀석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힘껏 주먹을 날렸고, 그 결과는 모두를 당황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퍽.

  소리와 함께 녀석의 얼굴이 사라졌다. 피와 확실히 피는 아닌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사방으로 튀었고, 도적때는 공포에 빠져들었다. 녀석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모두 쫓을 수 도 없기 때문에 그들을 굳이 쫓지 않았다. 일단 그 일을 일으킨 나도 나도 당황스러웠고, 정신을 차린 뒤 사방으로 흩어지는 녀석들을 전부 찾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소녀가 있던 곳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도 벌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도망쳤는데 미리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가 이곳에 남아있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다른 도적들 보다 소녀에게 관심이 더 간 것이지 결국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관심을 끄고 다시 남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겨우 군을 따돌렸는데 저런 바보 같은 도적들에 의해 다시 뒤를 잡히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또 다른 추격자들이 따라붙기 전에 말이다.

 

  나는 옛날엔 운명이라는 말을 어렵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사는데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아내를 두고 군에 들어갈 때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한 번의 운명을 느꼈다.

  “살려주세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당연했다. 얼마 전에 들었던 목소리였으니 말이다. 나는 어차피 또 함정일거 같아서 그냥 지나가려 했다.

  “꺄아아악.”

  그때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내 감이 이번엔 진짜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계속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내가 착한 일을 하려했던 것은 인간으로 돌아올 때 도움이 될까해서 였다. 하지만 난 이미 한번 인간을 죽이고 말았다. 나는 내가 인간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들었다.

  “살려…!”

  하지만 나는 한 번 더 들리는 소리에 한숨을 내쉬면서 발길을 돌렸다. 아마 부처님도 내가 죽인 인간에 대해서 크게 뭐라 하지 않으실 것이다. 날 죽이려고 했는데 내가 거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주에 부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도록 계속 선행을 베풀 것이다.

  내가 빠르게 달려 곧 도착한 곳은 남성 여러 명에서 소녀 한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미 소녀의 옷은 반쯤 찢겨져 있었다.

  소녀는 눕혀져서 억지로 옷이 벗겨지면서 그들 사이로 힘겹게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크게 외쳤다.

  “오라버니!”

  그 소리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남성들이 날 쳐다보았다. 모두 나름대로 흉흉한 기세를 뿜어낸다 하지만 여전히 내 입장에선 여전히 우습기만 했다. 그들이 전에 있던 녀석들보다 나은 점은 숫자가 조금 더 늘어났다는 것뿐이었다.

  “너희 둘 처리하고 와.”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나도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나는 기가 차지도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우두머리는 소녀의 머리칼을 우악하게 잡고 얼굴을 나를 향하도록 잡아 올렸다.

  “잘 봐. 네 오라버니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나에게 다가오는 두 녀석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경으로 복귀하는 부대처럼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상황에 다들 즐거운 볼거리가 생긴 것처럼 즐겁게 웃어댔다. 소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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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4 282 0 3600   
14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3 272 0 4900   
13 4. 고향 + 5. 철을 먹는 자 2019 / 1 / 2 268 0 5729   
12 4. 고향 2019 / 1 / 2 272 0 3996   
11 4. 고향 2018 / 12 / 31 286 0 5180   
10 4. 고향 2018 / 12 / 30 269 0 11914   
9 4. 고향 2018 / 12 / 28 255 0 9966   
8 3. 헤야 2018 / 12 / 27 247 0 10268   
7 3. 헤야 2018 / 12 / 26 233 0 10056   
6 3. 헤아 2018 / 12 / 25 320 0 9854   
5 2. 강시 2018 / 12 / 24 242 0 9790   
4 2. 강시 2018 / 12 / 23 260 0 11043   
3 1. 고려로 2018 / 12 / 22 240 0 9382   
2 프롤로그 + 1. 고려로 2018 / 12 / 21 239 0 9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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